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9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90화(90/241)
레이디 아델란.
그녀는 한때 뛰어난 마도국, 리번스의 공주였다.
리번스 왕국은 마법의 근원인 세계수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마법서는 여러 나라에 비싸게 팔렸다.
하지만 마법의 발전이 군사력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워낙 작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왕국은 제국 전쟁에 패배했고, 모조리 죽을 운명이었으나…….
리번스 국왕은 모든 군사와 마법서를 제국에 바치는 것을 대가로 왕국인들의 목숨을 살렸다.
황제는 이를 받아들였고, 왕에게 자작위까지 하사했다. 숨겨놓은 마법서가 있다고 생각해, 오래도록 그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리번스 왕족과 국민들은 제국에 발붙이고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왕이 저 혼자 살기 위해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우릴 버린 거야!”
이제는 제국인이 된 국민들의 비난은 피해 갈 수 없었다.
황제가 왕이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마법서와 군사를 바쳤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겨진 진실 속에서, 아델란은 온갖 비판과 무시를 받으며 성장했다.
결국 17세가 되던 해 스스로 가족을 버린 그녀는 오랫동안 간직해 온 꿈을 좇기 시작한다.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편한 길은 아니었지.’
패전국의 공주 출신인 그녀를 모두가 업신여기고 무시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엔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된다.
‘게다가 나중에는 왕이 나라를 버린 게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려지고,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지.’
몰락한 공주의 신분에서 유명한 배우가 된 그녀의 삶은 한 편의 연극이었고,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델란의 후원자가 카르티아 황후였지.’
재능을 알아본 카르티아 황후는 아델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 계획된 것이었지만.’
황후는 퀸이 된 아델란을 이용해 상업을 주무르고, 사교계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마침 나도 살롱 때문에 광고판이 필요한 상태란 말이지.’
어디 보자. 옅은 주황빛 머리에 갈색 눈이라고 했는데.
나는 열심히 주위를 살폈다.
영애들은 두 개의 무리로 나뉘었는데, 유독 화려하고 큰 드레스를 입은 것으로 보아 저쪽이 실세에 가까운 듯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뭔가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저쪽 구석에 빼꼼 드러난 드레스 자락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밀었다. 그곳엔 한 영애가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저 사람이 레이디 아델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을 일으킬 때였다.
“참, 뻔뻔스러운 얼굴이 함께 있으니 여러모로 괴롭네요.”
날카로운 비웃음이 들려왔다.
유난히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제일 먼저 나를 보고 수군거렸던 영애였다.
“주제도 모르고 끼어드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가 봐요.”
보란 듯이 목소리를 높인 영애가 아델란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아무리 황후 폐하께서 초대하신 거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그녀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저라면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 거예요. 두 발로 제국 땅을 밟는 것조차 수치스러울 테니까.”
“마, 맞는 말이에요. 클로라.”
“저도 여기까지는 도저히 못 왔을 것 같아요.”
뒤이어 다른 영애들이 맞장구를 쳤다.
저렇게까지 신랄한 말을 내뱉는데도 지적 하나 없었다.
‘클로라 라. 저런 이름을 원작에서도 본 것 같은데…….’
아, 생각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델란을 무시했던 귀족 영애였다.
원래부터 그녀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년식을 치른 후, 처음으로 맞는 무도회에서 자신의 춤을 거절했던 2 황자 마테오가 아델란에게 춤을 청했고…….
‘그 뒤부터 지독히 아델란을 싫어했다고 했지.’
하지만 정식 데뷔탕트 무도회는 열리지도 않았다.
아직 아델란과 2 황자의 접점이라곤 요만큼도 없는데 벌써부터 저러는 걸 보면 그냥 성격이 고약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아델란은 클로라의 말에 앙상한 손으로 드레스를 꾸욱 움켜쥐었다.
푹 숙인 고개가 안쓰러웠다.
사교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황후가 원하는 일일 수도 있고.
‘쉽게 손에 쥐고 흔들려면 누군가의 손길이 간절해지도록 고립시켜야 했으니까.’
2 황자와 춤을 추게 만든 것도 아델란을 끌어들이려는 황후의 속셈일 터였다.
‘나와 레이디 아델란은 일말의 관련도 없지만…….’
저렇게 풀 죽어 있는 모습이 어린 시절 나를 보는 것만 같아 자꾸만 눈길이 갔다.
“저라면 숨죽이고 살았을 텐데.”
“저도요.”
“그만큼 뻔뻔하단 뜻이겠죠.”
나는 영애들의 신랄한 비꼼을 한 귀로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로라가 나를 힐끔거리는게 느껴졌다.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높이 들었다. 말 붙일 기회라도 주겠다는 듯이.
“안녕하세요.”
하지만 내가 말을 건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어…….”
아델란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엘리라고 합니다. 슈에츠 공작가의 며느리이죠.”
“아, 알고 있어요. 아니, 알고 있습니다.”
아델란이 재빨리 말을 바꾸며 인사했다.
