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4
제54화
재이네 대장간 앞은 늦은 밤인데도 사람들로 분주했다.
대부분 방송국 기자와 동료 카메라맨이다.
이따금 무슨 일인가 하고 구경 나온 동네 주민도 있었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유재이와 인터뷰를 하고 싶어 모였는데, 그 유재이는 카메라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무기에 관해 떠들어 댈 때는 언제고 지금은 귀찮다면서 문을 닫고 틀어박혔다.
그러한 행동은 방송국 사람들의 얼굴에 탐탁하지 않은 기색이 피어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장장이들이란. 쓸데없는 적개심은 피하는 게 상책인데, 왜 그 쉬운 걸 몰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김지연이 그리 중얼거리면서 방송국 사람들을 달랬다.
마실 것도 사다 주고, 유재이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도 해 줬다.
유재이와 백도운은 어떤 사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뭔가 있는 것처럼 대답해 주기도 했다.
방송국 기자들이 가장 바라는 질문의 대답이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기자들을 한참 달래던 김지연은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자조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날이 밝았다.
해가 떠오른 듯 새벽 어스름이 깔렸다.
벌써 해가 뜰 리 없는데?
그녀는 고개를 북서쪽으로 돌렸다.
대장간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녀처럼 의문스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이봐! 저거, 저거 보여?”
“빛? 웬 빛이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그것을 보고는 서둘러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송국 기자들답게 저 현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촬영하러 가려는 거다.
김지연은 입을 헤 벌린 채 그것을 바라봤다.
하늘 위에서 어둠을 몰아낸 거대한 빛은 마치 하얀 태양 같았다.
“빛의 성역! 백도희의 빛의 성역이다!”
“빛의 성역?”
“그래, 전매특허인 광역 버프 스킬!”
현상을 알게 된 기자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앞서 출발한 기자 무리에 뒤처지지 않게 서두르는 것이다.
“저게 스킬이라구?”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김지연은 경악했다.
한순간에 어둠을 몰아내고 날을 밝게 할 정도로 밝은 빛을 한 사람이 만들어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경악에 물들어 ‘저게 어떻게 스킬일 수 있어?’ 같은 의문이 떠오른 순간, 대장간 문이 쾅! 소릴 내며 열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문을 다급하게 연 유재이가 불안한 얼굴로 하얀 태양을 바라봤다.
“유재이 씨?”
“…….”
유재이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무시하는 게 아니고,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하얀 태양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김지연은 유재이 옆에 있는 심윤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러는 거야?”
“그게요….”
심윤진은 말끝을 흐리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스마트폰은 뉴스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빛의 성역을 발동한 백도희?]그런 자막과 함께 하늘 위에 떠 있는 백도희가 보였다.
영상 속의 백도희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온갖 마법들을 끊임없이 난사해 댔다.
한 방 한 방이 A등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마법들을 쏘아 대는 모습은 S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래곤이라도 나타난 거야? 이 여자 왜 이래?”
“김무연이랑 싸우는 거래요.”
“김무연? 그치가 왜 백도희랑….”
영상 속 싸늘한 눈빛의 백도희.
옆에서 불안해하는 유재이.
백도희가 싸우는 대상인 김무연.
답은 금방 나왔다.
김무연과 백도운이 싸웠고, 여동생이 그를 지키러 온 것이리라.
“잠깐만, 이거 설마 하트 브레이크야?”
영상 속 김무연은 온몸에서 은빛의 마나를 마구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제 몸을 불태우는 나무 장작 같아 보였다.
심윤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미친!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트 브레이크까지 써?”
그 순간, 카메라에 푸른 마나를 발산하고 있는 도운이 잡혔다.
“헉, 이쪽도 하트 브레이크야?”
“아니, 아니에요! 잘 봐요.”
심윤진이 스마트폰을 더 가까이 갖다 댔다.
그녀는 화면 속 푸른 마나를 내뿜는 도운을 빤히 들여다봤다.
김무연과 확실하게 다른 점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김무연은 몸에서 발산하는 마나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도운은 그렇지 않았다.
발산한 마나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는커녕 밀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선명해지면서 도운을 휘감았다.
그건 마치 무기에 마나를 두르듯 몸에 마나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대체 이 남매는 무슨 짓을….”
