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insurance money from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94
095. 분홍 머리 그녀. (2)
095.
멜라파의 실력을 제대로 확인한 기억은 사실상 없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저 압도적이었기에 멍하니 바라본 게 전부.
검술 사부가 된 이후에는 배움을 받을 뿐이었다.
‘진짜 실력을 보는 건가?’
굳이 혼자서 상대한다며 앞으로 나선 멜라파를 믿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죽기 위해서 나설 고양이는 절대로 아니었고, 특히나 저 반짝이는 눈.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에 담긴 건 즐거움이었으니까.
“부디 금방 죽지 말라고.”
“건방진 것.”
탁, 핑!
건방지다고 말하는 뱀파이어 기사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레이피어.
하지만 첫 검은 멜라파의 더 빨랐다.
픽.
“크윽!”
달려들던 것보다 더 빠르게 뒤로 물러서는 뱀파이어 기사.
성큼성큼 물러난 괴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왼팔을 감싸 쥐었다.
거의 잘려나간 팔이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아물고 있었지만, 눈에는 경악이 차올랐다.
‘분광. 진짜 같은 분광 맞는 거야?’
카크루 검술 제7 초식, 분광(分光).
빛이라는 존재를 자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검.
그것이 방금 고양이 기사가 보여준 검이었다.
카크루 검술의 5 초식부터 8 초식까지를 모은 중 4 초식은 나도 익히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보여준 발검술은 내가 알고 있는 검술이 맞나 싶을 정도.
상대하는 흡혈귀가 놀라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쉬지 말라고.”
타닥.
다시금 달려든 멜라파의 검은 이번에는 좌우로 벌어진다.
그러며 어쩐지 방금과 같이 매서움은 없이 흐느적거리듯 춤을 시작한다.
거칠고 분노가 가득한 춤을.
채재재재재재재쟁!
“이이익!”
양손의 검을 마치 날개처럼 휘저으며 나아가는 멜라파.
그가 보여주는 것은 제5 초식, 적노(寂鷺)였다.
분노한 백로가 미친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는 괴이한 초식.
그런데 이런 미친놈 같은 검술에 기사라는 타이틀을 단 괴물이 속수무책을 밀렸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검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다.
“캬아아악!”
푸화아악!
밀린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두려움을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마력을 폭발시키는 괴물.
전신에서 뿜어지는 마력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지독했다.
그리고 이 모습에 움찔하며 틈이 보이는 멜라파.
이 틈을 놓칠 만큼 바보는 아닌 뱀파이어 기사는 레이피어를 뻗었다.
멜라파가 보여준 ‘분광’만큼이나 빠른 검이 허공에 일직선의 선을 그었다.
나아간 선은 너무도 허무하게 고양이의 두 눈 사이를 파고들었다.
“흠.”
그 모습에 아슈리탄이 탄성을 삼킨 숨을 뱉었다.
나선 것에 비해서 너무 허무한 끝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급격하게 바뀌는 흡혈귀 기사의 안색만 봐도 저게 어떤 초식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픽.
허공에 한 줄기 핏줄기가 솟구친 건 멜사부의 것이 맞았다.
그렇지만 그 피가 난 곳은 머리가 아닌 어깨.
그것도 살짝 스친 것에 불과해 몇 방울이 튄 것이 전부였다.
절호의 찬스라고 여기고 달려든 뱀파이어 기사의 얼굴은 이러니 당연히 굳을 수밖에.
커다란 기회를 놓쳤을 때, 자신이 투자한 것이 되돌아오며 짊어져야 할 책임을 느낀 거였다.
파밧!
“커헉!”
어깨의 작은 상처를 입은 멜라파가 휘두른 두 검이 적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저게 혈하. 진짜 목숨 내놓고 쓰는 거잖아.’
찰나의 시간을 다투어 적의 공격을 이끌고 피해낸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품은 검.
카크루 검술 제8 초식, 혈하(血河)는 바로 그런 검이었다.
휘오오옹.
피비비빙!
그리고 가슴의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두 검을 하늘로 휘젓는 멜사부.
그가 보이는 마지막 검이 무엇일지는 이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억!”
뱀파이어 기사를 난도질하는 검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졌다.
제6초 식인 환우(環雨)는 완벽하게 적을 반항할 수 없는 상태로 끌어 내렸다.
완벽한 승리였다.
‘이 와중에 시범이라니.’
그리고 이 전투 과정이 무엇인지 난 알 수밖에 없었다.
사부가 제자에게 보여주는 실전 강의였으니까.
