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
004. 지급 심사. (3)
004.
“······끄르륵.”
창에 가슴이 찔린 고블린은 녹색의 피거품을 물더니 눈알이 뒤로 넘어갔다.
곧 축 늘어진 작은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다.
정말 내 손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인 거였다.
‘아······.’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주 미미해서 착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작은 변화.
다른 사람들은 눈치챌 수 없을 미세한 변화였다.
그렇지만 고블린을 10마리 죽이면 각성이라는 걸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였다.
무언가 괴물을 죽이면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기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몸이 아닌 영혼으로 파고드는 그 묘하고 작은 변화를.
“생각보다 약합니다. 떼로 몰려오지 않으면 큰 위험은 없을 거로 보이네요.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안으로 들어가죠.”
내 창에 찔린 고블린까지 죽은 걸 확인한 차수현의 말.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열 마리를 채운다. 그걸 목표로 삼자.’
애써 손에 남아있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머리에서 지웠다.
생명 존중이란 교육의 산물은 이미 고블린이란 괴물이 먼저 깼으니 담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손에 든 창을 더욱 꽉 쥐어 앞을 살폈다.
‘늦어지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
단순히 이겨낸다는 마음만은 아니었다.
고블린 10마리를 처치하면 각성한다는 걸 아는 건 나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독점할 수 없는 시간제한이 있는 정보였다.
비밀이 알려지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각성한 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 빨리 선점해야 했다.
그게 이 멸망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 물러설 수 없었다.
끼이이익.
그런데 그런 각오를 했음에도 작게 들린 문 여는 소리가 천둥처럼 거대하게 들렸다.
당장이라도 고블린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문 너머에는 고블린이 없었다.
가끔 올라왔던 재무팀 때문에 익숙한 12층 복도만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긴 이 문소리를 듣고 올 정도였으면 방금 고블린들과 싸울 때 다 몰려왔을 거야’
고블린들의 청력은 생각보다 뛰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복도를 살폈다.
창문이 깨지고 문이 부서져 엉망인 복도는 사방이 파괴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나마 모두 대피한 덕분인지 핏자국이나 시체는 없어 다행이었다.
“천천히 따라와요.”
차수현은 방패를 든 이동찬보다 앞에 나서며 민첩하게 움직였다.
특전사에 있었다고 하더니 움직이는 모습이 확실히 달랐다.
가까운 곳부터 수색하는 그녀는 빠르면서도 조용했다.
대강당과 다양한 시설이 있는 13층.
그곳과 달리 12층은 회의실과 여러 부서가 쓰고 있었다.
빨리 움직인다고 하나 수많은 문이 우리를 막고 있고 숨을 수 있는 구석도 많은 장소.
“정지.”
자연히 나아가는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는 차수현이 작게 말하며 손을 들었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적막이 가득했다.
“끼히히히.”
“끼요욧.”
적막을 깨고 들려온 소리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지 꽤 많은 고블린들이 떠드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차수현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쓱, 슥, 스스슥.
‘그러니까 다섯 마리라는 건가?’
손으로 표시하는 방향과 손가락 개수의 의미가 이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총 다섯 마리의 고블린.
적지 않은 숫자의 괴물이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너무 많아.’
아무리 빨리 10마리를 채워야 한다지만, 다가오는 고블린이 너무 많았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우리가 넷, 괴물이 다섯.
물러나야 할 때였다.
“셋에 덮칩니다.”
하지만 차수현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차분하게 말한 그녀는 문이 끝나는 복도에 숨도 쉬지 않고 몸을 숨겼다.
이렇게 바로 싸운다고?
급작스럽게 싸울 거란 모습에 당황할 사이도 없이 그녀가 들어 올린 손가락은 하나씩 펼쳐졌다.
하나, 둘 그리고 셋.
푹.
“케륵!”
번개같이 튀어 나간 차수현은 문을 끼고 돌아 고블린 한 마리의 목에 단검을 꽂았다.
마치 한 마리의 맹수 같은 몸놀림은 여자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키애애액!”
“방패 들고 창.”
푸슉 하고 고블린의 목에서 피 분수를 만든 차수현의 외침.
퍼뜩 정신을 차린 이동찬이 방패를 들고 문을 넘으려는 고블린을 막았다.
그리고 내 눈에 문과 방패 사이 창을 밀어 넣을 틈이 보였다.
휙, 푹.
“끼륵!”
‘크윽.’
내 허리 밖에 오지 않는 고블린의 배를 날카로운 창이 파고들었다.
비명과 함께 전해진 부드러우면서도 끈적한 손의 느낌.
절로 속으로 신음을 삼키게 만들었다.
“방패 버티고 창.”
문과 방패가 만나 만들어진 벽은 견고했다.
이동찬이 든 방패를 같이 버텨주는 차수현 덕분이었다.
