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59
060. 또 다른. (2)
060.
【영웅 등급까지 올린다면 이 활은 그대에게 큰 선물을 줄 것이다. 】
‘아자리아의 바람’을 처음으로 강화했을 때 아슈리탄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강화를 통해서 기억을 일부 되찾은 그는 유일 등급에서 영웅 등급까지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믿은 난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강화를 진행했고, 그 덕분에 별을 가득 새겨넣을 수 있었다.
유일 등급인 아자리아의 바람을 영웅 등급으로 진화시키는 방법은 나도 모른다.
다만 강화를 할 때마다 하나씩 새겨지는 별이 가득 차면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는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빗나갔다.
‘강화를 마친 거뿐이라는 건가? 진화는 다른 얘기라는 말이겠지.’
세 번의 강화로 별을 새겨넣을 때마다 내 활은 빠르게 강해졌다.
한 번에 쏘아낼 수 있는 화살의 숫자와 화살에 담을 각종 궁술은 몇 배나 효율과 파괴력을 높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영웅 등급으로 올릴 방법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특이점이 있기는 했다.
마지막 강화를 마치고 새롭게 추가된 능력.
이름도 알 수 없고, 사용 한도까지 있는 그 능력은 무려 ‘맛보기’였다.
띠링!
[‘아자리아의 바람’의 맛보기 능력 ‘???’을 사용합니다.] [‘1’회 사용으로 잔여 사용 한도는 ‘2’입니다.]내 앞에서 광분한 야만인 같은 할칸트라의 대표.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 ‘맛보기’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아슈리탄과 그의 레인저 부대만 불러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귀중한 한 번의 사용 한도를 까먹으면서 능력을 활성화했다.
지금 타이밍에 사용해서 어떤 힘을 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우웅, 쏴아아아아.
‘바람······.’
어떤 것을 맛보여주려는 것일까?
분명 맛을 본다는 건 앞으로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샘플링해서 미리 선보인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 몸을 감싸는 바람.
아자리아의 바람이라는 활의 이름과 어울리는 바람.
활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이 그런 내 궁금증을 더 안달나게 만들었다.
휘오오오옷!
‘놓으라는 건가?’
활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은 점점 더 강해졌다.
마치 손을 떼고 놓으라는 듯 말하는 행동에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바람을 품고 허공으로 떠오르는 아자리아의 바람.
파아아아앗!
“윽. 눈부셔.”
“오오오. 뭐냐? 뭐냐 이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듯 내 손을 떠난 활에서 빛이 폭발했다.
은은한 녹색의 마력이 터지며 모두의 눈을 멀게 할 강력한 빛이었다.
달려들던 할칸트라의 대표마저 주춤거리며 멈추었으니 일대를 완전히 장악한 거였다.
‘따뜻해.’
눈을 찌푸리고 마력으로 보호해도 정면으로 보기 힘든 빛.
그렇지만 나가 앞을 보기에는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그저 따스하고 포근한 기분에 절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빛이었다.
그리고 보였다.
예술 작품처럼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아자리아의 바람.
그 활이 서서히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빛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녹색의 빛을 잃은 자리에는 대신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탁.
“보고 싶었어.”
땅에 내려선 존재는 내 눈을 마주 보며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은 처음 보지만 절대로 낯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저······ 누구시냐?”
갑자기 나타났으니 모두 의아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으니 물어보는 이동찬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특히나 더욱 그러한 건 앞에 있는 존재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활과 검을 찬 인세에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는 극강의 아름다움.
뾰족한 귀가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아자리아. 반가워.”
“서후. 너무 보고 싶었어.”
아자리아의 바람이라는 유일 등급 아이템.
엘프의 영웅인 ‘아자리아 벤자나’의 무기가 바로 이 활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녀의 친구였던 활은 그녀 자체가 되어버렸다.
‘완전히는 아니지.’
띠링!
[‘아자리아의 바람’의 맛보기 능력 ‘아자리아 의태(擬態)’가 활성화됩니다.] [‘의태(擬態)’는 ‘30분’ 유지됩니다.]영웅 등급 아이템에 오르면 아마도 얻게 될 거라 여겨지는 능력은 ‘아자리아 의태(擬態)’였다.