* * *
뱀파이어 기사와 정면으로 싸우면 난 이길 수 있을까?
‘아자리아를 불러내면 어렵지 않지.’
지금 내가 가진 최강의 카드인 아자리아를 불러낸다면 큰 어려움 없이 이길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러한 답을 거꾸로 생각하면 아자리아가 없이는 쉽사리 승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 바로 뱀파이어 기사였다.
“생각보다 겉멋만 든 박쥐네. 마무리는 네가 해. 손 더럽히기 싫어.”
“······그래. 고맙다.”
날 곤란하게 만들 괴물을 고작 나에게 검술을 보여주는 교보재로 쓴 멜라파.
난 여전히 이 용병 기사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솔직히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래도 녀석이 양보해준 뱀파이어 기사는 고마웠다.
멜라파 역시 시스템을 쓰는 존재기에 경험치는 소중할 텐데 이렇게 양보해주다니.
의뢰인이자 대표라는 위치지만, 이건 제자에게 베푸는 사부의 호의였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냥 죽여? 신문이나 다른 건 안 하고?”
“왜? 노예로 만들고 싶어?”
“음. 솔직히 그렇지. 되기만 하면 상당한 전력이니까.”
호의는 호의고 합리적인 소비는 합리적인 소비였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괴물에 대한 처분 방식은 내 머리를 이성적으로 이끌었다.
“하여튼 너도 어지간히 대단한 놈이야. 그런데 안 돼. 저 정도의 괴물은 피가 너무 진해서 안 돼. 죽이는 거 말고는 다른 게 안 통해. 죽이거나 놓아주던가 선택해야 하는 거야.”
“그냥 죽이라는 거네.”
피가 진해서 강하고, 피가 진하기에 더 혈족에 구속된 뱀파이어 기사.
안타깝게도 이 괴물은 그냥 보내줘야 할 거 같았다.
내 손에 검이 들리었다.
“잘 가라.”
“······쿨럭. 보르센님이 너희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그럴지도. 그런데 그걸 넌 못 보네.”
써먹을 곳이 죽이는 것밖에 없는 괴물.
들고 있는 레이피어도 잘 봐야 희귀 등급이라 크게 욕심도 나지 않았다.
고요한 아침의 바람이 허공에 선을 그었다.
툭.
이런 엄청난 괴물도 결국 목이 잘리면 죽는다.
그리고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였는지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띠링!
[‘유리렌톨 혈족의 뱀파이어 기사, 탈론 유리렌톨’을(를) 해치웠습니다.] [시스템 경험치를 ‘150, 000’ 획득했습니다.] [‘150, 000’ 골드를 획득했습니다.]목을 베어내고 받아낸 경험치는 15만.
지금까지 가장 많은 경험치를 줬던 고블린 로드보다도 5만이 더 주었다.
새삼 우리가 어떤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빨리 안쪽을 살피죠.”
15만 경험치를 주는 괴물이 이 저택의 주인이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 이런 괴물을 거느리기 위해서는 몇 배나 더 강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몬스터의 둥지에서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했다.
“없는데?”
“이쪽도 없다.”
“······뭐야? 진짜 하나도 없잖아.”
그렇게 둘러본 지하는 감옥이 가득했다.
형태는 감옥이지만, 뱀파이어에게는 식량 창고이기도 한 공간.
그런데 그러한 곳들이 모두 비어있었다.
분명 틈새의 오두막으로 끌려간 뱀파이어는 이곳에 끌려온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앞에 놓인 곳에는 살아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곳곳에 놓인 인간의 뼈가 장소의 괴이함만을 전해주었다.
“그럼······ 아직 안 잡힌 건가?”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땅의 기억을 읽고 확인했던 한라 컴퍼니의 전력은 이 저택에서 살아남기 불가능한 수준.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그들이 잡혔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여기 없으니 잡히지 않은 게 아닐까?
하지만 멜라파가 말한 아닐 수도 있다는 말.
그 뒤에 숨겨진 말에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음?’
절망이 찾아오려는 그때, 무언가가 눈에 잡혔다.
오로라 비전이라는 또 다른 눈에 반짝하고 무언가가 보였다.
* * *
홀리듯 찾아간 곳은 지하의 가장 깊숙한 곳.
어둠이 짙고 모두가 찾지 않을 거 같은 장소에는 특별함이 없었다.
하지만 난 손을 내밀었다.
찌이이잉!
“큭.”
정전기가 온 거처럼 손끝이 찌릿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 막는 마력이 만든 방벽이었다.