두 사람이 만든 벽은 창이 움직일 시간이 충분히 벌어주었다.
핏, 촤악!
‘씨발!’
창을 뽑자 녹색의 피가 문과 방패 사이로 솟구쳤다.
딸려 나온 창자까지 보이자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창을 뽑은 것에는 성공.
망설이면 안 되었다.
빠르고 단호하게 창을 움직여야 했다.
푹, 푹.
“켁!”
“끄르륵.”
창이라고 해도 그냥 막대기에 식칼 달아놓은 수준.
그렇지만 이 단순한 조합의 무기가 꽤 손에 잘 맞았다.
남겨진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짧은 사이에 배와 목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제압봉으로 목.”
그리고 남겨진 마지막 놈에게 탁대리 제압봉이 떨어졌다.
갈고리처럼 생긴 끝을 고블린의 목에 거는 탁대리.
쿵 하고 땅에 처박힌 고블린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끼애애액! 끼루루, 끼액!”
죽지 않고 땅에 처박힌 고블린은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는 건 아닌지 눈에 가득한 살기가 절로 움찔하게 할 정도.
아마도 자신의 동료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12층에는 이 고블린들이 끝이었을까?
제압된 괴물이 아무리 괴성을 질러도 나타나는 고블린은 없었다.
퍽, 퍽, 퍽.
“끽!”
죽지 않을 정도로 배를 걷어찬 차수현은 냉정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조금 조용해진 고블린의 입에 옷가지를 쑤셔 넣어 입을 막았다.
끅끅거리는 고블린은 발버둥 치며 발광을 시작했다.
“포박하죠.”
몸부림치는 고블린을 묶는 건 쉽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는 것처럼 거친 몸짓으로 반항했다.
하지만 네 사람이나 달라붙어 낑낑거리자 포박은 곧 완성됐다.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죠.”
차수현의 돌아가자는 말.
살면서 가장 길었던 한 시간이 끝이 났다.
* * *
“수고했어. 세 분도 수고하셨습니다.”
원래는 창고였던 곳에 포박한 고블린을 끌고 가자 이찬욱이 넘겨받으면 하는 말이었다.
창고에는 우리가 잡아 온 고블린 말고도 몇 마리가 이미 묶여있었다.
이것들로 뭘 할지는 몰라도 왠지 나란히 묶인 고블린들을 보자 소름이 돋아났다.
‘말도 안 통하는데 고문이라고 할 건가?’
적에 관해서 알아보는 건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맞다.
그렇지만 저 괴물들을 상대로는 어떻게 할지 전혀 그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다.
아마도 정상적인 방법은 아닐 거라는 것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어두워진 얼굴의 우리를 끌고 나온 건 차수현.
그녀는 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우리에게 입을 열었다.
“조금 있다가 저녁 먹을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야간 근무는 따로 서실 필요 없으니 내일 아침까지 푹 쉬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도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휴식이라는 말에 절로 고생했다는 말이 나왔다.
실질적으로 긴 시간을 싸운 것도 아니고 다친 곳도 없는 평이했던 작업.
그럼에도 머릿속에 남은 기억과 감각은 아직도 심장을 거칠게 뛰게 했다.
우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차수현은 다시 창고로 향했다.
아마 퇴근하는 우리와 달리 그녀는 더 일이 남은 모양.
그녀가 뭘 할지는 애써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올라가서 바람이나 쐬자.”
씁쓸한 건 이동찬도 마찬가지인지 날 끌고 옥상으로 갔다.
언제나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며 잡담 나누던 장소.
다행히 그곳까지 사람이 가득하지는 않았다.
“하나 줘?”
“됐다. 피지도 않는 걸 맨날 준다고 지랄이야.”
“크크크. 달라고 해도 안 줘. 이제 이것도 존나 귀해질 거잖아.”
담배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피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얗게 내뱉는 연기 속에 시름을 내보내는지 얼굴은 좋았다.
‘그냥 중독자의 개폼이지.’
나름 논리적인 답변을 내고 저 멀리 시선을 돌렸다.
서서히 떨어지는 해를 품은 거리는 이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남겨진 핏자국만 있고, 돌아다니는 건 전부 고블린이었다.
“씨발. 군대하고 경찰은 뭐하냐?”
“열심히 싸우고 있겠지.”
“너도 봐서 알잖아. 저 괴물 새끼들 생각보다 약한 거. 그런데 아직 서울 한복판을 이 지경으로 놔둔다고? 난 이해가 안 간다.”
이동찬의 말이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인간이 이룩한 무력이라면 고블린이란 괴물은 사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친 거 같은 야생성을 빼면 딱히 두려워해야 할 부분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다?
이건 이상한 게 맞았다.
회장이 정부와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뭉그적거리는 건 분명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다.
