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0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06화
니콜라이의 의사는 명확했다.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공식 외교문서인 만큼 온갖 수사가 붙어 있긴 했지만, 그런 포장지를 걷어내고 나면 고종이 원하는 대로 그들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분명 경들이 말하길 노서아라면 별다른 조건 없이도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줄 거라 하지 않았는가!”
편전을 가득 메운 신료들 가운데 서슬 퍼런 고종의 분노 앞에서 뭐라 말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껏 왕 부럽지 않은 권세를 누려왔던 민씨 일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지금 날뛰는 것은 과거 안동 김씨의 경우와는 달랐으니까.
철저히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고 조정을 비롯한 조선 8도를 장악한 결과 왕 위에 있다는 평가마저 나올 정도의 안동 김씨와는 달리 민씨 일파의 권력은 고종과 민비로부터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조판서! 뭐라 말 좀 해보게나. 노서아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자네의 말과는 다르지 않은가. 이게 어찌 된 일이냔 말이야.”
얼마 전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서 맺어진 조약에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민영환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기로 노서아는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시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신이 가진 힘을 떨치는 것을 즐긴다고 들었건만, 저들의 황태자가 보내온 친서에 적힌 내용은 영 달랐기 때문이었다.
[작금에 귀국이 처한 상황이 딱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차르의 군대를 동원해 귀국의 백성들을 자신의 자리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그리고 그대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서 나올 반발을 생각한다면 쉽사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부디 귀국이 목도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란다.]“…….”
민영환의 목구멍 너머로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신묘한 외교력을 자랑하던 것은 본인이 아니냐는 말이 올라왔지만, 간신히 삼킨 그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자신의 혀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 계속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요? 무언가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오!”
사실 고종의 지금과 같은 히스테리가 일어날 정도로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민란이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2달째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도 일어나지 않았을뿐더러 전주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는 여전히 정부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중앙에서 내려보낸 군대가 격파당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신식 병기로 무장한 군대는 한성을 방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남아 있었으며 홍계훈이 이끄는 병력도 600여 명에 달했다.
다만 자신이 내놓은 계책과 진압 방법이 연이어 무너지자 이에 대한 책임을 돌리고자 필요 이상으로 날뛰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조기에 사태를 종결시키는 것도 실패로 돌아간 만큼 그가 가진 위기감이 증폭되기도 하였고.
당장에라도 편전에 있는 신료들을 모조리 의금부에 쳐넣을 듯 날뛰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노서아가 저리 나오고 자신이 보유한 군대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니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노서아가 저렇게 나오는 이상 당장 지원을 요청할 나라는 청나라나 일본이다. 지금으로써는 청나라가 흔들리고 있다고는 하나 일본보다는 더 믿음직스러우니 그쪽에 지원을 요청하는 게 낫겠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 중 대다수가 친청파였던 만큼 요청을 빠르게 전하기도 좋겠지.’
이런 계산 하에 이루어진 청나라와의 접촉은 고종에게 있어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바, 방금 뭐라고 했는가? 처, 청나라도 파병은 힘들다는 입장을 표했다고?”
“아,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렇사옵니다, 전하. 저들 또한 지난날 일본과 있었던 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어 파병과 같은 대규모 재정이 들어가는 일은 하기 힘들다고 하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경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알겠네. 그럼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겠군.”
청나라가 말한 대로 그들도 자신의 코가 석 자인 판국이었다.
연이은 유럽 국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데다 자신들과 비교도 안 된다 여겼던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패배에 가까운 무승부를 기록한 청나라의 애신각라 황실은 차츰 그동안 억눌러 왔던 한족들의 준동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고종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문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청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이 담긴 답변이었다.
“허, 허허…… 허허허허…….”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일본에서 온 전문에는 어째서 청나라와 일본이 정해진 듯한 답변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었다는 점이었다.
[귀국의 요청에 대해 내각 관료들과 상의를 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파병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사실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지난날 청나라와 벌였던 전쟁의 상흔과 구라파 각국과 맺은 협정을 이행하기도 힘든 처지에 막대한 재정이 소모되는 원정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아마 청나라도 우리와 비슷한 핑계를 대며 귀국의 요청을 거절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동일한 이유를 들며 행동한다면 그 행위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귀국에 눈앞의 이유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감히 섬나라 놈들이 건방지게 이런 내용을 보내다니. 전하! 이는 엄청난 외교적 결례이옵니다! 엄중히 항의하셔야 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자신들의 처지도 살피지 못하면서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건방진 태도로 충고를 할 자격이 있단 말입니까?”
