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9)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9화(9/241)
* * *
며칠 후.
원장은 손에 들린 장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아원 재정이 날이 갈수록 기울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렇게나 많은데, 빚까지 생기다니.
‘물건이라도 팔아야 하나.’
하지만 값을 치를 수 있는 물건이라곤 마나석밖에 없었다.
마나석은 마나를 응축한, 아주 값비싼 광물이었다.
마나가 없는 사람들은 마나석을 이용해 마법을 썼다.
그러나 마나석은 광물 자체가 비쌌으며, 그 원석에 마나를 넣어줄 마법사도 많이 없었다. 때문에 마나석은 무척이나 비싼 값에 거래되곤 했다.
원장의 취미는 마나석을 모으는 일이었다. 원장실에 굴러다니는 것만 해도 발에 채일 정도였으니, 그녀의 사치도 알 만했다.
‘어떻게 모은 것들인데…….’
원장은 이를 갈며 마나석이 들어 있는 장식장을 바라보았다.
엘리가 장식장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원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저것이 도둑의 딸만 아니었다면 이 빚은 다 갚을 수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열이 끓는 기분이었다. 원장은 다시 장부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 돈 나올 구멍을 찾아야 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원장의 조카인 말렌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원장님께서 전에 문의하신 사항에 대해 알아왔습니다.”
말렌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보고를 시작했다.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이를 원하는 귀족들은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말도 안 돼. 갑자기 수요가 줄어들다니. 어째서?”
“아마도 슈에츠 공작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 제국 내의 입양된 아이들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더군요.”
그 순간, 장식장을 닦던 엘리의 손이 멈췄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원장과 말렌은 대화를 이어갔다.
“아. 그 죽은 공작의 아들을 찾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 물론 살아 있을 리는 없지만.”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넘기려던 원장이 멈칫했다.
‘잠깐만.’
죽은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은 흑발에 벽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외의 생김새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거 잘하면…….’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원장이 말렌을 보며 말했다.
“말렌, 정보를 흘려.”
“어떤 것 말입니까?”
“이곳에 클라이더 공작의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말이야.”
“예? 하지만…….’
말렌은 머뭇거렸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만큼, 숙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다른 아이를 속여다가 팔려는 거겠지.’
슈에츠 공작은 클라이더 상단을 이어받은 데다가 제국의 유일한 공작이었다.
‘아마 어떠한 값을 부르든 턱턱 내어줄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슈에츠 공작이다.
가짜 아이를 팔아넘긴다면, 그리고 그것이 들킨다면.
말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벌써부터 간담이 서늘해,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뭐 해? 내 말 안 들려?”
원장의 재촉에 말렌은 손을 내렸다.
안 된다고 말려야 했다.
하지만 표독스러운 숙모의 얼굴을 보자, 당장 어렵다는 말을 내뱉기 힘들었다.
“……일단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결국 말렌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렌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을 빠져나갔다.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 * *
엘리는 청소가 끝나자마자 곧장 방으로 달려갔다.
‘곧 슈에츠 공작이 와.’
슈에츠 공작은 데미안을 이곳에서 구해줄 유일한 열쇠였다.
데미안에게 ‘곧 너를 입양할 가족이 온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기쁜 마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데미안.”
엘리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일을 끝마친 건지, 방 안엔 아이들 몇 명이 있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엘리가 얼떨떨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보다 밝아졌다 생각했던 얼굴엔 다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아이 하나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돌아왔어. 카르센 형이…….”
“뭐?”
엘리의 표정이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잠깐의 평화에 눈이 멀어, 중요한 걸 잊고 말았다.
엘리는 빠르게 고아원을 빠져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바깥엔 눈이 달빛을 따라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어디 있을까.
원장과 선생들은 아직 고아원 안에 있었으니, 밖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엘리는 서둘러 고아원 뒤편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카르센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호수에 빠뜨리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이었다.
추위가 극에 달한 날씨. 지금 이 날씨에 호수에 빠뜨린다면.
데미안의 성격상,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게 분명했다.
엘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가운 공기로 퍼지는 입김이 엘리의 걱정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 * *
퍽!
큰 소리와 함께 데미안의 몸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무척이나 아플 텐데도 데미안은 미동조차 없었다.
“너 때문에 내가 무슨 고생을 당한 줄 알아?!”
카르센이 악에 바친 목소리로 씩씩거렸다.
며칠 동안 방에 갇힌 데다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눈앞에 쓰러진 저 볼품없는 남자아이 때문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엘리가 왜 거짓말까지 하며 저딴 자식 편을 든단 말인가.
