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4)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4화(84/241)
* * *
“확실히 수거는 끝마쳤나?”
“예, 공작님.”
에르하르트의 물음에 아만타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대로 새로운 신성석 유통을 포기하는 건 너무 큰 손해입니다.”
“누가 포기한다고 했지?”
“예?”
에르하르트가 동부 신전의 문양이 찍힌 혼인 서약서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수거 요청에 응했을 뿐, 유통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지 않나.”
그가 싱긋 웃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아만타 남작은 알았다.
에르하르트의 저 웃음은 흡사 종말을 뜻한다는 것을.
“새로운 신성석은 그대에게 맡기지.”
“예?”
“내 며느리의 친정에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만큼 엘리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아만타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에르하르트가 나가려던 아만타 남작을 붙잡았다.
“그 신성석, 제리트에게 한 번 맡겨보면 좋을 것 같군.”
“예?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제리트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어째서 제 아들을…….”
“엘리가 나보다 제리트를 더 많이 따르기 때문이지.”
어쩐지 묘하게 살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남작은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니 엘리도 마음껏 의견을 펼칠 수 있겠지.”
에르하르트의 시선이 서명란에 적힌 아이들의 이름에 닿았다.
* * *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신랑, 신부가 워낙 꼬꼬마다 보니 준비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엘리 님. 이제 일어나 보셔요.”
“우으…… 다 끝났어?”
“네.”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준비를 마친 난 거울을 바라보았다.
좋은 옷을 입어서 그런가, 다른 날보다도 예뻐 보였다.
순백색의 드레스는 분홍색 리본으로 장식되어 신부 느낌이 물씬 났다.
“어머, 사랑스러워라.”
“최고의 날이에요.”
이바나와 아셀이 자신의 뺨을 감싼 채 황홀한 얼굴을 했다.
“괜찮아? 이상하진 않아?”
“이 세상에서 엘리 님보다 귀엽고 아름다운 분은 없을 거예요.”
이바나의 단언에 민망해진 난 어색하게 웃었다.
“일어나 보시겠어요?”
메이가 치맛단 정리를 마치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살짝 말려있던 드레스 끝단이 완전히 내려가며 원래의 모양을 드러냈다.
“엘리 님. 잠시.”
메이가 미리 준비된 꽃을 내 귀에 꽂았다.
머리카락을 어루만져주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아름다우세요.”
이런 말을 하는 메이는 조금 생소해서, 나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엘리 님, 준비 다 되셨나요?”
그때 문이 열리고 안테가 들어왔다.
“우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정말요?”
“예. 공작님께서도 눈을 못 떼실 겁…… 으악!”
“누가 신부를 함부로 만나?”
그때, 험상궂은 얼굴을 한 공작이 얼굴로 안테를 밀쳤다.
늘 가슴팍을 풀어헤치던 공작도 오늘만큼은 목까지 단추를 꼭꼭 걸어 잠가야 하는 정복 차림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표정이 더욱 일그러져 보였다.
“쯧. 하여간에 사내 새끼들은 기다릴 줄을…….”
투덜거리던 공작이 나를 발견하자 표정을 굳혔다.
“어…… 이상하나요?”
“…….”
내 물음에도 슈에츠 공작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저, 공작님. 크흠.”
“…….”
안테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공작의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가 다시 닫혔다.
“공작님……?”
나는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이 더욱 험상궂게 변했다.
‘……역시 이상한가 봐.’
하지만 오늘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좀 예뻤는데. 드레스를 입어 들뜬 모양이다.
나는 머쓱함을 느끼며 잠시나마 설레었던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때, 머리 위로 무언가 내려앉았다. 공작의 손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예쁘다. 무척이나.”
“……!”
“진심이야.”
공작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엔 걱정이 묻어났다.
‘꼭…… 딸을 시집보내기 싫어하는 아빠 같아.’
또다시 마음이 간질거렸다.
내가 입술을 오물거리자 공작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만큼은 아버지로 할까.”
“……예?”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아, 나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사람은 아버지이니까.”
아버지. 나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렸다.
그의 허리춤엔 내가 주었던 볼품없는 매듭이 단단히 매여 있었다.
‘이것도 나를 위해서일까.’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해주실 거예요?”
“네가 원한다면.”
공작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리며 권하듯 내밀었다.
늘 보던 검은 장갑이 아니라 하얀 장갑을 착용한 채였다.
그제야 결혼식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나는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큼지막한 손 위로 내 손을 얹었다.
“그럼 가볼까, 따님.”
긴장이라도 풀어주려는지, 공작이 한쪽 눈썹을 으쓱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킥킥 웃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빠.”
* * *
신랑, 신부의 나이가 나이다 보니, 예식은 간소했지만 식장만큼은 여느 귀족 못지않게 화려했다.
하객도 가까운 가신들과 몇몇 사람들만 초대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축복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윽고 신부 입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웨딩 로드에 오르자, 단상 앞에 서 있는 데미안이 보였다.
머리를 깔끔히 정리한 데미안이 정복을 맞춰 입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뺨이 한층 붉어진 것을 보니, 적잖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윽고 주례가 신부의 입장을 알렸다. 나는 공작의 손을 잡고 웨딩 로드를 걸었다.
신부 측 쪽엔 아만타 남작과 남작부인이 앉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서류상 내 아버지인 아만타 남작과 함께 입장해야 했지만…….
