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
003. 지급 심사. (2)
003.
각성이 뭔지도 모르고, 오-할라 시스템은 더욱더 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 이뤄야지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의 의미는 이해했다.
내가 정당하게 든 보험인데 자격이 필요하다니.
설마 내가 읽지 않은 약관 속에 있는 내용인가 싶어서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이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험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타임 어택 미션이네.’
그러니 자연스럽게 머리에서는 계산이 이루어진다.
0차 침공이 벌어지는 시간은 3일.
그 시간 안에 잡아야 할 고블린은 10마리.
그걸 이루면 ‘각성’이라는 걸 하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일정 목표와 시간이 주어진 미션.
꼭 게임 속에서 하던 타임 어택 미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싸워야 해. 아니, 사냥해야 해.’
3일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거다.
어영부영 보낸다면 강당에서 먹고 자면서 금세 지나갈 시간.
그렇기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생각보다는 많은 분이 지원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보안팀장 이찬욱입니다. 당분간은 여러분을 이끌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더럽게 강해 보이네.’
말을 하는 이찬욱이라는 보안팀장.
회사를 2년 다녔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로비에서만 마주쳤던 보안팀이라서 팀장을 볼 기회는 없었으니 당연할지도.
그런 이찬욱은 일단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이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입은 모습 속에는 꿈틀거리는 근육이 느껴질 정도.
절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남자였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면서 안면 있으신 분들은 인사 나누셔도 됩니다. 전 부족한 인원들 보충하고 오겠습니다.”
여기 모인 건 아홉 명.
회사에 얼마나 많은 팀이 존재하는 건지 몰라도 아직 부족하다며 그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난 자연스럽게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씨발. 넌 또 왜 끼어있냐?”
나야 말할 수 없는 비밀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치고.
왜 이동찬이 여기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물론 날 바라보는 녀석의 눈에도 같은 의문이 담겼다.
“왜 왔기는 씨발. 가위바위보 졌다. 됐냐?”
“가위바위보 실화냐?”
“어쩌겠어. 남자끼리 단판 승부 보자는데. 그걸 뺄 수도 없잖아. 그러는 넌 왜 왔는데?”
“우리 팀에 나 말고 올 사람이 있기는 하냐. 그냥 왔다.”
“뭐래. 병신이.”
서로에게 욕을 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옆에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기분.
이동찬도 같은 마음인지 옆을 떠날 생각을 안 했다.
“나 특전사잖아.”
“간부도 아니고 병으로 행정이었다면서 또 지랄하네.”
“그러는 넌 그냥 땅개였다면서 어디서 특전사한테 야부리를 털어”
“어허, 왜 이러실까. 대한민국 정중앙 양구를 지키던 최정예 특급 전사를 몰라보고.”
“지랄한다.”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는 건 당연히 군대.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아주 즐겁게 가야 했을 군대 얘기에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떠든 덕분일까?
여기저기서 군대 얘기로 말문을 연 사람들이 서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비슷한 나이의 남자들이라 금방 말이 트였다.
“기구 개발 2팀 장서후 사우님이죠? 반가워요.”
“탁대리님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잘 부탁해요.”
말을 건 사람은 품질 관리팀의 탁진호 대리.
아무래도 업무로 엮인 사람들은 더 빨리 친해졌다.
마치 훈련소의 동기처럼 서로에게 벌써 전우애라도 느끼는 건지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래도 탁대리면 괜찮지.’
개발과 사이가 좋기 힘든 품질 관리팀의 대리.
그럼에도 서글서글한 성격에 얼굴 붉힌 적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동찬도 안면이 있는지 인사를 잘 나누는 걸 보니 이렇게 같이 움직이면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조금 더 떠드는 사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 * *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경계를 서면서 괴물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탈출로를 확보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 괴물들이 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찬욱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은 울 거 같은 얼굴이었다.
억지로 끌려왔다는 걸 숨기지 못하는 그들을 보는 이찬욱의 얼굴은 차가웠다.
“이 일을 하기 싫으면 떠나면 됩니다. 스스로 영광전자가 주인인 이 건물을 떠나고 싶다면 누구도 말리지 않습니다.”
말을 안 들을 거면 이곳을 떠나 괴물이 날뛰는 거리로 가라는 말.
