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1
제41화
부푼 기대를 끌어안고 새로 발급받은 헌터 자격증을 확인했다.
[백도운, B급 헌터]B급이라는 글자가 다른 글자보다 굵게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음, 착각일 거야.
혼자서 사이클롭스까지 사냥했는데 어째서 A급 헌터가 아닌 걸까.
실망스러운 마음에 한숨이 절로 푹 나왔다.
“후우… 대체 어째서?”
“괜찮으세요? 어, 아마 아주 조금 부족한 B등급일 거예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네?”
옆에서 헌터 자격증을 확인한 우채연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어설픈 위로였지만, 그 덕분에 실망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있었다.
대신 부끄러운 마음이 피어났다.
그녀는 17살인데도 어른스러운 태도로 26살인 나를 위로해 줬다.
심지어 자기도 B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정말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군.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음, 괜찮아요. 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
“헤헤, 네….”
싱긋 웃어 보이는 그녀를 보다가 생각에 빠져 들었다.
B급으로 책정된 이유에 대해서다.
시험의 탑 심사는 신체 능력과 전투 능력을 측정한다.
나는 단신으로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렸으니 전투 능력에선 A를 받았을 거다.
그런데도 B급이 나왔다는 건, 신체 능력에서 A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아르카를 쥐었을 때와 쥐지 않았을 때 신체 능력에 차이가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아르카를 쥐어 상승한 신체 능력을 버프 스킬 효과라고 판단한 것이리라.
우채연이 B등급 판정을 받은 것도 그런 이유일 터.
그만큼 뛰어난 얼음 마법을 보여줬는데도 B급 판정을 받은 걸 보면 신체 능력에서 A급 헌터 자격을 넘지 못한 거겠지.
물론, 금방 자격을 얻게 되겠지만.
그녀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A급 헌터가 될 거다.
그녀의 재능에 일대 그룹의 자본력이 더해질 테니까.
“아, 참. 돌멩이들은 왜 주운 거예요?”
“네? 아, 그거요?”
그녀는 내가 사이클롭스를 잡은 후 돌멩이를 줍고 있을 때쯤 도착했다.
뭘 하는 거냐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그냥 돌멩이를 줍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돌멩이를 줍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이다.
지상욱은 이미 꼬리를 말고 도망친 뒤였다.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릴 수 없을 거라 판단하고 도망쳐 버린 거다.
뭐, 어차피 녀석은 제가 한 짓이 카메라에서 다 찍혔으니 알아서 페널티를 받을 터였다.
“그냥 취미 생활이에요.”
“…음, 그렇군요.”
취미 생활일 리가 있나.
우채연도 그걸 알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그녀의 오빠가 그랬듯이 나를 배려할 생각으로 그냥 넘어간 거다.
정말, 아까부터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게 만드는 아이다.
우연후야 한 길드의 마스터인 데다가 기업 부회장으로서 생활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겨우 17살이다.
어쩜 저럴 수가 있을까.
나 17살 때는 어땠더라?
“…….”
“오늘 시간 어떻게 되세요?”
“시간이요?”
“네. 생명의 은인이신데, 보답할 기회는 주셔야죠.”
“어, 이미 충분히 받았는데요?”
아니,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받았다.
보수로 50억이라는 큰돈을 받았고, 테스트용이었던 설지초도 챙겼으며, 최고급 승용차 한 대도 받았다.
그러고 보니 테스트로 받았던 설지초를 완전히 깜빡 잊고 있었다.
상성을 알아본 후 복용할지 말지 정해야겠다.
상성이 좋지 않은데 복용했다간 사달이 날 테니까.
“제 마음이 편할 만큼 드리지 못했으니, 부족한 거죠.”
“…….”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녀는 역시 우 씨 집안사람답다.
어쩜 제 아버지와 오빠와 똑같은 말을 하는지.
이번 일로 가장 크게 얻은 건 우 씨 집안사람들과 안면을 텄다는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내 주가는 오르고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사람들 시선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서, 원.
