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55
제557화
어쨌거나 태천이의 바람대로 되었다.
새로 자라나게 한 숲의 한가운데에서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주동자는 앨릭스 협회장이었는데, 내가 벌인 일들을 대충 정리하고 돌아오자마자 때를 기다린 사람처럼 파티를 열었다.
“완벽하진 않으나 승리는 승리! 오늘을 기념해야 하지 않겠나!”
-라고 소리치면서 말이다.
태천이에게 화를 내고 있던 도희가 그를 황당하게 바라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앨릭스 협회장은 호탕하게 웃어젖힐 뿐이었다.
화를 내던 사람도 맥이 빠지게 하기 충분한 모습이기에, 도희는 결국 파티를 한다는 것에 수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천이가 도희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음식을 새벽 세 시가 될 때까지 먹지 못한다는 벌을 받았다.
앞으로 4시간 30분 동안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누구 동생인지 참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이대로 나뭇가지를 흔들어 관리인을 떨어뜨릴까 생각합니다.]새싹이가 그런 메시지를 보냈지만, 정말로 나뭇가지를 흔들지는 않았다.
지금 흔들리는 건 새싹이의 나뭇가지에서 흘러내린 내 왼쪽 다리뿐이었다.
그렇다.
지금 난 원래 크기로 소환된 새싹이의 커다란 나뭇가지에 올라타 있었다.
예전에 새싹이가 그럴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한 대로 말이다.
[세계수가 두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파티를 바라봅니다.] [즐겁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과 엘프들을 보고 활력을 느낍니다!]사실, 현재 파티는 새싹이의 말처럼 두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성역에 있는 엘프들이 마족의 권속들로 구성된 조직이 궤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파티를 연 거다.
자기 세상의 일도 아니건만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들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오른다.
– 대단하던데, 앨릭스 협회장.
그렇게 지구과 성역 두 곳에서 파티가 진행 중인데도 내가 혼자 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재이와의 전화 통화 말이다.
저런 자리보단 재이와 통화하는 게 낫지.
그나저나….
“대단했다고?”
– 응. 당신이 멋대로 벌인 짓을 원래 계획했던 대대적인 프로젝트인 양 떠들어대더라구.
“얼씨구. 그랬어?”
– 사전 공지 없이 일을 벌인 것은 크라우드가 대비할까 봐 조심하기 위해서였다나? 그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정중하게 고개 숙였어.
“헤에…. 사람들 반응은 어때?”
– 다행히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다….
나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 그렇겠지.
갑자기 지구 전체에 결계를 덮어버렸으니….
짐작건대 각 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아주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 아스트라페의 결계가 위험한 게 아니라서 그런가 봐.
“으음….”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결계에서 떨어진 벼락에 맞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맞기 전보다 건강해졌다고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에 백운천에 다녀와 결계를 해제했다.
일단 조심하고 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거다.
– 협회장이 말한 이유가 타당하다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아.
“그래?”
– 뭐, 그런 말이 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늘 결과가 아주 좋아서겠지만.
“아하.”
하긴, 결과가 좋기는 했다.
오늘 여러 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크라우드가 궤멸하지 않았나.
아스트라페의 결계 덕분에 세상 곳곳에 숨어 있던 놈들의 잔당들도 거의 붙잡았고.
고위직에 앉아 있던 놈들까지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완전 소탕이 아니라 ‘거의’라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버섯, 박우현….
이놈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을까?
마족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아스트라페로는 놈을 찾아낼 수 없었다.
– 그나저나, 난 앞으로 앨릭스 협회장이 인터뷰에서 ‘오랜 기간 각별히 준비해왔다’라고 하는 말을 믿지 못할 것 같아.
“응? 왜?”
– 거짓말하는데 표정 하나 바뀌지 않더라니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믿을 뻔했어. 생긴 건 곰처럼 생겨서는….
“푸흐흐….”
굳이 동물과 비교하자면 앨릭스 협회장은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덩치만 따지고 보면 곰 같기도 하니, 뭐….
