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76
077. 초월. (4)
077.
아자리아의 바람은 활이라는 무기지만, 실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궁으로서의 가치가 아니었다.
진화를 마치고 영웅 등급에 올라서며 화살을 쏘는 무기로써 막강한 모습을 보여준 지금과 달리 말이다.
오히려 소환물을 불러내는 소환 도구로서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능력이 바로 ‘벤자나 레인저’ 소환.
모두가 뛰어난 전사이자 술사인 엘프.
그들 중에서도 뛰어난 전사들을 뽑아 만든 레인저들이 바로 내 소환물이자 이 활이 가진 진정한 가치였다.
휘오오오오옷!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미 유일 등급일 때도 등급 이상의 가치를 보여줬다고 생각한 아자리아의 바람.
그런 아이템이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격을 갖추었으니 기대가 안 될 수 없었다.
빠르게 모여드는 바람이 모습을 갖출수록 가슴도 덩달아 뛰었다.
‘하나, 둘······ 숫자는 그대로야.’
진화라는 말이 붙게 변하는 능력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소환되는 숫자의 변화였다.
기존의 열두 명의 엘프가 전장의 흐름을 바꿨던 걸 생각하면 단순히 늘어나는 숫자만으로도 영향력을 막대하게 커질 거다.
하지만 이런 내 기대는 앞에 모습을 갖추는 열두 엘프들을 보고 사라졌다.
그렇다면 양이 아니니 질의 차이일까?
숫자가 그대로라면 소환되는 아슈리탄과 그의 레인저들이 강해지는 거 아닐까?
강화했을 때도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됐다.
“세계수에 새긴 약속에 따라 이곳에 왔다. 벤자나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걸음이 되게 해주거라.”
“······아.”
아자리아의 바람이라는 활에서 시작된 바람이 뭉쳐 모습을 드러낸 벤자나 레인저.
그들의 가운데에서 날 바라보며 말을 전하는 아슈리탄의 멘트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머리가 아닌 귀로 전해지는 말에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와. 개존잘.”
“어머. 너무 잘생겼다.”
머리로 전해지는 텔레파시가 아닌 목소리로 전해지는 육성.
그 말이 들려온 의미는 내 앞의 아슈리탄이 바람의 몸이 아닌 온전한 육체로 소환되었다는 것이었다.
미친듯한 잘생김을 뽐내면서 말이다.
“긴 세월이라 잊고 있던 감각들이라 어색하군. 적응이라고 말하면 웃기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어.”
“아자리아님이 아슈리탄님을 많이 닮았네요.”
“당연한 소리. 내 아이인 아자리아는 당연히 나와 세슈마할을 닮을 수밖에.”
“세슈마할이요?”
“그 아이의 엄마이자 나의 반려다. 세슈마할 벤자나. ······그녀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다.”
아련한 얼굴의 아슈리탄이 말한 세슈마할 벤자나.
그와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등장한 이름이었다.
단순히 모습을 갖춘 것이 끝이 아니고 기억도 상당 부분 돌아온 거처럼 보였다.
“그런데 소환 시간이 사라졌네요?”
“비록 아바타이기는 하나 온전한 기억을 품었던 몸을 되찾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소환을 마치고 알게 된 놀라운 일은 소환의 지속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거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슈리탄은 생전의 몸은 아니지만, 마력으로 만든 육체인 아바타로 모습을 드러낸 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이거······ 마력 소모가 장난 아니네요. 잘해야지 두어 시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겠어요.”
12명 엘프의 육체를 구성하는 건 내 마력이었다.
아자리아의 바람이라는 매개체가 있으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였으니 당연한 일.
그리고 아바타를 구성하는 건 나에게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공구 합체술까지 써야 할지도 몰랐다.
“아직 많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부대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력이 벽을 넘어야 할 거다. 그전까지는 나만 곁을 지켜도 충분할 거다.”
“벽이요?”
“성장하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는 상황에 대한 아슈리탄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전투가 아니라면 자신의 제외한 다른 레인저들을 소환 해제하는 것.
그리고 최종적인 해결 방법은 벽을 넘으라는 것.
벽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없는 듯 말을 아끼는 아슈리탄.
