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4
175.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었습니다. (3). 완(完).
175.
루오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날 지저까지 끌고 들어갔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준비한 것들은 보통의 각성자라면 마주하는 순간, 절망만이 남겨질 것들이었다.
어떤 목적성을 가졌더라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다만, 그가 고려하지 못한 건 종합멸망보험이라는 인연에서 나와 연이 닿은 이들이었다.
날 초월의 경지에 이끌어준 두 스승은 결국 마지막까지 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상에 불러온 지옥조차도 고작 한 발의 화살로 무너트릴 수 있던 거였다.
“용케 버텼네?”
“당연하지. 너야말로 용케 살아서 왔다.”
“혼자 간 게 아니니까. 알, 위로 올라가자.”
지구 전체의 자치령화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중화 컴퍼니.
그 컴퍼니의 대표가 무너졌다.
그러니 이제 그 변화를 관찰하고 이용할 때.
높이 올라라는 이니알로스에서 편하게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성주님. 몬스터들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공격하고 다른 몬스터를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지독한 욕심쟁이였나 보네.”
컴퍼니의 대표인 루오가 죽은 건 중화 컴퍼니 입장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이며 막대한 피해임이 확실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휘하의 모든 몬스터가 폭주한다는 건 다른 의미였다.
지금 내 손에 죽은 컴퍼니의 대표가 모든 권한을 혼자만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부재 시에 권한 대행조차 세우지 않았다는 의미.
어쩌면 컴퍼니의 지분을 모두 독식했을지 모를 욕심쟁이였다.
나 역시 그러하지만 나와 그 괴물과 다른 점은 내가 죽는다고 우리 SH 컴퍼니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내 동료와 가족들에게 이양된 지분과 권한이 후일을 도모하게 할 준비까지 마친 상태.
“다 우리 같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지독하긴 하네. 아주 용광로가 따로 없어.”
모두가 우리와 같지 않다는 말.
어쩐지 별거 아닌 말인데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물론 이동찬이 한 말에 그런 티를 절대 낼 수는 없으니 표정 관리는 잘 해냈다.
“지켜보자. 그리고 무너지면 그때 개입하면 충분해.”
우리의 선택은 기다리는 것.
몬스터와 추악한 인간들의 용광로가 펄펄 끓고 넘치는 것을 구경하고 바라보는 방관.
그 결과물을 취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은 넘기지 못하고 우한시는 스스로 멸망해버렸다.
* * *
띠링!
[‘장서후’님은 ‘1번’ 지역의 완전한 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현시간 부로 ‘1번’ 지역을 ‘장서후’님의 ‘자치령’으로 인정합니다.]내가 있는 곳은 북극.
차가운 얼음의 땅인 이곳에도 몬스터는 존재했다.
다행이라면 인구밀도에 비례해서 침공한 몬스터이기에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는 것.
덕분에 자치령으로 만드는 것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끝인가?”
“진짜? 진짜로 끝이라고?”
“맞을 거야.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했어.”
“진짜? 진짜로? 여기가 지구의 마지막 자치령이 맞아?”
솔직히 나도 믿기 힘들었다.
아직 올해가 지나가지 않은 시간인데 정말 지구의 모든 곳을 자치령으로 만든 게 맞는 걸까?
혹시 우리가 놓친 곳이 있는 게 아닐까?
몇 번이고 검토하고 또 검토한 일임에도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
[‘지구(MS00354)’의 모든 구역이 자치령으로 지정되었습니다.]그리고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는 지구의 모든 생존자에게 발송되어 보내졌다.
“으아아아아아! 끝났다!”
“살았어요. 진짜 살아남았다고요!”
“샴페인 가져와! 오늘 먹고 죽자!”
상황실에 모인 직원들은 소리를 질렀다.
곳곳에서 준비했던 샴페인이 폭죽처럼 터지며 우리의 생존과 승리를 축하하고 있었다.
