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0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02화
“그대와 같은 애국자를 위해 신설한 자리인 만큼 특별대우 또한 보장되어 있다. 저 먼 극동까지의 원정에 함께할 만큼 자네와 뜻을 같이하며 사이가 돈독한 이들을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본래라면 이런 조치는 지방정부의 독립성이 지나치게 높아질 것을 우려해 허용되지 않지만, 자네와 같은 애국자라면 내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와 함께 슬라브 민족의 살 공간을 넓히는 데 앞장설 용사들은 연해주에서 가벼운 오해로 인해 종무원장에게 같이 붙잡혔던 인원들로 배정하도록 한다. 비록 급하게 마련한 자리이기에 정식으로 격식을 차려 임명해 주지 못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하나 자네와 같은 애국자라면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 베조브라조프는 캄차카라는 지명이 어디에 붙어있는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했다.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미국 땅인 알래스카와 더 가까운 그곳은 제대로 된 기록이 18세기에나 등장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으니까.
밝은 표정이었던 그가 차츰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내가 말하는 내용 중 종무원장이 등장한 후였다.
“오늘 이 발표를 하게 되어 내가 얼마나 기쁜지 여기 모인 그대들은 감히 짐작하지도 못할 거요. 우리 러시아의 강점이자 약점인 넓은 영토로 인한 지방 통제력에 대한 우려가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는 극동에 불타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사나이가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되는 기쁜 날이니 말이오. 베조브라조프와 포베도노스체프라니 이 얼마나 든든한 인선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소, 여러분?”
“마, 맞습니다, 전하. 참으로 탁월한 인선이십니다.”
“최근 들어 극동이 소란스러웠는데 종무원장과 베조브라조프라면 능히 전하의 염려를 덜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떨떠름한 보수파 귀족들의 목소리와 나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찬사가 들려오자 베조브라조프는 그제 서야 자신이 맡게 된 직위가 포상이 아닌 처벌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무릎을 꿇은 상태로 나를 쳐다보면서 입술을 움찔움찔하는 모양새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쐐기를 박기로 했다.
“앞으로 베조브라조프 지방관이 관리하게 될 지역은 몇 년 전 나에게 흉수를 들이밀었던 일본과 앞으로 우리 러시아의 주요 이익지대 중 하나인 만주, 조선반도와도 가까운 장소요. 비록 아직 개척이 되지 않은 땅이 많아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연해주를 관리하고 있는 종무원장과 연계해 그대가 주장한 슬라브 민족이 살 공간을 넓히는 데 애써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방금 자네가 말대로 모든 능력과 심지어는 생명까지 동원해 황실과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 말한 만큼 훌륭한 성과를 거둬줄 거라 생각하지.”
“저, 전하.”
베조브라조프는 이제 거의 울먹거리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감동을 먹은 건가? 하긴, 추종자들 몇 명이나 끌고 다니던 그가 러시아 제국 내 많지 않은 지방관이라는 직위에 오른 만큼 충분히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할 수도 있지.
나는 어디까지나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몇 마디 덧붙이기로 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거 없네. 앞으로도 그대와 같은 애국자들이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그곳으로 보내줄 테니까. 아마 인력 부족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걸세.
다만, 몇 가지 주의할 점은 인력 지원은 충실하게 해줄 테지만, 자네가 협력해야 할 연해주 지방도 사정이 넉넉하진 않으니 물자 지원은 부족할 수도 있네. 그리고 내 듣자 하니 캄차카 반도 내에 있는 곰의 숫자가 연해주 지방에 있는 사람의 숫자보다 많다고 하던데 안전에 유의를 기울이도록 하게나.”
“저, 제가 이런 과중한 임무를 맡을 수 있을ㅈ…….”
“흠, 흠.”
베조브라조프는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덕담이나 아부를 건네던 귀족들을 도움을 청하듯이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헛기침을 동반한 외면뿐이었다.
종무원장의 실각 이후로도 마땅한 구심점을 찾지 못한 그들에게 혜성처럼 등장한 베조브라조프는 본인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겠지.
내 행동에 의해 무산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은 다시금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괜히 여기서 나섰다가 나한테 ‘오, 경마저 그런 애국심에 불타고 있을 줄은 몰랐군. 부디 베조브라조프를 잘 이끌어주게나’라는 말을 듣기는 싫을 테니까.
“자, 그러면 다들 잔을 들어 올리게나. 오늘처럼 기쁜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황금빛을 가진 샴페인을 채운 사람이든 투명한 색의 보드카로 잔을 채운 사람이든, 아니면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든 모두 잔을 들어 올렸다.
나는 아직도 울상인 베조브라조프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그를 친히 일으켜 주었다.
이제 단순한 한량이 아닌 엄연한 지방관인 만큼 격식을 차려줘야지.
제 한 몸을 다 바쳐 슬라브 민족의 생활반경을 넓혀줄 용사들을 위해 건배!
* * *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마무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이번 일을 시작한 베조브라조프가 캄차카 반도의 지방관으로 영전했다는 기사를 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언론들도 관련 소식을 더 이상 전하지 않았다.