아마도 레벨이나 컴퍼니와 마찬가지로 어떤 수치에 도달하면 미션이나 막대한 경험치를 요구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은 먼일이니 머리 깊이 넘어두고 지금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 고릴라 같은 인간 하나만 날뛰는 건 일부러 그런 건가?”
“지원한 거라 일단 허락했습니다.”
“그냥 놔두면 죽겠군.”
“그런가요? 안 그래도 불안해서 지원을 나갈 생각입니다.”
“우리보고 가라는 거군. 우리 역시 변한 몸에 적응할 필요가 있으니 나쁘지 않은 기회다. 비알레서.”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아슈리탄은 뒤에서 한 엘프를 불렀다.
그의 부름에 앞으로 나서는 엘프는 엘프답지 않게 몸이 상당히 좋았다.
“적당히 도우면서 몸을 풀어라.”
“형님. 간만인데 제가 하면 안 됩니까?”
“나중에 얼마든지 날뛸 시간을 줄 거다. 말이나 들어.”
“쳇. 하여튼 고지식하다니까.”
몸만 특이한 게 아닌지 상당히 말도 가벼운 엘프였다.
나시르 같은 엘프가 있으니 저런 엘프가 벤자나 레인저에 있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숱하게 불러냈던 소환에서 저런 모습은 처음이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내 동생인 비알레서다. 가문의 창피함을 담당하고 있지.”
“쿨한 성격인 거 같네요.”
“망정 맞은 놈이지만, 실력은 진짜니 걱정할 필요 없다. 진화하며 나 말고도 대부분 과거를 되찾으면서 나온 결과물이니 받아들여라.”
“큭. 네. 전 좋아요.”
가문의 창피함이라고 말했지만, 아슈리탄의 동생이라면 아자리아의 삼촌이 된다.
모두 혈족으로 구성된 엘프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 일.
비알레서를 보고 다시 다른 엘프들을 보니 조금씩 특징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마저 확인하기 전에 늑대들과의 전투가 시작됐다.
* * *
“탈리아와 제스타리가 2분대를 이끌고 오른쪽을 도와라. 비알레서가 왼쪽.”
“형님은 여기서 꿀 빨게요?”
“······제발 그냥 조용히 말 좀 들어라.”
“우우우. 나도 놀고 싶은데.”
“빨리 좀 가!”
늘 진중하고 차분한 모습만 보여주던 아슈리탄이 큰소리를 내다니.
투덜거리며 좌익을 도우러 가는 비알레서는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한 강자였다.
“후우. 저 녀석만 소환 해제할 수 없나?”
“그래도 아까 보니 실력은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였어요. 조금이라도 전력을 끌어내야죠.”
“하아. 어떻게 몇백 년이 지났는데도 조금도 철이 안 들 수가 있는 건지. 세계수님이 이파리를 떨굴 일이야.”
곤란한 표정의 아슈리탄은 그거대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숨을 쉬는 아슈리탄의 걱정이나 한탄과 달리 난 솔직히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비알레서가 보여준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최소 저 아리따운 두 엘프님들도 저 형님 엘프처럼 강하다는 거지?》
《그런 거지.》
《이거 양쪽이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밀어붙여도 되겠네.》
비알레서가 쌍두랑들과 싸우는 걸 목격한 사람들의 의견은 이동찬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고토익이 힘겨워할 때 순식간에 늑대들의 머리를 하나씩 날린 검술은 소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거기다 비알레서보다 더 강하다는 게 아리따운 두 엘프라는 탈리아와 제스타리.
역시나 벤자나 레인저에 속한 엘프로 아자리아의 이모라고 했다.
세슈마할이라는 아자리아의 엄마의 여동생들이라는 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그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들 대표님 말 들었죠? 알아서들 조절하면서 밀어붙이세요. 여기서 싹 다 잡아버립시다!》
아름다운 엘프들을 봐서 그런지 텐션이 마구 올라간 이동찬이 소리가 울리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난 그래도 의견에는 불만이 없으니 활을 들고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 전면전입니다. 전선을 조금씩 끌어내며 섬멸합니다.》
좀비와 늑대들을 격파한 우리지만, 겉으로 보이는 숫자는 여전히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과 그린 스킨 간의 전투에서는 열외된 상태.
