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8
008. 우물 밖. (3)
008.
“커흑! 헉, 헉, 헉!”
조르던 목을 풀어주니 격한 숨을 몰아쉬는 김탁균.
확 하고 풍겨오는 입 냄새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휙, 퍽.
“크윽.”
“괜히 나대지 마세요. 지금까지 많이 참았으니까.”
짜증을 담아 한쪽 소파에 김탁균을 던져 버렸다.
정신을 못 차리는 그에게 마력을 섞어 말하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력은 생명체를 압박하는 힘이 있는지 얼굴이 빨개진 김과장은 눈도 못 마주치고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확실히 마력을 올리니까 좋네.’
잔여 능력치 ‘5’를 모두 마력에 투자하니 꽤 묵직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 힘으로 펼친 스킬과 마력 그 자체는 아주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띠링!
──── ◆ SKILL ◆ ────
[ 이름 : 보이지 않는 손 ] [ 종류 : 발동(發動) ] [ 등급 : 희귀(稀貴) ] [ 능력 ] ▶ [ 염력 ](Lv. 001)▶ [ 염기 폭발 ](Lv. 001)
──────────────
‘이 정도 마력이면 염력을 10분 정도는 문제없게 쓸 수 있겠네.’
김탁균을 허공에 들어 올린 힘은 각성의 방에서 얻은 두 번째 보상.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스킬은 희귀 등급이라서 그런지 두 가지 힘을 품고 있었다.
그 중 첫 번째 힘인 염력은 내 의지로 움직인 마력만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었다.
스킬로 허공에 사람을 들어 올리고 던지기까지 했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엄청난 물리력을 행사한 것에 만족감이 상당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악스러운 장면이었겠지만.
“저 서후씨. 혹시 각성이란 걸 한 거야?”
“어, 맞아. 그런데 선아야. 오빠한테 말이 좀 짧다?”
“아. 내가 그랬나. 미안해요, 오빠.”
모두가 놀란 와중에 빠르게 포지션을 옮기는 건 김선아였다.
딱히 나에게 잘해준 것도 잘못한 것도 없는 그녀였는데 확실히 눈치는 빠르다.
오빠라는 말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뽑아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말 떠날 거예요? 여길 나가면 괴물들이 엄청 많을 건데.”
“당연히 많지. 그래도 그거 잡고 집에 가야지. 여기 남아서 저 돼지 같은 새끼들 노예라도 될 생각이야? 그런 취향이었어?”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혹시 나도 오빠 따라가면 안 돼?”
“글쎄다. 우리가 벌써 사람이 꽤 많아서.”
“우리? 오빠 벌써 팀을 짠 거야.”
“당연하지. 같이 싸웠던 사람들끼리 떠날 거야. 이 지랄 맞은 곳을.”
사실 여기 있던 시간이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음식과 휴식을 보장받은 곳이니까.
그렇지만 노예 계약을 제시한 순간, 이곳은 지옥이 됐다.
살아남기 위해서 노예가 된다는 것은 선택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랬구나. 벌써 팀을 짰구나. 혹시 나도 끼면 안 되는 거야? 나 정말 여기 있기 너무 싫어.”
“흐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선아, 너 정도면 괜찮을 것도 같긴 해. 내 생각은.”
“진짜? 나 잘할게. 오빠가 시키는 거 다 할 거니까 꼭 되게 해줘. 응? 응? 알았지?”
“얘기해 보고.”
지금까지 확보한 인원은 고작해야 셋.
빠르게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인원이지만, 부족한 느낌도 있었다.
‘각성만 하면 1인분은 전부 할 수 있을 거야. 정 안 되면 밥이라도 책임지게 하면 되고.’
귀찮게 밥하고 정리하는 일은 도맡아서 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김선아의 합류는 생각해볼 법한 사안이었다.
“서후야. 나도. 나도 같이 가고 싶어.”
김선아의 합류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또 다른 지원자가 나왔다.
얼굴이 창백한 신민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너도? 넌 나 싫어했잖아. 그런 너하고 어떻게 같이 다녀.”
“내가 널 왜 싫어해. 누가 그런 모함을 했어. 절대 아니야.”
“그래? 안 싫어했다니 놀랍네. 그런데 왜 나하고 같이 가려고”
“여기 남으면 어떻게 될지 알잖아. 평소에도 날 뱀 같은 눈으로 보던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 노예가 되는 건. 아, 정말 싫어.”
