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4
115. 오월동주. (1)
115.
관객들도 모두 빠져나간 커다란 스타디움은 왠지 을씨년스러웠다.
포근한 세계수의 피톤치드가 흐름에도 음습하게 느껴지는 건 10강에서 떨어진 다섯 팀이 잔뜩 긴장한 채로 모여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도 커다랗지만, 실망감과 피로감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인간 셋, 수인족 하나 그리고 드워프 하나.
각 팀을 대표하는 존재들은 다양했으며 그들의 눈은 한 사람에게 쏠려있었다.
이글거리는 그들의 눈이 향한 곳에 있는 건 다행히 나는 아니었다.
이런 일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 자청했기에 불편함을 피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전 SH 컴퍼니의 비서실장이자 실질적 부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동찬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부대표?
정식으로 회사 직원으로 소개하는 첫 자리인데 자신을 저렇게 소개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피식했다.
덩달아 긴장했던 컴퍼니 직원들도 덕분에 조금 긴장이 풀렸다.
우리 컴퍼니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며 나아갈지는 모른다.
신생 회사에 가까운 우리의 공식적인 외부 활동은 이 SH 121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사실들을 인지하고는 있는지 헛소리를 빼면 평소와 달리 조금은 진중한 모습을 보이는 이동찬이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모두 저희가 발 벗고 맞이해야 할 훌륭한 인재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희의 역량이 부족하여 같이할 수 없다는 사실이 통탄스럽습니다. 절대 여러분 탓이 아닌 저희의 부족함이니 오늘의 이별을 마음 아파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취준생 생활 2년의 고통을 겪어본 이동찬.
녀석은 누구보다 예비 탈락자들에게 하는 말이 진심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가진 ‘이계 특별 채용’의 권한이 더 컸다면 모두 직원으로 들이고 싶은 인재들이었으니까.
“오늘 떠나시는 분들에게는 소정의 수고비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곳까지 와주신 것에 대한 저희 SH의 작은 보답입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차후에 있을 어떤 형태의 채용이든 상관없이 우선적으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겁니다.”
서울에서 면접을 보면 부산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면접비와 교통비를 주는 법이다.
그것이 자신의 회사에 지원해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고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자세다.
그리고 우리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면접비 형태의 수고비를 준 거였다.
‘그래 봐야 푼돈.’
개인에게 준 골드는 100골드였다.
500명이 조금 넘는 모든 지원자를 합치더라도 5만 골드 정도였다.
1경기를 통과한 사람들까지 다 더해도 10만 골드이니 충분히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고블린 로드 한 마리를 잡아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처음에는 커다랗던 금액.
그렇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에게 절대로 큰돈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전쟁을 벌인 뱀파이어들에게 얻은 골드나 제주도를 정리하며 쌓고 있는 골드는 흠집도 안 나는 수준이었다.
“그럼 2경기에 추가로 같이하게 될 합격팀을 호명하겠습니다.”
이동찬이 모여있는 사람들을 쭈욱 살피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투로 진행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말대로 했지?’
마치 눈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카탈로라 황녀였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합격자에 한 사람의 이름이 없을 것을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난 다시 앞을 봤다.
“추가 합격한 팀은······ 팀 아우리엘입니다.”
이동찬의 입에서 나온 추가 합격팀은 아우리엘이 이끄는 팀이었다.
“됐어!”
“으하하하하! 내가 된다고 했잖아!”
“우리 꼭 끝까지 해보자고요!”
합격한 아우리엘 팀원들은 모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는지 다른 팀들도 수긍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로지 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니, 적대감을 드러내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띠링!
[‘카탈로라 베닐리아’의 친화도와 호감도가 떨어집니다.] [현재 ‘카달로라 베닐리아’와의 친화도는 ‘-10’입니다.] [현재 ‘카달로라 베닐리아’의 호감도는 ‘-25’입니다.]‘후우, 살벌하게 떨어지네.’
