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00)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00화
“명령하신 대로 놈들의 무장 해제 및 우두머리인 베조브라조프의 구금을 완료했습니다.”
“좋아. 그 과정에서 충돌은 없었겠지?”
“종무원장님이 베조브라조프를 방심시킨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그가 구금된 걸 밝히며 순순히 투항하라고 하자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더군요. 그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치안군의 총구가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수도에 계시는 전하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인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본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요.”
“고생했네. 이번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해야 하니 병사들의 입단속에 신경 써야 하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알려지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적어도 전하께서 이번 사건을 아실 때까지만이라도 말이야. 이만 나가보게나.”
러시아 제국에 영광을!
자신에게 경례를 한 뒤 문밖으로 나서는 병사를 보는 종무원장의 눈이 흐릿해졌다.
영광, 영광이라.
젊은 시절부터 종무원장의 관심사는 하나밖에 없었다.
더 강력한 조국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뿐.
그 외에는 지극히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영광을 시도 때도 없이 부르짖었던 것 같다.
적들에게 죽음을! 조국 러시아 제국과 황제 폐하에게 영광을! 이교도에게 죽음을!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때때로는 너무나도 자주 사용해 영광이라는 단어가 마치 사용하고 버려진 성냥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입은 자연스럽게 다시금 영광을 내뱉었다.
그래, 영광이라는 단어는 민족이라는 말 앞에도 나왔었다. 그것도 자주. 아니, 항상.
지금에 와서는 뉘우쳤다고는 하나 종무원장은 과거의 일 또한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데 일조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종교에 따르면 모든 일에는 주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아마 주님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부끄러움 없이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게끔 하셨으리라.
정교회 외의 다른 종교를 탄압하고 알렉산드르 3세의 반개혁 정책을 지지한 것 또한 조국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항이라 생각했기에 그리 행동했었다.
종무원장은 베조브라조프 일당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불타버린 마을, 인적이 없는 폐허를 배경으로 어슬렁거리던 그들은 마치 묵시록에 나오는 기사들처럼 보였다.
인간 시대의 끝을 알리며 세상에 종말이 찾아왔다고 알려주는 이들.
종무원장은 중앙에서 떠난 지 세월이 좀 지났기에 처음에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누군지 몰랐으나 자신이 접근하자 마치 스승이라도 본 양 친근하게 다가오던 것을 떠올렸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종무원장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이런 곳에서 누구보다 애국자이신 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말에서 내리면서까지 자신에게 환대를 보내던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원래라면 밭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농부들의 기분 좋은 땀 흘림과 잡담, 아직 일하기는 어린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소리, 마을에 하나뿐인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낙네들의 재잘거림이 가득 차 있어야 할 마을이었다.
하지만 종무원장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타고 있는 집터에서 나는 빠직거리는 소리, 그들이 타고 있는 말들이 가끔 푸르릉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 일상에서 나오는 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을 맞이하는 청년들의 표정과는 정반대되는 풍경이었기에 종무원장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었다.
본인을 따라온 세르게이가 옆에서 부축해 주었지만, 그의 비틀거림을 본 청년들의 걱정 어린 얼굴도 떠올랐다.
-먼 길을 오시느라 힘드신 와중에 저희가 너무 배려심이 없었군요. 도시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웃음에서 엿볼 수 있는 순수함을 찾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종무원장은 더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평범한 청년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별다른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베조브라조프와 대면했을 때 종무원장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들은 젊은 시절, 아니, 얼마 전까지의 자신과 닮아 있다는 것을.
-어떻습니까, 종무원장님. 아름답지 않습니까? 정당한 신앙을 가지지도 않은 데다 우리와 같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슬라브 민족이 아닌 이들에게 내려진 적절한 형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쓸어버릴까도 고려해 보았지만, 그리했다간 괜히 더 시끄러워질 것 같아 내쫓기만 했습니다. 요즘 국가주의다 뭐다 해서 이들 또한 러시아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족속들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작은 배려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이번 일은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러시아 제국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의 눈빛과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는 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이 행하는 일이 모두 정당하며 주님의 앞에서도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예. 제가 그런 일을 저질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당당함.
종무원장은 그의 눈 안에서 광기가 아닌 차분함을 볼 수 있었다.
표정 관리나 그들의 행동에 질렸다는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면 저들이 자신을 따라 별다른 의심 없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자신의 몸에 새겨져 있는 귀족으로서의 행동가짐과 오랜 궁중 생활로 인해 다져진 기술이 제 역할을 다한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본인이 과거부터 최근까지 말해왔던 것 또한 저들이 종무원장을 자신들과 비슷한 족속이라 여기는데 한몫했겠지.-여기서 종무원장은 처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종무원장을 지내며 이 세상의 추악한 면은 다 봤다고 생각했건만.’
