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6
제397화
아르카에 깃든 푸른 기(氣)를 바라봤다.
세계수 휘두르기 1단계를 쓴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정말로 검기였다.
세계수의 마나로 만들어진 검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난 분명 검기를 쓸 줄 몰랐는데.
지금껏 사용해 본 적도 없고 뿜어내려고 애써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왜 되는 거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믿을 수가 없어서 한진환을 바라봤는데, 그는 관심 없다는 듯 술을 마시려고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무기가 꼬리로 후려쳤다.
한진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기를 바라봤다.
“너무하네. 술도 못 마시게 하는 거야?”
「이건 우리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인간이 마시면 단순히 식중독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오오. 몬스터 전용 술이란 거지? 요즘엔 이런 것도 팔아?”
“제, 제가 빚었어요!”
“수정 씨가요? 저런 술을 빚어내다니…. 역시 대단하시네.”
한진환이 무기가 마시는 술을 보며 감탄했다.
그가 감탄을 흘리자 홍수정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히끅! 저, 저를 아세요?”
“엥?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엘릭서를 제조하신 분인데.”
“아, 맞다.”
콩!
홍수정은 스스로 꿀밤을 때렸다.
그 모습을 보고 한진환이 귀여운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도 그처럼 어이가 없었다.
검기를 뿜어내게 해 놓고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게 당황스러웠다.
도희를 포함한 다른 녀석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한 선배.”
“응?”
“어떻게 한 건지 설명 좀 해주시죠?”
“설명까지 해줘야 해?”
푹, 푹.
한진환이 플라스틱 나이프로 조각 난 스테이크를 찔렀다.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스테이크를 빼먹고, 나이프에 묻은 스테이크 소스도 쪽쪽 빨아 먹는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니, 맛있나 보다.
“안 차갑네? 아. 그릇을 따듯하게 데웠구나. 똘똘한걸?”
“…….”
“응…? 아. 맞다. 설명해달라고 했지.”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는 나이프로 그릇 위의 스테이크를 찔러 먹었다.
동그랗게 으깬 감자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이 양반 혹시 식사를 못 했나?
그런 의문을 느낄 때쯤 한진환이 쩝쩝거리며 설명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도희가 공격 마법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검기를 뿜어낸 아르카를 휘두르기 전에.
“그냥, 번개로 마사지 좀 한 거야.”
“마사지?”
“검기를 쓸 때 사용하는 근육을 건드려서 검기를 뿜어내기 쉽게 만들었다는 소리다.”
“그, 그런 게 가능하다고요?”
“가능하니까 네 오빠가 검기를 썼겠지?”
푹…!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나이프로 피자를 찔렀다.
스테이크를 다 먹어치웠으니 이제 피자를 없애버릴 요량인 모양이었다.
번개로 근육을 건드려 뿜어내기 쉽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걸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가지치기라는 스킬로 신체를 재구성하는 놈이 이런 걸 의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다.
다만, A+등급 몬스터인 무기와 임페일조차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는 걸 보면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다.
특히 같은 번개를 다루는 무기는 입까지 쩍 벌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었나 보다.
이해한다.
무기는 타인이 검기를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지금까지는.
「아쉽군…. 내가 해줄 수 있었다는 말 아닌가.」
무기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왜 저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신을 향한 책망도 느껴졌다.
“아니.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무기님.”
“맞아, 맞아. 저런 짓을 생각해낸 한진환 선배님이 이상한 거니까.”
도희와 태천이 무기를 위로했다.
두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무기가 쓴웃음을 흘리는 동안,
“번개 마사지로 검기를 쓰게 한다…. 저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군….”
“번개가 아니라 다른 속성 마법으로 자극해도 가능할까? 불이나 얼음은 위험… 아니. 번개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지…. 흠….”
“차라리 속성이 담기지 않은 마나로 하는 게 더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힐을 쓸 때의 마나라든가.”
한재임과 이현욱, 김보민이 의논을 나눴다.
아마 마나의 성질은 핵심이 아닐 것이다.
마나로 근육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것은 아마….
[세계수가 ‘순수한 마나’여야 한다고 전합니다.]역시.
순수한 마나를 지닌 자가 주변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리라.
그런 점에서 무기는 무리다.
같은 번개 속성인 데다가 순수한 마나를 지녔지만, 무기는 주변에 끼칠 손해를 걱정하지 않아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선행 조건을 충족하는 것부터 도희와 태천이뿐이로군.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한 사람 더 있다고 전합니다.]한 사람 더?
