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9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93화(93/241)
그의 눈이 커졌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필립이 회중시계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그 안엔 작은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마테오 파벨 루멘치아]2 황자의 회중시계였다.
‘역시 2 황자님이군.’
필립이 그럼 그렇지 하고 웃으며 시계를 닫았다.
2 황자는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마테오를 담당하는 시종이 머리숱이 나날이 줄어든다며 한탄하고 다닐 정도였다.
‘잃어버린 걸 알면 또 괜한 사람을 잡으시겠지.’
몰래 가져다 두는 게 낫겠군.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황자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저어…….”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 할 때였다. 소녀가 다시 그를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 제 친구가 목걸이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거든요.”
‘오늘따라 물건을 찾는 사람이 많군.’
그래도 가문의 귀족 영애니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필립이 메모장을 꺼내며 물었다.
“특징이 어떻습니까?”
“요만한데 엄청 맑고 빨간색이래요.”
너무 두루뭉술한 답변이었다.
‘귀족들의 세계에선 보석이 발에 차일 만큼 많을 테니, 기억을 못 하는 것도 당연하군.’
필립이 이죽거림을 감추며 말했다.
“꼭 찾아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친구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어…… 방금 만나서 이름은 잘 모르겠어요…….”
민망한 듯 소녀의 볼이 붉어졌다.
사교계에선 누가 누구인지 머리카락만 봐도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녀는 방금 대화를 나눈 이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부끄러워할 일이 맞았다.
필립은 이해했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말씀 잘 전해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소녀는 치맛단을 잡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이윽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녀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 * *
‘좋아. 무사히 회중시계까지 시종에게 전달했어.’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뒤를 돌았다.
무도회 준비를 빙자한 탐색전은 여기까지였다.
다른 영애들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
나는 데미안과 함께 공작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아이가 멍청해서 다행이야.”
흥흥,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코너를 돌 때였다.
“으아!”
커다란 무언가가 내 앞에 있었다. 멈추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부딪혔을지도 몰랐다.
“죄송합니…… 헉!”
빠르게 사과하려던 나는 눈앞의 사람을 확인하곤 입을 틀어막았다.
눈부신 금발과 금안.
그리고 2 황자와는 정반대로 어딘가 모르게 정적인 얼굴.
‘1 황자 파비안?’
나는 펄쩍 뛰어오르려는 몸을 간신히 잠재웠다.
1 황자 파비안은 비중이 높은 서브 남주였다.
그는 1 황자였지만 황비 소생이었기에 황태자가 될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설상가상으로 황비도 병으로 일찍 죽어,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 황자는 간악하지, 황후는 그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 아버지인 황제는 관심도 없지.
그가 얼마나 고독한 삶을 보냈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샤벨을 만났고 다정한 그녀의 성정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황가라는 배경 때문에 그녀와 이어질 수 없었지.’
황제는 데미안의 부모님을 죽였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파비안은 황제의 아들이었으니까.
파비안이 나쁜 서브 남주였다면 데미안을 물리치기 위해 황제가 되었겠지만, 그는 아샤벨을 지키기 위해 황제가 되고자 한다.
‘그래도 마냥 무능력하지는 않았어.’
그는 아주 든든한 뒷배를 가지고 있었다.
‘정보 길드의 수장, 레이쿠스.’
레이쿠스와 파비안은 어렸을 때 우연히 만나, 친분을 쌓았다.
레이쿠스는 제국에 도는 모든 정보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발 빠른 레이쿠스의 정보는 훗날 데미안이 황후를 공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파비안 입장에서는 모두 아샤벨을 위한 것이었지만.’
비열하고 간악한 2 황자 마테오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 그런 사람인데…….
‘1 황자. 네가 왜 지금 여기서 나와?’
나는 입을 뻐끔거리다 일단 고개부터 숙였다.
“1, 1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나를 알아?”
파비안이 고저 없는 무감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 당연하죠. 황자님이시잖아요.”
“그런가.”
