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0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03화
39장 음지에서 자라나는 것
최근 러시아가 보여준 행보는 예전과는 달랐다. 지금까지 다른 유럽인들이 그들에게 가졌던 인식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러시아를 지배하는 로마노프 황가의 상징은 독수리였지만, 느려터진 행정과 굼뜨기만 한 움직임은 마치 덩치만 크고 미련한 곰을 떠올리게 한다는 조롱 섞인 평가가 주일 정도로 러시아는 무시 받고 있었다.
국제정세를 잘 알지 못하는 국민을 선동하고 세금을 별다른 반발 없이 올리기 위해 러시아를 과장하고 마치 세계를 집어삼킬 나라처럼 묘사했지만, 영국의 정치인들은 그들이 사실은 속 빈 강정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니콜라이 황태자가 전면에 드러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가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무섭게 성장할 줄은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총리이자 지금 다시 총리에 취임한 솔즈베리 후작조차도 그가 러시아를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장악할 줄은 몰랐으니까.
‘차라리 그때 나섰더라면 저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단기적인 이익에 너무나도 눈이 멀었던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가 자신들에게 교토조약에 참여하겠냐고 물어볼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조약의 수위를 낮추라는 압박을 했었다면, 아니, 전쟁 같지도 않던 전쟁인 청일전쟁을 끝내주는 대가로 맺은 홍콩조약에서 러시아가 가져가는 이득을 줄였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니콜라이 황태자의 피습사건을 핑계로 교토조약을 맺으려는 것에 간섭을 했다면.
‘그랬다면 러시아가 저렇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솔즈베리 후작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더 무서운 것은 영국이 그런 식으로 개입을 했다 할지라도 니콜라이 황태자 자체를 실각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검은 곰’-황태자의 연설 이후로 영국에서는 그를 검은 곰이라 불렀다-이 멀쩡하게 살아 숨 쉬는 이상 그가 제위를 잇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이번만 하더라도 자칫하면 러시아라는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질 수 있는 상황을 재빠른 움직임을 통해 막아내지 않았던가.
연해주에서 일어난 일을 듣고 내심 쾌재를 부르던 영국 측 입장으로는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정치판과 외교판에서 구를 대로 구른 후작에게도 니콜라이라는 사람은 규격 외로 느껴졌다.
분명 정보부서에서 올린 보고서에 적힌 대로 제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애송이라고 평가하던 게 엊그제 같건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매일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내부안정과 개혁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만 보더라도 니콜라이의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피와 폭력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으니까. 비록 억제수단이 또 다른 물리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영국 또한 얼마 전의 혼란에서 벗어나 표면적으로는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후작이 보기에는 이는 수면 위의 고요일 뿐 깊이를 알 수 없는 표면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엄연히 허가를 받은 노동조합 해체, 언론에 대한 보도 규제 및 탄압, 심지어 10인 이상의 군중이 모이는 것도 허가를 하지 않는다니요. 후작님, 언제 이렇게 변해 버리신 겁니까?
세계를 지배하는 대영제국의 총리인 솔즈베리는 자신에게 질문하던 젊은 의원의 말을 되새겼다.
사실 이런 식의 조치는 평상시 그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성향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수상에 취임했을 당시 얻은 별명 중 하나는 노동자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급진적인 내용이 담긴 법률을 입안시켰다는 이유로 불린 ‘사회주의자’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같이 떠오르는 풍경은 버킹엄궁 앞까지 진출한 시위대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자신들이 가진 힘이 투표권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줄근한, 하지만 눈에는 의지가 가득 차 있던 노동자들의 모습.
다행히 앞서 나열된 조치들과 비공식적으로 진행 중인 조치들 덕분에 런던 시내는 겉으로나마 평온함을 되찾았지만, 이번에는 아일랜드가 문제였다.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입안하고 통과시키려던 글래드스턴이 실각하고 그의 뒤를 이어 취임했던 프림로즈마저 정치적 힘을 잃게 되자 영국 의회 내에서 아일랜드 자치법안이 표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니언 잭 아래에 하나 된 대영제국을 추구하는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로 힘을 모아도 시원찮건만 아일랜드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찾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와 더불어 지난번 러시아와의 외교회담에 다녀온 이후로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겠냐며 은근슬쩍 위험한 사상을 드러내는 조지 왕자 또한 그의 두통을 더해주고 있었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에 허락해 주었건만 솔즈베리는 가능만 하다면 시간을 되돌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지 왕자가 회담에 못 따라가게 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녀온 이후로 사람이 변했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후작은 어제 있었던 조지 왕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입헌군주제의 모범적인 군주감이었던 사람은 어디 가고 현실정치에 개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총리,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정책은 너무 미온적이거나 위험을 조기에 없애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우리는 더 철저하게 대영제국이라는 건물 아래에서 뿌리를 뒤흔드려는 독초들을 없애야만 합니다. 러시아를 보십시오! 후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압니다. 하지만 저들로부터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밀경찰을 이용한…….