눈빛에 담긴 그녀의 의지는 시스템을 통해서 나에게 완벽하게 전해졌다.
물론 그런다고 내가 두려워할 일은 없었지만.
* * *
“잠깐 얘기 좀 하지.”
“그러시죠.”
추가 합격자가 발표되고 아쉬워하는 이들을 챙겨주며 훈훈하게 상황이 마무리됐다.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던 촬영을 담당하는 직원도 엄지 척을 했을 정도.
다만 여전히 표정이 굳어있는 카탈로라만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날 불러 세울 뿐이었다.
“왜 그랬지? 내가 분명 그대에게 합당한 제안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합당한 제안을 하셨나요?”
“그렇다. 자격이 없는 참가자를 떨어트리면 그대와 그대가 아끼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글쎄요. 같은 제안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거겠죠. 그 제안이 저에게는 그리 합당하지는 않았을 뿐입니다.”
얼굴색 조금도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오히려 내 말을 들은 카탈로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치욕을 받았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이제는 꽤 순리에 맞게 사는 건가 싶었는데, 여전히 세상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군.”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남들 겪을 만큼 험하게 살아왔습니다. 황녀님이 걱정해주실 만큼 세상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더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군. 그대의 뜻, 그대의 컴퍼니가 가진 뜻을 잘 알았다.”
선언하듯이 말하고 등을 돌리는 황녀.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살벌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왠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거 같았다.
“왜 저렇게 꼴 난 거냐?”
“그렇게 보이냐? 난 왜 그냥 삐진 거 같냐?”
“대표님아, 돌았어? 난데없이 개소리야.”
“내 눈에 그냥 그렇게 보여.”
누가 봐도 카탈로라의 태도는 무례하고 거칠다.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면서 그런 태도를 만드는 것도 능력처럼 보이지만, 난 이동찬의 의견과는 달랐다.
‘애야, 애.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줄 알고.’
베닐리아 제국이 정복한 나라에서 온 아우리엘.
심지어 그녀가 우리 회사에 취업하려는 이유는 독립 전쟁에서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서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연합군이라도 만들고 싶어하는 걸 숨기지도 않았다.
이런 아우리엘의 모습은 베닐리아 황녀라는 카탈로라에게 당연히 계륵일 수밖에.
그렇기에 고작 난민과 비슷한 신세인 그녀가 나에게 꽤 무리한 조건의 협상을 던진 거였다.
“아이고. 황녀님이 어지간히 너한테 화가 난 거 같은데 괜찮냐?”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상관없어.”
“그럼 됐고. 그래도 간만에 재밌는 거 봤더니 좋네. 맥주나 때리러 가자.”
“할 일 많은데.”
“지랄 말고 갑시다.”
“······그래. 나중에 하면 되겠지.”
이동찬이 괜찮냐고 물었지만, 사실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었다.
부정심사를 통해서 그녀의 호감을 얻는 건 어쩌면 히든 미션을 깰 수 있는 시작점인지도 모른다.
그 뜻을 거절했다고 박살 난 호감도와 친화도만 봐도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어차피 안 되는 게임이었어.’
하지만 그녀의 말을 잘 듣는다고 히든 미션을 깰 수 있을까?
난 절대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움직인다면 그녀에 대한 나의 평가는 ‘말 잘 듣는 시골 행성의 구멍가게 사장’ 정도가 될 거다.
호감도는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하나, 그런 위치에서는 친화도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니 격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녀가 살던 세상에서는 겪을 수 없는 일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만이 히든 미션을 깰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아우리엘. 왠지 아주 좋은 카드가 될 거 같아.’
부디 이 웃긴 취업 서바이벌에서 그녀가 분전해주기를 바랐다.
* * *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탈로라는 그 이후에 추가적인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런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놔두더라도 아우리엘의 팀이 떨어지리라 여긴 건지는 모르겠다.