“시간이야 있기는 한데요.”
“잘됐네요! 식사 대접하고 싶었는데.”
그러고는 우채연은 해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는 얼굴을 보니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아….”
“……?”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다.
뭐 때문에 저러나 싶어 봤더니, 그녀의 시선 끝엔 기가 팍 죽은 지상욱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시험의 탑에 입장하기 전처럼 으스대지 않았다.
어깨를 움츠러뜨리며 자격증 발급처를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나를 보는 게 내 시선을 끌지 않도록 노력한 것 같다.
이미 들켰지만.
우채연이 싸늘한 표정과 목소리로 물었다.
“한마디 쏘아붙이고 올까요?”
“괜찮아요.”
저렇게 기죽어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다.
상처에 더 소금을 뿌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정신 차리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놈을 만나서 살해당하게 될 테니까.
17살의 백도운 같은 놈.
“좋지 못한 거 그만 보고, 좋은 거 먹으러 갑시다.”
“네, 그래요!”
나와 우채연은 자격증 발급처를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지상욱이 벌써 사고를 친 건가?
싶어 쳐다봤는데,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그놈 때문이 아니었다.
차 2대가 서 있다.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문외한이 봐도 최고급 승용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보자 우채연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럽게 정말….”
“아하하.”
우채연이 그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차 앞에는 김민주와 오주한이 각각 서 있었다.
차 2대는 일대 그룹이 보낸 거였다.
남남인 나도 민망한데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그녀는 오죽할까.
그들이 막 발급처를 빠져나온 우리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사람들 시선이 그들을 따라 나와 우채연을 향했다.
“심사는 잘 치렀냐?”
“아빠가 시켰어요?”
“아니, 네 오빠가.”
“오빠가요?”
“어.”
우채연이 앙칼지게 묻고 오주한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는 복면을 쓰지 않은 사복 차림이었다.
복면을 벗으니 날렵해 보였던 인상은 느긋한 인상이 되어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그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지온.”
“어떻게 알았어요?”
“네? 그야 꽁지머리 때문에 알았죠. 머리끈이랑.”
“…….”
이놈의 꽁지머리 잘라 버리든가 해야지, 원.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오주한이 내민 손이나 맞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채연이 말했다.
“어쨌든 두 분 잘 왔어요. 밥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가요.”
“이 대리도 부를까요?”
김민주를 보며 질문했다.
그녀는 눈을 살짝 크게 떴고, 우채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대리? 그게 누구예요?”
“있어요. 돈 무지하게 밝히는 놈.”
“그런 사람을 뭐 하러 불러요?”
그리 물으면서 우채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 원래라면 부르지 않고 상종도 하지 않는 게 맞지.
씨익 웃으며 김민주를 바라봤다.
오주한도 알고 있는지 히죽 웃었다.
“…그럴 수는 없을 거 같아요.”
“……?”
음? 뭐지?
김민주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도 사뭇 진지한 태도를 이어 나갔다.
평소처럼 다른 모습에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그녀는 뒤에 있는 차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가씨는 집으로, 도운님은 재이네 대장간으로 가셔야 해요.”
차가 두 대나 온 이유가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한 대는 나를 한 대는 우채연을 데리러 온 것이다.
우채연은 그렇다 쳐도, 나는 왜 데리러 온 걸까.
무슨 일이라도 났나?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 거다.
그랬으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진 않았겠지.
“왜 집으로… 도운?”
“도운?”
우채연과 오주한이 내 이름을 되뇌었다.
뭐야, 둘 다 내가 백도운이란 걸 몰랐던 거야?
어쩐지 지온이라고 부르더니 그 이유가 있었군.
“언니 왜 아가씨라고 해? 무슨 일 있는 거야?”
“…….”
“정말, 맨날 나한텐 말 안 해 주지!”
우채연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김민주를 보며 토라진 체를 했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보였다.
다음에 “제대로 대접할게요”라는 말을 덧붙인 후 차 뒷자리로 걸어가 탑승한다.
