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4
024. 불구덩이. (2)
024.
사실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나 역시 상당히 초조하게 찾아 헤매고 있었다.
1억이 넘는 보험금을 쓸 방법을.
그런데 정말 의외의 곳에서 단서가 흘러나왔다.
【정말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너무 수상해 보이는 동굴이라서 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이템이나 식량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간 거였죠. 】【그런데 그곳에서 발견한 게? 】【네. 상점이었습니다. 골드를 주고 아이템을 사는 상점이요. 】
최진규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살짝 몸을 떨었었다.
그토록 찾은 골드를 쓸 수 있는 특이점을 드디어 발견했으니까.
애써 밖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정말 기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상점의 발견은 날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줄 기회가 될 거다.
좀비 부화장을 없애고 받은 골드가 1만이니 1억 골드는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까?
아마도 상점 주인이 당장 튀어나와서 귀빈으로 모시지 않을까 하는 망상까지 들었다.
‘문제는 로드라는 거겠지.’
그렇지만 그런 기회의 장소가 하필이면 고블린 로드가 있는 곳에 있었다.
좀비 부화장과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장소.
왜 하필 그곳에 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해?”
지독한 우연이라고, 아니 지독하게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멜라파의 생각은 전혀 달라 보였다.
“아니라는 거야? 아니라면 일부러 고블린들이 거기에 자리라도 잡았다는 거야? ······설마?”
멜라파의 고양이 눈을 보니 흠칫 놀라게 된다.
내가 말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맞을 거라는 불쾌한 예감.
“너도 봐서 알잖아. 고블린은 가장 하찮은 몬스터 취급을 받지만, 꽤나 위협적인 놈들이야. 마치 인간처럼.”
“그래. 머리를 쓸 줄 아니까.”
“맞아. 로드급이라면 최소 인간만큼의 지능을 가졌어. 몬스터인 자신이 쓰지 못하더라도 상점의 가치는 정확히 알아. 그런 놈이 상점을 차지한 건 우연일 리가 없어.”
지금까지 겪은 멜라파는 상당한 제약에 묶여있는 존재였다.
날 돕기 위해 검을 뽑을 상황은 오로지 내 목숨이 위험한 순간뿐이고,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벌어지는 이 멸망의 정보를 직접 말하는 건 금지 당한 느낌.
그렇기에 이 고양이는 옛날이야기를 빌려서 나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어떤 정보가 아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적하는 것이기에 제약 없이 뱉어댔다.
그렇게 해준 충고에 절로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들이 쓰지 못하게 막았다니. 그 정도로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거야?”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 하지만 내가 아는 로드라면 충분히 그럴 거야. 누구보다 골드의 효용성과 위험성을 아는 괴물이니까.”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고블린 로드가 차지한 구역은 좀비 부화장보다 10배에 가까운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상점이 있다.
그것도 고블린 로드가 쓰지 못하게 일부러 감추기 위해서 말이다.
‘씨발.’
오랜만에 욕이 나왔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쓰지도 못하는 상점을 오로지 인간을 방해하기 위해서 차지하고 있다니.
이가 빠드득 갈렸다.
“왜 흥분하고 그래? 지금 네가 하는 건 전쟁이야. 최고의 보급창고를 막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
“후우, 그래. 네 말이 맞아.”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포기해. 너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해. 보아하니 안 그럴 거 같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를 말하는 멜라파.
날 걱정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걸 알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지독한 현실을 알아갈수록 마음은 한쪽으로 굳어져만 갔다.
그리고 멜라파는 좀비 부화장 역시 같은 이유로 공략 시점을 미루라고 했었다.
날 생각하기에 조언하는 건 안다.
그렇지만 이 고양이 기사의 말이 꼭 맞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번에도 내 뜻대로 움직일 거다.
‘불구덩이.’
본 적도 없는 고블린 로드와 그의 성.
짙은 녹음에 숨은 녹색의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운명이 나에게 느껴졌다.
