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6
117. 오월동주. (3)
117.
분위기는 결승전이 성황리에 끝났음에도 그리 좋지 않았다.
축제 분위기였던 스타디움과 달리 냉기가 흐르는 이곳.
여기는 결승전 승자가 아닌 SH의 새로운 인사 팀장을 뽑는 회의장이었다.
“어허, 그게 말이 되나? 분명한 승자가 있는데 합격자는 다른 사람이라니. 그런 짓을 하면 어느 누가 우리 컴퍼니를 공정한 곳으로 보겠냐고?”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멋지게 승리한 후에 갈기 휘날리는 모습은 진정한 강자의 모습이었죠. 그런 친구를 동료로 들인다는 거에 반박하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차인규와 남동규라는 그야말로 상남자를 대표하는 두 사람은 의지가 확고했다.
처음부터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는 걸 숨기지 않은 갈락타레미알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사자와 인간을 합친 우승자.
인사 팀장이라기보다는 장군 같은 남자를 합격시켜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의 말은 명분이 확실했다.
참가자 간에 치러진 시험에서 무패 우승을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당위성.
그것을 안고 있기에 모두 쉽게 반박하기 힘들었다.
물론 모두가 반박을 못 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결승에서 이긴 건 당연히 존중해야죠. 그래도 우리는 인사팀을 이끌 팀장 겸 지구 밖, 그러니까 이계와의 여러 일을 맡아줄 일꾼을 뽑는 겁니다. 그런데 딱 봐도 그 사자 친구보다 그런 일을 더 잘할 사람이 보이잖아요.”
“이실장님 말이 맞아요. 아무래도 이번에 뽑게 되면 저하고 일해야 할 시간이 많을 텐데 그 성격에 사무실에서 일하라고 하면 하겠어요? 회사 직원들 관리하는 것보다 나가서 몬스터하고 싸우고 싶어 할걸요? 결승전에서도 마지막 일기토만 이긴 거지 다른 건 다 진 거잖아요.”
딱히 우열이 없는 거 같으면서도 내 눈치를 쓱 보고 아우리엘이라는 여기사를 높여서 말하는 이동찬.
그리고 인사 팀장으로 뽑을 새로운 직원과 가장 많이 붙어서 일해야 할 이윤정.
이렇게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아우리엘을 밀고 있었다.
개최한 이벤트의 결승전에서 우승했음에도 뽑지 않을 수 있는 당위성은 결국 자리에 얼마나 합당한가였다.
애초에 이런 구조의 경기를 한 것부터 문제일 수 있지만, 모두가 나서서 싸워야 할 상황이 오면 이 또한 중요한 문제였으니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부분에서 차분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아우리엘을 선택한 거였다.
이견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조금씩 깊어지는 토론에 긴가민가했던 직원들도 각자의 의견을 정하는 추세.
“대충 반반이야. 명분과 실질적인 업무 수행으로 나뉜 거지. 그러니까 네가 선택하면 돼.”
상황을 정리한 이동찬은 웃으면 나에게 선택을 종용했다.
대표라는 자리에 있으며 언제나 선택을 이어가며 결과를 책임지고 있지만, 늘 이 순간은 숨이 막혀온다.
그래도 긴 고민을 한다고 더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선택을 해야 했다.
“대표님. 여기 투표용지요. 대표님은 100점 만점으로 투표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받아 든 투표용지.
결승전에 참가한 세 팀 리더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무겁게 숫자를 적어나갔다.
* * *
“이렇게 보니까 진짜 크네요.”
“흐흐. 제가 조금 큽니다.”
덩치에 감탄하며 악수를 하니 마주 잡은 손도 역시나 컸다.
180이 넘는 키에 손도 제법 큰 편인 내가 마치 아이가 된 느낌이 들 정도.
고양잇과 동물이 가진 특유의 까슬까슬함도 느껴지니 정말 기이한 기분이었다.
거의 3미터에 달하는 키를 가진 갈락타레미알은 역시나 컸다.
가만있으면 살벌한 얼굴인데 웃으니 살짝 귀엽기도 했다.