– 그런데….
“응?”
– …….
“……?”
– 당신….
갑자기 재이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왜 이래?
– …나랑 이렇게 통화하고 있어도 돼?
“뭐?”
– 거기 지금 파티가 한창이라며. 같이 즐겨야 하는 거 아니야…?
“허어….”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는 대체 뭐람.
앞서 말했듯이 따로 새싹이의 나뭇가지 위에 있는 이유는 재이와 통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로지 통화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내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컸다.
그뿐인가?
“너 내가 같이 있으면 다른 녀석들이 좋아할 거로 생각해?”
– 음….
수화기를 통해 엷은 신음이 들려온다.
재이도 아는 거다.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다른 녀석들이 불편할 거라는 걸.
예전이랑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건 기껏해야 최근 몇 개월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지 않나.
작년 이맘때쯤엔 서로 눈인사도 나누지 않았던 게 나와 놈들 사이였다.
2살 차이도 차이라고 형 노릇을 하려는 박건영만 먼저 인사를 건넨 게 다였고 다른 녀석들은 무시하기 일쑤였다.
한재임과 최희주가 툭툭 투덜거리는 게 대화의 전부였을 정도니….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리 말하면서, 재이의 의중을 생각했다.
이 사실을 아는 그녀가 저런 말을 한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뭐,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재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날 불렀던 것은 “통화하고 있어도 돼?”라는 질문을 던지려고 했던 게 아닐 거다.
아마 헤미스파이리움 때문이리라.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그것은 마족을 이곳으로 넘어오게 하는 장치였고, 그녀는 그것을 가동하게 하는 열쇠를 만들었다.
지금 자책을 느끼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 …….
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조용한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다가,
– 아. 저기, 나 이만 끊을게.
그녀가 대뜸 말했다.
끊겠다고?
이렇게 갑자기?
– 당신도 오늘 피곤했을 텐데…. 이만 쉬어!
“아니, 잠깐-”
뚝.
재이는 내가 말리기도 전에 정말로 통화를 끊었다.
황당하게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본다.
검은 화면엔 재이의 이름이 하얗게 떠 있었다.
발신 버튼을 누르고자 손을 뻗었다가, 이내 멈췄다.
방금처럼 통화를 끊은 재이에게 전화를 건다고 해서 받을 리 만무했다.
설령 받는다고 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소용없겠지.
얼굴도 맞대지 않고 하는 말로 지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바뀔 리 없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그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새싹이의 나뭇가지에서 일어나는데,
[세계수가 관리인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센스 있게 빠져주겠다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넵니다.]새싹이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을 바로 알아차린 거다.
“그래. 다녀올게.”
인사를 건네며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마자 시야가 변했다.
아프리카에 광활하게 펼쳐진 숲에서, 유재이가 혼자 앉아 있는 의무실로.
날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뜬 재이가 보인다.
“너, 너…?”
재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처럼 ‘당신’이 아니라 ‘너’라고 하는 걸 보니 엄청 놀란 모양이다.
하하. 당황한 모습이 제법 귀여운걸?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어라?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는다고?”
대답하면서 발아래를 가리켰다.
아래엔 의무실 바닥에서 자라난 푸른 꽃이 자라나 있었다.
그 꽃을 보고 재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대체 언제 심은 거야? 못 봤는데?”
“못 봤겠지. 수정 씨가 너 줄 사과 깎을 때 조심스럽게 바닥 파고 심었으니까.”
“뭐? 그 살벌한 순간에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고?”
“마침 씨앗 넣고 있는데 나 쳐다봐서 깜짝 놀랐어. 들킨 줄 알았지 뭐야?”
“하….”
재이는 기가 막힌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을 뿐인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통화할 때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까 후회하지 마라, 괜찮다…. 뭐 그런 말을 하러 온 거야?”
“어라? 아니. 나 그런 말 하러 온 거 아닌데.”
“아니라고…?”
