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1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11화
42장 사람의 온도
‘더럽게 춥네.’
오늘도 해가 뜨기 전부터 공장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페르첸코가 싸늘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바깥보다는 따뜻한 단칸방을 나서며 불평했다.
새벽 별을 보면서 일터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돌아오던 예전보다는 노동 시간도 줄고 급여도 조금이나마 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노동자는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 10시간에 식사 시간은 포함되지 않고 있었다.
공장 내에서 좀 유식하다는 놈들이 떠들던 말로는 조만간 식사시간도-최소한 점심시간이라도- 노동 시간에 포함될 거라고 하던데 아직 글을 읽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페르첸코에게는 달나라 얘기나 다름없게 들려왔다.
‘그래도 내 이름하고 가족들 이름 정도는 읽고 쓸 수 있게 됐다고.’
그가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에서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공장에서의 교육 덕분이었다.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맹 퇴치 운동의 일환으로서 본래 각 지역의 교구 소속이었던 학교가 젬스트보 소속으로 바뀌고 있었다.
교구 소속이던 학교가 가르치던 내용은 차르에 대한 충성심을 품도록 하기에는 탁월한 것이었지만, 말 그대로 그것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은 성인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 또한 있었는데 페르첸코가 까막눈을 벗어나게 된 것도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문자교육 덕분이었다.
젬스트보나 시간이 되는 대학생들이 위탁받아 소정의 급료를 받으며 노동자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가뜩이나 적은 휴식 시간을 쪼개어 글자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담배 한 개비나 차 한잔 혹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황태자 전하께서 친히 우리들을 굽어살피시는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만큼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절대로 전하에게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페르첸코는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르는 변명 들을 주워 삼키며 발을 서둘렀다. 오늘도 늦으면 지각비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봉급이 조금 올랐다고는 하지만 벌금을 내게 된다면 아침마다 맛과 상관없이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는 빵의 두께가 얼굴이 비칠 정도로 얇아질지도 몰랐다.
얼마 전 이루어진 화폐개혁인지 뭔지 이후로 물가가 오르는 과정에서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빵 가격이었지만, 지각비 때문에 재정 사정이 안 좋아지면 맛대가리 없는 귀리 빵이라도 배부르게 먹기 힘들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그에게는 다행히도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에게 배정된 자리에 앉아 추운 겨울날임에도 흘러내린 땀을 훔쳐내는 페르첸코 옆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이야, 오늘도 늦을 줄 알았는데 용케 제시간 안에 도착했네. 자네도 나처럼 숙소를 이용하라니까. 그러면 지각할 일이 없다고.”
사내가 말하는 숙소는 요즘과 같은 기숙사가 아니었다.
“이봐, 이브넨코 내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게 두 개 있는데 말이야, 그중 제일 중요한 게 보드카고 그다음이 푹신한 잠자리야. 내가 지각비를 냈으면 냈지 절대 자네처럼 관에서 잠은 못 자겠네.”
“관이라니 말이 심하군. 엄연한 숙소라고 숙소.”
이 시대에 러시아의 공장에서 제공하는 숙소는 말 그대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치 관처럼 보이는 나무 상자였다.
좁은 공간에 최대한의 인원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말만 들으면 누가 그곳에서 살아가겠냐고 하겠지만, 이 공장에 일하는 인원 중 4분의 1은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나마 이것도 원래 자본가들이 제공하려던 것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걸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본래라면 몸이라도 뉠 수 있는 나무 상자가 아닌 벽과 벽을 잇는 줄에 매달려서 잠을 잘 수 있게 하자는 게 원안이었다.
그걸 받아 들은 노동개혁위원회 소속의 에마뉘엘 노벨이 기를 쓰고 반대해 현재와 같은 안으로 변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왜 과거에 황태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후회했다는 얘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게다가 숙소에서 지내면 아침에 주는 식사도 공짜라고. 자네 오늘도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기껏해야 빵만 으적으적 씹어먹었을 거 아닌가. 어디 그렇게 먹어서 일할 수 있겠어? 나는 오늘도 뜨끈한 수프에 차도 곁들여서 먹었다니까?”
“그래 그 어떤 게 들어갔는지 모를 만큼 푹 삶아서 건더기가 죄다 흐물흐물해진 데다가 그나마도 얼마 없는 수프에 찻잎도 아닌 무언가를 우려낸 차 말하는 거지? 오늘 점심도 자네가 먹은 아침이랑 똑같겠구먼.”
에마뉘엘 노벨이 숙소와 관련된 노동법안을 입안하면서 아침 식사를 공장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했지만, 그 수준은 정하지 않았기에 공장별로 천차만별이었다.
그래도 페르첸코와 이브넨코가 일하는 공장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어느 공장에서는 톱밥 빵에 맹물만을 제공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까.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 본래의 노동 환경보다는 월등히 나아진 것이라는 점이었다.
식사비용을 월급에서 제하지도 않는 데다 관과 비슷한 수준의 숙소라고는 하지만, 난방은 잘되고 있었으니까.
“자, 다들 잡담은 그만하고 일들 시작하자고. 오늘도 목표 수량까지 생산할 수 있도록.”
“오늘도 시작이군. 좀 이따 점심시간에 보자고.”
“그래, 자네도 사고 조심하고 오늘도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작업반장의 호통에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고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작업반장이 툭하면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를 폭행하는 등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그에게 밉보이면 앞으로의 생활이 고달파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괜히 쓸데없이 규정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가 벌점이라도 쌓이면 바로 감봉이니 원.’
