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89)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89화(89/241)
무척이나 화가 났으니, 잡아가기 전에 알아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려라.
대충 이런 내용이 있을 줄 알았는데…….
‘황후가 우리를 초대했어.’
게다가 데뷔탕트라니.
황실에서 여는 데뷔탕트는 고위 귀족들의 자녀만 참여할 수 있었다.
‘내가 평범한 귀족 영애라면 기뻐했겠지만…….’
현재 제국의 황후는 카르티아다. 라티오넬 백작의 외동딸.
‘그리고 우리 엄마는 라티오넬 백작가의 물건을 훔치려다 들켰고.’
보통 황실에 죄를 진 경우 모든 가족이 몰살당하지만, 라티오넬 백작은 엄마만 죽이는 것으로 모든 일을 정리했다.
게다가 엄마는 붉은 머리카락에 보라색 눈, 나는 금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이었다.
외형적으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세인트 고아원에 갔을 때도 곧바로 다른 귀족가에 입양 갈 수 있었다.
“어? 너는……. 말도 안 돼. 네가 왜 여기 있지?”
하지만 영지를 어지럽히던 도둑 하나가 내 얼굴을 알아보았다.
“가문에 도움이 될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는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것을 알려준 대가로 풀려났다.
그 후 나는 파양을 당해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입양 갈 수는 있었지만, 이미 내 존재는 드러난 후였다.
그 사람들은 지체 높은 귀족들이 아니었지만…… 카르티아 황후도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가설은 두 가지였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부른 거겠지.’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걸.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이 정도는 예상했잖아.’
마음을 다잡았지만, 자꾸만 가슴이 쿵쿵 뛰었다. 묵직한 돌을 얹어 놓은 것만 같은 느낌…….
그때, 공작이 큼지막한 손으로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사교계에 이름을 알리지 않아도 공작가의 재산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
“그런 데는 가지 않아도 좋아. 비판은 모두 무시해.”
늘 그렇듯 무심한 얼굴이지만 따스한 손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갈래요.”
“……엘리.”
“언제까지 숨어 살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고, 그러려면 힘을 길러야 했다. 사교계를 잘 이용한다면 사업적으로 큰 돈줄이 될 수 있다.
“무섭지 않아요. 공작님이랑 데미안이 곁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공작의 깊은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준비를 해야겠군.”
“무슨 준비요?”
“슈에츠의 이름을 가진 아이를 위한 준비.”
공작이 그렇게 말하며 남은 서신 하나를 열었다.
그의 표정이 잠시 묘해지는가 싶더니, 봉투를 다시 내려놓았다.
뭐가 들어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그가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대놓고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내 볼을 콕 찌르며 말했다.
“어차피 함께 가니 걱정은 없겠지만.”
“공작님도 같이 가시려고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야지.”
그가 당연하단 투로 말했다.
“비록 아이들이 보기에 좋은 꼴은 못 보여줄 것 같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공작이 함께 간다면 황궁에 한차례 소란이 일지도 몰랐다.
“걱정 말거라. 확실한 호위가 네 옆에 있으니까.”
공작이 피식 웃으며 내 옆을 한번 힐끔거렸다.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내 볼을 쿡쿡 찔렀다.
“음. 확실히 좀 늘어난 것 같기도 하군.”
나는 입술을 삐쭉였다.
‘자기가 다 먹여놓고서……!’
배신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공작이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내 칭찬에 무슨 문제라도?”
뭐야, 진짜.
능청스러운 말이 얄미웠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자, 데미안이 따라 배시시 웃었다.
공작이 “어쭈”하고 데미안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러면서도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가족의 웃음이었다.
그러자 더 이상 내 마음을 짓누르던 두려운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나를 지켜줄 가족이 있으니까.
* * *
며칠 후, 나와 데미안은 황궁으로 가는 마차에 올라탔다.
공식적인 데뷔탕트는 아니었다.
참여자들은 미리 만나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관례였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데뷔탕트 당일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미 다 아는 안부를 묻고, 시치미를 떼며 하하호호 웃어야 했으니까.
‘일종의 과시 같은 거지.’
우리가 바로 황후에게 직접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유치해 미칠 것 같지만, 그녀의 초대에 응한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황후의 초대가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 밑엔 덫이 잔뜩 깔려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그 함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목걸이를 꼭 쥐었다.
신성석으로 만든 목걸이는 마차에 타기 전, 공작이 내게 직접 걸어준 것이었다.
데뷔탕트 참가자들만 모이는 자리라 공작은 함께할 수 없었다.
“대신 이게 널 지켜줄 거다.”
