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66
067. 제단. (2)
067.
다시금 아침이 찾아왔다.
긴 시간을 보낸 거 같지만, 실상 이벤트 공지를 받고 고작 다음 날 아침이었다.
지독하게도 긴 하루를 보낸 느낌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친 기색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사람을 짊어지게 된 입장에서 오늘도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대표님. 10분 후 선물 전달식이 있습니다.”
“네. 고마워요.”
오늘 아침는 민비서 그러니까 민서라의 일정 보고부터 시작되었다.
‘선물은 무슨 내 돈이 얼마가 들어간 건데.’
내가 투자한 골드만 10, 000, 000이었다.
상점의 VIP 멤버십에 가입할 때와 같은 사이즈의 투자.
솔직히 실패하면 나에게도 꽤나 골치 아픈 도박이었다.
그렇지만 그 첫 번째 성과인 ‘세계수의 묘목’만으로도 일단 합격이었다.
엘프들이 페이백으로 쇼핑해온 물건들이 아니더라도 돈값을 하는 느낌.
받을 물건들은 내 돈으로 사 온 거라 생각하니 큰 감흥은 없었다.
“다들 식사는 잘하셨나요?”
“제법 훌륭한 식사였습니다. 안 그러니, 티샤?”
“······흥.”
내 인사를 받은 나시르가 티샤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콧방귀.
······못 생긴 인간이라는 말을 안 들었으니 나아졌다고 보면 되는 걸까?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우리 컴퍼니 식당이 제법 입에 맞은 거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선물 전달식이 시작되었다.
“우선 이것부터 받으시게. 인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검이라네.”
“감사합니다.”
가장 먼저 전해주는 선물에서 다시금 언급된 세계수.
선물을 준비하는 무엘레스가 나에게 필요한 걸 물었고, 내가 대답해서 완성된 선물 리스트.
그중 내가 개인적으로 욕심낸 유일한 물건이 새로운 무기, 검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세계수를 끼얹었다?
검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이기에 전혀 예상 못 한 구성.
그래도 이미 온몸으로 확인한 세계수라는 엄청난 존재 때문에 기대가 안 될 수 없었다.
‘보기에는······ 그냥 그러네.’
세계수는 신이 반열에 오른 존재지만, 나무는 결국 나무.
검날까지 하나의 나무로만 구현한 검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하고 수수한 수련용 목검으로 보였다.
손에 착 달라붙는 감각이 없었다면 그 돈을 들였다는 걸 전혀 몰랐을 물건.
‘아이템 확인.’
그러니 이제 능력을 확인할 차례였다.
띠링!
──── ◆ ITEM ◆ ────
[ 이름 : 고요한 아침의 바람 ] [ 종류 : 무기(武器) ] [ 등급 : 유일(唯一) ] [ 능력 ] ▶ [ 민첩 증가 [+10] ]▶ [ ‘숲의 속삭임’ 습득 ]
▶ [ ‘세계수의 축복’ 발동 ]
──────────────
‘고요한 아침의 바람. 바람 세트네.’
내가 요청한 무기는 최소 유일 등급의 검.
가능하면 영웅 등급을 원했지만, 그건 시스템이 막고 있기에 불가능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유일 등급 검이 어딘가.
이름마저 ‘아자리아의 바람’과 뭔가 통하는 듯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휙, 휘휘휘휙!
“아.”
검을 들자 즉각적으로 반응한 두 개의 능력.
앞자리가 바뀐 민첩 능력치는 날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반사 속도와 동체 시력 등이 오르며 내가 있는 시간대가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는 기분.
평소와 달리 길어진 시간 속에서 휘두르는 검은 몇 배는 더 부드럽고 유려했다.
같은 카크루 검술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할 정도의 변화.
이건 비단 민첩이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가? 왜 숲이 살아있다고 하는지 알겠지?”
“네. 확실히 알겠네요.”
고요한 아침의 바람이란 검의 두 번째 능력인 ‘숲의 속삭임’.
검을 드는 순간, 바로 활성화되는 패시브 능력은 참 기이했다.
특별히 무언가 힘을 주거나 어떤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님에도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능력의 이름 그대로 숲이 자연과 삶과 인생에 대해서 속삭여주는 기분.
마치 뿌옇던 세상이 맑아진 것처럼 모든 감각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기분만은 아닌지 검이 나아가는 길 자체도 명료해졌다.
‘이제 월영을 놓아줘야겠네.’
내 옆을 지키던 검인 창백한 월영은 희귀 등급.
가진 능력도 출중해서 누가 쓰더라도 만족할 좋은 검이었다.