여기서 말해지는 규정은 노동개혁위원회에서 배부한 기본 규정에 더해 공장별로 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추가한 것을 의미했다.
화장실 통제, 식수 통제와 같은 비인간적인 규정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곧 총알들이 쏟아져 들어올 테니 미리미리 몸 좀 풀어놔야겠군.’
그들이 일하는 공장은 얼마 전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림리스 탄환 생산 설비가 설치된 탄약 생산공장이었는데. 페트첸코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이 중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본래라면 경공업 중심의 모스크바에 이 공장이 들어오게 된 데에는 황태자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현시점에서 러시아 제국 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툴라 조병창과 그나마 가까운 대도시였기 때문이다.
물론 공장 부지 문제와 조금이라도 조병창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모스크바 남쪽 근교에 설치되어 도시 내에 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모스크바라는 도시가 가지는 상징으로 인해 공장의 이름은 제1 모스크바 탄약 생산공장이었다.
단발식 소총에 어울리는 구형 탄약을 대체할 신형 탄약의 국내 생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기념비적인 공장이었지만, 페르첸코에게는 그저 고향에 있을 가족에게 부칠 돈과 자신이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주는 곳에 불과했다.
틈만 나면 작업반장이나 높으신 분들이 찾아와 강력한 러시아 제국을 건설하는 작업의 가장 앞에 여러분이 서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얘기했지만, 단순한 노동자인 그에게 와닿지는 않는 문구였다.
다만 이 공장을 여기에 만드는 데에 황태자 전하께서 영향을 많이 주었다는 점만은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품고 있었지만, 국가의 미래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에게 아직은 어려운 개념이었다.
그가 아는 사상이라곤 글자를 배우는 시간에 틈틈이 교사가 언급하는 국가주의라 불리는 것밖에 없었다.
민족주의만큼이나 간단한 이 사상은 문맹인 노동자들도 받아들이기 쉬웠다. 차르에게 충성하고 러시아에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러시아인이라는 것만 알면 됐으니까.
촤르르르
‘이크, 시작됐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중 그의 앞에 탄환을 옮기고 포장하는 업무를 맡은 동료가 나무 상자로 담아온 탄환들을 쏟아내자 페르첸코의 손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까 작업반장이 말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르첸코는 이 순간이 좋았다.
황동 색깔을 지닌 이게 정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지 궁금할 정도로 작은 물건들을 계속해서 고르고 또 고르다 보면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걱정은 사라지고 당장 눈앞에 있는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탄두가 불량이고, 이건 괜찮고, 이건…….’
그렇게 일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고 잠깐의 휴식 후 다시 일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간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자, 다들 하던 일 멈추고 식사합시다. 본인은 차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겠다는 사람은 미리미리 얘기하고.”
황태자가 미친 영향은 단순히 노동환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관료들로부터 시작된 커피 열풍은 이제 러시아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본래 차 문화권이라 할 수 있었던 러시아였지만, 커피라는 물건이 피로에서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얘기가 돌자 이런 공장에서도 차와 커피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관료들이 마시는 것처럼 커피 원두만으로 만든 것이 아닌 원두에 여러 가지 다른 재료가 들어간 물건이었지만.
페르첸코가 예상한 것처럼 이브넨코가 아침에 먹은 식사에 조그마한 치즈 한 덩이와 버터 조금이 추가된 메뉴였다. 가끔 점심 식사에 소시지나 햄 한 덩이가 같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 행운의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따로 식당이 없어 음식을 배식받은 후 자리로 돌아와 먹으려던 페르첸코 옆으로 이브넨코가 다가왔다.
“거봐, 내가 말했지? 오늘 점심도 똑같을 거라고.”
“그거야 항상 그랬는데 뭘 대단한 걸 맞춘 것처럼 그러나. 그건 그렇고 오늘은 불량품이 좀 덜 나왔나?”
페르첸코는 입안에 집어넣은 수프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오늘도 어제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은데. 별문제가 더 없다면 반장이 말한 할당량은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거 다행이군. 저번에 할당량 못 채웠을 때 받은 벌점 때문에 오늘도 벌점이 나왔으면 월급이 깎일 판국이었거든.”
이브넨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과가 시원치 않은 생산 라인에 대한 책임은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작업반장이 지게 마련이었기에 그들 또한 매달 할당된 생산량을 충족하는데 필사적이었다.
이런 식의 현장 책임자가 불이익을 받는 구조는 노동자들에게 안 좋게 작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개선이 되어야 할 사항이었지만, 아직 개선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러시아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벌써 다 먹은 건가?”
페르첸코는 마지막 빵 한 조각으로 그릇에 남아 있는 수프를 닦으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분명 그의 친구가 식사하는 속도는 자신과 비슷함에도 본인을 찾아온 친구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질문에 이브넨코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게 사실 오늘 새로 들어온 신입이 있는데 그놈이 암만 봐도 16살도 안 되어 보이더라고.”
“또 고향에 있는 동생 생각이 난 모양이군. 자 이거라도 먹게.”
페르첸코는 수프를 닦은 빵을 이브넨코에게 내밀었다. 이 착해빠진 친구는 나이가 어린 것처럼 보이는 애들이 신입으로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식사를 양보하기 일쑤였다.
“점심시간 종료! 다들 자리로 돌아가라!”
페르첸코가 내민 빵을 이브넨코가 멋쩍은 얼굴로 받아들자마자 들려오는 작업 재개 알림은 그들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현실이 차가운 진실만을 보여주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을지라도, 가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며 쓰러지지 않도록 기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아무리 계절이 추워진다고는 하나 사람의 온도는 항상 36.5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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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