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
005. 지급 심사. (4)
005.
정신을 잃고 눈을 뜨니 신세계였다.
뭐, 이런 건 아니었다.
“영혼만 온 건가?”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실존하는 세계가 아니며, 이곳에 영혼만 끌려온 상태라는 걸.
이런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 기묘한 안정감이 들기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각성의 방?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건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곳을 살펴보니 오래된 커다란 방이었다.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건 벽에 걸린 횃불이 전부.
그리고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은 이곳을 각성의 방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머리로 전해진 정보에 따라 어두운 방을 천천히 걸었다.
분명 육체는 놔두고 영혼만 온 상태.
일종의 꿈을 꾸는 것과 같은 모습인데도 걷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천천히 걸어 도착한 방의 반대편.
그곳에는 작은 상자가 다섯 개 놓여있었다.
그리고 상자들을 인식하자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띠링!
[‘오-할라 시스템(OH-HALA SYSTEM)’ 접속을 위한 각성을 완료하였습니다.] [‘스테이터스’ 시스템이 오픈되었습니다.] [‘인벤토리’ 시스템이 오픈되었습니다.] [‘스킬’ 시스템이 오픈되었습니다.]시스템 메시지였다.
하지만 상자들에 대한 설명이 아닌 시스템이 열렸다는 내용.
메시지가 도착하고 그에 해당하는 시스템의 정보도 머리로 파고들었다.
‘상태창에 인벤토리. 거기다 스킬까지. 그냥 게임이네.’
왜 이런 형태로 각성이 이루어지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게임을 닮은 시스템이기에 이질감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들이 내 것이 되어갔다.
[‘오-할라 시스템(OH-HALA SYSTEM)’을 오픈하여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장서후’님에게 자유 능력치를 ‘5’ 부여합니다.]‘레벨에 스탯도 있네.’
스테이터스 시스템을 아직 열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항목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
그런데 언급된 레벨이나 능력치로 어떠한 형태일지 추측이 가능했다.
바로 열어서 확인하는 게 순서.
그렇지만 아직 메시지는 남아있었다.
띠링!
[각성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에 놓인 상자 중 ‘1’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시스템을 열고 각성하여 이곳에 끌려온 이유.
그건 바로 이 각성의 방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자연스럽게 스테이터스 확인이 뒤로 밀리는 순간이었다.
띠링!
하지만 시스템은 아직 떠들 말이 더 남았다.
[‘장서후’님은 ‘257번’ 지역에서 ‘100’번째로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추가로 보상을 ‘1’개 더 선택할 수 있습니다.]“아······. 선착순.”
257번 지역은 아마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말하는 거 같았다.
얼마나 넓은 범위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은 건지는 몰라도 그중 100위 안에 들었다는 말.
그 덕분에 보상을 하나 더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꽤 고무적이었다.
‘이제 끝인가?’
혹시나 시스템이 더 할 말이 남았나 잠시 기다렸지만, 잠잠했다.
이제 정말 보상을 선택하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일.
자연히 눈은 상자들에게로 향했다.
다섯 개의 상자는 모두 같은 모양으로 일종의 랜덤 뽑기 형태로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
이럴 때는 하나의 기준을 정하는 게 나았다.
‘무조건 가운데.’
윗줄에 놓인 세 개의 상자 중 가운데.
앞으로 지금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무조건 이 위치를 선택하기로 마음속으로 정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상자에 만졌다.
띠링!
차가운 상자가 손에 느껴지는 순간, 찾아온 메시지.
[보상을 선택하였습니다.] [추가로 보상을 ‘1’개 더 선택할 수 있습니다.]아직 나에게는 한 발이 더 남았다.
‘두 번째는 오른쪽.’
다시 두 개의 보상을 받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내 선택은 윗줄의 오른쪽 상자.
이번에도 손을 뻗어 상자에 손이 닿자 메시지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음······.’
유체이탈했던 영혼이 집으로 돌아왔다.
나름 긴 시간을 보냈다고 느꼈는데 전혀 아니었다.
시간은 정지하기라도 했는지 내 창은 여전히 고블린의 가슴에 꽂혀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각성의 방에서 보낸 시간은 현실과는 다른 시간의 축을 가진 거 같았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창을 뽑아 회수했다.
그리고 슬쩍 차수현의 얼굴을 살폈다.
“아.”
