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
001.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었습니다.
001.
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득.
책상에 올려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면서 자신을 어필했다.
무음으로 해놨어야 할 놈이 왜 저러는지 몰라 속으로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눈을 살짝 찌푸린 김과장의 모습에 더욱 심장이 뛰었다.
“회의 시간에 뭐야?”
자기는 아예 벨 소리로 해놓으면서 뭐라고 하는 김탁균 과장.
그 살기 가득한 눈빛이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거 같이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 놀란 모습을 보이면 더 지랄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굴려 적절한 변명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살고자 하는 본능은 자연스럽게 입을 열게 해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상강에서 중요한 전화가 온다고 해서.”
“상강? 거기면 받아야지. 나가서 빨리 받아.”
“네. 과장님.”
OEM을 의뢰한 상강과의 협의는 원래 김과장의 일.
그걸 받기 싫다고 나에게 떠넘겼으니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갔다.
최부장이 있는 회의장인데도 자기가 대장인 거처럼 말하는 모습은 참 봐주기 힘들긴 했다.
난 슬쩍 최부장의 얼굴을 봤다.
누가 뭐라 해도 이 회의의 주체이자 장은 최석진 부장.
이내 그가 끄덕이자 회의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우.”
불편한 공기로 숨을 턱 막히는 게 만드는 회의실을 나오자 그나마 살만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변명을 떠올리지 못했으면 피곤한 하루가 될 뻔한 순간이었다.
날 곤경에 빠트린 전화를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화면에 뜬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
상강과의 통화는 오후에 하기로 했으니 아닐 거 같지만, 다른 일일지 모르니 받아야 했다.
“네. 장서후입니다.”
「안녕하세요, 장서후 고객님. 고객의 자산을 가족의 자산처럼 지키는 보험. 원일 보험입니다.」
“보험 안 들어요.”
그런데 전화가 온 곳은 상강이 아닌 보험 회사.
‘망할. 이놈의 스팸은 진짜 더럽게도 오는구나.’
전화 올 곳이 넘쳐나는데 이런 스팸 전화라니.
나라에서는 세금 받고 이런 거 안 막고 뭐 하나 싶었다.
식겁했던 순간 때문에 절로 나오는 한숨.
다시 회의실에 들어가기 싫어 시계를 봤다.
어느새 점심 먹을 때가 거의 다 되어버린 시간에 슬쩍 딴생각이 들었다.
‘거의 끝났으니까. 그냥 째자.’
회의록은 김선아에게 부탁하면 될 거 같으니 전화를 핑계로 회의를 쨀 생각이었다.
스팸 전화가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되는 기분이었다.
얼른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장서후(기구 개발 2팀) : 선아님. 저 업체가 급하게 해달라는 일이 있어서 못 들어갈 거 같아요···ㅠㅠ」
「김선아(기구 개발 2팀) : 흠······.. 진짜요? 그냥 뺑끼 쓰는 거 아니고???」
‘아, 귀신 같네.’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눈치는 정말 빠른 김선아.
고졸로 들어와서 온갖 구박과 서러움을 이겨낸 건 저 눈치도 한몫했을 거다.
「김선아(기구 개발 2팀) : 됐어요 그냥 들어오지 마요. 괜히 들어오면 김과장 지랄만 늘어나겠네.」
「장서후(기구 개발 2팀) : 압도적 감사입니다!!!! 점심시간 끝나고 입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아아로 보답하겠습니다!!!!!!!!!」
「김선아(기구 개발 2팀) : 됐으니까 안 걸리게 빨리 튀세요. 그리고 아아 말고 초코라떼로요.」
「장서후(기구 개발 2팀) : 넵!!!!」
아침부터 조금 기분 좋아 보이더니 평소의 까칠한 김선아가 아니었다.
어쨌든 적어도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는 자유 시간.
빠르게 사무실 구석을 보니 타깃이 보였다.
「장서후(기구 개발 2팀) : 커피 ㄱㄱ 먹고 점심까지 ㄱㄱ」
「이동찬(기구 개발 3팀) : 벌써?」
「장서후(기구 개발 2팀) : 회의 쨈 여기 있으면 걸림」
「이동찬(기구 개발 3팀) : ㅆㅂㅇㅈ 바로 1층에서 봅세」
역시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동기뿐이다.
