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7화(87/241)
눈을 빛낸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샬롯은 옷을 좋아하지 않나요?”
“좋아합니다만, 만드는 건 다른 분야라 애매합니다.”
“샬롯이라면 저한테 어울리는 옷을 찾아줄 것 같은데. 색깔을 잘 찾아준다면서요!”
“어…… 그렇긴 합니다만…….”
제리트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는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저는 파란색을 좋아합니다.”
“저도 파란색 좋아해요! 그런데 공작님께서 저는 빨간색이 잘 어울린대요.”
나는 내가 입은 치맛자락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각자 어울리는 색이 있나 봐요.”
그러곤 헤헤 웃었다.
빙빙 돌려 말하고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했다.
그것은 바로-
한 번 파악하고 나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퍼스널 컬러’.
아무리 좋아하는 색이라고 해도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꿔 말하면, 본인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는다면 큰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데미안은 노란색이랑 녹색이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잘 안 어울려서 속상해했고요. 사람마다 어울리는 색이 다른가 봐요.”
물론 데미안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이란 없었지만.
“어울리는 색…… 취향…….”
“그리고 이바나는…….”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제리트의 눈빛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각자 어울리는 색깔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윽고 제리트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중얼거림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 님.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더 떠올랐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도움이 될까요?”
나는 조심스레 한발 물러났다.
“제가 혹시 방해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워요.”
그래야 상대는 더 애가 타는 법이니까.
“무슨 소리십니까! 이건 모두 엘리 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러자 제리트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기다렸던 말을 해주었다.
“으음……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신다면…….”
나는 수줍게 웃었다.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잘 부탁드려요.”
대박이 눈앞에 있었다.
* * *
나와 제리트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롱과 퍼스널 컬러 진단은 기존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그러니, 가격이 문제였다.
색깔 진단을 해주고, 옷을 만들어주고 머리까지 해주는 살롱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기존 의상실과 같은 가격으로 받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은 나도 동의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값을 높게 책정할 수도 없었다.
경력이 굵직한 재단사들과 인기 있는 살롱은 이미 단골을 사로잡은 상태다.
처음 문을 여는 살롱이 신기해서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받는다면 관심은 꾸준한 발걸음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일단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게 먼저일 텐데…… 문제는 어떻게 끌어 오냐는 거죠.”
제리트가 괴로운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살롱의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신규 고객을 모으는 방법이라.
‘그럼 그것밖에 없겠네.’
나는 제리트가 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있죠, 제가 있던 고아원 원장님은 성격이 엄청 고약하셨어요. 코코아도 비싸다고 잘 안 주셨거든요.”
제리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심보가 고약한 인간이군요.”
아이의 말이 뜬금없어서 귀찮게 여길 수도 있지만, 제리트는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네, 엄청 나쁜 사람이었어요. 막, 새로 상점이 문을 열면 일단 써보고 결정하겠다면서 돈도 안내는 거 있죠. 진짜 못된-”
말을 잇던 난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았다.
“아…… 제가 너무 심한 말을 했네요.”
나는 섣불리 말을 꺼낸 걸 후회하는 척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좋은 분이셨어요. 오갈 데 없는 저희를 거둬주신 분이니까요…….”
“아, 맙소사.”
제리트가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죽어 마땅한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어쩜 이리 마음이 여리신지……. 자, 이것도 드십시오.”
제리트가 다른 케이크를 내 앞으로 놔주었다.
나와는 조금의 연관성도 없는 말 때문에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나는 그 생각을 케이크와 함께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 써보고 나서 괜찮다 싶으면 꾸준히 구매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나쁘신 분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악독한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무료로 사용하다 괜찮으면 구매한다니. 그게 무슨…… 잠깐.”
제리트는 코웃음을 치다가 문득 표정을 굳혔다.
“……처음엔 무료라.”
그러다 무슨 생각이라도 났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맛있게 케이크를 먹는 척 눈치를 살폈다.
원장의 이름을 빌렸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퍼스널 컬러 진단을 무료로 해주는 것이다.
‘일명, 기간 한정 무료 진단 서비스.’
새로운 살롱 개업은 귀족 영애들의 관심사였으니, 이때를 노려야 했다.
고객이 오면 먼저 샬롯이 무료로 어떤 색이 본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지를 직접 비교해 준다.
그다음 어울리는 색깔과 본인 성향에 맞춰 옷을 추천한다.
이때 너무 영업의 느낌이 나면 실패다. 가볍게 추천만 하고, 선택은 그녀의 몫으로 맡긴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다른 옷을 고를 때마다 생각날 거야.’
