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87
087화
“명령……?”
“맹약을 잘 지켜온 뱀파이어 일족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우리의 제안을 승낙할지 아닐지. 그리고 지석 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증명도 잘해줬구요.”
지석과 다른 뱀파이어들은 ‘증명’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었다.
애초에 지석이 자신의 고집을 조금 버리고 행동했었다면 지훈은 이들을 조금 더 높게 평가했었을 테지만.
“뭐 제가 그런 상황을 유도한 거기도 하지만요. 하핫.”
지훈은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이용하여 지석의 자존심을 살짝 긁었었다.
그리고 그 수작은 생각보다 잘 통했고 지석은 지훈의 의도대로 정 목사와 사이가 틀어졌던 것이다.
“이제 목사님은 저희랑 함께하기로 도장을 쾅쾅 찍으셨으니 이제는 관계를 좀 회복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뱀파이어 일족이 목사님께 원했던 그것도 제가 나름 이뤄드리도록 하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저번에 말했던 그 제안 승낙하셔야 할 겁니다.”
“정말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1주일 더 기한 드리죠. 충분히 더 생각해 보십쇼. 자, 그럼 이제 실장님과 대화를 마저 해볼까요?”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준희 쪽으로 돌렸다.
준희는 아까부터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가만히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응시하고 있었다.
“실장님?”
“에, 에?”
“생각 끝나셨나요?”
끄덕.
준희가 다시 차가운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석이 보기에도 표정을 억지로 유지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준희는 지금 당황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뭔가 팍하고 스쳐 지나갔어. 그게 그거였구나 하면서 말이야.”
“뭔가 들으신 게 있으시긴 한가 보군요.”
“조금은. 그런데 아까 명령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네. 매구일족은 맹약을 어겼기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맹약을 지킬 생각 자체를 버렸기 때문에 제안이 아닌 명령을 할 생각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희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런 준희를 경계하던 시영이 마찬가지로 기운을 끌어올려 준희의 기운을 막았다.
준희의 기운을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했지만 꽤나 강력한 시영의 기운에 준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무슨?”
“흡혈을 포기한 탓에 자신들의 능력을 많이 상실한 뱀파이어들과는 다르게 당신들은 꾸준히 인간의 간을 섭취 해왔죠. 유흥업을 주업으로 삼게 된 것도 그런 이유구요. 인간 한둘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어도 별로 큰 화제가 안될 테니까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실력행사를 하려는 거군요?”
“그런 것 같네요. 실제로 그 정도의 능력은 있구요. 지금 시영 씨 수준으로는 그저 실장님의 기운을 막는 게 전부일 겁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팔찌를 이용해 영역을 형성한 이후 몸속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지훈이 시영과 준희의 기운과는 상대도 안 되는 막대한 양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자연스럽게 시영과 준희의 기운이 사그라들었다.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준희를 바라보며 지훈이 미소를 지었다.
“뭘 하려고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상대 자체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시죠.”
지훈의 말에 준희가 눈치를 한번 보더니 기운을 누그러뜨렸다.
그러자 지훈과 시영도 기운을 갈무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럼 슬슬 대화를 끝마치도록 하죠. 아마 조만간 무언가 매구일족으로 메시지가 갈 겁니다.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로 그 메시지에 답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 뭔가요?”
“저희는 뱀파이어들을 반 정도는 인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사회에 많이 적응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매구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
“생원(生員)단계에 접어든 오미호 이상분들은 몰라도 아직 인간화를 하지 못하는 오미호 이하분들은 철저히 요괴로 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갑작스런 이야기에 준희가 어리둥절해하며 반문했다.
양주를 한 모금 마신 지훈이 냉소를 지으며 준희의 반문에 대답했다.
“매구일족은 언제든지 저희의 퇴치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 *
“그건 협박이잖아요.”
“뭐 그렇죠? 반 정도는 협박이라고 봐야겠죠?”
“반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지훈과 시영은 강남구에 위치한 24시간 해장국집에서 국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1시간 전 나인팍스에서의 대화.
“근데 그거 진짜예요? 매구일족이 언제든지 퇴치대상이 있다는 거요.”
“네. 그건 사실이긴 해요.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왜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럴 시간 있으면 다른 일 하는 게 낫죠. 가뜩이나 충돌도 점점 잦아지는데 그런 쓸데없는 일 할 시간 있으면 다른 요괴들 퇴치하는 게 훨 효율적이죠.”
다소 어이없는 대답에 시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지훈은 늘 이런 식이다.
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일에 중요한 이유가 있고,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일에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걸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지훈의 능력 중에 하나일 것이다.
“뭐, 알겠습니다. 팀장님이 잘 알아서 하시겠죠. 그래서 이번 만남으로 이제 뱀파이어와 관련된 일은 마무리가 되는 건가요?”
“일단 뱀파이어 쪽에서 답이 오기를 기다려야겠죠. 그런 다음에는 매구일족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구요. 다음 주쯤에 그쪽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일을 진행해도 될 겁니다.”
“오늘 그 둘의 모습을 보니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더군요. 그런데 그 홍 실장인가 하는 인간, 아 인간이 아닌가. 어쨌든 그 여자가 충격받은 건 이해가 가는데 왜 지석인가 하는 자는 그렇게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던 거죠?”