나도 가슴 깊이 차오르는 무거운 충만감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서후, 축하해.”
“대표님. 정말 축하드려요. 드디어 해내셨어요.”
“고생했다.”
날 둘러싼 사람들.
지구가 아닌 머나먼 곳에서 오로지 나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 내 어깨를,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결국,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높이 들 수밖에 없었다.
카탈로라도, 아우리엘도, 티샤도.
보르센도, 카이트레스도, 금쪽이도.
그리고 날 구원해준 멜라파와 아자리아까지.
모두가 진심으로 날 축하해주고 있었다.
《축하해.》
그리고 저 멀리에서 우리와 날 지탱해주는 세계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정말로 내가 해내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띠링!
[‘지구(MS00354)’의 자치령화에 공헌한 이들에게 ‘지구(MS00354)’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가장 커다란 공헌을 한 사람은 ‘장서후’님입니다.] [‘지구(MS00354)’가 ‘장서후’님에게 ‘인류의 구원자’ 칭호를 선물합니다.] [‘지구(MS00354)’가 ‘장서후’님에게 ‘살아있는 신’ 칭호를 선물합니다.].
.
.
감격이 가시기 전에 쏟아지는 메시지.
그건 오-할라 시스템을 통한 지구의 감사한 마음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지구가 전하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띠링!
[‘신수교(神樹敎)’의 신자가 급속도로 증가합니다.] [‘신수교(神樹敎)’를 ‘지구(MS00354)’가 인정합니다.]‘어라?’
자치령 공헌에 대한 메시지는 전 세계로 발송되었다.
지구라는 인간들에게는 떠날 수 없는 존재가 날 인정한 것.
이런 일들은 신수교라는 내가 관여한 적도 없는 나와 세계수의 종교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심지어 지구라는 행성이 직접 인증 마크까지 찍어버리니 더는 말릴 수 없는 규모가 될 것이 눈에 선했다.
‘······이게 뭐야. 난 그냥 쉬고 싶다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은퇴하고 싶었던 내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는 지구마저도 날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 * *
“고생하셨습니다. 멜리쎄리아님.”
“고생은 장대표가 했지요. 멋지게 해냈습니다.”
“도와주신 덕분이죠.”
지구에 있는 몬스터는 이제 괴물이 된 인간뿐이었다.
그들을 처리하는 건 인간들에게 남은 숙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운 베닐리아 제국은 이제 동맹의 역할을 다하고 떠날 때라는 뜻이었다.
“그럼 내 딸아이 같은 제자를 잘 부탁해요.”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에 왔는데 손주가 없으면 곤란할 겁니다.”
“······네?”
황당한 말을 던지고 제국으로 돌아가는 대마법사였다.
‘아니. 넌 왜 가만히 있는데.’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 카탈로라.
심지어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나에게는 영 어색한 장면이었다.
일단 이 일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은 심정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서후. 나 역시 서사와 뜨거움을 아는 여자다. 일단은 마법 고문으로서 SH 그룹 발전에 힘을 더할 거다.”
“······고마워.”
“마법 고문이니 대표와의 잦은 업무 협약이 필요하겠지.”
안 그래도 요즘 카탈로라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긴 했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반응은 어쩐지 조금 더 곤란한 기분이 들게 했다.
“서후님. 마계로는 언제쯤 진출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다. 언젠가는 가겠지?”
“저와의 약조를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약속은 안 하지 않았던가?”
“암묵적인 약조 역시 약조입니다. 설마 불쌍한 다크 엘프들을 외면하실 건 아니시죠?”
어째 세상을 구한 기분인데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카탈로라의 괴상한 공격에 이어 카이트레스의 마계 진출 압박이라니.
“나중에. 더 강해지면 그때 하자. 지금은 여기 수습하기도 바빠.”
“믿고 있겠습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색기를 폭발하는 카이트레스.
