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0)
“내가 너에게 제대로 된 후계자 교육을 한 적도 없건만 언제 이렇게 성장했는지 모르겠구나.”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는 조용하지만 의지에 찬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도 알다시피 당시 우리 황실 일가를 비롯한 그 누구도 내가 형님을 대신해 제위에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 또 내가 제위에 오르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아버지, 자신을 낮추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훌륭하신 지도자이시자 온 인민들의…”
“그만. 지금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부디 내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려다오.”
차르가 아닌 아버지로서 부탁하는 알렉산드르 3세의 말을 듣고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심정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확하게 짐작은 가지 않았지만 ‘군주’라는 직책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아버지라는 위치에 있는 한 사내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행한 사고에 이은 결핵이라는 병으로 형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황실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큰 손실이었지만 특히 나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에게 그 일은 너무나도 커다란 아픔이셨지.”
알렉산드르 3세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현재 본인이 위치한 1891년 여름 궁전이 아닌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황태자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대화하던 1865년 프랑스 니스인 듯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형님을 러시아의 희망이라고 부르셨지.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 했을게다. 형님은 준비된 군주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분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너에게 니콜라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네가 형님처럼 위대한 군주의 자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나는 단순한 사실들이 나열된 역사책으로는 엿볼 수 없었던 알렉산드르 3세의 마음을 두 귀로 듣게 되자 가지고 있는 사학도로서의 마음이 흥분하는 것을 느꼈다. 이는 메이지 천황을 두 눈으로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3일 만에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형님이 계신 니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 여느 때처럼 형님이 건강을 회복하셔서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나에게 ‘샤샤 미안하구나. 많이 걱정했지?’라고 말씀해주시리라고.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형님을 보았을땐 이미…”
알렉산드르 3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후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래도 그의 기억 속에 남은 슬픔이 가시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크흠…미안하구나. 그렇게 형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지. 형님의 유언대로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로 결정하셨고 나는 그동안 밀린 공부를 하느라 고생했단다. 당시 가정교사들이 꽤나 골치 아파했지. 생각해보렴. 러시아의 희망이라 불릴 정도의 인물을 가르치던 양반들이 나 같이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아왔던 사람을 가르친다니.”
그는 교육받던 당시를 회상하자 슬픔이 좀 가시는 듯 보였다. 눈가에 남아있던 눈물을 닦아낸 아버지는 짐짓 유쾌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당시 가정교사 중 하나는 ‘우리는 지금 희망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을 아버지께 들켜서 시베리아로 갈 뻔했지. 아버지의 숙모셨던 옐레나 파블로나 대공비께서는 차라리 나 대신에 동생인 블라디미르 대공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도 하셨단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후계자였던 형님이 남긴 말씀을 지키셨고 나는 비명에 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 그런데”
아버지는 말을 끝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얼굴과 눈빛은 방금까지 아들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던 아버지가 아닌 러시아 제국을 이끌고 다스리는 알렉산드르 3세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인민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의 그 모든 헌신과 자비로운 정책에 폭탄으로 답한 그 극악무도한 역적무리 놈들. 내 치세는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들과의 싸움으로 얼룩져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그리고 나는 그 싸움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수행해냈다. 황실과 러시아 제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제국을 이끄는 자의 분노와 증오심의 직접적인 대상이 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남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분위기란 말인가.
“그러니 네게 묻겠다. 나의 아버지의 은혜도 모르는 놈들에 대한 자비와 동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보다도 더?”
나는 입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이번 일에 대한 차르의 결정을 가로 지을 것이라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어느샌가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까 장관들에게 말한 것과 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민들의 피와 희생 위에 건설된 제국은 결국 인민들이 흘린 피로 인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폐하. 게다가 제국을 지탱하는 신민들 중 그와 같은 역적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부디 헤아려주십시오. 대다수의 인민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충성을 바치는 폐하의 자식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이번 순방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1905년 발생한 피의 일요일 당일에도 군중들이 당시 차르이던 나의 초상화와 이콘을 들고 행진할 만큼 러시아 인민들의 로마노프 황실에 대한 충성심은 매우 깊었다.