오주한이 그녀를 따라가 조수석에 탑승했고 차는 곧 출발했다.
김민주는 나를 뒤쪽에 있는 차에 태웠다.
나는 뒷자리, 김민주는 조수석에 탑승했다.
“도련님이 무갑산에서 건물 잔해에 깔린 상자를 찾았고, 현재 재이네 대장간으로 이동 중이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벌써 찾았답니까?”
“네. 그 상자에 그게 들어 있지 않을까 예상되며, 그게 아니라도 상자에 넣어 둔 걸 보면 중요한 것 같다고도 말씀했어요.”
그게.
그리 말한 걸 보면 그녀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는 듯하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하는 거겠지.
김민주가 도련님이나 아가씨라고 하는 것도 그걸 구분하기 위해서겠군.
“흠, 그렇군요.”
“…….”
“근데 나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어요?”
백미러를 통해 조수석에 앉은 김민주를 바라봤다.
그녀는 시선이 마주쳤으면서 스리슬쩍 피했다.
“설마 나한테 미행 붙여 놨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모셔 오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랍니다.”
질문에 그리 대답하면서 그녀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따듯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하지만 난 저 미소가 연기라는 걸 안다.
생각해 보면 우연후는 내가 재이네 대장간에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날 찾아왔었다.
아마 내게 사람을 붙여 놨을 거다.
이 대리, 너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민주 씨 아주 무서운 여자야.
***
[Closed]푯말이 걸린 대장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다.
김민주는 건물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해서 혼자 들어갔다.
들어가니 유재이, 우연후, 김지연, 심윤진이 있었다.
유재이는 혼자 계산대에 앉아 있고, 나머지 세 명은 검은 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서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뭔가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대장간에 들어온 나를 발견한 우연후가 손을 들어 보인다.
“왔습니까?”
“앗, 안녕하세요.”
김지연과 심윤진도 인사를 건네와 그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그 후 유재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뭇잎 한 가닥을 목덜미에 갖다 댄 채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으으… 왔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인사를 건네온다.
몸 지키라고 준 나뭇잎을 왜 목 안마기처럼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뭐 해?”
“보면 몰라? 안마하잖아.”
“아니, 그건 아는데. 그걸로 왜 그러고 있냐고.”
“시원해서. 당신도 한 번 해 볼래?”
그러면서 유재이는 내게 나뭇잎 한 가닥을 휙 던졌다.
내 손에 부드럽게 안착한 나뭇잎을 가만 지켜보다가 그녀처럼 목덜미에 둘렀다.
어라, 이거 진짜 시원한데?
“…상자엔 마법이 걸려 있더군요.”
우연후가 끼어들었다.
“그 덕분에 건물이 무너져도 멀쩡할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열지 못하고 있는 거고요?”
“네, 그렇습니다.”
검은 상자를 내려다봤다.
상자는 열릴 생각이 없다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내가 마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잠금 마법은 간단한 거 아닙니까?”
“맞아요.”
심윤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표정을 보니 내가 그런 질문을 할 것을 예상한 듯했다.
“잠금 마법만 걸려 있다면 잠금 해제 마법으로 풀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엔 열쇠 마법도 같이 걸려 있어요.”
“열쇠 마법?”
“네. 이 상자를 열려면 열쇠가 필요해요.”
“그 열쇠는….”
우연후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자는 찾았어도 열쇠는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검기로 상자를 베어 버리면요?”
“가능해요.”
“오, 그럼-”
“열쇠 마법의 영향으로 속에 있는 것들이 다 파괴돼 버리겠지만요.”
“…….”
좋다 말았네.
검기로 안 된다면 마법으로 부수는 것도 안 된다는 거다.
흠, 잔해 속에서 열쇠를 찾아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 새싹이 관리인 백도운에게 돌멩이로 상자 자물쇠를 내리치라고 조언합니다.]……?
뭐로 뭘 내리쳐?
[새싹은 돌멩이로 혐오스러운 기운을 담은 마법을 없애 버리라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