“아마 제가 매구일족을 다루는 방식을 보고 뭔가 느끼는 게 있었을 겁니다. 제가 그들과 매구일족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본인들은 선녀였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무언가 비교군이 생기게 되면 당연히 평가의 기준은 그 비교군과의 상대적 우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매구일족의 상황을 지켜본 지석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자리는 비단 매구일족에게 경고하기 위한 자리만이 아니라 뱀파이어들에게 더 빠른 선택을 재촉하는 자리기도 했었네요.”
“그렇죠. 애초에 그런 생각으로 그 자리를 찾아갔던 거구요.”
국밥을 먹으며 태연하게 말하는 지훈을 보며 시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머리 아픈 일라는 생각을 한 시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그쪽은 그렇게 진행이 된다고 보면 되겠네요. 다른 고문들은 어떻게?”
“아. 그거는 정 목사님이 본인한테 맡겨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저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요? 흠… 목사님이 이래저래 도움이 확실히 되어주시네요.”
“솔직히 저도 예상외입니다. 이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았거든요.”
지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정 목사에게 어느 정도 역할을 바라긴 했지만 지훈의 생각보다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지훈은 그런 정 목사의 열정을 굳이 사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시영 씨는 뭐 들은 거 없습니까?”
“네? 저요?”
“네. 무진도사님도 무언가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아서요.”
“흠… 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목사님하고 이런저런 의논을 하시긴 하셨어요. 저 수련하는 데 자주 목사님이 오셨거든요.”
회사와 고문계약을 맺은 후 무진도사는 시영의 요청에 따라 당분간 서울에서 머물며 주 2회씩 시영의 수련을 도와주기로 했다.
시영과 똑같이 무술유단자이면서 자경단인 무진도사와의 수련은 시영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는 무진도사가 이미 여러 번 제자를 지도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슬쩍 듣기로는 선사님이나 박 신부님하고 통화도 자주 하시더라구요.”
“흠… 네 분이서… 그럼 그 이야기가 그것이었던 건가?”
“뭐 아시는 게 있나요?”
“아마 네 분이서 무언가를 준비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만난 정 목사는 지훈의 계획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흠… 무얼 하시려는 걸까요? 이야기 들으신 게 있는 건가요?”
“글쎄요. 자경단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조만간 그에 관해 어느 정도 청사진이 그려지면 이야기하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한번 기다려보죠. 네 분의 경력을 합치면 거의 200년에 가깝습니다. 어느 정도는 믿고 맡겨도 충분하겠죠.”
예전의 지훈은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는 것을 선호하고 본인이 직접 모든 것을 다 챙기려 했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훈은 믿고 맡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일을 일임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물론 그 기준이 높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정 목사는 그 기준을 통과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러니 아까 말했듯 저희는 평소처럼 업무에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사님과의 수련은 어떤가요? 아까 가드들을 상대하는 것 보니까 기운을 운용하는 건 수준급이 되신 듯하더군요. 중요한 건 다른 쪽입니다만…….”
“안 그래도 그쪽을 가장 많이 배우고 있어요. 일단은 팀장님이 왼손에 오행의 기운을 담은 것처럼 저는 발 쪽에 담았어요. 몇 번만 더하면 능숙하게 화행과 금행의 기운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도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지훈은 검지 손가락에는 화행의 기운을, 중지 손가락에는 금행의 기운을 담아 공에 불어 넣는 방식으로 전투를 행한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시영도 비슷한 방식을 택한 것 같았다.
“잘됐네요. 저도 금방 해냈으니 시영 씨도 금방 능숙하게 이용하시게 될 겁니다.”
우웅.
그때 지훈의 태블릿이 울렸다.
지훈이 확인해보니 담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시영의 태블릿은 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훈에게만 온 메시지인듯했다.
“뭐지?”
“무슨 일 있어요?”
“급하다면서 메시지가 왔는데 잠시만요.”
담의 메시지를 읽어내려가는 지훈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런 지훈의 표정을 살피던 시영이 지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시영의 물음에 지훈이 말없이 보고 있던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시영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태블릿을 받아 소리 내어 읽었다.
“현재 차원 충돌로 인한 요괴들을 막는 일을 하는 회사 직원들의 일부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함에 따라 용사들의 업무 빈도가 늘어날 것이다. 엥? 갑자기요?”
“일단 이번에는 10% 정도가 이동하고 천천히 그 비율을 늘려간다고 하네요. 아, 어떤 걸 이야기하는지는 아시죠?”
“네. 그 차원의 충돌 때마다 튕겨져 오는 몬스터의 수는 극히 일부라고 들었어요. 대부분은 혼돈계의 직원들이 처리한다구요. 물론 그 일부라는 것도 아주 많은 수지만요. 그런데 그 직원들이 이동한다는 건가요?”
지훈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일이 진행된다는 것은 지훈도 알고는 있었지만 시기는 그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적어도 반년 정도는 일이 빨라진 듯했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 차원의 충돌로 인한 요괴들의 등장이 더 잦아지겠죠. 그리고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요괴들도 튕겨져 오게 될 겁니다.”
“그렇다는 건…….”
시영이 조금 불안한듯한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지훈은 그런 시영의 눈을 마주 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이제 직접적인 피해자가 점점 늘어날 겁니다. 아무래도… 업무가 늘어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