설마, 한재임이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한재임의 마나가 순수하게 변했다고 설명합니다.] [순수한 얼음의 마나라고 전합니다.]한재임이, 벌써 그렇게나 성장했어?
설지초 영약빨이 대단하긴 하네.
약값을 하는걸….
“뭘 보냐?”
-라고 따지는 한재임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른 한 씨를 바라봤다.
한진환은 나이프로 피자 조각을 돌돌 말더니 풀리지 않게 푹 찔렀다.
그 상태로 들어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먹는 방법 참 특이하네….
“그런데, 선배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왜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내가 숨겼으니까.”
“귀찮아질까 봐요?”
“내가 너냐?”
“…….”
한진환은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안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 이유도 아는 모양이다.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다.
“원래.”
순간, 한진환의 목소리가 변했다.
답지 않게 진중한 목소리에 진지한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세계수의 나무껍질에 허리가 끼었을 때 했던 말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믿었으리라.
나와 도희는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검기란, 끝없는 수련 혹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쓰게 되는 거야.”
놀랍게도 진지한 말이었다.
끝없는 수련, 혹은 깨달음이라….
맞는 말이긴 하지.
검기는 원래 평생 검을 수련한 이들만이 다루던 힘이었다.
그게 오랜 세월 거치면서 방법이 정립되고 또 정립되면서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물론, 그 많아졌다는 것도 전 세계 인구에서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는 수였다.
우리나라도 5000만 인구 중에 1~2만 명 정도 쓸까 말까 하니까.
“그런 걸 별 고생도 없이 갑자기 쓸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되겠냐?”
“……?”
“…설마, 힘에 취해 사고를 치는 인간들이 늘어날 걸 걱정한 건가요?”
“그렇지.”
한진환이 나이프를 도희에게 내밀며 긍정했다.
감히 누구한테 나이프를 겨눠?
째려보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음 피자를 공략했다.
이 양반 체구와 비교하면 엄청 잘 먹네.
저게 다 들어가나?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한진환은 지금 배고파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고 전합니다.]응?
그럼 왜 먹는 건데?
[세계수는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전합니다.] [현재 한진환이 음식을 섭취할수록 마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음식 속 양분을 마나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얼씨구….
자기가 무슨 폭식이라도 돼?
음식을 섭취한다고 왜 마나가 회복되는데?
“근데 왜 나한텐 선뜻 가르쳐준 겁니까?”
“넌 검기가 없어도 애초에 강하잖아.”
“아.”
즉.
검기를 배운다고 해서 힘에 취하게 될 일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의 말마따나 내게 검기란 공격 수단이 하나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수단도 아니다.
따스한 손길, 세계수 휘두르기, 솔라빔 등등….
검기보다 강한 위력을 보이는 스킬들이 아주 많다.
뿐인가?
내겐 재이가 제작해준 마나 칼날을 뿜어내는 아르카도 있다.
심지어 속성 에너지까지 담을 수 있는….
“…아.”
생각하다 보니 기억났다.
한진환이 내게 가르쳐주겠다고 한 건 검기뿐만이 아니다.
“검강도 가르쳐주셔야죠.”
“푸흐흐….”
그가 갑자기 웃음을 흘렸다.
내가 한 말이 그렇게 웃겼나?
고개를 돌려 보자 도희와 태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한진환이 웃는 이유를 모르는 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왜 웃어요?”
“야. 너 같으면 안 웃고 배기겠냐? 이미 쓰고 있으면서 뭘 가르쳐 달래?”
“쓰고 있다…고요? 이미?”
반문하며 아르카를 바라봤다.
목검 형태의 아르카엔 세계수의 마나로 만들어진 검기가 솟아나 있었다.
이게 검강이라고?
어떻게 봐도 검기인데?
“넌 검강이 뭐라고 생각하냐?”
“글쎄요?”
검강은 한진환한테 들은 게 전부다.
실제로 본 것도 조주현이 쓴 것을 본 것뿐.
심지어 검강을 직접 보고서도 검기와 뭐가 다른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새싹이 덕분에 위력이 훨씬 강해졌다는 것만 알았을 뿐….
“이게 검기.”
한진환이 플라스틱 나이프에 검기를 둘렀다.
“그리고….”
빠직…!
빠직, 빠지직!
플라스틱 나이프에서 번개가 튀었다.
“이게 검강.”
“……?”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러니까, 검기에 속성 에너지를 담은 게 검강이라는 건가?
툭….
