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82
제584화
“와…. 동생 말 더럽게 안 듣는 오빠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니, 아침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밝은 재이가 보였다.
그녀가 내 앞으로 걸어오며 말한다.
“도희가 얌전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래서 그러고 있잖아.”
“흐응….”
“뭔데, 그 반응. 아니란 거야?”
바로 되물었다.
현재 나는 병원 옥상 공원의 나무 벤치에 누워서 [세계수 키우기]를 하고 있었다.
도희의 바람대로 얌전히 있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보다 어떻게 더 얌전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이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세계 최강의 S급 헌터인 데다가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걸 알아야 해. 더불어 ‘광운(狂雲)’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도.”
“…갑자기 뭔 소리야?”
“이 병원에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 같아?”
“글쎄…. 못해도 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
하루 외래 환자의 단위가 천에 달하는 병원이다.
입원한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 그리고 병원 관계자들까지 합친다면….
분명 그 단위가 달라질 터였다.
슥.
그녀가 주변을 가리켰다.
“잘 아네. 그럼 이 옥상 공원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유는 뭐일 것 같아?”
“그거야, 아….”
재이가 뭘 말하려는 건지 깨달았다.
옥상 공원에 사람이 없는 이유.
그건 바로 나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세계 최강의 S급 헌터인 내가 나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피한 거였다.
광운이라는 오명도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데 한몫했겠지….
“그냥 아침이라서 아무도 없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겠어?”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전세 낸 것도 아니고….”
“그거야 당신 생각이고. 사람들은 신경 안 쓸 수가 없지. S급 헌터에, 세계수 관리인에-”
“광운이라고 불리니까?”
“그래.”
“쩝….”
“뭐, 나한텐 그냥 제멋대로 구는 게 귀여운 남자친구일 뿐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입맛을 다실 때였다.
재이가 대뜸 그런 말을 하더니 시선을 슬쩍 피했다.
자기가 한 말에 낯간지러워하는 거였다.
참나….
“왜 자기가 말해놓고 민망해해?”
“시끄러워…!”
“푸흐흐.”
“…….”
휙, 휙….
재이가 손부채질로 빨개진 얼굴을 식혔다.
귀엽기는.
“저기.”
“응?”
“그러면 이제 다 끝난 거지? 크라우드도 소탕했고, 아바돈도 죽였고.”
“아니. 할 일이 하나 남긴 했어.”
“남았다구…?”
“새싹이 돌려보내 줘야지. 고향으로.”
“아….”
재이가 탄성을 흘리며 시선을 내렸다.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 속 새싹이를 본 거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린다.
왜인지 아쉬운 목소리로.
“그렇네…. 그럼, 새싹이한테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겠구나.”
“엥?”
이게 무슨 소리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서 참 당황스러웠다.
마지막 인사라니….
웬 마지막 인사?
내 반응에 재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야? 난 위그드라실에 옮겨심으면 새싹이를 만날 수 없게 될 거로 생각했었는데….”
“…….”
어라…?
선뜻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새싹이를 위그드라실로 옮겨 심었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그런 걸 생각해보지 않았던 탓이다.
어, 진짜 어떻게 되는 거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긁적입니다.] [자신도 그 점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만날 수 없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전합니다.] [뿌리 내리기를 사용하면 성역은 위그드라실로 편입되는 것이지 소멸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장소만 달라질 뿐이므로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정리합니다.]아. 그렇구나.
휴우. 다행이다.
새싹이 너 못 보는 건가 싶어서 놀랐네.
“방금 새싹이가 말해줬는데, 변하는 건 없을 거래.”
“아. 그래?”
“응.”
“다행이네.”
“그러게 말이야. 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말 나온 김에 옮겨심고 올게.”
“아하. 그래, 다녀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응.”
재이에게 대답했다.
그런 후,
[성역 입장]화면에 떠 있는 버튼을 누르려고 검지를 뻗었다.
그때, 재이가 내 손가락을 멈추는 말을 덧붙였다.
“나 기다리는 거 잘해.”