“저는 아델란 리번스라고 합니다. 리, 리번스…… 영애라고 불러 주세요…….”
그녀는 자신의 성을 말하는 게 창피한지 조금 머뭇거렸다. 그래서 난 웃으며 말했다.
“저는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셨으면 해요.”
“아…… 그,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저도 편히 아델란 님이라고 부를게요.”
나는 먼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델란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배시시 웃었다.
“네, 엘리 님…….”
얼굴이 수줍게 피어나며 인디언 보조개가 드러났다.
타국의 공주답게 이국적인 인상이 강한 터라 보조개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
클로라가 거친 콧김을 내뿜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역시 평민 출신에게 많은 걸 바라서는 안 되겠죠.”
“클로라…….”
다른 영애들이 깜짝 놀라며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들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더 이상 말리진 못하고 우리를 힐끔거렸다.
“저런 사람들은 신경 쓰지말고 마저 이야기나 나눠요.”
클로라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꺼냈다.
“어머, 이건……!”
“바이올렛 다이아몬드!”
“맞아요. 저희 아버지께서 발견하신 바이올렛 다이아몬드죠.”
“정말 아름답네요.”
“그렇죠?”
클로라가 후후 웃었다.
“저는 이걸 ‘제뮈엘 살롱’에 들고 갈까 해요.”
“제뮈엘 살롱이라면 요즘 뜨고 있는 그 살롱 아닌가요?”
“줄이 너무 길어서 예약을 해야 한다던데…….”
“뭐, 그 정도는 저희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실 거예요.”
클로라가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영애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이 보였다.
“한미한 가문의 사람들은 꿈도 못 꾸겠지만요.”
그러면서 또 우리를 힐끔거렸다.
‘듣고 슬퍼하라고 꺼낸 말이겠지만.’
하품 나올 정도로 진부해서,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래서 난 보란 듯이 못 들은척하며 아델란에게 말을 걸었다.
“아델란 님의 목소리, 너무 듣기 좋네요. 발음도 유창하시고. 부러워요.”
클로라의 눈치를 보던 아델란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건 제가 제국인이 아니라서 그런 걸 거예요.”
“어머, 그러시군요.”
나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제 먼 친척도 소국 출신이셔요. 물론 추측만 할 뿐이지만요.”
탈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면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 어쩐지…….”
아델란이 알은체를 하며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래서 눈동자가…….”
그때였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깜짝이야!’
나는 파드득 몸을 떨며 문 쪽을 쳐다봤다.
“흐응. 역시 다들 여기 있네.”
웬 성질 나빠 보이는 소년이 여러 영식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금발과 금안에, 저렇게 성질 더러워 보이는 얼굴이라면…….’
더 볼 것도 없었다.
카르티아 황후의 아들. 2 황자 마테오였다.
“어머, 저분은……!”
“세상에! 마테오 황자님이세요!”
“아……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어린 영애들이 부채로 입을 가린 채 감탄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영애들은 그의 등장이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마테오의 인성을 아는 거지.’
마테오는 정말이지, 짜증 나는 악역이었다.
여주인공 아샤벨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끈질기기는 또 어떻고!
데미안이 겪은 개고생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지? 남자들은 다른 방으로 갔다고 했는데?’
숙녀들만 모인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황자가 그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오늘도 사람이 많네.”
마테오가 이죽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쭉 훑는 시선이 진열된 인형을 고르는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빴다.
“음?”
그때 마테오의 시선이 아델란에게 닿았다.
원작에서 나왔던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바로 오늘인 듯했다.
“너지?”
마테오가 대뜸 물었다.
“예, 예……?”
“너. 그 망한 나라의 공주잖아.”
헉. 너무 거침없는 말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막무가내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클로라도 빙빙 돌려가면서 했던 말이건만. 슬쩍 보니 클로라도 조금 놀란 듯 부채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뭐였더라…… 아델이었나?”
“…….”
“기억이 안 나네. 너, 이름이 뭐야?”
마테오가 턱을 까딱이며 물었다.
아델란은 전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만 꼭 물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려?”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마테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래 어떤 애인가 했는데.”
마테오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손에 들린 작은 보석을 굴렸다.
투박하고 표면이 거칠어, 황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물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소중한 물건이라면 저렇게 들고 다니지도 않을 거고.
‘그럼 막 굴려도 되는 물건이라는 건데…….’
마테오가 공중으로 보석을 띄웠다가, 다시 받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아직 공주의 자존심은 남았다는 건가?”
“저, 저는…….”
“난 그런 사람을 보면 비웃고 싶어 지던데.”
그의 태도는 뼛속부터 무례를 권력 삼은 자의 오만함이었다.
“분수도 모르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하나 있어서 말이야.”
“…….”
“주제도 모르는 것들은 개죽음을 면치 못하지. 이것처럼.”
마테오가 보석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테오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를.
‘저건 1 황자의 어머니이자 이미 작고한 황비의 유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