그녀의 말대로 싫긴 정말로 싫을 거다.
나에게 개 같이 군것과 별개로 신민희는 일반인 중에서 탑클래스의 외모를 가졌다.
당연히 회사 안에서도 은근슬쩍 성희롱하는 미친 인간들이 많을 수밖에.
그런 일을 겪어온 그녀가 이곳에 남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를 상황이 펼쳐질 거다.
‘그런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
문제는 신민희가 그러든지 말든지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거였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정이라도 쌓았다면 내가 손을 먼저 내밀었을 여자.
그렇지만 이제 저 외모마저 눈에 안 들어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뭐, 생각해볼게.”
“정말이지? 진짜 나 믿어도 되지?”
“나 혼자 결정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다른 방법도 고민해.”
“아니야. 난 우리 서후 믿어. 내가 잘할게. 뭐든지 할 거니까 꼭 부탁해.”
신민희의 얼굴은 절박함으로 차올랐다.
꽤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 * *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
그렇지만 한때는 영광전자라는 중견 기업을 담았던 건물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 그럴싸하네.”
“그럼 임마. 내가 이 짓거리는 몇 년을 했는데.”
“몇 년이긴 나하고 똑같이 했지.”
아침에 떠난다고 말한 내 말을 지키기 위해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식량은 몇 끼 먹을 만큼만 챙겼고, 대부분의 시간은 무장하는 것에 투자했다.
방패와 창도 만들고 갑옷도 만들어 입어보며 시간을 빠르게 보냈다.
그래도 기구 개발을 2년 했다고 이동찬이나 내 손길은 제법 야무졌다.
완전히 이곳을 떠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됐다.
“서후씨.”
“아, 왔어요. 마음을 정한 건가요.”
“네. 서후씨 말대로 할게요. 잘 부탁해요.”
떠날 준비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사이 바라던 중요한 손님도 찾아왔다.
고민이 많았는지 같이 떠나는 걸 결정한 차수현의 얼굴은 여전히 그리 밝지는 않았다.
“잘 왔어요. 이제 다시 한 팀이네요. 그런데 보안팀장이 그냥 보내줬어요?”
“아니요. 끝까지 붙잡았어요. 여길 떠난다고 방법이 있지 않을 거라면서요.”
“그런 제안서를 내밀고 잘도 그런 소리를 하네요.”
“그게······ 저한테는 다른 제안서를 보여줬어요. 그렇게 악독한 게 아니라 많이 수정된 거로요. 아마도 팀장님은 그걸로 계약한 거 같아요.”
제안서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말.
제법 신선한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하긴 진짜 중요한 사람들은 그런 개 같은 제안서에 사인할 리가 없지.’
사람의 절망을 이용해서 마치 사이비 종교 같은 짓을 벌이는 영광 컴퍼니.
그러면서도 정말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치졸함까지.
속에서 역겨움이 차올랐다.
“그런데도 왔네요?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을 거 같은데.”
“맞아요. 마치 귀족이라도 될 거 같은 조건들이었어요. 그런데 봤거든요.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요.”
“네? 보지 말아야 할 거요?”
“그 사람들 이미 인간이길 포기했어요.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인간들이에요.”
자세히 말하지 않는 차수현이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됐다.
부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으나 현실이 된 느낌.
그래도 아직 고작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라는 생각에 혐오감이 더 짙어졌다.
“다 잊어요. 우리는 떠날 거니까.”
“네. 저한테 이런 제안 해줘서 고마워요.”
“그럼 저한테 잘해요. 크크.”
“훗, 그럴게요. 잘 부탁해요, 서후씨.”
애써 농담으로 심각한 분위기를 덮었다.
“그런데 더 같이 갈 사람은 없나요? 이렇게 네 명이 끝?”
아침이 밝아오면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여전히 이곳에 있는 건 원래 이 방을 쓰던 네 명이 전부.
너무 적은 숫자라고 생각했는지 차수현이 물을만한 질문이었다.
“아직 고민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회사 생활을 잘못한 건지. 아니면 운이 없는 건지 영 별로인 사람들하고만 일했어요.”
“야, 넌 고민이라도 하지. 난 고민도 안 들더라. 아주 지들끼리도 싸우고 염병하는 걸 보는데 그냥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와.”
내가 최종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김선아.
차수현까지 합류했으니 싸울 인원은 충분해 보였고, 자잘한 일을 처리하고 차수현의 말벗이 될 사람.