* * *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내 나름의 결론을 냈다.
고심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론.
그 결론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모든 사정을 동료들에게 말해주어야 했다.
“들릴 곳이라는 게 고블린 로드? 거길 공략하는 건 혼자서는 무리라는 거지? 같이 해도 성공 확률은 드럽게 낮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고. 근데 진짜 그걸 하자는 거 맞지?”
“방금 말한 대로야. 정말 위험하고 어쩌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보상은 확실할 거야.”
혼자서는 무리다.
이제 레벨을 5 이상으로 올린 동료들과 함께가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오빠. 진짜 하고 싶어요? 그냥 무시하고 돌아서 지나가면 되잖아요.”
“그러게. 서후, 네가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는데. 솔직히 무섭다. 그냥 홉고블린도 아니고 고블린 로드라니. 으. 본 적도 없는데 몸이 떨려.”
동료들이 불만을 말하는 건 당연했다.
조금 더 강해지고 위해, 상점이란 걸 이용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자니.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이유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난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아닌 영혼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는 싸우라고, 이겨내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미쳐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딱 정신병의 초기 증상처럼 느껴지는 상황.
그럼에도 난 그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고작 1차 침공이다.
멜라파의 계약이 3차 침공이 끝날 때까지라는 걸 생각해보면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적어도 3차 침공 아니, 못해도 4차까지는 지구는 계속 침공당할 거다.
그리고 그 침공에 앞장설 괴물들은 어떤 놈들일까?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고블린 로드와는 궤를 달리할 진짜 괴물일 거다.
그런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험 아니, 도박이 필요했다.
“난 하고 싶어. 아니, 해야만 한다고 느껴져. 이건 위기기도 하지만 기회야. 우리가 살아남을 놓칠 수 없는 기회.”
“거길 포기하면 죽는다는 거냐?”
“이 지옥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어. 그런데 벌써 포기한다? 난 결국엔 죽을 거라고 확신해.”
내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쩌면 억지라고 볼 수 있는 궤변으로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는 행동.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 눈앞의 기회를 두려움 때문에 그냥 지나친다면 분명 큰 후회할 날이 오고 말 거다.
근거가 없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같이 할게요.”
그리고 굳은 내 얼굴을 본 차수현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 * *
차수현이 움직이자 마지못해 다른 사람들도 같이하겠다고 말했다.
얼굴에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여전했지만, 그래도 나와 차수현이 앞장서니 도망칠 방법이나 구석은 없었다.
‘억지인 거 알아.’
상황을 강압적으로 이끌고 거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의견이라는 형식의 명령을 내렸다.
그렇지만 마냥 다른 사람들의 의견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생존이라는 건 그렇게 낭만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조금은 어색해진 공기를 안고 출발한 우리.
그래도 이동찬과 김선아가 떠들며 분위기를 풀어서 원래의 텐션을 되찾았다.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나아가니 저 멀리 작은 야산이 보였다.
‘진짜 다른 몬스터는 없네.’
좀비 부화장 근처에도 다른 종류의 괴물이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한 건지 아니면, 힘에 밀린 건지는 몰라도 분명 그랬다.
그리고 아직 꽤 먼 거리임에도 이곳에서도 다른 몬스터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조금은 편해진 길.
그렇지만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저 숲에 두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 산이죠?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네. 크진 않네요.”
“뛰면 몇 분이면 정상에 오를 거 같이 작네요. 그런데 저기에 그런 게 있다니. 신기하고 무섭네요.”
가장 먼저 내 손을 잡은 차수현도 마주할 상황이 두려운지 긴장한 게 보였다.
단순히 내가 전한 위험성이나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저 얕은 산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녀의 걱정을 현실로 바꿔주려는지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빠르게 다가왔다.
“온다. 준비.”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차분하게 뱉은 말과 달리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에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요동쳤다.
그 불안함을 달래주는 건 결국 익숙함일 거다.
그렇기 위해 난 활을 들었다.
끄그긍, 퉁!