다만, 새롭게 얻은 ‘고요한 아침의 바람’이란 검에 비할 수 없기에 이제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할 시간.
날 떠나는 검의 새로운 주인 후보는 많았다.
스킬과 달리 귀속되지 않는 아이템이니 얼마든지 보내주면 될 뿐이다.
머릿속으로 몇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직 선물은 고작 하나만 열렸을 뿐이다.
* * *
“수만 년 동안 엘프들이 보살피고 아껴온 아이들이네. SH의 역량과 우리의 지원으로 이곳에 새롭게 정착시키기에 충분할 거니 부디 아껴주시길.”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을 인벤토리에 넣으니 나시르가 준 두 번째 선물은 작은 상자.
이미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예를 갖춰서 대답했다.
넘겨받은 상자는 내가 아닌 이윤정에게로 바로 전달되었다.
“대표님. 이건 말씀하신 대로 따로 부서를 만들어서 집중 관리할게요.”
“나시르님이 많이 도와주신다고 했으니까 문제 없을 거예요.”
“저희야 나시르님이 도와주시면 여러모로 너무 좋죠.”
말을 받는 이윤정은 나시르를 보고 싱긋 웃었다.
마주 웃는 나시르를 보고 차인규의 이마에 핏줄이 솟은 건 잘못 본 걸까?
어쨌든 내가 넘긴 상자에 담긴 건 엘프들이 키우는 여러 식물의 씨앗이었다.
엘프들이 직접 관리해오며 개량되고 선별된 시간만 수만 년을 거쳐온 씨앗.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긴 세월이 담긴 노하우의 산물이니 기대가 안 될 수 없었다.
점점 늘어날 컴퍼니 직원들과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식량은 필수적인 자원이었다.
세계수 덕분에 생산량이 늘어난 약초밭에 새로운 씨앗까지 더한다면 아마 커다란 걱정 하나를 덜어낼 수 있을 거다.
나시르의 장담도 있었으니 지켜보기만 하면 될듯했다.
“그리고 이건 특별히 제가 직접 관리하며 알려드릴 사안들입니다.”
세 번째 선물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니었다.
나시르가 말하며 넘겨준 서류는 일종의 프로젝트 계획서였다.
언어 패치를 끝낸 그가 번역한 계획서의 제목은.
‘SH 마탑 설립 계획. 좋구나.’
엘프들을 대표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활, 또 다른 하나는 정령술을 포함한 마법이었다.
정령술과는 달리 일반 마법은 인간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무엘레스는 마법을 가르치고 발전시키는 마탑을 틈새의 오두막에 세울 계획이었다.
나시르의 또 다른 임무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법은 인간에게 너무도 생소한 학문이다.
그렇지만 우주에서는 가장 커다란 축을 이루는 학문이자 힘, 권력을 갖는 수단이기에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굳이 골드를 들여서 마탑 건설을 요청한 건 그래서였다.
“마팀장님.”
“아, 네. 여기있습니다.”
마탑을 세우고 마법을 연구하는 일은 나에게는 그다지 적합한 일은 아니다.
마법이란 학문 자체는 너무 흥미롭지만, 몸이 하나인 이상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나보다 더 잘 해낼 인재가 있다면 맡기면 될 뿐이다.
지금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얼굴로 나오는 남자의 이름은 마규진.
한국대를 17살에 입학하고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후 25살에 외국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돌아온 미친 남자였다.
몇 년만 지나면 최연소 한국대 물리학 교수직을 받았을 그는 교수가 되기 전 아포칼립스를 먼저 맞이했다.
“나시르님이 주신 계획서입니다. 꼼꼼하게 확인하고 차질 없게 준비해주세요.”
“으으. ······제가 잘할 수 있을지.”
“할 수 있는 최선만 다하세요. 혼자 하시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나시르님이 많이 도와주실 겁니다.”
“에휴. 잘 모르겠네요. 일단 계획서부터 검토할게요.”
죽을 뻔한 그를 살린 것이 바로 남동규였다.
천재라고는 하나 야만의 시대로 바뀐 세상에서 너무도 유약했던 그는 그렇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재능을 알아본 게 나는 이 일의 적임자로 그를 낙점한 거다.
‘몇 번이나 읽고서 겨우 이해했어. 진짜 천재는 확실해.’
어느 날 나에게 전달된 기이한 노트 한 권.
그곳에는 마력이란 존재를 지구의 지식으로 재해석한 논문이 담겨있었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마규진이었고.
그가 쓴 글을 읽은 멜라파까지 감탄할 정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천재였기에 이 일에 적임자라고 확신했다.