나가면 어떻게 될지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보다 무서운 협박이었다.
덕분에 불만 가득한 얼굴들은 슬며시 고개 밑으로 사라졌다.
“그럼 팀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지원하신 분들은 원하시는 팀을 먼저 짜두셨다고 들었으니 부족한 인원만 채우시면 됩니다.”
다행히 나중에 끌려온 사람들과 인원을 섞지는 않았다.
3인 1조로 짜라고 한 팀이기에 나는 이미 팀이 있어 살짝 걱정했던 부분이 사라졌다.
“한 팀이네요. 잘 부탁해요.”
“저도요, 대리님.”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팀은 당연히 나와 이동찬 그리고 우리 옆에 붙은 탁진호였다.
셋 모두 꾸준히 운동해서 그런지 몸도 좋고 키와 덩치도 밀리지 않았다.
말도 잘 통하니 적어도 여기서는 가장 괜찮은 팀이 될 거 같았다.
“세 분은 5조입니다. 그리고 이쪽이 조장을 맡을 보안팀의 차수현대리입니다.”
우리 셋은 5조가 되었고 보안팀의 차수현 대리라는 사람이 팀장을 맡았다.
그런데 이찬욱의 소개에도 우리의 얼굴은 썩 좋지 않았다.
‘여자?’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남녀차별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안팀이라고 해도 여성이란 사실은 불편함과 불안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갑습니다. 차수현입니다.”
“여자라서 놀라셨겠지만, 특전사 나온 여걸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의 시선을 모를 리 없는 이찬욱은 말을 덧붙였다.
특전사라는 말이 꽤 무게감이 있었지만, 여전히 조금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선을 평생 받아왔을 차수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다시 인사하죠. 차수현입니다. 작년에 707 특임대에서 전역하고 영광 전자 보안팀에 왔습니다. 이찬욱 팀장님의 요청으로 오게 되어 이 자리까지 있게 됐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냥 특전사도 아니고 707?
거기다 이찬욱이 요청했다고 말하며 드러내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적어도 실력을 의심하지는 말라는 의미로 들렸다.
“기구 개발 2팀 장서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를 필두로 우리도 소개했다.
다행히 안에 품은 여자라는 불편함을 꺼낼 만큼 멍청이는 없어 부드럽게 말이 오갔다.
“세 분은 직접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3조부터 5조가 전부 그런 팀이라고요. 그래서 우리한테는 조금 더 힘든 일이 주어질 겁니다.”
“아, 설마 아까 보안팀장님이 말한 개척조?”
“맞습니다. 보안팀으로 이루어진 1, 2조가 치고 나가면 우리가 뒤를 정리하는 수순입니다. 혹시 두렵거나 겁이 나시면 빠지셔도 좋습니다. 각오가 되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끌고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말투는 부드러운데 안에 담긴 건 쇳덩이처럼 단단했다.
제법 예쁜 얼굴은 보이지도 않게 군기가 빡세게 든 모습에 절로 못한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이동찬이나 탁진호도 나와 같은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럼 이동하시죠. 장비를 착용하고 브리핑부터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아포칼립스가 진짜로 시작되었다.
* * *
“우리는 이 비상계단을 개척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일을 합니다. 그전에 괴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하는 작업을 먼저 할 겁니다.”
지도를 펼치고 설명하는 차수현.
관리팀이 챙겨온 지도는 상당히 자세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바로 파악이 됐다.
“일단 한 마리 잡아서 조진다는 거죠?”
“맞습니다. 건물 내부에 많은 괴물이 있는 거로 파악되지만, 생각보다 12층은 안전할 거로 보입니다. 그중에서 한 마리 이상을 생포하는 게 오늘의 작전 목표입니다.”
괴물의 정체가 고블린이라는 걸 아는 건 나뿐이다.
그리고 그 괴물을 10마리 잡으면 각성한다는 걸 아는 것도 나뿐이고.
아마도 고블린이란 괴물은 인간으로서 싸울 만한 존재일 거다.
각성을 위해서는 10마리를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해치워야 하니까.
이런 사실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었다.
“장비는 이걸 착용합니다.”
“오, 칼도 있네요. 이건 제가.”