《승자는 팀 아우리엘입니다!》
양손을 높이 치켜드는 아우리엘.
백금발의 여기사는 승리에 환호성을 터트렸다.
스타디움 전체가 그녀의 승리를 축하하며 ‘아우리엘’을 연호하였다.
누군가 한 명은 굉장히 안타까워할 소식이었다.
《이로써 결승전에 진출할 3팀이 모두 정해졌습니다. 방금 승리한 팀 아우리엘과 함께 팀 갈락타레미알과 팀 창무진입니다. 내일 저녁에 진행될 최종 결승전도 많은 기대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우리엘과 함께 마지막 결전을 치를 상대는 무공을 쓰는 창무진이라는 남자가 이끄는 팀.
그리고 그녀에게 패배를 주었던 사자 수인이 버티고 있는 팀이었다.
아우리엘은 패배를 갚아줄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눈에서 뜨거운 기운을 뿜어냈다.
“누가 이길 거 같냐?”
“정배는 누가 봐도 갈락타레미알이지.”
“그건 맞지. 근데 왜 난 자꾸 저 백금발 여기사님이 눈에 들어오나 모르겠다.”
“걸그룹 뽑는 거 아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어떻게 외모가 반영이 안 되겠냐. 그리고 일단 서사가 좋잖아, 서사가. 한국인의 마음을 울리는 독립 전쟁. 이거야말로 진짜 특별 채용에 어울리는 이야기지.”
이동찬의 말에 스타디움을 빠져나가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여러 면에서 아우리엘을 응원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건 내 비서를 뽑는 자리가 아니었다.
‘최대한 공정하게. 그래야 명분을 얻어.’
성대하게 이런 이벤트를 여는 의미를 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에게 SH라는 컴퍼니가 가진 공정성과 의미를 전달해서 어떻게든 들어오게 만드는 것.
여러 마리의 새를 잡기 위해서는 작은 것은 놓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결승전은 어떻게 진행하는 거냐?”
“이것도 대표라고. 지원자들은 벌써 사전 준비 들어갔는데 이렇게 관심 없는 대표라니.”
“네가 나중에 말해준다면서 안 말했잖아.”
“그거야 그게 재밌으니까 그렇지. 그럼 잘 들어. 어차피 사전 준비 때문에 이제 비밀도 아니니까.”
이동찬은 내일 있을 결승전과 그를 위한 사전 준비를 알려주었다.
‘요약하자면 나라 하나를 키워서 정복 전쟁을 이기라는 거네.’
일종의 전략 보드게임을 직접 말이 되어서 하는 방식이었다.
땅을 넓히고 세력을 키우고, 적을 이겨내고 모든 땅을 점령하며 이기는 것.
예전에 했던 ‘문명’이라는 게임이 저절로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거기서 가져온 거지. 여러 요소가 비슷하거든. 그런데 가장 다른 건.”
“싸우는 사람들이 진짜 사람들이라는 거네.”
“그렇지. 결국, 아무리 전략이 좋아도 그걸 파괴할 정도의 괴물이 있으면 소용없는 거니까.”
녀석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갈기를 흩날리며 전장을 휘저을 수 있는 괴물인 사자 수인.
아무리 전략을 짜낸다고 해도 쉽지 않은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오늘 밤을 새워서 이길 방법을 쥐어짜겠지. 그리고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1경기에서 그런 말을 했었지.”
“맞지. 원론적인 얘기인 건 어쩔 수 없지.”
결승전이라고 말하지만, 그 경기의 승패는 SH 121이라는 서바이벌의 우승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 결승전을 대비한 준비성과 진행한 과정 그리고 도출된 결론을 종합하여 심사위원들이 투표한다.
그건 1경기, 2경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경기도 예외 없이 경기의 승자가 투자의 승리자가 되었다.
이겼다는 사실이 가산점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내일도 같으려나?’
왠지 조금은 다른 하루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