권속이면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당황스러움을 안고 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그대는 늘 바쁘군.”
“그렇게 됐습니다. 전하.”
“전하는 무슨 그냥 편하게 부르라고. 우리는 혈맹이자 친구 아닌가. 한트라고 부르면 돼.”
“그럼 그럴까? 한트?”
사라퀄의 국왕이 내 친구.
사실상 그들을 구하고 새로운 안식처를 제공한 것이 나였으니 친구 정도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한트왈로가 더욱 좋아할 일이었다.
“아우리엘은 사라퀄을 안도와도 되겠어?”
“선불을 그렇게 땡겼으면서 어떻게 떠나요. 전 SH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니 그런 줄 아세요, 대표님.”
“나야 그러면 고맙지.”
생존자가 거의 없는 아프리카에 자리 잡은 사라퀄.
이니알로스에서 이주할 그들은 그 땅을 일구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놓아준다고 해도 여전히 떠날 마음이 없다는 아우리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변한 건 없네.’
지구의 모든 곳이 자치령이 되었지만, 변한 것은 크게 없었다.
물론 나에게 국한하여 그렇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아직도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히든 연계 미션, ‘위아 더 월드’를 확인하고 수행 바랍니다.]여전히 지구를 구하라는 히든 연계 미션, ‘위아 더 월드’.
이 미션은 완수되지 않았으니까.
* * *
세상은 평화가 찾아온 듯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대부분 파괴되어 사라진 세상.
그렇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걸 이겨낼 힘을 가진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가장 약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늘 불안하고 걱정이 넘치는 건 내가 유일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내 걱정이 정점을 찍는 날이 찾아왔다.
띠링!
[‘2차’ 침공을 버텨냈습니다.]드디어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2차 침공이 끝이 났다.
지겹도록 길었던 시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도 짧았던 시간.
띠링!
[‘2차’ 침공에서 살아남은 몬스터가 마지막 축제를 준비합니다.] [‘2차’ 침공에서 살아남은 몬스터가 없습니다.] [‘3차’ 침공이 진행될 자리가 없습니다.] [‘3차’ 침공이 소멸됩니다.]‘됐다.’
메시지 하나하나가 올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혹시나 우리가 놓친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자치령이 침공을 막지 못하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내 기우와 달리 2차 침공의 축제마저 막아낸 우리에게 3차 침공은 없었다.
자치령으로 자리를 빼앗긴 침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분명 그런 줄 알았다.
《쿠──────웅.》
귀가 아닌 영혼에 울리는 묵직한 소리.
그것은 몇 번 경험했던 존재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였다.
《죄를 반성할 줄 모르고 신의 벌을 거부하다니. 무도한 인간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그리고 처음 아포칼립스가 열린 그 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더는 그대들이 반성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겠다! 내가 친정에 나서겠다!》
친정(親征).
왕이 스스로 정벌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소리가 지구를 울렸다.
띠링!
[최후의 존재, ‘???’이 침공을 시작합니다.] [최후의 존재, ‘???’을 물리치고 지구의 평화를 얻으세요.]그리고 얄미운 메시지가 뒤를 이었다.
“미, 미친. 끝이 아니었다고?”
“아아아악! 어떡해! 어떻게 해요!”
사람들은 모두 패닉에 빠질 듯이 혼란스러워했다.
마치 정해진 룰을 깨고 치트키를 쓴 유저에게 최종 보스를 갑자기 들이민 상황.
미래를 알고 있다는 세실리아 역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야.”
당황하는 사람들 사이로 내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차분해진 사람들.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미소가 떠오르는 건 어쩌면 정말 끝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도 몰랐다.
띠링!
[‘지구(MS00354)’에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였습니다.] [‘종합 멸망 보험’의 약관에 의해 피해를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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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자 ‘장서후’님에게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었습니다.]나에게는 이런 순간을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줄 보험이 있었으니까.
–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