이 색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머릿속에 자신만의 색깔이 인식되었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후에 고객이 다시 방문한다면 플린트가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컬러, 취향에 맞는 옷감, 분위기, 자주 입었던 스타일에 맞춰 옷을 만들고 추천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엔 아이롱을 이용한 스타일링까지.’
지금까지 이런 구체적인 컨설팅은 없었을 테니 고객도 만족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입소문은 날 것이고, 우리는 때에 맞춰 컬러 진단을 유료로 바꾸면 된다.
그때쯤엔 귀족들은 돈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너도나도 하고 싶어 하겠지.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몰릴 테고.’
격식 있는 의복점도 아니니, 영애들이 함께하기도 좋다.
살롱에서 만난 영애들이 서로가 색깔이 어울린다, 저 옷이 예쁘다 이야기를 나누고, 재밌어한다면 살롱의 이미지는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1층의 커피하우스까지.
‘게임 끝이지.’
제리트가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불안한 눈으로 제리트를 좇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제리트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방법, 저희 쪽에서도 써보면 좋을 듯합니다.”
‘좋았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어울리는 색깔 진단을 무료로 해 준 다음, 재방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우선은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니까요.”
“우와, 좋은 생각이에요!”
나는 맞장구치며 활짝 웃었다.
물꼬를 터줘도 못 받아먹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제리트는 하나를 알려주면 그대로 쭉쭉 밀고 나간다.
‘아주 좋아.’
나는 흐뭇하게 웃다가, 뒤늦게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제일 중요한 샬롯과 플린트. 두 사람이 대차게 싸웠다는 것을.
시간이 꽤 오래 지났는데도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으으. 어떡하지?’
일단 화해부터 시키는 게 먼저겠지?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리트를 바라보았다.
“저어, 그런데 샬롯이랑 플린트가 너무 심하게 싸우던데…….”
고통받는 사람은 샬롯뿐이었지만.
“두 사람 다 이대로 관두는 건 아닐지 걱정돼요.”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제리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딸랑-
그때, 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샬롯이 품에 작은 봉투를 들고 살롱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거, 여기에 놔.”
이윽고 들어온 플린트는 한눈에 봐도 무거운 짐들을 한 아름 이고 있었다.
“알았다.”
그리고 한 치의 표정 변화 없이 물건들을 척척 옮겼다.
“고마워. 이제 쉬어.”
“더 할 일은 없나?”
“없어. 쉬어도 돼.”
샬롯은 가볍게 대꾸하고선 물건들을 검수하기 시작했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던 플린트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도 같이 하겠다.”
“나 혼자 해도 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시킬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라.”
그러곤 샬롯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그 모습은 마치
“아카데미 시절에, 플린트 별명이 도베르만이었답니다.”
그래. 한 마리의 도베르만 같다.
“싸우다가도 항상 끝에는 화해해서, 환장의 짝꿍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고 합니다. 이제 업무도 분담했으니, 당분간 싸울 일도 줄겠죠.”
“음…….”
“그래도 역시 친구는 친구인가 봅니다.”
제리트가 허허 웃었지만, 나는 따라 웃지 못했다.
저건 우정이 아니었다.
우직하고 눈치 없는 남자의…….
보는 사람까지 속 타게 하는 짝사랑이었다.
‘저게 우정이면 난 친구 없다.’
물론 진짜 없지만.
‘또래 여자 친구가 있으면 이곳에 데려올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코코아를 홀짝였다.
뭐, 데미안이랑 오면 되겠지.
* * *
며칠 후.
늘 한산하던 골목에 사람들이 잔뜩 줄지어 서 있었다.
“아가씨께서 기다리실 텐데. 언제쯤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원래 진단은 좀 오래 걸린다잖아. 우리가 기다려야지 뭐.”
시종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붐비는 살롱은 처음 봐.”
새로운 살롱이 개업할 때마다 귀족 영애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흥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그랬다.
우연히 제뮈엘 살롱을 들린 한 영애가 그곳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기 전까지는.
“직접 가봐야 해요.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고작 살롱 하나에 이렇게 열광적인 찬사라니.
마음에 든 재단사를 만났나 보다, 하고 그냥 웃고 말 일이었지만…….
‘오늘따라 분위기가 달라 보이네. 게다가 저 머리는 어떻게 한 거지?’
이것도 그 살롱 때문인가? 도대체 그 살롱에 뭐가 있길래? 그녀의 모습은 영애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 발걸음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