‘죄를 반성하고 주인을 맞이하라고 했어.’
고작 고블린들을 불러내고 죄를 논하고 반성을 뱉으며 주인을 언급하지는 않았을 거다.
거기에 각성과 오-할라 시스템 그리고 보험까지.
아직 숨겨진 비밀은 너무도 많은 상황이었다.
“이해한다고 뭐 달라지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존나 답답해. 하나만 더 피고.”
일단은 현실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 *
푹. 푹. 푹.
“······케륵.”
고작 하루 해봤다고 창을 찌르는 손이 꽤 편해졌다.
괴물이라고 하나 생명체의 목과 배를 찌르며 편해지다니.
어제 잠 못 이루고 쉬지 않고 했던 이미지 트레이닝과 자기 최면이 효과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걸로 이제 한 마리.’
어제 죽인 걸 포함하면 벌써 9마리의 고블린이 내 손에 죽었다.
이제는 조금 더 명확히 느껴지는 고블린의 죽음 이후의 미묘한 느낌.
영혼으로 파고드는 묘한 감각 덕분에 괴물의 죽음을 명확히 판별할 수 있었다.
오전부터 열심히 11층 개척에 나선 덕분에 어쨌든 단 한 마리가 남았다는 의미였다.
각성까지.
“이동합니다. 안쪽에 더 많은 괴물이 있으니 여기로 유인해서 잡는 거로 하겠습니다. 제가 유인해올 테니 두 분이 쫓아오는 고블린을 몇 마리만 통과시키고 문을 막으세요.”
“직접 유인하러 가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냥 뭐라도 던져서 끌고 오는 게 나아 보이는데.”
“그것도 방법이지만, 안 잡힐 자신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9마리의 괴물을 내 손으로 죽였지만, 직접 대면하는 건 아직도 손이 떨린다.
그런데 차수현은 고블린에게 절대로 안 잡힐 자신이 있다면 스스로 미끼를 자처했다.
담이 커도 어지간히 큰 여자였다.
‘차수현은 이제 3마리 남은 건가?’
다른 팀보다 더 빠르게 사냥을 하고 있다는 건 쉬는 시간에 확인한 상태.
이대로라면 이 건물에서 내가 가장 빨리 각성할지도 모른다.
모두 내가 은연중에 차수현이 죽일 고블린을 스틸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냥 내가 열심히 괴물을 상대하는 거로만 보일 거다.
그러니 오히려 적극적인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거고.
지금 자신이 미끼로 나선다는 것도 이런 취지가 아주 반영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갑니다.”
“조심해요.”
“걱정 마세요. 문만 잘 닫아주세요.”
나와 이동찬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자 살짝 미소지으며 문을 나서는 차수현.
나보다 작은 그녀의 등이 상당히 넓고 크게 느껴졌다.
“반했냐? 아주 뚫어지겠다.”
“뭐, 조금? 인간적으로 반 할 만하잖아.”
“오. 멋진데. 형이 밀어줄게.”
“그런 거 아니니까 개소리 말고 집중해라.”
이성으로서의 매력도 상당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이었다.
가슴이 설렌다기보다는 심장이 뛰는 멋진 뒷모습.
차수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옵니다. 집중. 제가 셋 세면 닫아요.”
개소리하며 방화문을 양쪽에서 잡고 있는 나와 이동찬.
탁진호는 그런 우리를 보다가 말했다.
고블린을 달고 차수현이 달려오고 있다고.
“하나······ 둘······ 셋! 지금!”
탁진호의 입에서 셋이 나오자 문을 힘껏 닫았다.
빠르게 닫히는 문을 지나는 차수현.
그런 그녀의 뒤를 따르는 고블린이 서너 마리 있었다.
“끼액!”
“꺼져!”
푹.
문 사이에 낀 고블린 한 마리.
닫는 걸 방해하는 괴물의 배에 힘껏 창을 꽂았다가 뺐다.
피 분수가 터지며 쿵 하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 고블린들 사이에서 단검 한 자루를 들고 날뛰는 차수현이 보였다.
무슨 영화 같은 모습에 어이없음을 느끼고 나도 창을 휘둘렀다.
푹.
차수현을 바라보고 등을 보인 고블린에게 한 방.
털썩하고 쓰러지는 고블린은 이내 축 늘어졌다.
정확히 파고든 창이 심장을 찢어버린 덕분이었다.
그리고 파고드는 묘한 느낌.
띠링!
[일정 수준 이상의 카르마를 획득하였습니다.] [조건을 만족한 ‘장서후’님은 ‘오-할라 시스템(OH-HALA SYSTEM)’에 접속한 자격을 얻었습니다.] [‘오-할라 시스템(OH-HALA SYSTEM)’ 접속을 위한 각성을 시작합니다.]작은 벽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빠르게 세상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