카르센은 모든 잘못을 데미안에게 돌렸다. 자신이 먼저 데미안을 괴롭혔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엘리가 옆에서 신경 좀 써줬다고 해서 자만하나 본데 너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거든?”
카르센의 입에서 나온 엘리의 이름에 그 순간 데미안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노려보는 시선이 서린 칼날 같아서, 카르센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그,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이윽고 거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같은 무리들마저 ‘저건 좀 심한 거 아니야?’하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데미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손안에 겨울의 입김에 얼어붙은 잔디들이 잡혔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벽안이 흉흉했다.
“당하고만 있지 마. ”
순간 엘리의 말이 이명처럼 맴돌았다.
엘리의 말처럼, 그대로 되갚아주려 할 때였다.
“엘리는 약해 보이고 보잘것없는 놈들에게 약해. 너도 그중 하나일 뿐이야!”
카르센이 외친 말에 데미안의 움직임이 멈췄다.
데미안의 눈빛이 바람에 흩날리는 촛불처럼 흔들렸다. 작은 파열을 눈치챈 카르센이 으스대듯 말했다.
“엘리는 너 같은 것들한테 약해. 그래서 챙겨 준 것뿐이라고. 네가 특별해서 챙겨 준 게 아니란 말이야!”
“그냥, 약해 보이잖아.”
그 순간, 엘리가 제게 처음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약해 보여서.’
그냥 안쓰럽고 짠해서.
노예로 살던 시절,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폭력만큼 익숙한 폭언.
그런데 왜.
늪에 빠진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는 것일까.
데미안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다 타버려, 재만 남은 것 같은 눈동자가 의미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주제를 알아야지.”
비웃음을 흘린 카르센이 데미안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데미안의 몸이 힘없이 따라 올라갔다.
“노예 주제에 건방지게…… 같은 곳에 머문다고 착각하는가 본데.”
카르센이 데미안을 끌고 호수로 다가갔다. 추운 날씨 때문에 호수 가장자리는 얼어 있었다.
“여기서 머리 좀 식혀.”
카르센이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데미안의 몸이 힘없이 호수를 향해 기울어질 때였다.
“야!”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혼탁하게 흐려졌던 데미안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쉬지도 않고 달려온 듯 엘리의 뺨은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엘, 엘리?”
엘리의 등장에 조금 당황한 듯한 카르센은 우뚝 멈춘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긴 뭐야! 정신 차리도록 교육하는 거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금세 태도를 바꾼 카르센이 되레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교육받아야 할 사람이 누군데?!”
카르센의 기고만장한 목소리보다도 엘리의 목소리가 더 컸다.
“어디까지 미친 짓을 하나 두고 보려고 했는데, 정신 나갔어? 처 돌았어, 너?”
폭언과도 같은 그녀의 말에 카르센을 포함한 모두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네가 벌인 개 짓거리보단 훨씬 나아!”
“개 짓거리…….”
카르센은 순간 넋을 놓을 뻔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폭언을 듣자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리던 엘리가 데미안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뾰족한 눈초리가 저를 향하자,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이지를 잃었던 눈동자가 엘리를 눈에 담자 다시 원래의 빛을 찾았다.
“이리 와, 데미안.”
엘리가 데미안을 향해 말했다.
데미안은 조금 망설였다.
“엘리는 약해 보이고 보잘것없는 놈들에게 약해. 너도 그중 하나일 뿐이야!”
“그냥, 약해 보여서. ”
카르센의 말과 엘리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엘리. 네가 어떻게 나한테…….”
데미안이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카르센은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다 이 자식 때문에!’
모든 책임을 애꿎은 데미안에게 돌린 카르센은 손에 힘을 풀었다. 아직 데미안의 멱살은 카르센에게 잡혀 있었다.
“……!”
데미안의 몸이 기우뚱, 하고 호수를 향해 기울었다.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첨벙!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큰 물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살을 에는 추위도, 물도 느껴지지 않았다. 데미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아악!”
호수에 빠진 카르센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작작 했어야지!”
제 앞엔 어느새 다가온 엘리가 있었다.
카르센이 데미안을 호수에 빠뜨리기 전, 엘리가 카르센을 발로 뻥 차 버린 것이었다.
“추, 추워! 살려줘!”
“카, 카르센……!”
같은 무리들이 얼른 호수로 달려갔다.
어떻게든 구해주려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물에는 들어가기 싫은 듯 손만 뻗을 뿐이었다.
“가자, 데미안!”
콧방귀를 뀐 엘리는 데미안의 손을 잡고 자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