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3화(83/241)
* * *
노크 소리에 에르하르트는 시선을 들었다. 헤론이었다.
그는 데미안의 수업이 끝날 때마다 보고를 올렸기에, 방문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어땠지?”
“늘 그렇듯 훌륭하십니다. 이해력도 빠르시고 집중력도 뛰어나십니다.”
“그렇군.”
“그런데…… 오늘은 이걸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헤론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새로운 보석 광산이라도 발견한 건가?”
“신성석입니다.”
“……뭐?”
공작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공자님께서 우연히 붉은 호수 근처의 나무에서 발견했다고 하시더군요.”
“…….”
“이미 확인까지 마쳤습니다. 의심할 겨를 없는 신성석입니다.”
에르하르트는 말없이 신성석에 시선을 두었다.
맑고 투명한 붉은 보석을 보자 문득,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에르하르트, 할 이야기가 있어요.”
유리아는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출정 직전이니만큼, 남편에게 응원을 해주기 마련이었으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이건 당신에게도 무척 중요한 정보예요. 들으면 깜짝 놀랄 거예요.”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지?”
“음? 사랑하는 에르하르트 슈에츠 공작님. 정보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죠.”
유리아는 그렇게 말하고선 씩 웃었다.
“당신을 닮은 붉은 보석이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대 앞으로 된 예산이 부족한가.”
“예산은 넘쳐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따로 있어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함께 사러 가요.”
“……나도 함께?”
“네. 당신도 하나 골라야 하거든요. 물론 색깔은 이미 정해뒀지만.”
“어떤 색.”
“나를 닮은 녹색이 좋겠어요.”
유리아의 맑은 녹안에 그가 담겼다.
보석 같은 건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한 번쯤 흥미를 가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러지.”
그래서 약속했다. 귀환했을 때, 그녀와 함께 가겠다고.
하지만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가 돌아왔을 땐, 이미…….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붉은 보석 위로 내려앉았다.
그때 말할 걸 그랬나.
당신을 닮은 색채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전하지 못한 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이제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은 너무나 쉽게 사라진다. 고통 속에 얻은 교훈이었다.
‘그러니 그전에 지켜야겠지.’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통해. 단, 신성석이라는 건 숨긴다.”
슈에츠 영지는 저주받은 땅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성석을 발견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믿을 리 없었다.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신성석의 채굴에는 한계가 있어, 값은 해가 갈수록 치솟았다.
하지만 이토록 귀하디 귀한 것이 발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도 하찮은 것이 된다면.
신전은 값을 낮출 수밖에 없다.
값이 비싼 신성석이라면 타격은 더더욱 클 터였다.
“먼저 동부 쪽 시장에 풀어놓는 게 낫겠어.”
공작이 아직도 신전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혼인 서약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혼인 서약서는 각자의 영지와 밀접한 신전에 제출해야 했다.
엘리는 오블리에의 일로 북부 신전에서 승인을 받아냈지만, 데미안의 본래 영지, 즉 동부 신전에선 계속 승인을 미루고 있었다.
그때 신관에게 걸었던 언약은 ‘반드시 혼인 서약서를 승낙한다’ 였다. 받지 않은 척 피해버린다면 어긴 것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들 딴에는 머리를 좀 쓴 듯했다.
하지만 신성석으로 협박한다면 동부 신전 쪽에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은 공작님의 상단 이름으로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편이 더 확실할 테니까요.”
그러자 공작이 한쪽 눈썹을 으쓱였다.
“하지만 발견자는 엘리잖나.”
“그렇긴 합니다만…….”
헤론은 무의식적으로 동의하다, 놀란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았다.
“……눈치채셨습니까?”
“데미안은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아이야. 위험한 호수에 가까이 다가갈 리 없지.”
그에 반해 엘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확인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데미안이 호수 근처에 갔다는 건, 엘리가 곁에 있었다는 뜻이겠지.”
공작의 명료한 설명에 헤론은 침묵했다. 역시 공작을 속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 님의 이름으로 판매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다른 이름을 쓰면 되지 않나.”
공작의 대답에 헤론이 멈칫했다.
누가 있단 말인가.
엘리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견제의 뜻을 신전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군요.”
“나도 그대와 같은 생각이야.”
공작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고로 처가가 든든해야 며느리도 마음이 놓이는 법이니까.”
몇 시간 후.
“……예? 이, 이, 이것이 무엇이라고요?”
공작의 명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제리트가 입을 떡 벌린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 * *
며칠 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봉사를 마친 후, 신전으로 돌아가려던 신관이 발걸음을 멈췄다.
“음악 소리 같은데요?”
동행하던 신관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렇게 맑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이런 곳에 있을 리 없잖아.”
“그건…… 그렇네요.”
이곳은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이들로 가득했다. 끼니에 도움도 되지 않는 악기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의아함을 느낀 신관이 소리가 들리는 곳 앞에 섰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농가였다.
쿵쿵쿵!
“계십니까?”