그녀는 입을 다물고 땅을 내려다봤다.
땅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서다.
갑자기 웬 지진?
울림을 느끼며 그녀는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봤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한 것인지 도운은 김무연의 뒤에 있었다.
반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서는 왼손을 내민 채다.
“……!”
영상을 보던 김지연은 아연실색하며 땅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유재이와 심윤진도 마찬가지였다.
땅 울림의 원인을 화면 속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진이 아니었다.
“이, 이 미친 인간이!”
***
[84%, 84%, 84%, 83%….]광합성 모드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시간 제한이 있는 버프 스킬이었다.
이파리에 충전된 빛의 에너지를 전부 소모할 때까지 신체 능력을 증가시켜 준다.
83%가 0%가 되면 버프는 끝이 나겠지.
또 광합성 모드는 다른 버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덕분에 내 몸은 총 3번의 파워업을 거쳤다.
아르카를 들고 있어 신체 능력이 올랐고, 빛의 성역 속에 있어 또 향상했으며, 광합성 모드로 인해 한 번 더 증가했다.
버프에 버프를 중첩한 나는 간신히 태천이와 비등한 수준이 되었다.
“또! 또 나를 비웃어 봐라, 백도운!”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렇게 파워업 했음에도 김무연에게는 닿지 못했다는 거다.
당연한 일이다.
놈은 하트 브레이크로 인해 3배~6배 강해진 상태다.
빛의 성역으로 2배 너프를 당하지 않았다면?
도희의 빛 마법이 타이밍 좋게 퍼부어지지 않았다면?
나와 태천이는 이미 놈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쓰러졌으리라.
김무연을 쏟아지는 빛의 빗줄기처럼 놈의 대검이 나를 덮쳤다.
“죽어라, 백도운!”
“‘방패 던지기’!”
놈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나를 위해 태천이가 은빛의 방패를 던졌다.
저 단순한 행동이 B등급 스킬이란 걸 알았을 땐 어찌나 우스웠던지.
검은 마나가 담긴 은빛 방패는 김무연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두꺼운 팔에 막혀 간단히 튕겨 나갔지만.
저 스킬이 B등급일 수 있는 건 지금부터다.
튕겨 나간 방패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내 앞으로 날아와 김무연의 대검을 막는다.
그렇다.
방패 던지기는 적에게 던지는 게 아니다.
보호를 목적으로 아군의 앞에 도달하도록 던지는 스킬이다.
“이따위 방패로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으헉! 저게 얼마짜린데!”
김무연이 양손으로 쥐고 대검을 휘두르자 방패는 도마 위의 두부처럼 쉽게 잘려 나갔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마나를 내뿜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다음에 전대 세계수의 통나무를 얻게 되면 방패를 만들어 줘야겠다.
[새싹은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라고 정정을 요구합니다.]그래, 새싹아. 통나-
“무우!”
방패를 벤 김무연이 대검을 아래에서 사선으로 베어 올렸다.
허리를 뒤로 힘껏 당겨 피하는 찰나.
어느새 달려온 태천이 보였다.
김무연이 더 빠르게 공격을 이어 나갔다.
나와 태천이는 동시에 아르카를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았다.
태천의 방패를 두부 자르듯 잘랐던 대검이 아르카는 자르지 못했다.
위력은 강력해서 우리는 사이좋게 날려 보내졌다.
“죽, 죽을 뻔했네.”
광합성 모드가 아니었다면 못 피했을 거다.
다행히 빛 에너지는 아직 60%나 남아 있다.
“야, 이거 아주 단단하네? 무기 하나 새로 사 줄 테니까 이거 나 주라.”
“싫다, 이놈아!”
아르카를 보며 눈을 빛내는 태천을 뻥 걷어찼다.
태천이 서 있던 자리에 김무연의 대검이 아래로 뚝 떨어진다.
쾅!
대검이 바닥을 움푹 패고 들어갔다.
뒤로 뛰면서 왼손을 놈에게로 뻗었다.
“돌멩이!”
김무연은 내 왼손을 쳐다보지 않았다.
더는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나만을 노려봤다.
드디어!
“빛이여!”
놈이 잠깐 멈칫한 그 타이밍에 도희의 빛 마법이 무수하게 쏟아졌다.