하지만 확실한 뒤를 잡았으니 서서히 조여서 모조리 잡아버릴 생각이었다.
“진호형.”
“후우. 준비 됐어.”
“무리하지 마요.”
축제 포인트를 모으고 부산의 일부를 수복해서 바다로 나갈 길을 여는 게 주목적이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온갖 궂은일을 하며 내 옆에 있던 탁진호의 복수.
그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었다.
부모님을 잃은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이동찬이 그의 옆에서 도울 거였다.
아직도 수만의 괴물이 모여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싸우는 전쟁터로 뛰어드는 일.
목숨을 걸어야 할 가장 앞에는 내가 서야만 했다.
그것이 아포칼립스에서 대표이자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시죠.”
“로드와 샤먼이 목표겠지? 길은 내가 만들겠다.”
“아니요. 오늘은 제가 하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족한 점을 살펴주세요.”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은 일이지.”
내 옆을 지키는 아슈리탄에게는 싸우는 대신 옆을 지켜달라고 했다.
지금 보여줄 궁술이 그에게 어떻게 보일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는 후방에서 열심히 해골 완드를 흔드는 오크 샤먼이 첫 타깃이었다.
끄그긍.
휘옷, 티디디디디딕.
“흐으읍.”
활시위가 끊어지게 잡아당기고 마력을 모았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람은 점점 화살의 크기를 키워 어지간한 창보다 커다랗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커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손을 놓았다.
투앙────!
허공에 짙은 녹색의 궤적을 남기며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
크기 때문에 숨기기에는 너무 커다란 존재감이 느껴지는 첫 공격이었다.
원래는 적을 은밀하게 맞추는 것이 등 뒤의 화살이 가진 최고의 장점일 거다.
하지만 선명한 궤적과 부드럽게 퍼지는 마력 때문에 존재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연히 타깃이 된 오크 샤먼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꾸애애액? 꾸액! 홍홍홍홍!”
인간들을 죽이는 축제에서 여유를 부리던 괴물은 뒤에서 시작된 기습에 당황했지만, 멍청하게 가만있지는 않았다.
괴이한 소리를 내며 완드를 흔드는 괴물 주술사의 주위로 거대한 마력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피를 닮은 거대한 방어막이 생겨났다.
푸욱.
쩌적────!
붉은색 장막에서는 피 냄새가 풍겼다.
날아간 화살로는 뚫어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말이다.
그리고 염기로 인해 폭발하는 화살은 역시나 주변의 오크들을 날렸지만, 괴물의 보호막을 없애 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궁술이 아닌 내 스킬 염력이 만들어낸 효과.
폭발한 화살이 품고 있던 진짜 힘은 오크 샤먼이 불러낸 피의 방어막을 지우는 것이 아니었다.
“꾸액! 꾸애애애액!”
촤좌자자자자작!
빠르게 자라나는 나무들은 붉은색 피의 방어막을 감싸 안았다.
오크 샤먼뿐만 아니라 그를 지키던 괴물들까지 한 번에 둘러싸는 숲이 일순간 생겨난 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뿌드드드득.
콰득, 콰드드득.
“꾸액!”
“크어어어억!”
수백 마리의 호위에 둘러싸인 괴물 주술사는 빠르게 사라지는 피의 장막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무란 존재는 원래 어떤 것이든 썩여서 양분으로 삼는 정화의 상징.
부패한 피로는 나무가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다.
띠링!
[‘오염된 피로 목욕한 오크 샤먼’을(를) 해치웠습니다.].
.
.
쏟아지는 메시지와 달리 성과를 낸 것은 고작 한 발의 화살.
극한의 상성을 가졌다고 해도 압도적인 결과였다.
전장에 있는 모두가 순간적으로 침묵하며 오로지 나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저 멀리서 생존을 도모하는 수많은 컴퍼니와 그들을 노리며 축제를 즐기던 괴물들 모두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놀라워하는 이는 따로 있었다.
“······신목의 술. 그 아이의 궁술. 그걸 얻었구나.”
아련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슈리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신목(神木)의 술(術).
엘프 영웅이라고 불리는 아자리아 벤자나, 그녀만의 궁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