“응. 그리 말한다고 해서 네가 ‘맞아. 내 잘못이 아니니 괜찮아!’하고 생각을 바꿀 리도 없잖아.”
“…….”
“왜? 해줘?”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내 생각과 달리 재이가 납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말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날 보는 눈도 조금 찌푸렸고.
“후우…. 그럼 여긴 왜 온 건데?”
“너랑 함께 있고 싶어서?”
“……!”
“그냥, 그러고 싶어져서 온 거였는데.”
“…….”
“여자친구 보러 오는데 그 이유면 충분한 거 아닌가?”
“하….”
그녀가 아까와 비슷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입가에 핀 미소는 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그거면 충분하다는 걸 재이도 수긍한 거다.
뭐,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입술을 살짝 비틀긴 했지만.
“그런데, 수정 씨는?”
텅 빈 접이식 보호자 침대를 보며 물었다.
같이 있을 줄 알았던 홍수정은 이곳 의무실에 없었다.
대신 내가 침대에 누울 수 있게 됐으니 잘된 일이군.
풀썩.
침대에 앉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 나랑 통화하라고 자리 피해준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음…. 수정이는 지금 팬 관리 중이야.”
“뭘 해?”
재이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홍수정이 팬을 관리하고 있다고?
아니, 뭐….
그녀가 유명해지긴 했다.
민트초코, 콜라, 솔X눈 등등 색다른 맛의 포션을 잔뜩 만들어냈으니까.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 팬 관리라니?
너무 뜬금없는 거 아닌가.
“여긴 세계 헌터 협회가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야.”
“음. 그래서?”
“그래서, 예전부터 교황청의 엘릭서를 연구하던 팀도 있다는 거지.”
“아. 그런 팀 앞에 엘릭서를 제조했다고 알려진 홍수정이 나타난 거구나….”
흐음….
팬 관리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하군.
그 팀원들에게 홍수정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일 테지.
여러 연구원에게 둘러싸인 홍수정의 모습을 생각하는데, 재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마 괜찮을 거야….”
“응? 갑자기 뭐가?”
“수정이가 생각이 없어 보여도 비밀은 잘 지켜.”
“어라. 나 그런 걱정 안 했는데?”
“아. 그래.”
“흠. 네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거 같은데?”
“아, 아냐.”
재이는 바로 부정했다.
말을 더듬은 바람에 설득력이 전혀 없었지만.
걱정하는 거 맞네, 뭐.
“…….”
그 대화 이후, 재이는 한동안 조용했다.
내 오른손 검지가 스마트폰 화면을 한 450번쯤 두드렸을까.
재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백도운.”
“응?”
“나 헤미스파이리움 개조하는 거 멈추려고. 여기 있는 것들 전부 파기할 거야.”
“오…. 괜찮겠어?”
“원래는 그 사람… 그러니까, 아빠가 제작한 물건이 세상에 이롭게 쓰이길 바라서 시작한 거였어.”
그럴 거로 생각했었다.
그 마음도 이해하고.
앨릭스 협회장의 노림수를 알면서 재이를 굳이 말리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마족을 건너오게 하는 장치였다잖아…? 그런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
“개조하면 되는 거 아니야?”
“개조했다고 끝나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니까. 재료만 있다면, 다시 되돌릴 수 있어.”
“아….”
과연….
알겠다.
재이는 지금 먼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거다.
세상에 마족 권속이 다시 창궐하게 된 미래를 말이다.
내가 아바돈에게 승리하지 못할 거로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인간인 나와 마족인 아바돈의 수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것일 뿐.
“그러니까….”
그러니까?
속으로 대꾸하면서 재이를 바라봤다.
“버섯이 가져간 헤미스파이리움과 열쇠…. 찾아서 파기해줘.”
“파기하라고?”
“응. 부탁할게.”
재이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무엇에 사용하는 것이든….
어쨌거나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물건이었다.
아쉬움을 느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그러나 이미 결심을 내린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알았어. 그게 네 바람이라면.”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