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92)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92화(92/241)
* * *
한편, 자리를 옮긴 영식들도 데뷔탕트 무도회를 위해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위치를 과시하는 자리이니, 서로를 알아두는 게 가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한쪽에 쏠려 있었다.
홀로 조용히 책만 읽고 있는 작은 소년. 데미안.
슈에츠 공작과 그가 입양한 클라이더의 아들은 귀족들의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나는 유명한 전장귀였고, 다른 하나는 제국에서 제일 큰 상단을 가진 가문이었다.
따로 봐도 대단한 가문이 하나가 되었다. 얼마나 막강한 세력을 가지게 될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니 황제의 눈치가 보이더라도 작은 연이나마 이어 보고자 했건만…….
정작 아이는 말없이 책만 읽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어딘지 모르게 차가워 보이는 분위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사이로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책을 잡고 있는 하얀 손엔 흉터가 가득했다.
‘슈에츠 공작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래서일까. 영식들은 왠지 모를 오싹함에 몸을 떨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어딘지 모르게 차가워 보이는 분위기에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였다.
“……진짜 못 참겠네.”
한 영식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로머 백작의 아들 알폰스였다.
서쪽에 영지를 둔 크로머 가문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상단을 가지고 있었다.
클라이더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물건 만드는 속도는 크로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들어 직원들이 하나둘씩 클라이더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없다면 물자를 보급할 수가 없다. 손님도, 직원도 모두 다 잃게 될지도 몰랐다.
고민하던 크로머 백작은 우연히 데미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천한 노예가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이라니.’
크로머 백작은 머리를 굴리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리 딸이 그 천한 노예와 나이 때가 비슷할 텐데.’
그럼 둘을 결혼시키면 되지 않은가.
어쩌면 클라이더와 슈에츠까지도 넘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미 계집을 하나 들였다고는 하지만 그까짓 고아야, 내쳐버리면 그만이었다.
해서 크로머 백작은 모든 힘을 동원해 알폰스를 데뷔탕트 무도회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고작 저 비실비실한 남자애 하나 때문에 내가 눈치를 봐야 한다니.’
생긴 것도 꼭 계집같이 생겨서는, 연필 한 자루라도 제대로 쥘 수 있을는지.
클라이더의 아들이 맞는 것인지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알폰소가 비릿하게 웃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슈에츠 공작은 클라이더를 집어삼키기 위해 아들을 찾은 것이 분명했다.
친우의 아들 같은 허무맹랑한 핑계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말 아들을 신경 썼다면 좋은 귀족가와 혼인을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웬 평민 계집을 데려와선.’
그래도 그 계집, 얼굴 하나는 반반했다. 무도회에서도 그 계집보다 예쁜 영애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만약 아버지의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그 계집을 나중에 제 첩으로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전에 기 부터 죽여놔야겠어.’
알폰스가 데미안을 삐딱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 이곳은 독서 모임이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의 예의는 지켜서 말했으나, 데미안은 미동도 없었다.
“제 말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어조에 결국 데미안이 시선을 들었다.
그를 응시하는 푸른 눈동자가 고요했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하고 꺼지라는 뜻이었다.
하. 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교양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군요. 사람과 그런 식으로 대화하라고 배우신 겁니까?”
“……넌 사람이 아니잖아.”
“뭐, 뭐라고요?”
데미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알폰스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슈에츠 공작가에서는 기본적인 교양도 가르치지 않으시는가 보군요?”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비난에 다른 영식들의 얼굴이 굳었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서로 눈치를 줬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암묵적인 동조라고 느낀 알폰스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정말 슈에츠 공작님께서 공자님을 아끼셨다면 제대로 된 교육을 하셨겠지요.”
“…….”
“혼인도 제대로 된 가문과 정식으로 처리하셨을 겁니다.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천한 고아 계집을-”
퍽!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
쿵!
연회장 천장이 시야에 가득 찼다. 술 취한 비렁뱅이처럼 드러누워 버린 것이다.
곧이어 끔찍한 통증이 찾아왔다. 발길에 걷어채어 그대로 넘어진 듯했다.
‘대, 대체 언제……!’
아무런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는데!
알폰스가 바닥을 더듬거리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데미안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알폰스의 몸이 굳었다.
그건 짐승을 도륙하는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넌 사람이 아니잖아.”
방금 전, 소년이 했던 말이 아득하게 귓가를 울리는 듯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때로 사냥꾼은 짐승을 놔주기도 했다.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그때 도망갔어야 했다. 두 번째 발악은 이뤄지지 않을 테니까.
“고, 공자……. 우리 일단 대화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지만 매끄럽게 닦인 바닥은 땀이 가득한 손을 미끄러뜨릴 뿐이었다.
데미안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을 겪었다.
살로메 자작이 엘리를 모함했을 때, 데미안은 미련 없이 그에게 뜨거운 차를 부었다.