도희의 마법은 근처에 있던 우리에게도 똑같이 쏟아졌지만 상관없었다.
빛의 성역 안에서 도희가 동료로 인지한 사람은 피해를 받지 않는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마법들은 놈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덕분에 우리는 김무연에게서 멀찍이 떨어질 수 있었다.
“후우, 쉽지 않네.”
태천이 롱스드를 허공에 휙 휘두른다.
놈의 간격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아쉬운 것 같다.
놈도 그걸 알기에 태천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대검으로 쳐냈다.
태천은 김무연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또 설령 다가간다고 해도 놈을 제압할 수단이 없다.
아르카를 땅에 박아 세우며 말했다.
“태천아, 시선 좀 끌어 줘.”
“시선을?”
“응.”
나는 아니다.
김무연에게 다가갈 방법이 있다.
도희가 만들어 낸 빛의 성역에서도 그림자는 있으니까.
또한, 다가가서 놈을 제압할 수단도 갖고 있다.
“내가 한 방 제대로 먹여 줄 테니까.”
“오케이.”
마침 도희가 쏟아 내던 빛줄기가 그쳤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태천이 곧바로 ‘대쉬’ 스킬을 썼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태천의 대쉬는 그야말로 전차의 질주처럼 보였다.
김무연은 그 질주를 왼손으로 막아내고, 오른손의 대검으로 목을 노리고 찔렀다.
태천의 앞에 투명한 장막이 생겨나 놈의 대검을 막아낸다.
도희가 태천의 방패 대신 놈의 공격을 막아 준 거다.
김무연에게 왼손을 내뻗고 돌멩이를 쏘았다.
놈은 아까처럼 돌멩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림자 밟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3개의 흰 구멍이 보인다.
나, 태천이, 김무연의 그림자다.
도희는 하늘에 떠 있어선지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구멍으로 내달렸다.
구멍 위에 서자 시야가 다시 밝아진다.
김무연의 등이 보인다.
놈은 뒤에 나타난 나를 알아차리고는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따위 짓거리를 내가 한두 번 본 줄 알아!”
“……!”
과연 A급 헌터다.
경험이 쌓인 값을 한다.
나와 태천을 동시에 노리는 대검을 피하고자 주저앉듯 풀썩 오른쪽 무릎을 굽혔다.
동시에 왼손을 들어 올린다.
김무연이 코웃음을 쳤다.
방심.
그것이 놈의 유일한 약점이다.
놈은 방심해서 나를 혼자 찾아왔고, 이번에도 방심해서 피하지 않는다.
“돌멩이는-”
“솔방울!”
“뭣…?”
[세계수 새싹이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고 전합니다!]콰아아앙!
내 손바닥에서 솔방울이 굉음을 내며 쏘아졌다.
그 위력이 어찌나 셌는지, 내 손바닥이 뒤로 날아가 버렸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몸이 바닥으로 밀려 박혀 버릴 정도였다.
탄도 미사일이 발사대가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 우오오오오!”
손에서 쏘아진 솔방울은 김무연의 옆구리에 박혔다.
그대로 하늘 위로 나선을 그리며 솟구쳐 오른다.
굴착기가 땅을 파듯 끊임없이 회전했다.
회전을 넣겠다던 새싹이의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결국, 그 의지대로 솔방울은 놈의 몸을 완전히 꿰뚫고 지나갔다.
하나의 몸으로 솟구쳤던 김무연이 두 개가 되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새싹이 만족스러워하며 행복합니다!]“…….”
…그래, 새싹이 만족스러우면 된 거지.
[빛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했습니다.] [광합성 모드가 종료됩니다.]어럽쇼?
분명 60% 이상 남아 있었다.
갑자기 왜 끝나는 거지?
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마나가 천천히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허억!”
그와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가지치기하느라 몸이 터져 나갈 때와 비슷한 고통이었다.
그러고 보니, 광합성 모드엔 주의할 점이 쓰여 있었다.
분명 ‘사용 후 페널티가 발생한다’였던가?
아무튼, 이놈의 능력은 좋게좋게 그냥 넘어가는 꼴이 없어.
[새싹은 관리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앗? 아, 아니.
새싹아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새싹은 의기소침해집니다.]아니라니까 그러네.
…형이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