일본에서 날아온 전문의 내용이 공개가 되자 말미에 적힌 충고를 본 대소신료들은 이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막상 고종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가장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 예상됐던 고종이 조용하자 편전에서 울려 퍼지던 일본에 대한 비난도 잠잠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종의 시선은 전문 말미에 적혀 있는 문장에 박혀 있었다.
‘나무가 아닌 숲,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는 두 국가가 동시에 비슷한 핑계를 댄다, 다시 말해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 모두 이런 행동을 보이도록 어디선가 압력을 넣었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을 할 나라는 어디란 말인가. 설마?’
고종은 이내 전문을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어 편전에 있는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들자 모두가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베르 공사를 불러라.”
하지만 그들의 군주가 말한 것은 자신들이 생각과 다른 내용이었다.
일본에 항의하는 전문을 보내라거나 아니면 영길리와 같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도 아닌 이미 거절한 바 있는 노서아의 공사를 부르라니?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미 노서아는 우리의 요청을 거절한 바 있지 않은지요.”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이번에는 받아들일 거네. 공사를 부르도록.”
어딘가 자신만만한 하지만 힘이 빠진 목소리로 고종은 확신에 차 얘기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청나라와 일본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러시아가 두 나라에 압박을 넣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전문 말미에 외교적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문장을 삽입한 것 또한 러시아가 시킨 것이리라.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다시금 파병을 요청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궁에 입궐한 베베르 공사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빨리 알아냈다며 감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편전이었지만, 이내 그가 자리에 서자 아무런 소리 없이 고요함만이 가득 찼다.
“……노서아에게 파병을 요청하고 싶소만.”
“기꺼이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군요.”
편전에 있는 신료들은 이 모습이 하나에 잘 짜인 연극 같다는 감정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 * *
“공사로부터 전문입니다. 조선 왕이 다시금 파병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좋아. 생각보다는 빨리 눈치챈 것 같군요.”
나는 감탄했다.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이 우리가 자신들의 뒤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울 만한 힌트를 제공하라고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른 것은 예상외였다.
우리가 그들의 요청을 한 차례 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명분을 쌓기 위함이었다.
조선이 파병을 요청한다고 해서 덥석 그것을 받는다면 안 그래도 지난 회담 이후로 은근히 우리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영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뭐 그 회담에서 좋은 감정만을 가지고 해어졌다고 하더라도 개입했을 게 뻔하지만.’
자신들의 개입은 순수하게 도와주기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우리의 개입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야욕에 불과하다는 게 그쪽의 기본자세였으니 말이다.
“그럼 파병을 할 인원과 그들을 지휘할 인물은 미리 정한대로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파병이 아닌 자신들의 뿌리인 조선이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민병대에 우리는 장비와 보급만 도와줄 뿐이라고 합시다. 지휘는 이미 조선에서 군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민간인’ 쿠투조프가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연해주에 있는 조선계 러시아인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얼굴마담이고 주력은 러시아군이 될 테지만 러시아 제국 정부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파병하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하는 게 나을 테니까.
“그리고 쿠투조프에게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이번 민병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군주가 머무르고 있는 수도인 한성을 방어하고 조선 내에 있는 러시아 제국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시하라고 하세요. 조선의 왕이 두 차례에 걸쳐 요청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어디까지나 외세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라는 이야기도 하는 게 좋겠군요.”
장차 조선을 친러 성향의 중립국으로 만들려는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에 파병하는 인원들이 민란을 일으킨 자들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리 고종이 대신 진압을 해달라며 불러들였다고는 하지만, 조선 내에 팽배한 외세에 대한 적개심을 고려하면, 저들이 우리 손에 의해 피를 흘리게 된다면 그 핏방울 한 방울마다 내 목적을 달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줄 게 분명했다.
‘가장 좋은 건 우리가 파병했다는 소식을 들은 민란군이 자진 해산하는 것이겠지만.’
원래 역사와 달리 하나로 통일된 지휘부가 있는 게 아닌 산발적으로 옆 고을에서도 들고 일어난 것을 본 이들이 따라 일어난 게 주된 이유였기에, 원 역사와 같이 외세의 개입을 우려해 자진 해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지금부터는 살얼음판을 걸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잘못한다면 당장 조선 내의 여론은 반러감정으로 들끓어 오를 게 분명했으니까.
“대민 관련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관심을 기울이라고 하세요. 또 조선계 러시아 병사들의 일탈도 주의해야 합니다. 후, 지금부터가 조선과 관련된 오늘까지의 사전 준비 작업을 결정짓는 중요한 나날이 될 겁니다.”
원하는 것을 얻느냐, 아니면 지금까지 투자한 것을 모조리 잃느냐.
앞으로의 시간이 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