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0
030. VIP. (1)
030.
고블린 로드를 내 힘으로 죽일 수 있을 거란 기대.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벤자나 레인저들이라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결국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가며 자괴감만을 남겼다.
그때 등장한 구원자 컴퍼니.
그들은 우리를 한없는 약자로 보고 조롱하듯 일을 처리했다.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알 수 없는 패배감에 휩싸이며 고블린 로드의 성을 전리품으로 받았다.
그렇지만 이 성에 온 진짜 이유는 고블린 로드의 사냥이 아니었다.
감당하지 못할 괴물을 따돌리거나 운 좋게 죽이거나 하는 일은 부수적인 과정.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한 일일 뿐이었다.
드드드드드드득.
“어? 나왔다.”
“그러네요. 수고했어요, 형.”
무너진 성 깊은 곳에 있는 상점을 찾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목표.
꿰뚫어 보는 눈은 저 깊은 곳에 있는 상점을 찾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스킬이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뚫는 건 탁진호의 힘.
흙을 다루는 그의 진면목은 땅 위에 솟구치는 흙벽이 아니었다.
땅속에 터널을 만들어 이동할 공간을 손쉽게 만드는 모습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했다.
“아무튼, 그래서 여기가 상점이라는 거지?”
“맞는 거 같아. 설명한대로니까.”
이미 무너져 버린 성이라서 최진규가 준 약도로는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굉장히 생뚱맞은 모양의 문은 그의 설명대로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고양이 기사도 별말 없는 걸 보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근두근.
‘왜 이러냐. 진정하자.’
갑자기 일어난 멸망으로 적지 않은 당혹스러운 일들을 겪었다.
그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내가 든 보험이 아포칼립스에 반응한 것.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보험은 지금의 날 있게 해준 힘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그런 보험의 혜택 중 가장 큰 부분은 아직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135, 250, 000 골드.
1억이 넘는 골드의 가치를 아직 손도 데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쉬우면서도 설레는 일.
드디어 그 시간을 맞이하게 된 거다.
‘고블린 로드를 잡고 얻은 게 10만이었어.’
좀비 부화장을 없애고 받은 골드가 1만.
드리악이라는 괴물을 죽이고 받은 골드가 10만이었다.
그러면 1억이란 골드의 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그 가치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저 문 너머에 있었다.
“수현씨부터 먼저 들어가요.”
“저부터요?”
“제가 마지막에 들어가고 싶어요. 대신······.”
설레고 떨리는 마음은 당장이라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먼저 들어갈 수 있는 상점을 굳이 양보했다.
그러는 대신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부탁을 했다.
* * *
“네가 말한 대로더라. 진짜 그랬어. 근데 어떻게 알았냐?”
“대충 누가 옛날얘기를 해줬거든.”
“아아. 그러고 보니 그랬던 거 같네. 암튼 난 끝이니까 들어가라.”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나온 이동찬.
그는 뭘 샀는지 얼굴이 밝았다.
웃으며 내 말에 대답한 그를 끝으로 나도 상점의 첫 방문 준비를 마쳤다.
끼이익.
성이라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엔틱한 디자인의 문이 녹슨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 소리에 아직도 격하게 뛰는 심장이 주체할 줄을 모른다.
부디 일이 내 생각대로 풀리기만 바랐다.
“하아아암. 네가 마지막?”
설렘 가득 안고 들어간 상점.
그런 날 맞이한 건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어려보이는 여자였다.
‘클라우디아 탈롯. 들은 그대로네.’
챙이 넓은 보라색 모자를 쓰고 같은 색 로브를 입고 있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이름은 클라우디아 탈롯이며 직업은 이 상점의 지점장이자 견습 마녀.
내가 상대할 여자는 그런 존재였다.
“어린애가 반말?”
견습이기는 하나 나와는 격이 다른 ‘마녀’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존재.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점의 주인인 클라우디아.
그런 마녀에게 향하는 내 첫인사는 이러했다.
“······뭐? 어린애?”
“어른을 봤으면 곱게 인사를 해야지. 어린 게 싸가지가 없네.”
“하하······. 혹시 돌았어? 진짜 미친 거야?”
초면에 말을 반 토막으로 한 건 클라우디아가 먼저지만, 내 말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내 말을 받아줄 만큼 착한 마녀는 절대 아니었다.
서서히 일어나는 마력은 내 심장을 옥죄기 시작했다.
샤아아아아아.
‘······씨발. 할 만할 거라며.’
차갑고 따끔한 보랏빛 마력이 날 감쌌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혼이 달아날 거 같은 아득한 두려움.