그러자 나보다 한발 늦게 탄성을 터트리며 눈이 흔들리는 그녀.
숨길 수 없는 당황이 내 눈에 잡혔다.
‘10마리 채웠네.’
작은 변화만으로도 지금 차수현의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인지됐다.
그리고 날 바라보는 차수현의 눈빛.
그 안에는 나의 변화를 알아봤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일단 철수하겠습니다.”
정신을 빠르게 수습한 차수현의 선택은 철수.
아마도 복귀하면 시끄러워질 거 같았다.
“두 분은 쉬고 계세요. 서후씨는 저하고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
안전하게 13층으로 돌아온 후 따로 부른 차수현.
그녀의 용무가 어떤 것일지 알았기에 순순히 그녀를 따라서 작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차수현의 얼굴은 차가웠다.
“서후씨도 하셨죠? 각성.”
“네. 했습니다.”
“역시 그런 거군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한 차수현.
같은 숫자의 고블린을 죽였기에 예측하지 못할 상황이 아니었다.
괜히 숨기면 불신만 쌓을 수 있으니 선선히 인정했다.
“이건 보고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네요. 저하고 같이 가시죠.”
“알겠습니다. 그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보상은 어떤 걸 받으셨나요.”
“······스킬을 받았습니다. 일반 등급 스킬이요.”
내 질문에 잠시 망설인 차수현의 대답은 스킬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보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내가 100번째라서 하나 더 받은 거겠지? 조금만 늦었으면 나도 하나뿐이었겠네.’
그녀가 정확히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을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엄청난 정보가 될 스킬이란 존재를 말할 줄 몰랐다.
단지 내가 듣고 싶었던 건 보상의 개수였다.
“서후씨는요.”
“저는······ 아이템이네요. 이거요.”
내가 받은 보상은 그녀와 달리 두 개였다.
그렇지만 내 입에서는 단 하나의 보상만 언급됐다.
표면적으로는 이거 하나만이 내 보상이 될 거였다.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이니 비장의 수를 남겨두는 건 당연한 일.
대신 어떤 스킬인지 말하지 않은 차수현과 달리 난 보상으로 꺼낸 아이템 정보를 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벤토리’에서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꺼냈다.
띠링!
──── ◆ ITEM ◆ ────
[ 이름 : 화염의 단검 ] [ 종류 : 무기(武器) ] [ 등급 : 일반(一般) ] [ 능력 ] ▶ [ 타격 시 ‘뜨거운 불꽃’ 발동 ]──────────────
손에 드는 순간, 다시금 뜬 아이템 정보.
아이템의 이름과 종류, 등급과 능력이 간략히 적힌 작은 창이었다.
이 녀석은 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니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알아서 뜬 거였다.
난 눈을 반짝이는 차수현에게 화염의 단검을 슬쩍 내밀었다.
잠시 움찔한 그녀는 괜찮다는 내 눈빛에 단검을 받았다.
요리조리 만져보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는 아마도 아이템 정보를 보는 거 같았다.
“타격 시 뜨거운 불꽃? 이게 능력인가요?”
“네. 일반 등급 단검인데 뭐가 있긴 하네요. 그런데 다른 사람 아이템도 확인이 되나 보네요.”
“잘 보입니다. 쓰는 거에도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나에게서 아이템을 받은 차수현이 능력을 읽었다.
그를 통해서 작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귀속이 되는 건 아닌가 보네. 언제든 뺏길 수 있다니 골치 아파지겠어.’
아이템을 넘겨주니 편하게 정보를 확인하고 쓸 수도 있는 모양.
이 뜻은 아이템은 서로 뺏고 뺏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
이럴 거면 차라리 다른 보상인 스킬을 말하는 게 나았을 뻔했다.
‘아니야. 스킬은 확인할 수 없는 거니까 그걸 숨기는 게 맞아.’
또 다른 보상인 스킬.
이건 아이템과 달리 내가 쓰지 않는 이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두 개의 보상을 예상할 수 없다면 요란한 걸 전면에 내세우는 게 더 나을 거다.
“가시죠. 보고할 게 많습니다.”
어쨌든 건물이 상당히 시끄러워질 거 같았다.
* * *
차수현과 내가 알린 정보는 곧 다른 팀에게서도 나왔다.
교차 검증까지 빠르게 끝난 사실에 내 예상대로 회의가 바로 열렸다.