-라고.
“…….”
생각해보니 그랬다.
각성의 부작용으로 한 달 동안 무의식에 있었고, 아바돈과 함께 24일 동안 무저갱에 있었다.
그동안 재이는 나를 기다렸다.
옮겨심고 오는 동안 또 기다리겠지.
“…하하. 시간도 많은데 다음에 옮겨심지, 뭐.”
“응? 아니야. 난 괜찮아.”
괜찮다…?
아니.
나는 안다.
저 괜찮다는 말은 절대로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걸.
물론, 이런 말을 솔직하게 할 수는 없어서 에둘러 말했다.
“내가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흐으음…. 그래?”
“그래.”
“그러면, 뭐….”
풀썩….
재이가 내 머리맡에 앉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잠깐만 이러고 있을까?”
“…응. 그러자.”
…살았나?
나 산 건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휘젓습니다.] [그러면서도 관리인과 재이를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참 설레는 모습이라고 주책을 떱니다.]하나만 해, 하나만.
나뭇가지를 젓든가 흐뭇하게 보든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흐뭇하게 휘젓습니다.]하여튼 말은 더럽게 안 들어요.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지?
[세계수가 관리인을 빤히 바라봅니다.]***
재이와 시간을 보낸 후 성역으로 들어왔다.
엘프들이 바로 나를 반겨주었다.
밤새 파티를 벌였는데도 전혀 피로하지 않은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매일매일 고기를 먹어서 체력이 좋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관리인님….”
레지나가 엘프들을 대표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엘프들의 분위기가 진지했다.
이 분위기에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아주 뻔했다.
슥.
레지나가 공손한 태도로 몸을 숙인다.
“레디투스 숲의 첫 번째 나뭇잎 레지나, 관리인님께서 보여주신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파트리아와 다른 엘프들도 각자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이것 참….
솔직히 머쓱하다.
아바돈을 처치한 것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감사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굳이 하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드래곤들처럼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겁니다.”라는 말이나 하겠지.
그냥 이 진지하고 민망한 분위기를 서둘러 넘기는 게 좋겠다.
“레지나. 위그드라실로 갈까요?”
“네? 위그드라실로요…?”
“아바돈을 죽였으니,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야죠.”
“아…!”
레지나가 탄성을 흘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은 것이다.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감개무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엘프들 몇몇은 눈에 눈물까지 맺혔다.
이해하다.
돌아가고 싶으나 돌아갈 수 없었던 고향이지 않나.
“네. 가요…!”
그리 말하고는 레지나는 먼저 걸어갔다.
목소리에 살짝 물기가 묻어있는 것이 아마도 울음을 참는 듯했다.
첫 번째 나뭇잎이기 때문에 다른 엘프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슬픔의 눈물도 아니고 기쁨의 눈물인데….
좀 보여줘도 괜찮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
“…….”
레지나를 바라보던 파트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표정에서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서로의 생각을 알아차린 우리는 마주 보고 웃음을 흘렸다.
그런 후 함께 레지나를 따라갔다.
우리는 금세 위그드라실과 성역을 분리하는 차원막 앞에 다다랐다.
그 차원막을 레지나와 함께 바로 통과했다.
[세계수 관리인이 위그드라실에 진입했습니다.] [현재 위그드라실은 ‘아바돈의 권세(權勢)’가 가득합니다.] [그로 인해 위그드라실 내에 존재하는 온 생명체의 모든 능력치가 하락하게 됩니다.]이미 죽었는데도 아바돈의 권세는 여전했다.
놈의 힘이 아직 위그드라실 곳곳에 남아 있는 탓이었다.
아마 놈을 추앙하던 권속들도 살아 있겠지.
어쩐지 앞으로 그 권속 놈들을 내가 처리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이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리라.
그때였다.
[위그드라실에 뿌리 내리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사용하시겠습니까?]예전처럼 스킬 사용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의! 뿌리 내리기를 통해 세계수를 위그드라실에 이식(移植)하면 성역이 통합됩니다.] [또한, 한 번 위그드라실에 이식하면 다른 차원으로는 이식할 수 없습니다.]주의사항도 함께.
