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1)
올해의 수확 기대량이 매우 적고 기근이 우려되는 이유로 금일 부로 곡물 수출을 전면금지한다. -구호위원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날아온 공문을 보고 세바스토폴에 있는 상인들은 경악했다. 아니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곡물을 한 톨이라도 많이 팔라고 닦달하던 곳에서 수출을 금지한다는 명령을 내리다니?
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었다. 기근이 우려된다니 언제부터 이 나라가 농노들에게 신경을 썼단 말인가?
이미 농노라는 존재는 사라진 후였지만 그들에게 농민은 농노와 다를게 없어 보이는 존재들이었다. 더러운 집에 살면서 땅이나 파먹고 살아가는 비천한 존재들.
세바스토폴에서 곡물을 수출하는 상인 중 하나인 이바노프는 구호위원회라는 난생처음 듣는 단체에서 보낸 공문을 보고 코웃음 쳤다.
수출을 전면 금지시킨다고? 하! 어림도 없는 소리, 그의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비추어볼 때 이런 명령은 현지 세관 담당자에게 몇 푼 찔러주면 해결되는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정도의 장애물 같지도 않은 존재였다.
물론 평상시보다 담당자에게 조금 더 많은 기름칠을 해야겠지만 탐욕스러운 그놈의 성격상 짭짤한 부수입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공문을 보고 불쾌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듯했다. 아예 수출이 막히는 것보다는 조금 뇌물을 더 주더라도 오늘 물건을 선적시키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였으니까.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함선 3척 분량의 곡물이 항구를 떠날 예정이었기에 이바노프는 오랜만에 현장 시찰을 나가보기로 했다. 평소 같았다면 수입 보고서만 받고 집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휴식할 예정이었겠지만 상황이 이런 만큼 그로서도 어느 정도 직접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준 돈이 얼마인데 이런 공문이 날아올거라고 미리 얘기도 안해? 돼지같은 놈.’
원래대로라면 ‘중앙에서 이러이러한 명령이 내려올 예정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정보를 미리 귀띔 해줬을것이다.
하지만 술이라면 환장하는 담당자가 보드카를 퍼마시다 숙취로 인해 관련 정보들을 늦게 알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바노프는 별 생각 없이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 자신의 화물이 선적되는 항구로 길을 나섰다.
마차를 타고 도착한 세바스토폴 항구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원래대로라면 화물을 선적하는 노동자들, 출항을 준비하는 선원들 그리고 그 틈새에 껴서 구걸을 하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어린이들로 붐비고 있을 항구는 자신의 배의 선원들과 화물을 선적할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마저도 자신의 화물을 날라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나르라는 화물은 나르지 않고 웬 처음보는 사내 앞에 정렬해있느라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지만.
멀뚱히 서 있기만 하는 노동자들을 발견하자 이바노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야 이 자식들아!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내가 니들이 가만히 서있으라고 돈 주는줄 알아? 빨리빨리 안 움직여?”
이바노프의 고함에도 노동자들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내의 눈치만 볼 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가 마차에서 채찍이라도 꺼내와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는 도중 의문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오늘 이 곡물들을 선적하려는 선박의 주인인가?”
“그렇습니다만,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이바노프의 다 년 간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의문의 사내는 꽤나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인 듯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하는 하대라던지 아니면 태도에서 묻어나오는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내를 구워삶으면 오늘 내로 선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원래대로라면 그 돼지 같은 세관원이 탐욕스러운 눈을 번들거리고 있었겠지만, 중앙에서 공문까지 내려온 만큼 그 같은 말단 대신 이 높으신 양반이 나온 것으로 생각되었다.하지만 이바노프는 ‘돈이면 뭐든지 해결된다.’라는 그가 생각하기에 만고 불변의 진리를 믿고 있었다.
“보아하니 오늘 이 곡물들을 수출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설마 공문을 받지 못한건가?”
다행스럽게도 사내의 어투는 부드러웠고 이바노프는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헤헤…물론 공문은 받았습니다만, 나리도 아시지 않습니까. 현장은 때때로 다르게 돌아간다는 것을요. 당장 오늘 선적을 하지 못하면 저도 손해가 막심합니다.”
“음 손해를 보면 안 되지. 상인에게 있어서 금전적인 손해는 무엇보다 피하고 싶은 존재 일테니까.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야. 그렇지 않나?”
“아이구, 물론입니다요. 나리만큼 저희 상인들을 잘 이해해주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저기…이건 얼마 안되지만 공사다망하신 나리께 드리는 제 조그마한 성의입니다.”
자신이 굽신거리며 품속에서 꺼낸 주머니를 받은 사내의 입에 미소가 짙어지자 이바노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아주 훌륭하군.”
“과찬이십니다. 그럼 이제 선적작업을 재개해도 되겠습니까?”