물론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마규진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못 생긴 인간.”
그리고 정말 문제가 될 마지막 선물이 남았다.
* * *
골치 아픈 일은 그래도 일단 뒤로 미룰 수 있었다.
벌써 저녁 먹은 후가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으니 지금은 그냥 잊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지구의 태양이 반가울 뿐이었다.
“출발합니다.”
지구의 시간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타로 스트림을 넘어 이벤트에서 보낸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달리는 일은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옆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들 역시 묘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오히려 이 지구가 어색해진 모양.
그래도 땅을 밀어내는 발에는 힘이 넘쳤다.
‘일단 이것부터 다시 확인해야겠지?’
최대한 은밀하게 달리며 속도를 높여 부산으로 가는 것이 관건.
‘들리지 않는 메아리’로 의사소통을 나누니 딱히 입을 열 것도 없었고, 내가 따로 지시할 것도 없었다.
현장을 지휘하는 건 차수현이나 차인규면 족했으니까.
그사이 나는 짬을 내어 내가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미션이 먼저였다.
파라라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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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프 영웅의 제단 개요
새로운 히든 미션이 하달되었습니다.
하기 개요를 참고하여 미션을 완수하길 바랍니다.
1. 미션의 등급은 ‘히든’ 등급으로 지정.
2. 미션의 목표는 ‘엘프 영웅, 아자리아 벤자나’의 제단을 세우는 것.
3. 보상은 결과에 따라서 차후 결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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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개요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할칸트라에서 온 신입 직원들의 요청이 반영된 제단 설립이 목표.
내 활에서 인연이 닿은 아자리아의 제단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들게 했지만 말이다.
‘그냥 알아서 만들라고 하면 망하는 거겠지?’
미션이 왔다, 그것도 히든으로.
무언가 보상이 있을 거라는 의미인데 마구잡이로 고토익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
미션이 오고 제단 설립을 멈추라고 전했지만, 새벽의 모습을 보면 길게 기다리게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지인들에게 정보를 얻으라고 했던가?’
[※ Tip. ‘엘프 영웅, 아자리아 벤자나’의 지인들에게 정보를 수집하세요.]팁이라고 온 메시지는 이러했다.
아자리아의 지인에게 정보를 얻어서 제단을 만들라는 것.
그리고 그의 지인이라면 확실한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
‘소환.’
휘오오오옷.
활에서 바람이 불어나오며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곧 모습을 드러낸 엘프들.
《세계수에 새긴 약속에 따라 이곳에 왔다. 벤자나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걸음이 되게 해주거라.》
소환하게 되면 인사와도 같은 말을 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아슈리탄.
이제는 이목구비가 선명해져서 그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가 짙어졌다.
그리고 그는 제단의 주인인 아자리아의 아빠이기도 했다.
《우리가 상대할 몬스터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용건이 있는 건가?》
“네.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요.”
《알겠다. 모두 흩어져서 몬스터를 처리해라.》
아슈리탄은 내가 질문 때문에 소환했다고 하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엘프들을 사방으로 사냥 보냈다.
제법 긴 소환 시간을 굳이 낭비하지 않는 모습에서 효율을 따지는 엘프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비슷한 성향이기에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 채로 그에게 물을 수 있었다.
《제단? 아자리아의 제단을 세운다는 말인가?》
“그렇게 됐어요. 지금은 히든 미션까지 발동한 상태고요.”
《미션까지. 그것도 히든이라면 범상치 않은 일이다. 잠시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정을 설명하니 살짝 당황한 아슈리탄.
그는 자신의 딸을 위해 세워질 제단임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5분여를 고민한 그의 입이 열렸다.
《사실 난 아자리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내가 먼저 세계수님의 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모두 성인으로 활동하기 전이라서 원하는 답을 주기는 힘들다.》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그는 분명 아자리아가 엘프의 영웅인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직접 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일찍 곁을 떠났을 줄은 전혀 몰랐다.
아마도 이 활의 소환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자리아의 삶을 조금 엿본 게 전부인듯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그대에게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이 아자리아와 오랫동안 같이 해온 친구가 있지 않은가.》
“······그렇군요.”
아슈리탄의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미션을 받자마자 나도 떠올렸던 존재였고.
‘해야 하는 건가?’
아직 영웅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대로 찾지도 못한 상황.
고작 두 번밖에 남지 않은 기회를 이렇게 써야 하는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휘오오오옷!
하지만 고민하지 말라는 듯 활에서 불어나온 부드럽고 따스한 바람이 날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