난 악수한 손을 놓고 시스템을 움직였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우승 기념 골드와 상품은 드릴 테니 좋은 곳에 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띠링!
[‘장서후’님이 ‘갈락타레미알’님에게 ‘500, 000’골드를 전송합니다.] [‘장서후’님이 ‘갈락타레미알’님에게 ‘유일 등급 아이템, 독 바른 발톱’을 전송합니다.]SH 121의 우승 상금은 50만 골드였다.
이 골드는 팀장이 알아서 100명의 참가자에게 나눠주면 된다.
그리고 추가로 전해준 유일 등급 아이템은 팀장에게 주는 개인적인 부상이었다.
순수 골드로 치면 100만 골드가 가볍게 넘는 아이템.
나에게는 제법 큰 돈인데 이들에게도 그러한지 입가의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곧 씁쓸한 얼굴들이 되었다.
“끝까지 같이 하지 못하는 건 아쉽네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경기를 치르며 저라도 저 어린 친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질 수 없으니 열심히 했지만, 그뿐이었죠. 얼마든지 이해합니다. 전 이 우승 상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승 상금으로 적지 않은 골드와 아이템을 받은 사자 수인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내 선택은 그가 아닌 아우리엘.
이해한다고 말하는 그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이해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대신 약속하신 최우선 채용 기회는 약속해주시는 겁니다?”
“당연하죠. 저희가 오히려 모시고 싶은 거 아시잖아요.”
“크하하하하. 그러면 됐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놀았습니다.”
떠나가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길지 않은 인연이지만, 다시금 같이하고 싶은 멋진 전사.
만일 이번 채용이 목적이 조금만 달랐다면 그 주인공이 됐을 능력자였다.
“자, 대표님. 이제 새로운 직원에 대해 포상을 하시죠.”
아쉬워하는 내 눈빛을 읽은 이동찬이 슬쩍 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의 말에 시선을 돌리니 긴장한 채로 서 있는 한 여기사가 보였다.
그녀가 바로 우리의 새로운 직원이 된 아우리엘 사라퀄.
앞으로 날 도와서 SH 컴퍼니의 근간이 될 인재를 영입하고 관리한 인사 팀장이었다.
* * *
“일시불로 받으면 어떤 경우에도 떠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연봉 협상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고요. 대신에 인센티브는 챙겨주실 거죠, 대표님?”
“전 일 잘하는 직원을 좋아합니다.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러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준우승했지만, 결국 최종 승리자가 된 아우리엘과 그녀의 팀.
임원급인 인사 팀장이 된 그녀는 5년 치 연봉을 미리 가불 요청하였다.
그것이 준우승으로 주어진 희귄 등급 아이템을 포기한 결과물.
띠링!
5년이나 우리를 위해서 헌신해줄 그녀에게 송금을 미룰 수는 없었다.
[‘장서후’님이 ‘아우리엘 사라퀄’님에게 ‘10, 000, 000’골드를 전송합니다.]내가 시스템으로 전송해주는 골드는 천만 골드.
5년 동안 일한다고 했지만, 실수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저렇게 뜨거운 눈을 가진 사람이니 믿어보기로 했다.
“······천만 골드. 정말 이런 큰돈이 생겼네요.”
“당연히 공짜는 아닙니다.”
“이 돈이면 굶주리며 싸우고 있는 저희 나라 사람들을 크게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신 대표님이 원하시면 어떤 거라도 할 수 있습니다. 노예가 되라면 그렇게 할 거예요.”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모습을 보니 괜히 짠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천만 골드가 큰 금액이기는 하나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투자할 수 있는 수준.
특히나 내 개인적으로 그녀에게 준 돈이기에 SH에 추가로 투자한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은혜도 입히고 지배권도 공고히 하고 좋네.’
지분을 100퍼센트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회사 자산이 커야지 그 영향력이 커지는 법이다.
이번에 투자 개념으로 그녀에게 준 천만 골드는 회사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서 내 투자금을 늘린 것.
누군가가 SH의 지분을 얻으려면 결국 더욱더 힘들어졌다는 뜻이 되는 거였다.