-왕자님,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야말로 저를 비롯한 내각 구성원을 믿고 신뢰를 보내주십시오. 최근 들어 전하께서 제 집무실에 드나드는 것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만, 전하께서 혹시 마그나카르타로 상징되는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가볍게 여기시는 게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빅토리아 여왕의 다음 계승자도 아닌 차차기 계승자인 조지 왕자가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은 후작이 속한 보수당 내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이는 단지 입헌군주제의 왕족이 실권을 노린다는 것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왕실 내부에 있는 질서마저도 어지럽히는 행위였으니까.
비록 조지 왕자가 대영제국이 추진하고 있는 그리고 추진할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게 자명하더라도, 왕실 내부에서 공통된 목소리가 아닌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제지시켜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조지 왕자의 아버지이자 차기 계승자인 에드워드조차도 현실 안건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에 조심스럽건만, 차차기 계승자의 이런 행보는 자칫 부자간의 사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이 끝나자 정색을 한 표정으로 본인을 노려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조지 왕자가 오래 지나지 않아 사과의 문장이 담긴 편지를 보내오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는 자신들이 체결한 러-불 동맹에 합류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나 외교무대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단 말이지. 무대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춤추겠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올라오는 형국이니.’
얼마 전, 기나긴 협상 끝에 맺어진 러-불 동맹은 누가 봐도 독일을 겨냥한 것이 분명했다.
말로는 삼국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보불 전쟁 이후로 프랑스와 독일은 철천지원수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는 ‘위대한 고립’을 주장하는 솔즈베리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기들끼리 유럽대륙에서 치고받는 사이에 식민지를 비롯한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이득이라는 전략이었지만, 혼란스러워지는 국내정세와 그로 인한 세력약화를 우려한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동맹을 찾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즈베리가 국내 문제와 국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사이 런던 시내 모처,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도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다.
“1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이면 체포하는 법이 있지만, 광부들 10명이 모여 있는 것은 경찰들이 지켜보기만 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어 10명이되 다리는 20개가 아니었으므로.”
“들어오십시오.”
최근 시행 중인 집회 금지법과 사고가 빈번한 광산의 실태를 꼬집는 말이었다.
얼마 전 벌어졌던 페더스톤 학살 사건 또한 불합리한 노동환경과 보수에 항의하는 광부들이 주축이 되어 벌인 파업이 원인이었던 만큼, 노동자들 사이에서 광부는 탄압받는 자신들을 상징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신원을 확인하는 용도의 대화가 오고 간 뒤, 으슥한 뒷골목에 있는 건물 내부로 들어간 이들은 자신들 말고도 이 자리에 모인 노동자의 숫자가 꽤 된다는 것에 놀랐다.
노동조합들이 폐쇄된 이후로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모인 풍경은 오랜만이었기에 그들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눅눅한 땀 냄새와 관리가 안 된 건물에서 나는 특유의 곰팡내가 섞여 농담으로도 좋은 냄새라고는 하기 힘들었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투사들의 냄새이기도 했다.
웅성웅성.
막 들어와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장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그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응? 아, 자네는 못 보던 얼굴인데 오늘이 처음인 모양이구만. 조금만 기다려 보게나. 멋진 연설을 듣게 될 테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사람이 등장한 모양이었다.
최근 있었던 노동조합이 폐쇄되는 과정에서 지리멸렬하던 노조를 수습하고 자신의 지부뿐만 아니라 다른 지부들에 남아 있던 잔존 간부들도 규합해 이런 지하 조직을 만들어낸 마치 전설과도 같은 인물.
과거 러다이트 운동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네드 러드’와 동일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내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그는 말 그대로 한 줄기 희망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니까.
이내 이곳을 경비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덩치 좋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등장해 비어 있는 연단 위에 서자 웅성거리던 군중들은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자존심뿐인 그들에게 별다른 말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자의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네드 러드가 가진 카리스마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도 저번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아주셨군요. 여기를 찾는 게 쉽지 않은 데다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쉴 수 있을 소중한 저녁 시간을 할애해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내 연단에서 입을 연 네드 러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의 억양은 조금 어색했는데, 노동자들의 억양이 평균보다 억세기는 하지만, 러드의 억양은 그보다도 더 딱딱했다.
마치 어조가 딱딱하기로 유명한 러시아인이 영어를 말하는 것처럼.
“자, 그러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을까요. 변함없이 저희를 착취하는 자본가? 아니면 그들과 결탁해 우리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정부? 그것도 아니라면…….”
네드 러드가 이어나가는 말을 듣던 사내는 저절로 침이 삼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뒤에 나올 말이 짐작됐기 때문이다.
“날마다 저희에게 새로운 탄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조지 왕자는 어떻습니까?”
네드 러드, 아니, 가폰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