“네. 하하…….”
그리고 침묵.
늦었긴 해도 공손히 인사했다.
그래도 황자니, 나 같은 영애는 한두 번 만난 게 아닐 텐데.
‘왜 계속 쳐다보냐고.’
황자를 앞에 두고 먼저 실례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화, 황자님께선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서 찾으러 왔는데.”
시종이 걸어간 곳을 바라보던 파비안이 다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이야기 중이길래.”
“하하…… 그, 그러셨군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집요하게 내 얼굴을 바라봤다.
설마 분실물 어쩌고 한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겠지?
자칫하다간 내가 훔친 것으로 오해받을지도 몰랐다.
‘아니, 훔친 게 맞긴 하지만…….’
식은땀이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제대로 들었다면 바로 내놓으라고 했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물건,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럴 땐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럴듯한 위로만 건네는 게 최고였다.
“……그럴까.”
파비안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 끝에 체념이 담겨 있어, 양심이 콕콕 찔리는 것 같았다.
“꼭 찾으시길 바랄게요. 그,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나는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그는 내게 진득한 시선만 보낼 뿐, 붙잡지 않았다.
‘다행이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른 연회 대기실로 달려갔다.
영식들의 수업 – 을 빙자한 편 나누기 – 가 아직 끝나지 않아 먼저 나온 건데, 그 사이 끝났다면 데미안이 애타게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대화 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몇몇 영식들이 나타났다. 수업이 끝난 듯했다.
나는 방의 위치를 묻기 위해 영식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수업이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아시나요?”
영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파드득 몸을 떨었다.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저쪽으로 가보시겠어요?”
그러다 횡설수설 중얼거리더니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
뭐야. 내가 병균도 아니고.
얼떨떨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그가 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은 정확했다. 내 예상대로 데미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데미안!”
힘껏 이름을 부르자 데미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 쪽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에, 엘리.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어.”
많이 서둘렀는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미안해. 잠깐 어딜 좀 다녀오느라고. 그런데 너…….”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뽀얗기만 했던 데미안의 뺨에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데미안을 괴롭히기 위해 반을 나눈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 애를 때려.
이제야 겨우 어둠에서 벗어나, 웃기 시작한 아이인데.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어떤 자식이야.”
“…….”
“아직 멀리 안 갔을 거야. 같이 가자.”
황후가 직접 초대한 자리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충분히 죗값을 물을 수 있는 일이다.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나서자 데미안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 아니야. 난 괜찮아…….”
“하지만……!”
속상한 마음에 소리치려던 나는 시무룩한 데미안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상처 받은 데미안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이리 와, 데미안.”
나는 몸을 돌린 채 팔을 벌렸다. 데미안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끌어안은 팔의 힘이 강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나는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혼자 남겨두지 않을게.”
데미안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렇게나 순하고 착한 아이인데. 마음이 아팠다.
데미안이 내 품에 뺨을 비비며 순하게 대답했다.
“응. 엘리랑 같이 있을래.”
* * *
그날 저녁, 황후 궁.
“폐하께서 이렇게 발걸음 해주시니 기쁩니다.”
황후 카르티아가 달콤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황후의 부름인데, 아니 올 수 있나. 황자들도 함께 있으니 더더욱 와야지.”
벤터스가 너그럽게 웃자 카르티아가 부끄러운 듯 입가를 가렸다.
‘웃기지도 않지.’
어젯밤, 황제가 여인들을 끼고 어떤 짓을 벌였는지 똑똑히 전해 들었다.
그런 주제에 다정한 지아비 흉내를 내다니.
가려진 입매가 삐딱하게 올라갔으나 그녀는 빠르게 감췄다.
“폐하를 위해 성심성의껏 준비했습니다. 부디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 살갑게 나눴던 대화는 온데간데없이 깊은 정적이 흘렀다.
‘짜증 나.’
2 황자 마테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머니 부름 때문에 오긴 했지만, 형님인 파비안도 함께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