숲의 바람이라는 마력의 화살을 날리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익숙했다.
손에 쥔 시간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빠르게 내 것이 되어 버린 활.
덕분에 빠르게 뛰던 심장은 안정을 되찾고, 화살은 달려오는 홉고블린의 머리에 파고들었다.
* * *
‘충분히 할 만해.’
숲으로 다가가는 우리에게 달려드는 고블린의 숫자는 이미 네 자리를 가볍게 넘었다.
대부분은 일반 고블린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달려들었기에 모두가 큰 무리하지 않고 상대하며 전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고작 다섯 명인 우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또 옵니다. 진호씨.”
“네!”
씩씩하게 대답한 탁진호는 직접 고블린을 죽일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
어찌 보면 어디에 쓰나 싶은 흙의 벽을 만드는 것이 전부.
그렇지만 그의 활약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드드드드득.
“끼히이이익!”
“끼약!”
숲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불어나는 고블린의 규모.
살기 가득한 눈빛 수백 개가 우리를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기세는 땅에서 솟아난 붉은 색 벽에 막혀서 꺾여버렸다.
단단하기는 어지간한 화강암보다 뛰어나서 어설픈 고블린의 손발로는 절대 부술 수 없다.
그렇다고 뛰어넘기에는 그 높이가 어중간해서 힘들었고 손에 든 도끼나 단검을 던질 수도 없는 상황.
그럼 괴물들에게 남겨진 선택은 그 무지성 돌격을 탁진호가 이끄는 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좁아진 입구로 달려드는 녹색의 괴물들.
그건 좋은 경험치 이상이 아니었다.
“어? 바로 또 온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금 달려드는 고블린들.
탁진호의 흙벽을 이용해서 잡는 건 편했지만, 어쨌든 전투.
살짝 숨이 거칠어진 동료들의 눈에 서서히 피로와 두려움이 쌓여갔다.
그 모습에 이제 내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타닥.
가볍게 바닥을 차고 손을 몇 번 놀려 신호등 위로 올랐다.
그러자 족히 수백 마리가 될 법한 고블린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부화장에서 봤던 좀비의 해일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기세만은 뒤지지 않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끄그그긍.
‘될 거야.’
늘 속사로 쏘아대던 활을 신중하게 당겼다.
목표는 당연히 제일 앞에서 달려오는 홉고블린.
녀석을 노리는 고풍스러운 활에는 초록색 숲의 향기를 담은 화살이 피어났다.
활시위를 놓는 순간, 저 홉고블린은 경험치가 되리라.
지금까지의 경험이 반드시 그리되리라는 걸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원거리면서 백발백중의 위력을 담은 아자리아의 바람.
이 훌륭한 유일 등급 아이템에도 명백한 약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단 하나의 타깃만을 노릴 수 있다는 것.
‘될 거야. 할 수 있어.’
우우우우웅.
쏘는 순간, 거의 백 퍼센트로 맞는다는 사기적인 힘을 가졌으면서 불만이 가득하다.
누군가 보면 어이없어하겠지만, 결국 갈증과 열망만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만들어 내는 법.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물이 화살에 스며들었다.
투웅────.
활시위가 만드는 소리가 내 귓가에 울리며 녹색의 화살이 날아간다.
나에게서 멀어지는 화살은 그럼에도 나와 한 줄기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바로 내 또 다른 힘인 ‘염력’.
푹.
“케륵······.”
염력의 끈으로 연결된 바람의 화살이 정확히 홉고블린의 가슴에 박혔다.
의사의 사망 선고를 기다릴 필요 없는 명백한 죽음.
그렇지만 난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터져버려.’
츠즈즈즛, 우이이잉!
쩌────억!
화살이 박혀있던 홉고블린의 사체가 폭사하고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저 멀리서 터진 염기의 폭발로 고블린들의 선두가 무너져 내렸다.
내 눈앞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르며 괴물들의 죽음을 알렸다.
달려오던 괴물들의 파도가 꺾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