“호오. 이런 걸 숨기고 있었네.”
“마력 패턴을 풀어서 여는 방식이다.”
“그러네. 루미타로 패턴 같은데.”
“흠. 흔하게 쓰는 패턴은 아니군. 풀 수 있나?”
“이봐, 반요정. 보면 몰라? 나 검사야, 검사. 이걸 어떻게 풀어.”
“보다시피 나도 궁사다. 어려운 일이군.”
날 빼놓고 둘이 대화를 나누더니 결론은 안 된다?
“마규진과 김사율을 데려와. 그 둘이면 풀 수 있을 거야.”
그러곤 직원을 호출하란다.
당연히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불러냈다.
“으. 여기 힘이 빠져요. 마력이 빵이 됐어.”
“그러게. 마팀장은 마력 좀 올리라니까. 난 아직 살만해.”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페널티를 먹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마력 능력치 20 깎이는 게 장난이 아니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걸 보시고 패턴을 풀어야 해요. 사실 저도 이게 뭔지 잘 모르고 여기 두 분이 조금이라도 도와주실 거에요.”
“오호. 이거 굉장하네요.”
“이, 이런 건 그냥 김사율 팀장만 시키면 안 되나요?”
당연하게도 거부는 거부했다.
마력도 없어지고 뱀파이어 남작의 저택이 무서운 건 알겠지만, 안되는 건 안 되는 것.
필요한 일은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지금 발견한 무언가가 과연 정답일까?
잡혀 와서 저곳에 가둬뒀을 가능성은 얼마나 클까?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기대감에 포기할 수 없으니 일을 맡기고 난 나대로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걱정을 덜어줄 이들이 찾아왔다.
“막아! 남작님의 명령이다! 무조건 막아!”
우르르 몰려드는 뱀파이어와 그 권속들.
“오호라. 우리가 제대로 건드렸나 보네. 걱정 말고 일들 해. 저건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히이이이익! 싫어요! 돌아갈래!”
“안 닥치면 후회하게 해줄게.”
“흐으읍!”
몬스터를 본 지 너무 오래됐는지 바들바들 떠는 마규진.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달려오는 괴물들이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 멜라파였다.
길을 알려줄 괴물들을 반기는 고양이의 살기에 마규진은 열일 모드로 바뀌었다.
‘숫자가 많아. 일단 막자.’
몰려오는 걸 보면 이곳이 중요한 곳은 확실한 거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유리한 장소를 포기할 필요 없으니 활을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마력을 끌어모아 쏘았다.
촤자자자자자자작!
솟아나는 나무들은 빠르게 지하 공간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뱀파이어라면 모를까 권속들로는 저 작은 숲을 넘을 수 없을 거다.
퉁퉁퉁퉁퉁퉁!
그리고 숲은 쏘아대는 화살로 더욱 짙어져 갔다.
“잡아 왔다.”
“······언제 잡아 온 거야. 빠르기도 해라.”
열심히 내가 장벽을 만드는 사이 사라졌던 멜라파가 돌아왔다.
녀석의 손에는 기절한 뱀파이어가 두 마리 잡혀있었다.
어쩐지 벌써부터 저 괴물들이 불쌍해졌다.
“끄어어어어억! 살려줘!”
“아악! 잘못했어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까아아악!”
그리고 아까 봤던 장면이 다시금 펼쳐지고 있었다.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고문의 현장.
인간 문명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라면 질끈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빠, 빨리 좀 해요. 여기만 풀면 된다고요.”
“어어. 다 해가요. 우와, 여기 봐봐요. 이건 우리가 응용할 수도 있겠는데요.”
“지, 지지지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 빨리요!”
그 모습에 안 그래도 멜라파를 보며 무서워하던 마규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반면에 하나도 관심 없다는 듯 웃으며 마력 패턴을 푸는 김사율.
상당히 비교되는 두 사람이었다.
찌이이이잉, 파칭────!
그리고 겁에 질린 마규진의 잠재력이 폭발하며 숨겨진 벽을 막던 패턴이 풀렸다.
가끔은 이런 현장에 데려와야 싶은 폭풍 성장이었다.
“드, 들어갈게요!”
“대표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내 마음도 모르고 두 사람은 후다닥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일을 잘 마쳤으니 오늘은 그냥 보내주기로 했다.
덜컹.
드드드드드드득.
서서히 열리는 문은 내 관심을 떠나간 이에게서 빼앗아 갔다.
“······핑크?”
그리고 보이는 건 핑크색.
내가 바라던 그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