‘그래도 하나 있는 동기가 멀쩡한 병신이라 다행이네.’
멀쩡하지만, 충분히 병신인 동갑인 남자.
노는 합까지 맞으니 이건 단순한 동기를 넘어 베스트 프렌드가 될 놈이었다.
지금도 업무에 치이는 거 같은데 바로 콜 때리는 모습이 참다운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커피 말고 바로 밥 먹자. 어제 달렸더니 개 속 쓰려.”
“그러던지. 짬뽕?”
“것도 좋은데 그냥 쌀국수로 가자. 거기 알바 새로 왔는데 개 귀여움.”
“크크. 미친 새끼. 바로 가자.”
이동찬의 나이스한 메뉴 선정으로 바로 달려간 태국음식점.
녀석이 장담한 대로 상당히 귀여운 알바생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덕분에 조금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쌀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잡담을 시작했다.
“들었냐? 세무 쪽에서 또 하나 쓰러졌다던데.”
“들었지. 김과장하고 동기여서 존나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러면서 지 마누라 보험 한다고 보험 들라고 지랄을 아주. 아, 개빡쳐.”
“밥맛 떨어지게 그딴 인간 얘기는 패스. 암튼 그래도 야근으로 이렇게 쓰러지는 게 정상적인 회사 맞아? 개 무섭다 진짜.”
내가 다니는 회사는 영광 그룹의 영광 전자.
주로 B2B를 다루기에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름 규모가 있는 중견 기업이다.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인 현실에서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과로로 사람들이 쓰러지는 건 나도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를 듣자 문뜩 예전 일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때 기억나냐? 우리 들어오고 며칠 안 됐을 때.”
“사무실에서 뇌졸중으로 무슨 부장님 쓰러졌던 거?”
“어. 나 그거 보고 개식겁해서 바로 보험 들었잖아. 존나 쎈 거로.”
야근하다가 쓰러질 정도로 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그만두고 말지.
그렇지만 보험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드는 것.
입사하자마자 봤던 충격적인 일에 조금 무리하게 보험을 들었었다.
“나도 하나 들어야겠다. 넌 어디 건데?”
“어? 어디더라. 이따가 알려줄게.”
일로 치이다 보니 급하게 들었던 보험이었다.
인터넷에서 추천받았는데 외국계 보험이었던 거로 기억하고 있었다.
착실하게 낸 보험금은 올해 초 교통사고 때 보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름이 입에 잘 안 붙었다.
‘유니버스 생명이었나?’
아무튼 이런 비슷한 이름이었다.
* * *
“선아님. 여기 초코라떼요.”
“네.”
“얼음 안 녹게 뛰어왔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은요?”
“외근이요. 거기서 바로 퇴근하신다고 하네요.”
김선아에게 뇌물 겸 감사의 초코라떼를 주며 물으니 김과장은 외근.
‘외근은 무슨. 또 사우나가서 잠이나 자겠지.’
괜히 김탁균이 만년 과장인 게 아니다.
일은 짬으로 밀어낸다고 해도 적당히라는 선이 있다.
그런데 무슨 회사를 자기 집처럼 막 다니니 누가 승진을 시켜주랴.
그런 놈을 자르지 못하는 건 고용 안정이라는 위대한 원칙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적어도 가장 바쁜 개발팀에서는 빼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늘도 내면의 분노가 차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서후씨. 여기 잠깐만.”
“넵. 대리님.”
자리가 앉기 무섭게 날 부르는 누군가.
맑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해줄 정도.
그렇지만 난 애써 구겨지는 얼굴을 숨겼다.
‘왜 또 부르냐. 바빠 죽겠는데.’
당장 ASMR을 해도 좋을 거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
목소리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외모까지.
그렇지만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2년이란 시간은 그녀의 본질을 알게 해주었으니까.
“급한 일 있어요?”
“상강하고 미팅 있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거 아직 많이 남았잖아. 오늘 테스트할 거 준비해야 하니까 따라와요.”
“아, 네.”
어차피 오라고 할 거면서 왜 묻고 지랄이세요.