난 그 회의에 교보재이자 샘플로 잡혀 왔다.
“생포해와야 합니다. 10마리만 죽이면 기적 같은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회장님을 포함해서 임원분들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나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회의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고블린이 무슨 영양제도 아닌데 잡아 와서 회장과 임원들을 각성시키라는 비서실장의 말.
고개를 끄덕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임원들의 얼굴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이 말을 꺼낸 회장의 비서실장 김호열은 무슨 독립투사처럼 열변하고 있었다.
역겨움이 차올라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김상무님. 상무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앞에서 싸워야 할 보안직원들이 먼저입니다. 회장님의 안전은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봐요. 이팀장. 아까 차수현씨 말 못 들었어요? 강해지고 건강해진다잖아요. 지금 회장님 건강 상태를 아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당장 회장님이 위독하시다면 맞는 말이지만,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생포해온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멀쩡한 인간이 하나는 있다는 것.
보안팀장인 이찬욱은 절대 굽힐 수 없다는 듯 물러서지 않았다.
결론이 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우리는 나가죠.”
“네.”
의사 결정의 권한이 조금도 없는 나와 차수현은 볼일이 끝났으니 물러나야 했다.
회의장을 빠져나와도 역시 썩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보험금이 어떤 건지만 확인하자. 그리고 결정하는 거야.’
세상이 망했는데 아직도 회사 놀이에 빠진 저 늙은이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당장 떠나지 않는 건 나 역시 무섭고 두렵기 때문.
하지만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다.
보험금으로 어떤 걸 받을지 모르지만, 절대 작지는 않으리라.
본능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제 스킬은 바람 손톱입니다. 바람으로 된 손톱을 뽑아 적을 공격하는 스킬이죠.”
“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서후씨도 아이템을 넘겨주셨잖습니까. 이게 공평하죠.”
“공평. 그러네요.”
“그리고 서후씨라면 알려줘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내일 아침에 뵙죠.”
후다닥 말을 뱉은 차수현은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가?
알 수 없는 행동에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내가 쉴 곳으로 향했다.
“빠지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 조는 모든 작업에서 빠지게 됐다.
“······죄송합니다. 위에서 결정된 일이라.”
“허, 진짜 너무하네요. 각성할 수 있다는 걸 알자마자 이런 짓이라니.”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진짜 어이없고 웃기네요. 수현씨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진짜 웃기고들 있네요.”
“할 말이 없습니다.”
설마 고블린을 독점하겠다고 자원해서 나간 우리도 제외할 줄이야.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결론이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잘 됐어. 굳이 더 싸울 필요도 없는 거였잖아.’
내가 앞장서서 싸운 건 어디까지나 보험금을 받기 위한 자격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어제부로 그 자격은 이뤄낸 것이고.
상황이 아주 어이없고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날을 세워서 싸울 상황도 아니었다.
“대신 세 분은 여기에서 쉬시면 됩니다. 부서로 복귀하지 않고 이곳에서 쉬면서 상황을 지켜보시면 됩니다.”
“이게 서후가 말한 그 각성 때문인 거죠? 그런 거죠?”
“아무래도 그런 거 같습니다.”
“저 새끼 말대로 수현씨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웃기긴 하네요. 전 안 싸워도 된다니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양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보가 셀까 봐 인지 몰라도 우리를 작업에서는 제외해줬다.
이동찬은 각성이란 말에 꽤 흥미를 보였지만, 안 싸워도 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했다.
탁대리도 그런 듯 보였다.
“나중에 버스 태워줄 거지?”
“하는 거 봐서.”
“새끼. 내가 얼마나 손바닥 잘 비비는지 알면서 그러네.”
차수현이 나가자 바로 얼굴을 바꾼 이동찬의 말에 피식 웃었다.
저쪽에서 하는 대로 끌려가기보다는 나에게 붙는 모습.
일단 같이 떠날 후보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아, 지루하겠다. 술이라도 한 병 넣어주던가 하지. 센스 없긴.”
“됐고 잠이나 자. 이 지랄 맞은 세상에서 편하게 자는 것도 축복이다.”
술타령하는 이동찬을 밀어내고 털썩 드러누웠다.
어쩐지 마지막이 될 거 같은 휴식을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 약속한 3일이 지났다.
띠링!
[‘종합 멸망 보험’의 ‘지급 심사’가 완료되었습니다.]마침내 보험금을 받을 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