그런 사람으로는 김선아가 딱 맞긴 했다.
그런 반면에 이동찬은 회사 동료 중에는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아예 없다고 했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선배는 한 달 전에 그만둬서 정말 외롭다고 떠들었으니 예상했던바.
의외로 탁진호 역시 몇 명에게 같이 가자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차수현까지 합류하자 준비 속도는 더 빨라졌다.
싸울 무기도 더 다양해지고 물품도 거의 다 완비했다.
남은 시간은 간단하게 합을 맞추기도 하며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수호야! 나도! 나도 데려가! 지금까지 내가 잘못했어! 제발 날 버리지 마!”
다만 거슬리는 건 문 앞에서 소리치는 김탁균이었다.
미운 정이라는 것도 없는 인간이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치울까?”
“됐어. 어차피 잠깐 있으면 갈 거잖아.”
“아우, 목청도 좋아라.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런 김탁균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돼지 멱따는 절규를 배경 삼아 시간을 보냈다.
결국, 해가 떠오르고 떠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김선아가 마지막으로 일행에 합류했다.
* * *
“이미 한 10퍼센트는 떠난 거 같더라. 밤에 빠져나간 사람도 꽤 많아. 우리 떠나면 더 많아질 거 같고.”
건물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파악한 이동찬의 말.
녀석의 말대로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우리처럼 떠날 거 같은 분위기였다.
나름대로 준비를 잘 마친 우리를 바라보며 평가도 하고 참고도 하는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밖은 위험해. 수현아, 너까지 이럴 필요는 없어.”
그리고 비상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보안팀장인 이찬욱.
그의 시선은 다른 사람이 아닌 차수현에게 박혀있었다.
특전사에서 직접 그녀를 데려왔다더니 진심으로 아끼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수현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상사님.”
팀장이 아닌 상사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미 회사의 정을 뗀 상태.
그런 그녀를 본 이찬욱은 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앞에 섭니다. 천천히 따라오세요.”
이찬욱을 지나쳐 비상계단을 빠져나온 난 방패를 들고 제일 앞에 섰다.
손에 든 ‘화염의 단검’은 언제든지 ‘염력’으로 움직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끼이익, 퉁 하고 닫힌 방화문이 어떤지 긴장하게 만들어 손에 땀이 나게 했다.
하지만 내가 쉬는 동안 열심히 청소했는지 비상계단은 깨끗한 상태.
고블린 하나 없이 청소까지 되어 전혀 문제없이 내려올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일이 깔끔하게 흘러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또 뭐냐?’
그렇지만 이건 내가 예상한 그림이 아니었다.
8층 비상계단에 늘어선 건 사람들.
날 곤란하게 만들 거라 생각한 고블린은 없고 녹색이 아닌 붉은색 피로 젖은 일단의 인간들이었다.
“차수현. 빨리 이쪽으로 와! 거기 있으면 죽어!”
“아아. 저분이 이 팀장님이 말한 차수현양이군요. 확실히 괜찮아 보이는 분이네요. 이쪽으로 오시죠. 마지막 기회입니다.”
일행들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누가 봐도 어떤 상황인지 느껴질 장면이니까.
“곱게 보낼 생각은 없다는 거로 보면 되지?”
“곱게든 거칠게든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모두 제안서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알죠? 우리가 왜 이렇게 피에 젖어있는지.”
설마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이렇게 뒤통수를 치고 있었을 줄이야.
내 예상을 뛰어넘는 짓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그냥 보내줘도 너희한테 나쁠 것도 없잖아.”
“무슨 멍청한 소리입니까. 회사의 자산이 빠져나가는데 가만히 지켜볼 경영자가 어디 있다고. 가질 수 없다면 폐기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죠. 고르세요. 열심히 일할지 그냥 폐기당할지.”
여유 넘치게 말하는 사람은 얼굴만 아는 이름 모를 임원.
이미 사냥을 많이 했는지 느껴지는 마력이 상당했다.
같이 자리한 보안팀 직원들이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싸운다면 이기는 건 힘들어 보였다.
“끝까지 가겠다고 말한 건 그쪽이니까 후회하지 마.”
인간을 공격한다는 것.
인간을 죽인다는 것.
더 나중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내 손은 허공을 휘저으며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손끝에 스치는 종이 한 장.
띠링!
[‘유일 등급 용병 소환권’을 사용합니다.]더는 힘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