“위험한 물건은 제가 들겠습니다. 동찬씨는 방패를 들고 이 창은 서후씨가 맡죠.”
총 4가지 물건이 있었다.
기다란 봉에 식칼을 단 창을 나에게 준 차수현은 자신은 단검과 쇠파이프를 들었다.
입맛을 다신 이동찬은 책상을 개조해서 만든 방패를 들어야 했다.
갈고리 같은 구조물이 달린 제압봉은 탁진호의 몫이었고.
“방패를 든 동찬씨가 앞에 섭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뒤에서 지시를 내릴 겁니다. 가시죠.”
앞에 서라는 말에 이동찬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투덜거림도 없이 냉큼 앞에 섰다.
옥상에서 꽤 오랫동안 고블린을 관찰하더니 방패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거 같았다.
난 차수현의 뒤에 서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면 됐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끼이이익.
“조심하세요. 2조가 먼저 내려가긴 했는데 그래도 위험할 겁니다.”
“네. 저희 나가면 바로 문을 막으세요.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열 준비하시고요.”
“그건 걱정하지 말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12층으로 내려가는 문을 막고 있던 보안팀 직원과 말을 나눈 차수현.
신망이 두터운지 문을 열어주는 직원의 눈에 신뢰가 가득했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나에게 조금은 더 안심되는 모습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갑니다.”
작게 속삭인 차수현의 말에 이동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내딛는 녀석은 어느새 ‘12F’라고 적힌 곳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열려있는 문 너머에서 기이한 비린내가 전해졌다.
“정지. 여기서 대기합니다. 제가 보고 오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이동하는 차수현은 걷고 있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구두가 아닌 운동화라고 해도 작은 소리도 나지 않는 걸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단련했는지 느껴졌다.
안을 살핀 그녀는 다시 돌아와 작게 말했다.
“문 너머에 괴물이 있습니다. 보이는 건 두 마리. 일단 대기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겠습니다. 세 분은 여기서 대기합니다.”
보이는 건 두 마리지만, 얼마나 많은 괴물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녀의 선택은 더 기다리는 것.
그리고 곧 기회가 찾아왔다.
푹.
“······끄륵.”
문을 빠져나오다 목에 정확히 꽂힌 단검.
길지 않은 검날이 너무도 유려하게 고블린의 목을 뚫어버렸다.
소리를 지를까 빠르게 입까지 막은 차수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고블린을 죽여버렸다.
“끼히힉!”
“캬악!”
하지만 문을 나선 고블린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빠르게 죽어버린 동료를 본 두 마리의 괴물이 날뛰며 달려들었다.
가까이서 들은 괴성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방패 들어.”
죽은 고블린을 던진 차수현은 이동찬의 뒤로 자리 잡으며 낮게 말했다.
너무도 차분한 그녀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우리는 각자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무기를 들었다.
팅. 티디딩.
철제 책상으로 만든 방패는 생각보다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정면에서 달려든 고블린의 단검을 간단히 막아내며 전진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고드는 차수현의 단검.
푹.
“케륵!”
복부에 차가운 날붙이가 파고든 괴물이 기묘한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접었다.
딱 봐도 중상 이상의 상처.
이제 한 마리만 남았다.
남은 한 마리에 대응한 건 탁진호였다.
갈고리가 달린 긴 봉을 움직인 그는 고블린의 목을 걸고 바닥에 쓰러트리는 기염을 토했다.
뾰족한 계단 난간에 머리가 찍힌 고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서후씨. 죽여요.”
이제 손이 놀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씨, 씨발.’
그렇지만 살생이라고는 모기나 파리 말고는 해본 적 없는 나라서 손이 심하게 떨렸다.
날 바라보며 살기를 흘리는 괴물이 안 무서울 수 없었다.
띠링!
그렇지만 이런 날 응원하는 메시지.
[보험금 수령을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각성을 하여 ‘오-할라 시스템’을 오픈해야 합니다.] [※ Tip. 0차 침공 몬스터인 ‘고블린’을 ‘10마리’ 잡으면 각성한다.]‘씨발. 알았다고. 하면 되잖아!’
했던 말을 묘한 타이밍에 다시 하는 나쁜 시스템.
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창을 고블린 가슴에 찔러넣었다.
그 손끝에는 격하게 뛰는 괴물의 심장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