저번에 왔을 땐 큰 페널티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새싹이에게 위협이 되는 아바돈이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뿌리 내리기.”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세계수 관리인의 뿌리 내리기 스킬을 확인했습니다.] [지금부터 세계수를 위그드라실에 이식합니다.] [이식하는 동안 게임 ‘세계수 키우기’가 비활성화 상태가 됩니다.] [현재 진행률 1%… 2%….]진행률은 생각보다 빠르게 차올랐다.
하지만 레지나에게 예상 시간을 말하지는 않았다.
게임 업데이트라는 게 그렇지 않나.
빠르게 차오르던 퍼센트가 나중 가서는 더뎌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뭐, 이건 게임 업데이트가 아니긴 했지만.
그리고 그보다 레지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레지나.”
“네. 관리인님.”
“저곳엔 뭐가 있죠?”
“저곳이요…?”
3시 방향으로 검지를 내뻗었다.
저번에 왔을 땐 몰랐는데, 저곳에서 방대한 마나가 느껴졌다.
격(格)이 높은 존재의 마나가.
“……?”
레지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저러지?
“모르겠어요….”
“네?”
“저길 가 본 적이… 없어요. 아니. 그보다, 바라본 적조차 없어요….”
“…….”
과연….
영문을 몰라 당황할 만도 했다.
가 본 적이 없는 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예 바라본 적조차 없다?
그건 절대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궁금한걸.”
“안 돼요. 위험… 아.”
레지나가 말을 하다 말았다.
깨달은 거다.
위험하다는 경고는 내게 마땅하지 않다는 걸.
내가 누구인가?
세계수의 오랜 숙적인 마족을 죽인 세계수 관리인이지 않나.
날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이쪽 세상에서든, 저쪽 세상에서든.
굳이 꼽자면 도희와 재이와 아줌마뿐이겠지.
“다녀올게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해요. 관리인님.”
“네. 그럴게요.”
걱정까지 못 하게 할 수는 없지.
레지나에게 선뜻 대답한 후 바로 나아갔다.
방대한 마나가 느껴지는 3시 방향으로.
***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반갑다며 흔듭니다.]마나가 느껴지는 곳 인근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게임 업데이트… 아니.
새싹이의 이식이 끝났다.
[세계수가 결계를 바라봅니다.] [결계에는 ‘인지 방해’ 효과가 있다고 설명합니다.]인지 방해?
아.
레지나가 가 보기는커녕 바라본 적도 없다고 한 게 그거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레지나는 디싱의 송곳니로 만든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잖아.
어떻게 인지를 방해한 거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비슷한 격의 존재인 드래곤이 펼친 결계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비슷한 격…?
디싱과 비슷한 격인 드래곤이라면, 혹시…?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이 결계는 데이모스 모노스가 펼쳤다고 설명합니다.]데이모스 모노스가 펼쳤다….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곧 알게 될 거요. 정말로, 곧….』
능청스럽게 말하던 목소리가.
어젯밤에 그 소리를 들었으니, 정말로 ‘곧’이었다.
“아르카.”
인벤토리에서 아르카를 꺼낸다.
데이모스가 남긴 예언은 ‘나뭇가지가 열쇠가 되리니’였다.
그 열쇠가 될 나뭇가지는 분명 아르카일 테다.
열쇠인 아르카로 열어야 하는 것은 눈앞의 결계일 테고.
결계 안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해갈하기 위해서 아르카를 결계에 꽂았다.
화르륵…!
아르카를 꽂은 곳에서부터 화염이 타오른다.
붉은 화염은 결계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결계가 열리고 있는 것이었다.
『희망을 남겨 두고 왔지.』
또다시 머릿속에 데이모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말마따나 그는 희망을 남겼다.
결계 속에 있던 것은 바로 ‘세상(世上)’이었다.
아바돈의 권세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 세상….
『후후후….』
먼 곳에서부터, 드래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