“노예는 됐고 늘 열심히 일해줘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잘 알고 있죠?”
“행성 침공. 채용 공고에 잘 적혀있었으니 모를 수 없죠. 채용 면접도 그 상황들을 가정해서 하신 거잖아요.”
“최대한 비슷하게 한건데. 괜히 창피하네요.”
“아니에요. 정말 좋은 기획이었어요. 아마 제가 처음으로 해야 할 새로운 직원 채용과 인사 구조 변경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SH 121이라는 웃기는 행사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아우리엘이었다.
아직 업무에 대해서 들은 것도 없을 텐데 보는 식견이 제법이니 잘 뽑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대표니까 면담은 해야겠지?’
이미 채용을 확정했고, 5년 치 돈까지 선불로 주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하고 가족처럼 지내야 할 아우리엘.
그러니 내가 알아야 할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가지 물어볼게요. 불편한 질문일 수 있어요.”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대표님. 전 이제 대표님 사람이에요.”
“그래도 불편할 거에요. 사라퀄이라는 나라가 망한 이유와 베닐리아 제국에 대해서 물을 거니까요.”
“······물으시면 됩니다.”
작게 움찔했지만,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은 아우리엘.
그녀의 모습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 * *
“······그렇게 된 겁니다.”
내 질문은 포괄적이었고, 그녀의 대답은 디테일했다.
대표와의 면담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감춰온 얘기를 고해성사하듯이 뱉어낸 이야기.
그 속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마지막 총리의 딸. 거기다 왕족이었다니.’
혹시나 하기는 했다.
망한 나라의 이름이 사라퀄이었고 그녀의 라스트 네임 역시 사라퀄.
이름을 어떤 형식으로 짓는지는 문명이 쌓인 방식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그녀가 사라퀄 왕가와 연관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런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인사 팀장이니 직원들을 관리하는 건 기본 업무가 될 겁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회사 직원이 아닌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나 우연히 엮이게 된 분들도 챙겨야 합니다.”
“네. 당연히 해야 할 업무입니다. 회사 내부와 외부의 모든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일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할 생각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 외부의 인물 중에 베닐리아 제국의 인물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그녀가 우리 컴퍼니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베닐리아 제국에 침탈당한 자신의 왕국을 독립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온 회사에 싸워야 할 제국의 인물이 있다니 놀랄 만도 했다.
“카탈로라 베닐리아.”
“카탈로라라면······ 베닐리아 21 황녀? 지금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황녀를 알고 있군요.”
“당연합니다. 잔혹한 마법으로 적을 유린하는 베닐리아 제국에 역사에 손꼽을만한 천재 마법사. 그게 카탈로라 베닐리아 21번째 황녀입니다. 그런데 왜 그녀가 이곳에?”
“그 싸가지가 천재 마법사라고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건 병법의 알파이자 오메가.
역시나 카탈로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아우리엘은 그녀를 제국의 천재 마법사라고 했다.
너무 당황스러운 설명에 나도 모르게 싸가지라고 말을 뱉어버렸다.
“풋. 싸, 싸가지. 맞는 말이긴 할거에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다고 알려져 있는 황녀니까요. 대표님이 딱 싫어할 인물이죠.”
“정확해요. 저랑 정말 안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녀가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앞으로 직접 관리해야 하는데 당연하죠.”
내 입에서는 카탈로라를 만난 과정과 그녀와 맺은 협업 그리고 히든 미션에 대해서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인사 팀장으로 들이는 과정에서 카탈로라가 한 행동들.
그걸 거부하며 바뀐 내 상황까지 전부 전해주었다.
“제가 민폐를 끼쳤네요.”
“아우리엘이 잘못한 건 없으니까 그런 소리 마시고.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요?”
“글쎄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럼 제가 생각한 게 있으니 들어보시죠.”
난 아우리엘에게 그녀를 뽑으며 생각했던 내 계획을 들려주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얼굴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려주는 그녀.
“······대표님의 첫 번째 업무 지시인데 해야겠죠. 아니,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인사 팀장은 처음부터 좌절을 맛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