“엘리 님. 저도 그러곤 싶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니 참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남작에게 더 이상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공작님께서 대신해주시긴 했지만…….’
입장을 지켜보는 하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걸 보니 공작의 얼굴이 얼마나 살벌한지 알 것 같았다.
‘방금 전엔 잘 웃었으면서.’
갑자기 왜 저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꽃다발로 입가를 가리며 그에게 속삭였다.
“공작님, 얼굴이요.”
“무슨 얼굴.”
공작이 삐딱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표정이요, 표정. 너무 안 좋으시잖아요.”
“난, 지금, 무척이나 기뻐.”
기쁜 사람 얼굴이 왜 그렇냐고요.
“……단지 조금 복잡할 뿐이지.”
“복잡해요?”
“그래.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짜증도 나고. 마음이 복잡하군.”
공작이 짓씹듯 중얼거렸다.
‘좋은데 짜증 난다는 건 또 무슨 감정이야?’
알쏭달쏭한 마음을 헤아리기도 전에 입장이 끝났다.
공작이 내 손을 놓아주었고 나는 데미안 옆에 섰다.
“안녕.”
“……안녕.”
가볍게 인사하자 데미안도 따라 인사했다.
“오늘 정말 멋지다, 데미안.”
“……엘리도.”
“응?”
“엘리도, 세상에서 제일 예뻐.”
데미안이 귀 끝까지 붉힌 채 대답했다.
형식뿐인 결혼식이라고 해도 날이 날인지라,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꼭 꿈이라도 꾸는 소년 같았다.
“하아…… 너무 사랑스러워요.”
“두 분 뺨을 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그렇듯 이바나와 아셀이 주책을 부렸다. 그들 옆에 무심히 서서 치맛단을 정리해 주던 메이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엘리 님, 잠시.”
“응?”
메이가 내 귀에 꽂혀 있던 꽃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데미안의 입가로 가져갔다.
“이거라도 무시겠어요?”
“……?”
“긴장이 좀 풀릴 겁니다.”
눈을 깜빡이던 데미안이 얼결에 꽃을 입에 물었다.
메이는 옅게 웃으며 물러났고, 졸지에 꽃을 문 남자가 된 데미안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메이!”
이바나가 황급히 메이를 끌어당겼다.
작은 꼬마가 꽃을 문 게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너무 예쁘다, 데미안!”
“�으…….”
“너무 귀여워. 최고야!”
입에 장미를 문 채 우물거리던 데미안이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웃었다.
꼬마 신랑, 신부가 얼굴을 맞댄 채 웃자 하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데미안은 영문을 몰라 허둥거리면서도 꽃은 입에서 빼지 않았다.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 나는 다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흐뭇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던 주례가 말했다.
“이제 맹세의 키스를…….”
“뭐?”
사나운 공작의 되물음에 주례가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 절차가 절차이다 보니……. 큼. 죄송합니다.”
그러며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가볍게 뺨에만…….”
“죽고 싶나 보군.”
공작의 눈빛이 흉흉해지자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 하지만 관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애석하게도 그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공작의 기세가 오러라도 내뿜을 것처럼 날카로워졌다.
나는 결혼식 올린 날, 사람이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끝내버려야지.
‘음…… 뺨에 뽀뽀하는 것쯤은 괜찮겠지.’
아직도 꽃을 입에 문 채, 데미안은 순수한 얼굴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데미안. 저기 봐봐.”
“우?”
내 손짓을 따라 데미안이 고개를 돌렸다. 복숭앗빛 뺨이 드러났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나는 가볍게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데미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동시에 물고 있던 꽃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이, 이, 이게 무슨…….”
“미안. 하지만 뽀뽀를 하지 않으면 부부가 될 수 없대.”
“뽀뽀…….”
단어가 간지러운 듯 데미안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분홍빛 복숭아가 빨갛게 익은 토마토로 변했다.
꼬마들이 뽀뽀하는 게 퍽 귀여웠는지, 하객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제리트는 눈물이라도 찍어낼 기세였고, 남작은 드물게 웃는 얼굴이었다.
“축하드려요, 엘리 님.”
그리고 조금 야위었지만 밝은 표정의 남작부인까지. 모두가 웃고 있었다.
“……주례, 누가 불렀지.”
공작만 빼고.
“그것이…….”
공작의 물음에 사용인들이 몸을 덜덜 떨었다. 한 마디라도 잘못 올렸다간 죽일 기세였다.
“그, 그럼 이것으로 혼인 서약을 마치겠습니다!”
주례가 빠르게 우리의 혼인을 인정했다.
나는 데미안의 손을 꼭 잡으며이제 어쩔 거냐는 얼굴로 공작을 바라보았고, 공작은 살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테.”
“……예.”
“당장 저 주례를 묶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주례의 겁먹은 소리를 뒤로한 채, 우리를 내려다본 공작이 나와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축하한다. 이 마음만은 진심이야.”
“…….”
“이제부터 우리는 가족이다.”
공작의 선언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릴 바라보는 눈빛이 햇빛보다도 따스해서, 나는 활짝 웃었다.
그렇게 나는 공작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도둑의 딸. 천한 피.
쓸모없는 아이였던 ‘나’는 오늘 새로운 이름과 가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