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0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09화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저 역적놈들을 쳐라!”
“와아아아! 죽여라!”
“히, 히익!”
어느새 산이 갈아입었던 옷마저도 차츰 벗어 던지기 시작하는 10월이 되자 지난 세 달간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민란도 종식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관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지방에서 저마다 자신들의 살길을, 혹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에 불타는 이들이 조직한 민보군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다름 아닌 전봉준이 이끌고 있는 동학군이었다.
지난 시절 교주였던 최제우가 참형을 당한 뒤 나라의 탄압을 피해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던 이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합법적인 조직이라는 공인을 받기 위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을 2대 교주인 최시형이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었는데, 이는 전봉준이 이끌고 있는 남접과 최시형이 이끌고 있는 북접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무력사용도 불사해야 한다는 남접과는 달리 북접의 목적은 자신들의 시조인 최제우의 명예회복과 동학의 자유로운 포교 허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봉준이 이번 민란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음으로써 명망이 높아지자 대놓고 그들의 행동에 대해 반대되는 의견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북접 내부에서는 이번 일 이후로 전봉준에게 제지를 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나오고 있었다.
조정 또한 자신들을 대신해 민란을 진압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과정에서 전봉준이 지나치게 영웅시되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혼란한 국가에 왕이 아닌 다른 영웅의 출현은 항상 정권의 위협으로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달간의 시간 동안 전봉준이 보여준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지리멸렬한 데다 하나로 통합되지도 않은 민란이었다고는 하나 전라도를 통째로 불태우던 민란을 진압한다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죽어라! 이 개자식들아! 어머니의 원수 놈들아!”
“놈들을 살려두지 마라! 역적놈들에게 마련된 것이라곤 지옥뿐이다!”
“무, 물러서지 마! 어차피 더는 도망갈 곳도 없어! 억!”
그리고 전봉준에게 합류한 이들 가운데는 민란 도중 그들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겉으로나마 법도를 따르는 시늉이라도 했던 그들과는 달리, 법도 질서도 없는 민란군이 장악한 동네는 그들이 곧 법이었으니까.
여우가 사라진 자리를 이리가 메꾼 것이나 다름없는 일들이었다. 당시 발생한 일들을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였을까. 전봉준의 동학군은 민란군들 사이에서 다른 민보군에 비해 자비와 같은 인정이 없기로 유명해졌고 그들과 마주친 이들에게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이런 인식 또한 전봉준이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 곳을 제외하곤 민란군의 거점들을 박살 냈다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동학군이 왔다는 소식만 듣고도 상대방이 항복을 하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장군님!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이 개별적으로 쫓는 것을 막고 다시금 대열을 갖추도록 하여라. 이곳이 저놈들의 마지막 근거지인 만큼 신중해야 할 것이다. 병사들이 대열을 갖춘 뒤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펼치고 천천히 좁혀 나가도록. 그동안의 고생을 수포로 돌리지 않도록 병사들에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전해라.”
“예!”
이번 전투가 끝나면 전라도 지방에서의 민란은 다 진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규모 잔당들이 산으로 들어가 명맥을 이어나갈 수는 있겠지만 여태처럼 한 지방을 장악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힘찬 대답과 함께 자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가는 전령의 뒤를 보는 전봉준의 눈에는 이미 이 전투 이후의 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이번 민란 진압은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 발걸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씨 척족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북접에서도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북접들은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정보라도 공유하지만, 민씨 척족들에게 나는 눈엣가시나 다름없겠지. 게다가 한성에는 노서아의 군대가 들어와 있으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두만강을 건너 노서아 인들이 더 들어온다고 하니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다. 이번 민란이 끝나더라도 내가 할 일은 끝나지 않겠구나.’
그의 뇌리에는 작년 한양에 갔을 때 만난 흥선대원군과의 대화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비록 과도 크다고는 하나 평생을 조선이라는 나라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애써왔던 노인과의 대화는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외세의 개입을 막고 본연의 힘을 기른다. 척화비를 전국 방방곡곡에 세울 만큼 외세에 적대적이었던 대원군이 지금 한양에 노서아 군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르신. 제가 곧 뵈러 가겠습니다.’
민란이 끝나더라도 조선을 뒤덮은 먹구름은 걷히지 않을 것 같았다.
* * *
새소리도 없이 고요한 밤이었다.
방안을 밝히고자 켜놓은 초가 타들어 가면서 나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날이었지만, 이날 이곳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말을 쥐가 들을세라 소곤거리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주상전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모습이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이게 다 그놈들이 한성에 들어온 이후부터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대로 가다간 전하께서 우리가 아닌 노서아 놈들에게만 의존하실 판국입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그 뭐냐, 이름도 발음하기 힘든 놈들의 지휘관이 민영휘 어르신께 보인 태도는 또 어떻고요. 아무리 법도와 예를 모르는 오랑캐라지만, 그런 불경스러운 태도라니 나 원 참!”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모두 한성, 아니, 조선 안에서 방귀깨나 뀐다고 소문이 자자한 양반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두가 현재 조선의 실세 중의 실세인 여흥 민씨 그중에서도 민씨 척족의 수장이라 불리는 민영휘의 측근들이었으니까.