쿨타임은 모르지만, 유지 시간 30분이 되는 일종의 소환 스킬인 의태.
하지만 보이는 건 같더라도 분명 소환과 의태는 다른 거였다.
“알겠지만, 난 아자리아님이 아니야.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시간과 공간을 내가 흉내낼 뿐이야.”
“상관없어. 이렇게 만났으면 된 거지.”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마워.”
아자리아 벤자나라는 엘프 영웅을 온전히 불러내는 건 고작 ‘영웅’ 등급 아이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대신에 그녀를 보고 살피며 생을 같이 해온 활이 스스로 그녀를 흉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일이었다.
“일단 저 무식한 남자부터 조용히 시켜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
“해줄 수 있어?”
“아자리아님과 평생 같이했지만, 지금 내 주인은 너야.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야. 다시 말해봐.”
“······제압해.”
아자리아 아닌 활을 아자리아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모르겠다.
일단 말을 나눌 수 있고 날 위해 웃을 수 있으니 아자리아라고 말하기로 했다.
아무튼 아자리아의 현재 주인은 명백히 나였다.
그렇기에 활시위를 당기듯 당연하게도 명령하면 되는 상황.
그런데 묘하게 말을 건네는 내가 어색했다.
“금방 정리하고 올게.”
바닥을 차는 소리도 남기지 않고 몸을 띄운 아자리아.
그녀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산책하듯이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홀로 남은 적에게로 향했다.
“누구시냐니까?”
“봤잖아. 내 활이야.”
“······뭔 개소리야? 저 아리따운 분이 네 활이라니. 알아들을 수 있게 좀 말하죠, 대표님?”
아자리아 벤자나라는 엘프 영웅을 흉내 냈으니 보여주는 겉모습은 생명체 중 견줄 수 없게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본질이 아니기에 굳이 더 설명하지는 않았다.
아포칼립스의 처음부터 내 곁을 지킨 친구이자 동료가 그녀의 진짜 본질이었으니까.
‘······빠르다.’
그렇기에 다른 잡다한 것들을 무시하고 정면을 집중했다.
바람을 타고 달리는 아자리아는 무척이나 빨랐다.
* * *
“사실 검은 잘 못써. 내가 활이잖아. 변명 같지만, 그래서 조금 오래 걸렸어.”
“전혀 안 그랬으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달려나간 아자리아는 1분이 지나기 전에 야만인 같은 할칸트라의 대표를 무릎 꿇렸다.
넋이 나간 남자는 여전히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였음에도 아자리아는 조금은 창피한 듯 말하니 다들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런데 얘는 왜 기권을 안 하냐? 진짜 죽여달라는 건가?”
“죽이기 찝찝하니까 일단 제압해서 저쪽으로 데려가.”
3차 관문의 승리는 다른 컴퍼니의 모든 직원을 죽이거나 기권시키는 것.
욥이라는 컴퍼니는 우리가 할칸트라를 치자 잽싸게 전부 기권을 하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져서 포박되어 무릎까지 꿇은 할칸트라의 다섯 직원은 미동도 없이 버티고 있었다.
설마 룰을 이해 못 한 걸까?
기권을 하지 않으면 죽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저들에 대한 처분보다는 남은 시간에 아자리아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이 모습을 보이는 건 역시 영웅 등급에 오르면 얻을 능력인 건가?”
“나도 확신을 못 하는데 맞는 거 같아. 지금은 꿈을 꾸다가 깨어난 기분이랄까? 이런 상태라서 확신은 힘들어. 그래도 정답은 아니라도 어떻게 될지 알 거 같긴 해.”
영웅 등급에 오르지 못한 상태이니 그녀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제 두 번 남았네.”
“두 번이나 남은 거야. 그 사이에 서후가 날 영웅으로 만들어 줄 거잖아. 안 그래?”
“······그래야지.”
강화까지는 어렵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몰라도 영웅 등급 아이템이 공구가 나왔고, 풍족한 보험 보상금 덕분에 아이템도 넘쳤다.
오로지 필요한 건 시간뿐이었다.