정리하는 동안 플라스틱 나이프가 그의 마나를 버티지 못하고 새카맣게 타버렸다.
그는 나이프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고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검강을 쓴 바람에 또다시 마나가 줄어든 탓이다.
“흠….”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아르카를 바라봤다.
이 검기를 보고 한진환은 검강이라고 말했다.
왜?
일반적인 검기처럼 마나로 만들어냈을 뿐… 어라?
“설마, 내가 관리인이라서 그런가…?”
“아!”
깨달은 것을 중얼거리자 도희가 탄성을 내질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아무래도 내가 추리한 게 맞는 것 같다.
아르카에 둘린 검기는 내 마나로 만들어졌다.
세계수의 마나 그 자체인 내 마나로.
즉, 검기만 만들어내도 속성 에너지가 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깨달았나 보네.”
한진환이 젓가락에 베이컨을 낙지호롱구이처럼 휘감았다.
휙휙 감기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재주도 좋지.
흠….
“…한 가지, 이해가 가질 않는 게 있는데요.”
“뭔데?”
“그런데 왜 정부의 허락이 필요합니까? 칼날에 속성을 부여하는 마법도 있는데.”
“야. 그거랑 비교하면 안 되지. 마법 부여는 검기가 아니라 칼날에 부여하는 건데. 생각해봐. 너 지금까지 마법 부여를 검기에 쓰는 사람 봤어?”
“…….”
고개를 돌려 도희와 김보민을 바라봤다.
우리 중에서 마법 부여를 쓸 줄 아는 건 그 두 사람뿐이었다.
시선이 닿자 둘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용해본 적 없다는 뜻이다.
아니, 도리질의 세기를 보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굳이 정리해보자면…, 마법 부여는 검기의 일종으로 치환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검기도 마법부여도 전부 칼날에 담는 것이니까.”
“정리 깔끔한데? 역시 안경쟁이.”
“…제 이름은 한재임입니다.”
“알고 있어.”
“…….”
한재임이 아니꼽다는 듯 한진환을 노려봤다.
대단한걸.
저런 시선을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짓는 건 처음 봐.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그게 정말 대단한 것이냐고 질문합니다.]…그러니까.
나도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어.
“그래도 협회 허락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네요.”
한진환은 예전에 “무턱대고 시도했다간 모든 힘을 소비한 채 죽어버릴 수도 있다”라고 했었다.
하지만… 직접 써본 결과 죽을 것 같진 않았다.
풀어버리면 그만이지 않나?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거든.”
“네?”
“자신의 검기에 속성 에너지를 담는 것이 검강. 그런데… 꼭 검기에만 담을 필요가 있을까?”
“……?”
“그냥 내 몸에 담으면 안 되나? 그걸 생각하게 될 거란 말이지. 자. 여기서 문제. 검강을 내 몸에 쓰면 어떻게 될 것 같아?”
“…….”
자신의 몸에 속성 에너지를 담는다…?
처음 해보는 생각이었는데도 어쩐지 익숙했다.
“왠지 익숙하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어떻게 알긴. 그게 바로 나와 네가 이유도 모르고 쓰던 ‘버스트 모드’의 정체니까.”
“……!”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관리인이 쓰는 건 버스트 모드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세계수는 관리인에게 정확한 이름으로 정정해주길 요구합니다.]당황스러움을 지우면서 새싹이가 바라는 대로 해줬다.
“…내가 쓰고 있는 건 ‘광합성 모드’란 건데요.”
“이름이야 어쨌건. 같은 거야.”
한진환이 젓가락을 휙휙 젓는다.
버스트 모드가 검강을 몸에 쓴 것이었고, 광합성 모드와 같은 것이라고.
그렇다면….
“과연….”
“이제 알겠냐? 정부가 정보를 숨긴 이유.”
“페널티 때문이겠네요.”
“그래. 네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 없었다면 넌 반신불수가 됐거나 죽었을 거야.”
그의 말이 옳았다.
처음 광합성 모드를 썼을 때, 도희는 내 몸을 진단하고 이렇게 말했었다.
“신경에서 마나의 흐름을 담당하는 마나 회로가 너덜너덜해졌어요.”
-라고.
응? 잠깐만.
그의 말마따나 난 세계수 관리인으로서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 있어 광합성 모드를 쓸 수 있었다.
오래 사용하면 며칠간 절전이 되곤 했고.
그런데 한진환은 버스트 모드를 써놓고도 잘만 돌아다녔다.
어떻게?
“궁금하냐?”
한진환이 씩 웃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읽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