누구보다 앞장서서 고종이 외세에 군대를 파병해 달라는 것에 동의를 표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이 외국의 힘을 빌려 자국민을 억압하겠다는 고종의 뜻에 동의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관군이 연전연패를 거듭하자 혹시라도 민란이 전국으로 확산되어서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던 그들에게 외국 군대는 그들을 대신해 자신들의 권좌를 위협하는 이들을 없애줄 용병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노서아의 군대가 들어오자 상황은 그들이 가졌던 기대와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민란을 진압해야 할 그들은 아직 오지 않은 장비와 병력의 핑계를 대며 남쪽으로의 진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데다 오히려 민씨 척족의 핵심구역이라 할 수 있는 한성을 장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그들로서도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성 내에 있는 군사력 중 가장 강력한 존재가 노서아 군이라면 그들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야심 찬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그러졌다.
노서아 군의 지휘관인 쿠투조프에게 줄 선물을 들고서 주둔지로 향했던 일행이 입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오자 사절의 격이 맞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 민영휘가 친히 그를 방문하려 했건만, 앞서와 똑같이 입구조차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민영휘는 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나 다름없던 그에게 이런 수모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직위를 들먹이며 난동을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쿠투조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채 그의 부관인 새파란 애송이를 보낸 것은 민영휘에게 있어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조정의 실세이자 국모의 혈육인 그를 자신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만, 사령관께서는 현재 업무가 과중하여 민영휘 대감님의 방문을 받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혹시라도 무언가 전하실 말이 있으시다면 제가 대신 전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나마 대신 나온 최재형이라는 부관이 이런 식으로 공손하게 나오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고종에게 달려가 자신이 겪은 수모를 낱낱이 밝히며 엄중한 대응을 요구했으리라.
“이 자리에 없으니 하는 얘기입니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 가장 큰 책임은 민영환이가 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자신이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게 많다고 떠벌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 러시아에 파병을 요청해야 한다는 말은 다 같이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혈족 내에서의 다툼마저 벌어질 양상이 펼쳐지자 민영휘는 입을 열었다.
“그만,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들먹이면 뭐하겠는가. 오늘 이 자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인 것을 명심하게.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가족끼리 뭉쳐야 하지 않겠는가. 민영환이 이 자리에 없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주의하게.”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지난 일만 보더라도 노서아 지휘관이 우리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요.”
한쪽에서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가 나오자 민영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저놈이 나를, 아니, 우리 민씨 가문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지. 하지만 이 땅이 어딘가? 바로 조선, 그것도 주상전하가 계시는 한양 아니던가? 여기가 노서아라면 꼼짝없이 당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우리로서도 사용할 방법은 많다고 할 수 있지.”
“그 방법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저들 가운데 우리 조선 출신 병사가 많다는 건 자네들도 이미 알고 있을 걸세. 저들이 비록 지금은 노서아의 군복을 입고 있다고는 하나 뿌리가 어디인가? 바로 이 나라 조선 아닌가? 전하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노서아 지휘관의 부관인 최재형도 그가 보이는 행태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 아무리 자기가 가진 힘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요청을 받고 온 입장치고는 너무하다는 거 아니냐는 말이야.”
“그러면 조선 출신 병사들을 꼬드겨서 노서아 군을 몰아내자는 말씀이십니까?”
민영휘는 돌아오는 말을 듣자 머리가 아팠다.
이 정도로 상황 파악을 못 해서야.
“이 사람아, 아무리 조선 출신 병사가 많다 하더라도 노서아 출신 병사가 더 많은 데다가 지금 전하가 계신 한성에서 전쟁을 벌이자는 말인가? 그리고 만약 성공한다 치더라도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됐네, 아무튼 말을 잇자면 전하께서도 저들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벌어지는 민란을 진압하지는 않고 여기에 머무르는 것에 불만을 가지신 만큼 노서아의 군주에게 지휘관을 바꾸어달라는 서신을 보내시려는 모양이네. 그리고 그때 조선 출신 병사들이 전하의 말에 힘을 보태주는 거고.”
민영휘는 자신의 계략이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은 것 같았다. 조선 출신 병사들이 본인들에게 협력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고종의 장담을 듣자 믿음이 갔다.
자신에게 모욕을 안겨준 쿠투조프에게 직접 복수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워도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니던 그놈이 본국에서 날아온 교체 명령서를 받는다면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웅성웅성.
그리고 그의 그런 망상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의해 깨지기 시작했다.
“나으리! 큰일 났습니다! 억!”
민씨 척족이 모여 있는 사랑방의 문을 급하게 열고 들어온 하인이 옆에서 날아든 발길질에 맞고 날아가자 그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니, 어느 누가 감히 민씨 가문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의 의문은 옆에서 하인을 발로 찬 인물이 얼굴을 보이자 해소되었다.
“야심한 밤에 이곳에 모여서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우선 다들 나오시지요.”
“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물으신다면 주상전하의 요청을 받고 친히 이곳까지 온 제 상관이신 쿠투조프 지휘관을 감히 암살하려던 흉수들이 모인 곳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최재형이 친절하게 답변해 주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