“……누구세요?”
빼꼼 열린 문 너머로 꾀죄죄한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안녕하십니까, 자매님. 저는 동부 신전에서 신의 말씀을 전하는 플린이라고 합니다.”
“안 사요.”
아이가 단호히 말하며 문을 닫았다.
당황한 플린은 문이 닫히기 전, 재빨리 문 사이로 발을 밀어 넣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저, 이곳에서 신의 말씀을 닮은 음성이 들리길래 따라와 본 것뿐입니다.”
“…….”
아이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신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사람의 경계를 푸는 데에는 미소만 한 것이 없었다.
“……음악, 이거 별거 아닌데요.”
경계가 풀렸는지 아이가 우물거렸다.
“그냥…… 돌인데요.”
“예? 돌이요?”
“네. 보여드릴까요?”
아이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손에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그것은 붉게 빛나는 작은 돌이었다.
“이, 이건……!”
신관들이 경악을 터뜨렸다.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또렷이 구분할 수 있었다.
“이건 신성석 아닙니까!”
신관이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빼앗았다.
깜짝 놀란 아이가 울먹였으나, 신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 귀한 걸 어디서 훔쳤지? 바른대로 말해!”
“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소리가 듣기 좋아서…….”
“시치미를 떼는군. 이 아이를 신전으로 데려가야겠다.”
“알겠습니다.”
다른 신관이 아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발버둥 쳤다.
“줄리아!”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듯한 여자가 머리를 조아렸다.
“시, 신관님. 우리 애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신성석을 훔친 주제에 감히 용서를 빌다니. 건방지군! 그래, 당신이 이 아이의 보호자이니 함께 가야겠어.”
“저희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품삯 대신 받은 것뿐입니다!”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신관이 코웃음을 쳤다.
“신성석은 귀족들도 쉬이 사지 못하는 값진 것이다. 그런데 품삯이라니!”
“예? 하, 하지만…….”
여인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돌은 요즘 꽤 흔합니다만…….”
“뭐?”
그녀의 얼굴엔 한 치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신관들은 당황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붉은 신성석엔 이리저리 치이기라도 한 듯 자잘한 흠집이 곳곳에 나 있었다. 험하게 다뤄졌다는 뜻이다.
“어디서 이것을 받아왔지?”
“과, 광장에 있는 필츠 씨의 가게입니다.”
출처를 파악한 신관들은 곧장 광장으로 나갔다.
간판에 ‘필츠’라고 쓰인 생선가게가 보였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중이었다.
신관들은 성큼성큼 그를 향해다가 갔다.
“이거 색깔이 왜 이래?”
그때였다. 생선들을 훑던 그가 혀를 쯧 차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곤 곧장 생선 입에 그것을 쑤셔 넣었다.
아까와 같은 붉은 신성석이었다. 입에 넣자 반짝반짝 빛이 나며, 생선이 갑자기 더욱 싱싱해 보였다.
신관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들이 경악하며 필츠에게 달려갔다.
“이토록 귀한 걸, 이런 것에 쓰다니요!”
“귀해요? 이것이?”
필츠가 코웃음을 쳤다.
“한 번 둘러보슈. 이게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가 안 살 거면 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신관이라고 해도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파리 새끼에 지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신관들은 부정하듯 중얼거리며 광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필츠의 말은 사실이었다. 광장의 상인들은 신성석을 흔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신관들은 광장 사람들을 붙잡고 출처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전부 똑같았다.
“아만타 상단에서 새롭게 만든 물건이라던데요?”
아만타 남작가는 슈에츠 공작가의 가신이었다.
동부에 상품을 들이려면 클라이더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만타 상단이 이것을 동부에 풀었다는 건.
‘슈에츠 공작도 이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동부 신전은 발칵 뒤집혔다.
가뜩이나 몇 년째 채굴되는 신성석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애가 탄 귀족들은 왜 신성석을 내놓지 않냐며 더 높은 가격을 제안했고, 덕분에 신성석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연이은 손해를 메울 정도까지만 가격을 높인 후, 판매하려고 했건만……!’
다행히 아직 멀리 유통되지는 않은 듯했다.
거리의 상인들은 신성석의 가치를 몰랐다. 비싼 마나석도 본 적이 없으니, 신성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제대로 수거만 한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 많은 시장 상인들이 알게 된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동부 신전의 대신관은 곧장 아만타 남작에게 서신을 보내, 부디 신성석의 유통을 제한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윽고 도착한 답신엔 다른 말없이, 엘리와 데미안의 혼인 서약서가 담겨 있었다.
“신관님…….”
바들바들 떨던 동부 대신관은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생선의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영주가 유용하게 쓰이던 돌을 거둬 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선은 전보다 더 비실비실해 보였다.
“에휴, 오늘따라 왜 이리 파리가 꼬여?”
생선가게의 주인인 필츠가 구시렁거리며 팔을 뻗었다.
짝! 큰 소리와 함께 파리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