계속된 자살골로 인해 결국 등을 돌렸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소비에트라는 존재가 아예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의 대답이 끝났지만, 여전히 아무 말 없는 알렉산드르 3세로 인해 내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의 양은 점점 많아져 갔다. 졸업논문을 찌푸린 얼굴로 검토하던 교수님을 바라볼 때 보다 100배는 강한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거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순간이 지나고 고개를 든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마 형님이라도 그리 대답하셨을 게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권한은 너에게 일임하도록 하마.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은 네가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 해줄테니 한 번 너의 능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럼 이제 밖에서 서 있으면서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을 장관들을 다시 불러볼까?”
어느샌가 다시금 아버지로 돌아간 알렉산드르 3세는 나에게 장난스러운 윙크를 지어 보이며 장관들을 다시금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장관들에게 오늘부터 곡물 수출을 중단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구호위원회를 설립하라 명한 뒤 아버지는 선언하셨다.
“구호위원회의 책임자는 황태자인 니콜라이가 맡게 될 것이며 이번 일에 대처하기 위한 모든 권한을 니콜라이에게 위임한다. 모든 장관들은 이번 기근에 대한 니콜라이의 명이 곧 나의 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도록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폐하!”
대답하는 장관들 사이로 보이는 재무장관인 비슈네그랏스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기근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데다가 정보파악도 제대로 못해 나에게 공개적으로 질책을 당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한 명의 관료도 아쉬운 내게는 어림도 없는 말이었지만.
장관 회의가 종료되기 전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곡물 수출 금지 명령과 타 지역에 존재하는 식량 여유분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나는 따로 비슈네그랏스키를 불러냈다. 그가 비록 이번 일에 대한 판단을 잘못 내리긴 했지만 유능한 행정관료인 만큼 그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과 독대하겠다고 하자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본인을 경질 할거라 여기는 듯했다.
내가 다른 장관들에게 내일까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라 한 뒤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전하. 부디 재무부에서 저의 명령을 들었을 뿐인 실무자들에 대한 처벌은 하지 말아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장관인 저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는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재무장관. 나는 그대가 이번 구호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는 내가 웃음 지으면서 말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전하, 그게 무슨…”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서류를 일일이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말이야. 자네와 같은 유능한 행정관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네. 비록 자네가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거짓 보고들을 올려댄 지리노프스키 같은 자들에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제정 러시아 후반기의 행정관료들의 인재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훌륭한 편이었다. 러시아 최후의 명재상이라 불린 스톨리핀을 비롯하여 분게, 비테와 같은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존재했지만 가장 중요한 차르가 니콜라이 2세였기에 혁명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비록 자네를 공개적으로 질책했지만 사실 나도 자네의 러시아 제국에 대한 충성심과 능력은 익히 알고 있다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는 것으로 지도록 하게나. 각오해두게 내가 자네들을 아주 혹사시킬 생각이니까.”
나의 말을 들은 비슈네그랏스키는 아까와는 다른 각오가 서린 얼굴을 한 채 대답했다.
“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자네도 내일까지 세부적인 사항이 담긴 보고서를 가지고 오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전하!”
서둘러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물론 이런 성취감을 느끼기엔 아직까지 실질적으로 해결된 것이 없지만 일본에서부터 내가 해온 일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니 사학도로서의 내 자아가 날뛰는 듯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들어가 자신이 역사의 물길을 바꾼다는 일은 사학도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해본 발칙한 상상일 테니까. 물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고 아직까지도 발 한번 잘못 내딛으면 위험한 살얼음판에 가까웠지만.
‘그럼 구호위원회의 구성인원을 어떻게 할지부터 결정해야겠군.’
어찌되었든 당장 눈앞에 있는 과제부터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돌아가던 도중 로마노프 황가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저 쌍두독수리가 빨간 깃발로 변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내 최종 목표다. 그리고 이번 일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처소로 돌아가는 내 귓가에 쌍두독수리의 포효가 들려오는 듯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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