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6)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6화(86/241)
으득. 그녀가 이를 악 물었다.
그 아이만 아니었다면 황제가 15년 동안 헤매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허튼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제국의 광영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살기를 풍기던 그녀가 다시 차분한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죽은 계집, 떠올려 봤자 평정만 흐트러질 뿐이었다.
괜히 이성을 잃었다간 가짜로나마 쌓아온 황제와의 관계를 자칫 무너뜨릴지도 몰랐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을 수 있다면 어떠한 짓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우선은…….’
카르티아가 옆에 놓인 종을 흔들었다.
사아악.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린 것도 잠시.
“부르셨습니까.”
검은 로브를 쓴 자가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르비노 자작에게 엘리의 정보를 알렸던 바로 그 자였다.
“재미있는 소식이 있다지?”
“예.”
그는 조용히 자신이 알아 온 사실을 보고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카르티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하…… 슈에츠 공작, 그놈이 드디어 미친 게로군.”
황가의 허락도 없이 혼인을 올리다니. 이것은 반역이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하지만 슈에츠 공작은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대대로 이어진 그들의 광증 때문이었다.
‘이를 어쩐다…….’
붉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서늘히 웃었다.
“그 아이들, 몇 살이라고 했지?”
“각각 11세, 13세입니다.”
“어머나. 어쩜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 아들이 열한 살이라니. 2 황자, 마테오와 동갑이구나.”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 마테오에게도 좋은 친구가 생기겠어. 그렇지 않니?”
카르티아의 말에 그는 뱀처럼 날렵해진 동공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 * *
“우와…….”
나는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롱은 이렇게 생겼구나.’
살롱을 방문하는 건 처음인지라 모든 게 신기했다.
“어떠십니까?”
제리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울이랑 전구들로 가득해요.”
“하하. 그렇지요.”
내 대답이 귀여운 듯 제리트가 작게 웃었다.
“그런데 저건 뭐예요?”
나는 어딘가 익숙한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머리에 쓰는 미용도구입니다. 아직 정확한 이름을 붙이지 못했지만요.”
“미용도구라면, 설마…….”
나는 눈을 빛냈다.
저 동그란 모양이나 집게를 봤을 때 어딜 봐도 아이롱이었다.
그러니까 고데기 말이다!
“헤론 님과 슈에츠 공작님께서 신기한 원석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신성석 같은…….”
제리트는 거기까지 말하곤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새로운 신성석은 아직 언급 금지였다.
“……아무튼 마나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광석이라, 연구를 위해 불 속성의 마법사에게 마나를 전달받았습니다. 워낙 추우니, 난로로 써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손난로를 생각한 거구나.
‘하지만 난로로 쓰기에는 너무 좋은 돌이지. 아까워.’
제리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듯했다.
“하지만 난로로 쓰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에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잠이 들었죠. 이 광석을 머리맡에 둔 채로요. 그런데 오랜 시간 곁에 두었지만 머리카락이 타지 않았더군요.”
“오!”
“그래서 생각했지요. 이걸 인두 대신에 써보면 어떨까 하고요.”
이곳 사람들은 인두를 뜨겁게 달구거나, 헤어롤을 이용해 머리 모양을 바꿨다.
하지만 헤어롤은 모양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었고, 인두는 잘못 쓰다간 머리카락이 타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오래 두고 있어도 타지 않는다니.’
아이롱보다 좋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살롱을 열어볼까 생각한 거구나!’
이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사용하는 사람의 스킬이 부족하면 말짱 꽝이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써도 똥 손은 똥 손이지.’
하지만 전문 미용사에게 아이롱을 들려준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대박이었다! 나는 환호하며 물개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해요, 오라버니!”
“그,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내 찬사에 제리트가 쑥스러운 듯 볼을 붉혔다.
‘나중에 살롱의 이름값이 높아진다면 아이롱만 따로 팔아도 되겠어.’
응응. 좋아, 좋아. 흐뭇하게 웃던 나의 시야에 문득 한가득 쌓인 옷감이 들어왔다.
“저건 뭐예요?”