점차 늙어가며 둔해지는 자신과 달리 세상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 속도는 너무나도 대단해서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달리는 열차 아래로 내던져지는 듯했다.
다행히 베조브라조프의 ‘배려’로 말미암아 그들의 손에 직접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없었지만, 아직은 추운 4월이라는 날씨에 집에서 쫓겨나 이곳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여정을 견뎌낸다는 것은 영유아들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눈물 어린 어조로 그들이 입은 피해를 말해나가던 최재형의 얼굴이 떠오르자 종무원장은 눈을 감았다.
저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마땅히 짊어져야 할 대가를 치르리라.
* * *
쾅!
“이 망할 개자식이 제 주제도 구분 못 하고 이런 식으로 날뛰어!”
극동에 있는 종무원장으로부터 온 긴급전문을 받아본 나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분게와 비슈넷그라스키의 은퇴 이후 자신에게 집중된 업무를 신경 쓰는 것도 벅찬 와중에 최근 들어 자신에게 적대적인 의사를 내비치던 애송이가 극동에서 한 짓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하도 이 일을 알고 계신가?”
“재, 재무장관님에게 올라온 전문은 전하에게도 같이 보고드리기로 되어 있기에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젠장.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이번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해 전하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 느껴졌다.
“오늘 일정은 모두 취소하게. 전하를 뵈러 가야겠으니.”
베조브라조프는 나에게 가장 적대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외부로의 확장을 우선시하기보다는 이미 우리가 확보한 것을 소화하고 내부를 개혁하는 게 우선이라 여기는 전하의 정책에 동의하는 나를 패배주의자나 겁쟁이라 부르는 놈이었으니까.
차마 전하를 비난할 수는 없으니 나를 모욕하던 거나 다름없었는데 웃긴 것은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 중 군사적인 행동을 통해 얻어낸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아직도 총과 대포만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전쟁을 부르짖는 이들 중에 실제로 크림 전쟁의 그 진창을 경험해 본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베조브라조프의 추종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크림 전쟁을 직접 겪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가 이번에 극동에서 저지른 일은 현재 정부가 추구하는 극동의 안정이라는 방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조선으로부터 넘어오는 이들을 비롯한 망명자들에게 ‘러시아는 의지할 수 있는 나라며 너희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건만, 지난 시절의 그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조선의 왕이 이번 일을 계기로 연해주에 집적거리지는 않을까란 걱정도 잠시 떠올랐지만, 이내 털어냈다.
그에게 그런 능력도 배짱도 없었으니까.
만약 그런다면 그날이 조선의 왕이 왕으로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되겠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베조브라조프가 지도록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다만.
‘무작정 처벌하기에도 부담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 애송이를 좋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그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들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었지만, 그의 언변에 매료된 귀족들을 비롯한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이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하가 의지만 있다면 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친 베조브라조프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겠지만, 일이 그렇게 될 경우 러시아 제국의 국론을 하나로 묶기 위해 노력하던 것까지 무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국가주의라는 사상을 얘기할 정도로 통합을 강조하던 전하에게 이런 반발을 무릅쓴다는 일은 정치적인 부담이 클 것이 분명했다.
‘외통수나 다름없군.’
베조브라조프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자니 극동의 사회 및 정세가 불안정해질 것이 뻔했고 처벌을 하자니 수도를 비롯한 민족주의에 우호적인 이들의 반발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전하에게 재무장관이 왔다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전하의 집무실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들어오셔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전하께서도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계시리라는 내 생각과 달리 문이 열리고 내가 마주한 전하의 얼굴은 밝은 표정이었다.
혹시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하신 건가?
“전하, 큰일입니다. 극동에서…….”
“자네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그 친구가 이번에 신나게 날뛰어줬더군. 나도 종무원장으로부터 온 전문은 봤네.”
다행히도 전하께서도 이번에 벌어진 일을 알고 계신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표정이 밝으신 것을 보면 이미 해결책도 마련하신 모양인가?
나는 새삼 전하의 능력에 전율을 느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복잡한 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다 생각하셨다니.
“재무장관. 내가 그동안 짧은 시간이지만, 국정을 운영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해결책을 여쭤보려 했지만, 전하께서 먼저 내게 질문을 하시는 바람에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그건 말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걸 깨달은 후로는 분노가 일어날 때마다 웃기로 마음먹었지요.”
아,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
전하는 문제를 해결하셨기에 웃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베조브라조프, 그 친구가 나를 웃게 만들어주는군요.”
전하는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