민족주의 세력에 우호적인 논지로 기사를 써내려가던 편집장들 몇몇이 사장실로 불려가 밥줄이 끊기고 싶냐는 질책을 들었다는 소문이 잠시 떠돌았지만, 그다지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젬스트보에 소속되거나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에 다니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일로 황태자가 자신은 민족주의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고 정식으로 선을 그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알렉산드르 3세 시절에 비해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러시아 제국이라는 나라는 황실에게 밉보이고서는 출세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베조브라조프가 자신의 부임지로 떠나는 날 우는 얼굴로 황태자에게 격려받는 사진처럼, 그의 전철을 밟기 싫은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카라초프! 어제 모임에 안 온 이유가 뭐야? 너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안 왔던데 아는 거 있어?”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어. 괜히 나대다가 베조브라조프 서클이 되기는 싫거든. 세상에, 캄차카라니 그런 촌구석에서 어떻게 산단 말이야.”
‘베조브라조프 서클’이라는 말은 대학가에서 유명한 단어였다.
그와 함께 연해주의 조선인 정착지를 불태우고 캄차카로 같이 길을 떠난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베조브라조프가 부임지로 떠나는 것을 보도한 신문기사 말미에 기록되어 있던 황태자의 ‘앞으로도 이들과 같은 애국자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신념에 기꺼이 투신하리라 생각한다’라는 말이 나온 후로는 민족주의로 인해 본인 신세를 망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으니까.
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양측에서 어느 쪽에 붙는 것이 더 이득인지를 재던 이들이 국가주의 진영으로 넘어가자 세력의 추는 기울기 시작했다.
소수의 열렬한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황태자가 직접 경고한 사항을 어기기는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말이 영전이지 사실상 자신에게 거슬린 이를 유배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모습을 포장하고 세력을 보존하기 위해 연해주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황태자의 측근인 종무원장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며 연해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캄차카 또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긴 것이라 주장했지만, 그게 헛소리라는 건 어느 정도 식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었다.
이제 폭력과 같은 수단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서의 생활이 아닌 화산과 곰이 넘쳐나는 캄차카의 거친 삶이라는 게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태자에게 실망한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지하로 숨어든 극렬민족주의자들에게 접촉하거나 치안이 불안정한 접경지대 등으로 떠나갔다.
다른 민족과 총부리를 맞대며 살고 있는 지역인 만큼 그곳에서는 민족주의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단 극동지역 만큼은 국가주의가 우세했지만,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진 일이 극동까지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최재형의 경우에는 남들보다 더 빨리 알게 되었다.
지역 신문에 관련 소식이 나오기 전에 종무원장이 그를 불러 먼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대표나 다름없었기에 최재형과 종무원장은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지방에서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는 조선인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으니까.
인간적인 호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공적인 면이 주였기에 방금 있었던 만남 또한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방금 내가 말했다시피 전하께서도 이제 공식적으로 그대들이 우리 러시아 제국의 신민이라는 것을 밝히신 거나 다름이 없네. 요즘도 각 마을에서 온 난민들이 불안해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네가 좀 더 노력해서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게나. 조만간 공식 발표도 있을 테지만, 사태가 안정화 되었다고 해서 아무런 지원 없이 폐허가 된 마을에 데려다 놓을 것도 아니라고 전해주게. 그리고 이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한구석에 마련된 재러조선인 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최재형의 손에는 편지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다.
‘설마하니 전하께서 직접 편지를 써서 보내주실 줄이야.’
엄밀히 말하면 긴급 전문으로 온 내용을 다시금 옮겨 쓴 것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국의 황태자-황제나 다름없는 위치이긴 하지만-가 이민자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친히 펜을 들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종무원장과의 만남 자리에서 펼쳐보기에는 부담스러웠기에 최재형은 회관으로 가는 길에 편지의 봉인을 뜯고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황족이 보낸 편지를 읽는 장소로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마음속의 외침을 이겼기 때문이었다.
[명실상부한 러시아인이자 아버지 차르께 충성을 바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최재형에게.]첫 줄을 읽자 최재형은 지금껏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와 적응하는 동안 겪었던 일, 살기 어려워 넘어왔건만 이곳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기에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러시아어를 필사적으로 배워 나갔던 나날,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받아왔던 너는 러시아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시선.
그 모든 게 이 문장 하나로 보상받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방인이라 말한다면 자랑스럽게 꺼내 들 수 있는 편지.
이민 1.5세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최근 벌어진 일로 그대를 비롯한 조선에서 차르의 품 안으로 들어온 이들의 걱정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이번 일은 러시아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부의 애국심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벌인 일입니다. 앞으로도 나를 비롯한 러시아 제국 정부는 차르를 섬기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 또한 러시아인으로서 부과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대들이 차후에 있을 조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 줄…….]편지의 내용은 끝나지 않았지만, 최재형의 발걸음은 멈춰져 있었다.
최재형은 서쪽을 바라보았다. 비록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지만, 자신의 군주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말하곤 했던 조선 특유의 예를 표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았기에 얼마 전 내린 비로 진흙투성이였지만, 그건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한 명의 러시아인이 서쪽으로 절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