덕분에 살로메와 윈티아의 암수를 밝혀낼 수 있었지만.
공작은 데미안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함부로 싸우는 건 허락하지 않아. 자칫하다가 비난의 여론이 바뀌어 돌아올 수도 얏I다.”
데미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은 데미안이 유일하게 믿을만한 어른이었으니까
“-물론 이건 사람에 한 해서고.”
이어진 말에 데미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면 죽여도 괜찮겠지. 자, 수업 끝. 이제 돌아가도 좋다.”
“공, 공작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안테가 쩔쩔매며 공작을 붙잡았지만, 그는 무슨 문제 있냐는 듯 무심한 얼굴을 했다.
그때 데미안은 조금 멍하니 눈을 깜빡였었다.
그리고 오늘.
“이봐, 아들.”
황궁으로 떠나기 전, 공작은 데미안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황궁에는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넘쳐나지.”
“…….”
“내 가르침은 정확하단 뜻이다.”
안테가 들었으면 기함할 말이었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기억나나?”
“……원래 네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찌푸린 인상과 내려다보는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서웠다.
“네가 기죽으면 엘리가 힘을 못쓴다. 자랑스럽지 않은 남편만큼 쓸모없는 것은 없지.”
“…….”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아니겠느냐. 나라도 신경 써야지.”
게다가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까지.
다른 아이들이라면 와양 울음을 터뜨렸겠지만, 데미안은 그러지 않았다.
“기죽지 마라.”
“…….”
“다른 이들에게 눈치 볼 필요는 없어. 네가 원래 자리를 되찾은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니.”
목소리 속에 깃든 애정이 똑똑히 느껴졌으니까.
“잘 다녀와라.”
그래서 데미안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공작님의 말씀이 맞아.’
이곳엔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넘쳐났다.
누군가를 물어뜯기 위해 머리를 쓰고, 눈을 굴렸다.
그 대상이 저라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남들의 평가 같은 건 귀까지 와닿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엘리는.’
엘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데미안의 얼굴이 싸늘해지자 알폰스는 입을 뻐끔거렸다.
“공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대화로……!”
그때였다. 알폰스가 헐떡이며 입을 다물었다.
작은 소년의 등 뒤로 푸른 오러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장성한 기사라고 해도 오러를 쉬이 다룰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소년은 검도 들지 않은 채 오러를 내뿜었다.
이는 경지에 올라야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토록 어린애가 어떻게……!’
알폰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내 아버지께서는.”
그때 입술 사이로 얇은 미성이 흘러나왔다.
“짐승만도 못한 것들은 가만두지 말라더군.”
이윽고 흡사 짐승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 *
별궁 한쪽에서 작은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모른다니까요.”
시종 하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 궁을 담당하는 시종 필립이었다.
“갑자기 무슨 보석입니까.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불량스러울 정도로 삐딱한 자세였으나, 그 모습이 퍽 자연스러워 보였다.
눈앞의 1 황자, 파비안 때문이었다.
황후 궁의 사람인 필립이 죽은 황비의 소생인 파비안에게 상냥히 대할 의무는 없었다.
‘안 그래도 데뷔탕트 준비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또 시작이군.’
파비안은 물건을 잃어버릴 때마다 황후 궁이나 2 황자 궁의 시종들에게 그 행방을 물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제 물건은 알아서 관리할 것이지.’
“죄송합니다만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찾아달라는 게 아니야. 혹시 2 황자가 들고 있는 걸 봤는지 이야기만이라도-”
“2 황자님께 직접 물어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파비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마테오가 가져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직접 물을 수 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테오가 어머니의 유품을 돌려줄 리 없었다.
그는 저를 괴롭히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마테오에게 직접 돌려달라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 죄송합니다. 너무 빛이 바래서 황비 전하의 유품인지도 몰랐습니다.”
“1 황자. 왜 2 황자가 일부러 가져갔다 생각하는 것이지요? 설마 2 황자를 모함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나를 어미로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잘못한 것은 없으나 죄인은 항상 자신이었다.
그 이후, 파비안은 스스로 입을 닫았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타이밍을 노려, 몰래 되찾아오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테오는 자주 물건을 흘리는 편인지라 가져오는 건 쉬웠다.
하여, 혹시라도 본 적 없는지 물어본 것인데…….
역시 황후의 사람들에게 물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까.
파비안이 포기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자, 필립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채 필립은 바쁘게 별관 복도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실례합니다.”
어디선가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립은 움직임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다,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안녕하세요.”
한 여자아이가 공손히 그에게 인사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이의 외모나 자세를 보았을 때, 어느 명문가의 영애가 분명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친절한 미소를 꾸며낸 필립이 소녀를 향해 몸을 낮췄다.
“이거, 저쪽 소각장에서 주웠어요.”
“소각장이요?”
소녀는 손안에 들린 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세계수가 그려진 회중시계와 투박해 보이는 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