“여러 옷감들을 모은 겁니다. 살롱이긴 하지만 의상실도 함께 운영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1층에는 커피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옷이 만들어지는 동안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오…….”
“프라이빗 룸도 따로 만들어 둔 상태입니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요.”
“오오…….”
“그리고 엘리 님 아이디어로 만들 수 있었던 패드도 항상 구비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예정입니다.”
“오오오!”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나왔다.
‘역시 제리트도 사업 수완이 좋다니까!’
2층에 살롱과 의상실을 만들어 자유롭게 옷을 볼 수 있게 만들고, 1층에 커피하우스를 만들어 고객이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게다가 패드도 잊지 않고 챙겼어!’
제리트의 생각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나는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제리트는 볼을 붉히며 웃다가 갑자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리트의 소심함이 오늘도 잊지 않고 찾아왔다.
‘너무 좋은 전략인데, 왜 그러지?’
혹시 다른 불안 요소라도 있나? 그에게 이유를 물으려 할 때였다.
“너! 또 내 가위 만졌지?”
경악에 찬 갑작스러운 고함에 나는 파드득 몸을 떨었다.
소리는 재단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미안하군. 혹시 소중한 가위였나? 그랬다면 사과하지.”
“이건 머리카락을 자르는 가위라고 했잖아! 옷감을 자르는 게 아니라고! 못 알아들어? 귀 막혔어?”
“세상에 귀 막혔는데 대답하는 사람도 있나? 신기하군.”
“악!”
커튼 너머로 끊임없이 싸우는 소리가 넘어왔다.
“또 시작이군…….”
제리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예요?”
“함께 일하기로 한 미용사와 재단사입니다만…….”
그 순간, 커튼을 거칠게 젖히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기가 도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아, 됐어! 너랑 이야기 안 할 거야.”
그러자 뒤이어 초록빛 도는 머리카락을 가진, 집채만 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따라 나왔다.
한눈에 봐도 우직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샬롯, 아직 화가 나 보인다.”
“너 때문이잖아, 너! 네가 가위도 구분 못 하는 사람이라서!”
그러자 남자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샬롯, 가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다.”
“그 뜻이 아니잖아! 아악!”
샬롯이라 불린 여자가 괴로운 듯 머리를 붙잡았다.
‘음…… 정확히 말하면 싸운다기보다는 한 명이 일방적으로 속 터져하는 것 같지만.’
게다가 착실히 사과까지 하니,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어 보였다.
혹시나 불똥이 튈까,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괜찮을까요?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나는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곧 끝납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리트가 그렇게 속삭인 순간이었다.
“됐어! 이러다 내 속만 터지지.”
샬롯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가위를 사러 가나?”
남자도 질세라 그녀를 뒤따랐다.
“그런 거 아니니까 따라오지 마!”
“하지만 우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않나.”
“아니거든! 네가 내 가위 만져서 화내고 있었거든?”
“그럼 새로운 가위를 사러 갈까.”
“안 사!”
샬롯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은 착실히 맞아가고 있었다.
쿵!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자, 제리트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다 우수한 실력을 가졌습니다만…… 플린트의 눈치가…….”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꼬박꼬박 대답해 주는 샬롯이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플린트를 고용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제리트가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사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실력 좋은 재단사들은 각각의 의상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사 아직 열지 않았다고 해도 저와 함께 일하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재단사라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직접 운영하기를 원하니까.
“게다가 샬롯은 고객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잘 파악합니다. 손재주는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플린트는 색에 대한 감각이 좀 많이…… 부족합니다.”
제리트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없다고 해야겠네요.”
“샬롯이 없으면 큰일 나겠네요.”
“그래도 금방 화해하니 괜찮을 겁니다. 고객 앞에서만…… 참아준다면요.”
제리트가 흐릿하게 웃어 보였다.
음, 제리트가 절망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아이디어 자체는 좋은 것 같아.’
재단사가 옷을 맞춰준 다음, 샬롯이 아이롱을 이용해 머리를 세팅해 준다면 살롱은 대박 날 터였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샬롯과 플린트.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낼 방법이 없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멈칫했다.
내 시야에 한 무더기의 옷감이 들어왔다.
‘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