속으로만 대답하고 장비를 챙겨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시장 불량 들어온 거 테스트한다고 보낼 샘플이에요. 그러니까 이번에 넣은 대책으로 재작업해야 하는 거 알죠? 전 잠깐 메일 확인하고 올 테니까 작업하고 있어요.”
“······네.”
“빨리 올 거니까 딴 짓 말고 작업하고 있어요. 와서 확인 할 거예요.”
자기 할 말만 던지고 사라지는 신민희.
쓸데없이 눈에 들어오는 뒤태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털썩 작업대 앞에 앉으니 눈에 들어오는 엄청난 작업량.
아마도 나 혼자 작업을 끝낼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미 숱하게 겪었던 일이라 이제는 작은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됐다.
“하아, 개 같네. 그냥 그만둘까?”
개 꼰대 과장에 차갑기만 한 고졸 선배.
거기다 매일 같이 짬 처리만 시키는 직속 선임까지.
이런 상황을 방관하는 부장까지 있는 환상의 콜라보.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회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심한 곳이었다.
그러니 꿈이 퇴사가 되어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꿈을 이룰 날이 머지않을지도 몰랐다.
《쿠──────웅.》
귀가 아닌 영혼에 울린 거대한 소리.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 * *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사람들은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들었죠? 다들 들었죠?”
“나도 들었다니까 그러네. 이 사람들이 다 잘못 들었을라고.”
나만 들은 환청이 절대로 아니었다.
얼굴이 굳은 신민희도, 핸드폰을 계속 만지는 김선아도, 외근 나가다가 돌아왔다는 김탁균도.
모두가 나처럼 기묘한 영혼의 울림을 들었다.
들려온 소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모두 이렇게 서성이고 있는 거였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어? 빨리 일해. 월급 그냥 받아갈 거야?”
자기도 얼굴이 흙색으로 바뀌었으면서 소리 지르는 김과장.
평소였다면 그의 말에 후다닥 자리로 돌아갔을 사람들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게 몸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정말 일은 시작되었다.
“저, 저기! 저기 좀 보세요!”
누군가의 외침.
창밖을 보며 소리친 사람의 손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나도 역시나 그러했고.
꾸르르르르르르르르릉.
콰과과광─────!!!!
“꺄아아아악!”
갑자기 폭탄 터진 거 같은 천둥소리에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방금까지 맑기만 했던 하늘은 없었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와 뒤덮고 들어본 적 없는 굉음을 내는 천둥이 몰아치고 있었다.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게 어둠을 불러오는 것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는 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서움을 넘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때가 되었다.》
거대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갑자기 울린 기괴한 소리가 모두의 머리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때가 되었다는 뜻을 전한 목소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씨, 씨발 뭔데? 왜 알아듣겠는 건데?’
생전 처음 듣는 언어인데 말이 이해가 되었다.
분명 귀로 들린 건 낯선 언어인데 뇌로 들어온 후에는 뜻이 전해지는 괴이한 현상.
도저히 납득이 되지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저 길지 않은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조차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대들의 죄를 반성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다시금 울린 목소리는 우리의 죄를 논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누가 설명이라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설명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말을 행하는 어떤 존재만 있을 뿐이었다.
쩌저적─────!!
‘저게 뭐야?’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았다.
CG처럼 부서져 내리는 공간들.
거대한 나무를 쪼개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부서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리고 부서진 공간들은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며 안정을 찾았다.
지독한 어둠을 품은 채로.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알 수 없는 괴물들을 끊임없이 뱉어대는.
세상을 멸망시킬 괴물들이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시작되었다. 너희가 주인이던 시간은 오늘로써 끝이 났다.》
쏟아지는 괴물과 함께 울린 목소리.
그 알 수 없는 존재는 명확히 선언했다.
인간의 멸망을.
“괴, 괴물이야!”
“도망쳐! 아아아악!”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괴물들이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
눈을 뜨고 볼 수 없이 잔혹한 학살.
난 그 장면을 보며 몸을 덜덜 떨 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죽는다.’
바들바들 떨며 내가 깨달은 건 죽는다는 것.
사람들을 망설임 없이 죽이는 괴물들이 곧 나에게도 올 거라는 것.
그것이 내 죽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띠링!
하지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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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자 ‘장서후’님에게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었습니다.]나에게는 이런 순간을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 줄 보험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