그렇지만 분명 멜라파는 견딜 만할 거라고 했다.
아주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빈말할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차분하게 마력을 일으켜 견디고 또 견뎠다.
어차피 이 마녀는 절대로 날 죽일 수 없으니까.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죽여줘?”
“······자신 있어?”
“너 같은 건 손가락 까딱하며 그냥 죽어. 보여줄까?”
“말귀를 못 알아 먹네. 날 건드리고 무사히 넘어갈 자신 있냐고. 내가 민원 넣으면 어쩌려고 이 짓거리야?”
“······뭐라는 거야?”
클라우디아는 애써 내 말에 대꾸했지만, 흠칫 놀란 게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분노로 가득했던 오로라도 크게 흔들리며 색이 옅어졌다.
확실히 내 예상대로였다.
‘이런 상점에서도 손님이 왕이라니. 자영업은 힘들구나.’
서서히 약해지는 마력을 느끼며 엉뚱한 결론이 나왔다.
“후, 서로 힘 빼지 말지. 이런 허접한 상점을 쓰는 것도 짜증 나는데.”
“뭐? 허접?”
“그럼 이런 ‘N급’ 상점이 허접하지. 뭐가 허접하겠어.”
“너······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고 그런 거에 놀라. 됐으니까 쓸 만한 게 있는지 둘러보게 이거나 풀어.”
내가 하는 말에 어버버 놀라는 클라우디아의 모습은 꽤 귀여웠다.
나와는 견줄 수 없는 강자에게서 귀여움을 느끼다니.
나도 꽤 현실도피 중임이 확실했다.
“혹시 귀환자? 아니면 환생? 그것도 아니면 아! 회귀자구나!”
“시끄럽고 이거나 풀라고. 확 그냥 마녀 조합에 민원 넣어버릴라.”
“아, 미, 미안. 그냥 살짝 장난친 거야. 너무 화내지 마.”
귀환자에 환생 거기다 회귀까지?
저 마녀가 대한민국 웹소설 덕후거나 아니면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얘기.
그래도 내 연기가 먹힌 거 같으니 최대한 당황하지 않으며 클라우디아의 변화하는 오로라를 읽었다.
‘진짜 뭔가 있다고 착각했어. ······씨발, 이게 먹힌다니 골 때리네.’
농담처럼 했던 멜라파의 옛날이야기 시리즈.
그중에서도 제일 어이 없던 이야기 중 하나를 각색했는데 먹히고 있다.
하고 있는 내가 다 기가 찰 노릇.
“비켜봐. 물건 좀 보게.”
“어. 알았어. 저쪽부터 볼래? 인기 상품만 모아놨어.”
어쨌든 이곳은 상점.
돈을 내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교환하는 장소다.
그러니 태연한 표정으로 물건들을 살폈다.
‘와, 미쳤네. 진짜 이런 걸 팔고 있었어.’
이미 동료들에게 다 듣고 왔기에 놀람은 크지 않았다.
만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들어왔다면 연기고 나발이고 침을 질질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미 몇 번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왔기에 내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흠. 흠. 흐으음. 진짜 쓰레기밖에 없네.”
“물건들이 좀 그렇지? 고작해야 희귀 등급이 전부라서 그래. 여기는 등급 제한이 걸렸으니까 어쩔 수 없어.”
“이런 물건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아, 유일 등급 활이네. 진짜 예쁘게 생겼다.”
내가 내민 아자리아의 바람을 받아서 살펴보는 클라우디아.
그녀는 자신의 상점에 있는 물건보다 더 좋은 내 활에 자신감이 더욱 떨어졌다.
“하아. 됐으니까 멤버십이나 가입하자.”
“멤버십? 하지만 그건 지금 하기에는 너무 비싸. 실버가 1만 골드나 한다고. 혜택도 정말 별로고.”
“시끄럽고 VIP로 가져와. 천만 골드면 되잖아.”
VIP와 1, 000만 골드.
아무나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의 조합이었다.
그런 내 얼굴을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는 마녀.
파리가 들어가도 모를 만큼 놀란 그녀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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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약한 마녀의 집 멤버십 가입서
우주 최고의 상점, 고약한 마녀의 집 멤버십 가입에 감사드립니다.
해당 등급은 VIP로 필멸자님들에게 허락된 최고 등급 멤버십입니다.
하기 약관을 확인하시고 가입 동의 부탁드립니다.