그렇지만 세 번의 강화를 마친 유일 등급 아이템을 영웅 등급으로 올리는 일.
이건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웃으며 말하는 아자리아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쿠쿠쿡. 하여튼 얼굴은 못 숨긴다니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서후하고 얘기하면 다 눈치채는 거야.”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나서 어쩔 수 없어. 그래도 해낼 거야. 이렇게 만났는데 꼭 내 옆에 두고 싶어.”
“당연하지. 내 주인은 너니까 당연히 그래야 돼. 그리고 난 그 길을 알고 있어.”
“뭐?”
주변이 화사하게 바뀔 정도로 싱긋 웃는 아자리아.
이 녀석은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다.
* * *
아자리아와의 짧았던 만남이 끝이 났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말들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영웅의 영혼이 필요해. 】
【영웅의 영혼? 그게 뭐야? 】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냥 이렇게 의태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야. 희미하게 무슨 보석 같은 모습이 보일 뿐이야. 피처럼 붉은 보석. 】【붉은색 보석, 영웅의 영혼. 알았어. 내가 꼭 구할게. 】
아자리아가 말한 ‘영웅의 영혼’은 아마도 진화를 위한 특수 아이템이 아닐까?
정답은 모르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길은 찾았어.’
망망대해에 있던 나에게 나침반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나침반이 아니라 GPS를 준 수준이었다.
이름까지 알아낸 물건을 찾아내는 건 결국 돈과 시간이면 족했다.
그리고 나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 뭔가 아쉽다. 말도 제대로 못 해봤는데 벌써 갔네.”
“정신 차려라. 내 활이라니까 진짜 아자리아가 아니고.”
“무슨 상관이야. 2D하고도 결혼하는 미친 세상이었는데. 저런 고귀한 미모라면 악마라도 오케이라고.”
극한의 가능충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이동찬.
다들 표정이 좋지 않은 채로 슬쩍 거리를 벌렸다.
“서후씨. 그런데 이제 어쩌실 거에요? 아무래도.”
“더 버티면 방법이 없죠.”
욥 컴퍼니는 이미 관문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지났다.
남아 있는 건 할칸트라라는 야만인 같은 녀석들뿐.
그런데 도무지 기권할 생각을 안 한다.
아니, 기권이라는 걸 이해 못 한 걸까?
둘 중에 어떤 이유든지 우리가 물러설 수 없으니 승리를 가져와야 했다.
마지막 방법은 결국 내 검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것뿐이었다.
“뭐라고 불러야 하나? 할칸트라 대표씨. 진짜 기권 안 할 거지?”
“탄투라 오온. 구아디온 타탁.”
“······뭐라는 거야.”
마지막으로 대화를 시도해본 대화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처음에 내비친 극한의 살기나 기세는 없지만, 말이 안 통하니 방법이 없었다.
이제 정말 검을 빼 들 수밖에.
스르르르릉.
창백한 월영이 검집을 빠져나오면 스산한 공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내 검을 바라보는 할칸트라의 다섯 직원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아직도 희망이 가득하고 어떤 반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어찌 보면 순진무구한 눈동자들.
저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건 대표인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다른 직원에게는 지울 수 없는 살인의 무게를 짊어질 시간이었다.
“원망하지 말고 편히 가라. 반대였으면 내가 죽었을 거니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굳이 얹으며 검을 움직였다.
곧 내 손에 다섯의 생명이 지워지게 될 거다.
띠링!
그렇지만 살고자 함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살기 위해서였다면 굳이 이럴 이유는 없었다.
기권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 있으니까.
“······이건 또 뭔데?”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내용을 품고 날아온 메시지는 검을 내 뻗을 생각을 지우게 만들었다.
너무 황당한 상황에 창백한 월영을 뻗지도 거두지도 못하고 허공을 몇 번이나 읽어야만 했다.
[컴퍼니(Company), ‘할칸트라’가 컴퍼니(Company), ‘SH’에 합병을 제시합니다.] [컴퍼니(Company), ‘SH’가 승낙할 시 두 컴퍼니는 ‘SH’로 합병됩니다.]기권도 죽음도 아닌 또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