나는 그 말뜻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이 목걸이는 신전의 신성석이 아닌 새로운 신성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내 시아버지는 슈에츠 공작이지.’
그가 무슨 마법을 걸었을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건들지도 못할 것이다.
‘역시 공작님이야.’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 마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시종의 말에 흐읍, 하고 숨을 한가득 들이쉰 나는 데미안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우와…… 이게 다 얼마야.’
기죽지 말고 당당히 다녀오자고 생각했는데, 휘황찬란한 건물의 외관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별관입니다. 길을 잃으실 수도 있으니 안쪽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다가온 시종이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이곳이 별관이라니. 황궁은 그럼 얼마나 큰 거야?
압도된 나는 움츠린 몸을 다시 폈다. 앞으로 남은 시련이 한가득이었다. 여기서 기죽을 수는 없었다.
“데미안, 내 손 꼭 잡아야 돼.”
“응.”
데미안이 씩씩한 얼굴로 말했다.
옛날 같으면 가기 싫어했을 텐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장한 내 새끼.’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고선 시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큼지막한 방 안에는 초대받은 영애와 영식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데미안을 발견하곤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슈에츠 공작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보아, 우리의 이야기는 대충 알고 있는 듯했다.
저런 수군거림은 익숙했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되면 신경이 쓰이는 법이었다.
‘이러다 얼굴 뚫리겠네.’
그래서 나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봐, 하는 눈빛을 한가득 담는 것도 잊지 않은 채.
“……!”
나와 눈이 마주친 영식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자꾸만 힐끔거렸다.
어쭈. 눈에 힘을 주려던 찰나였다.
나를 쳐다보던 영식이 갑자기 몸을 흠칫 떨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흥. 진작 그럴 것이지. 나는 새파랗게 질린 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모두 모이셨군요.”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저는 시녀장인 리타입니다. 가문의 귀애들을 모시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조금 깐깐해 보이는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자, 방 안에 있던 아이들도 함께 인사했다.
“흐음.”
낮은 숨을 내뱉은 그녀가 우리를 찬찬히 훑었다.
시녀장인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지적할 수 없었다.
황후가 직접 초대한 곳에서, 그녀의 심복을 건드려 봤자 좋을 게 없었다.
그때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짐과 동시에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금이 갔다.
‘저건…….’
무슨 표정일까. 설마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본 걸까?
그러나 그녀는 노련하게 표정의 균열을 지워냈다.
“좋습니다. 그럼 설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선 황후께서 직접 초대하신 분들입니다. 즉, 무도회의 주인공들이시죠.”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자리한 아이들을 훑었다.
“……그러므로 본 무도회에 앞서 그에 맞는 예절을 여러분께 가르쳐 드릴 겁니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데미안에게 닿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하여 지금부터 남녀를 나누어 황궁의 예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영식들께서는 이 사람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남녀를 나눈다고?
이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황궁의 예법을 가르치는 데 굳이 남녀를 나눌 필요가 있나?
‘게다가 데미안은…….’
벌써부터 몸을 잔뜩 굳히고 있었다. 이 작고 여린 아이가 상처라도 입을까 걱정스러웠다.
“엘리…….”
“걱정 마. 무슨 일 없을 거야.”
공식적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황후가 직접적으로 해를 가할 리는 없었다.
나는 토끼처럼 파들거리는 데미안을 꼭 안아주었다.
많이 무서운 듯 마주 안는 힘이 유달리 강했다.
“자,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나 작별의 시간은 다가왔다. 나는 울상 짓는 데미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금방 끝날 거야. 나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잘할 수 있지, 남편?”
“남편?”
그러자 데미안의 떨림이 우뚝 멈췄다.
“응. 알았어.”
“진짜?”
착해, 착해. 엉덩이라도 팡팡 때려주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제해야 할 것 같아 손에 꾹 힘을 주었다.
이윽고 영식들과 시녀장 리타가 나갔다.
남겨진 어린 영애들이 서로 힐끔거리다 “우리, 저번에 뵈었죠?”하며 자연스럽게 무리를 이뤘다.
말하면서도 나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관계를 과시하려는 것 같은데…….
‘너무 노골적이라 재미없네.’
정작 나는 심드렁했다.
눈칫밥 먹은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건 따돌림 축에도 못 꼈다.
‘내 일이나 해야지.’
나는 쭉 자리한 영애들을 훑었다.
처음 황후의 초대를 받아들였을 땐 공작의 이름 아래 마냥 숨어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이건 기회였다.
‘왜냐면 이곳에 사교계를 주름잡을 퀸이 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