1. VIP 멤버의 가입 기간은 ‘127년(해당 행성 시간 기준)’으로 합니다.
2. 멤버십 가입 금액은 ‘10, 000, 000 골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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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뜬 VIP 멤버십 가입서를 찬찬히 읽었다.
‘약관 안 읽고 피 보는 건 한 번이면 족해.’
피를 봤다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분명 약관을 안 읽은 보험으로 찝찝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 가입할 멤버십은 꼼꼼하게 읽고 다시 곱씹을 생각이었다.
무려 천만 골드나 하는 것이니 무조건 그래야 했다.
“저, 저기 진짜 VIP 가입할 거야? 이거 정말 천만 골드짜리야.”
“아, 시끄럽네. 한다고, 할 거니까 조용히 좀 해.”
“알았어······.”
말로 하니 쉬워 보이는 천만 골드다.
이 금액을 벌기 위해서는 고블린 로드를 100마리나 잡아야지 가능하다.
거기다 이 골드를 벌기 위해서 동일한 경험치를 얻었다면?
‘힘을 숨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클라우디아가 나에게 쩔쩔매는 이유는 내가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한몫했다.
이만한 금액을 모을 정도의 비밀을 가진 존재.
자연스럽게 견습 마녀는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역시 상점에서는 돈 많은 놈이 왕이야. 그나저나 진짜 미쳤다.’
어쩌면 상점이 이제야 나타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몇 번이나 읽은 VIP 혜택들은 천만 골드가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
【멤버십 가입하는 것도 웃겨. 판매 수량이 정해져 있어서 지점장이 안 팔면 그만이라니까. 특히나 고약한 마녀, 그 집은 진짜 엉망이지. 내가 깽판치면서 싸우는 거 본 것만 몇 번인 줄 알아? 그런데 웃긴 건 일단 쫄게 만들면 말을 또 잘 들어요. 하여튼 마녀들은 기 센 척만 하지 순둥이야, 순둥이. 】
불현듯 옛이야기를 해주던 멜라파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그가 해준 얘기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쩔쩔맨 건 나였을 거다.
그러면 이런 VIP 멤버 가입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고.
“오케이. 그나마 마음에 드네. 사인했다.”
“아, 고마워.”
띠링!
[‘장서후’님은 ‘고약한 마녀의 집’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자격 발휘 시점은 현재이며, ‘127년’ 후 재가입 여부를 판별합니다.] [ 혜택으로 ‘영웅 등급 아이템 획득권’이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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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척하는 나에게 주르륵 올라오는 메시지들.
덜덜덜 떨리는 손을 허벅지를 꽉 부여잡아 들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꿀꺽 삼켜지는 침은 막을 수 없었다.
“이름이 장서후구나. 근데 가입만 하고 끝낼 거야?”
지금 내가 있는 ‘고약한 마녀의 집, 지구 103호점’은 N급 상점.
다시 설명하자면 ‘Normal 등급’ 아이템을 취급하는 상점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한 등급 높은 희귀 등급 몇 개를 제외하면 전부 일반 등급 아이템뿐이다.
클라우디아는 VIP에 가입한 내가 이런 상점에서 뭘 사기나 할까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틀렸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물건 전부 가져와.”
“전부 다? 거의 다 일반 등급인데?”
“달라면 줘. 얼마나 한다고 그래. 너도 빨리 매진 때리고 다음 분기까지 쉬면 되잖아.”
“그, 그렇지. 고마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바로 준비할게!”
생각보다 많지 않은 상점의 물건들.
난 그 물건들을 싹쓰리할 계획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상점이고, 아무리 일반 등급이라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아이템들이니 당연한 선택.
“다 해서······ 127만 3, 450골드 나왔어. 조금 많은가?”
“얼마나 한다고 그래. 그런데 서비스는 없냐? 없나 보네. 그럼 그냥 우수리 떼고 120만으로 가자.”
“아, 응. 그럴게. 물건은 이 가방에 넣어줄게. 내 아공간 가방인데 따로 챙겨줄 서비스가 없으니까 이걸 서비스로 줄게.”
띠링!
말 한마디로 7만 골드 넘게 깎아버렸다.
거기다 덤으로 아이템을 전부 집어넣을 수 있는 아공간 가방까지.
그녀로서도 모든 물건을 한 번에 사가니 꼭 나쁜 거래만은 아닐 거다.
[‘1, 200, 000’ 골드가 차감되어 ‘고약한 마녀의 집, 지구 103호’로 전송됩니다.]120만 골드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수많은 아이템이 나에게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수고해라.”
“응. 다음에도 잘 부탁해!”
꽤 마음에 드는 쇼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