평상시보다 주머니에서 나간 지출이 크긴 했지만, 그 대가로 지금 당장 선적할 수 있다면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밝아진 이바노프가 고개를 들자 마주친 것은 방금까지의 미소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사형집행인의 얼굴을 한 사내였다.
“이바노프, 네놈을 황명을 어긴 반역자로 체포한다.”
“예?”
“공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황명을 무시한 죄에 더불어 차르의 눈과 귀를 뇌물로 매수까지 하려했으니 특히 더 악질이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은 어디선가 달려 나온 검은 옷의 사내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한 이바노프의 머릿속에 순간 사내가 말한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차르의 눈과 귀?
“오…오흐라나¹…”
이바노프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치 악마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 자를 보고 짓는 미소와도 같았다.
“잘 알고 있군. 이 자를 포박해서 데려가도록.”
—
“…와 같은 적발 사례가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전하, 사후처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공문을 받고도 황명을 어기려 한 자들입니다. 압류품은 몰수하고 이번 사태를 수습할 기부금을 받아내도록 합시다. 그리고 죄질이 더 악독한 자들은 재산 몰수 및 시베리아로 보내 아버지의 관심사인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죗값을 치루도록 하는 것이 좋겠군요.”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공문을 내려보냈지만,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에 의하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드물었다. 대응방안으로 오흐라나를 주요 항구 및 기차역에 파견해 불법적으로 수출하는 이들을 적발하고 있었지만 모든 밀수출을 잡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다만 적발된 자들로부터 받아낸 ‘자발적인 기부금’과 압수한 재산들로 구호물품을 더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거리였다.“전하의 어머니이신 황후마마와 그 누이이신 엘리자베스 대공께서도 구호기금 마련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바자회를 개최하셨습니다. 또한 폐하께서도 본인의 재산 중 500만 루블을 기증하셨습니다.”
“구호물품을 받은 잼스트보 및 지방감독관들로부터 배분을 어떻게 할지 기준을 알려달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전하. 상환할 능력이 있는 자들부터 배급하라고 할까요?”
“아니, 먼저 노약자나 어린이 그리고 가장이 없는 집안 같은 취약계층부터 배급하라고 하도록. 또 되도록 배급받은 식량을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땔감 같은 연료도 신경 쓰라는 공문을 보내게. 인민들이 밀가루를 날것으로 먹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하네.”
실제 역사에서는 지원받은 물품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 일부 노동자들이나 토지 소유자들에게만 배급이 이루어지고 노인, 어린이, 과부들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죽어갔다. 범사회적 재앙이 닥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이들은 자력으로 극복할 능력이 모자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전하의 노력 덕분에 각 지방에 있는 잼스트보들로부터 지역 상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만 기근이 발생한 지역으로 곡물을 보낼 방법이 문제입니다. 기차선로나 수운으로 운송할 수 있는 강과 맞닿아있지 않은 장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비슈넷그라스키 재무장관과 비테 철도국장의 의견은 어떤가?”
“현재 사용 가능한 모든 선로에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물품수송을 위해 열차 배정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먼저 주요 역마다 거점을 설치한 후 그 거점을 중심으로 구호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앙에서 물품을 일일이 배급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입니다, 전하.”
철도국장의 말이 옳았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중앙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한 21세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모든 것이 부족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좋겠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각 지역별로 필요할 것 같은 구호물자의 양을 보고하라 한 뒤 기록상의 인구와 대조해 물자를 내려보내는 것이 좋겠군. 필요 이상으로 지원을 요청해 착복하려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전하 그 말씀은…”
“재무장관과 휘하 재무부에서 많이 애써줘야겠어. 부탁하겠네.”
“…맡겨주십시오.”
재무장관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추가적으로 덧붙였다.
“또한 자신이 살고있는 곳에서 배급소까지 구호물품을 받으러 오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각 지방정부 별 공무원들이 철저하게 파악하라는 명령도 내리고. 만약 행정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것 같다면 인원 파악은 지방공동체에게 위임하는 방안도 생각해보라고 하는게 좋겠군. 물자가 인민들에게 배분되어야지 그저 쌓여있기만 한 상태로 썩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네.”
“전하 그러고 보니 한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조용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비테가 입을 열었다.
“톨스토이 백작이 자발적으로 본인의 영지에 무료 배급소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백작이 전하께서 현재 시행하고 계시는 구호계획에 대한 조언을 올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톨스토이? 설마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한 그 톨스토이를 말하는 건가?
원래 역사에서는 기근 앞에서 무능력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가 담긴 기사를 발표해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경고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내가 적극적으로 구호에 나서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진 듯했다. 노년기에는 대귀족에서 벗어나 농부가 되고 싶어 하는 행보를 보인 만큼 톨스토이는 농민들에게 온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1873년부터 기근에 대한 구호책을 연구한 톨스토이인 만큼 그의 조언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백작에게 어떠한 조언이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전하.”
물론 러시아의 대문호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도 살짝 섞여 있었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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