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1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12화
43장 새로운 차르
어떤 사람도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며 그것을 멈추려는 어떠한 시도도 성공한 적이 없다.
얼마나 단단한 암석이라 할지라도 시간의 앞에서는 자신의 강함을 뽐낼 수가 없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권세를 누리고 만인의 두려움과 존경을 동시에 받았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고 무대가 바뀌면 본인의 퇴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결말 즉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는 인민주의자들의 원수이자 그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내 아버지에게도 해당하는 진리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894년 12월 이미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지난 열차사고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얻은 신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원 역사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과는 달리 한 달 전부터 크림 반도에 위치한 요양지인 리바디아에 내려와 있던 나는 다행히도 아버지가 가시는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었다.
원 역사에서는 11월 1일에 돌아가셨지만, 원래보다 빠른 과중한 업무에서의 해방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저하 덕분에 한 달 정도 더 오래 사실 수 있으셨던 것 같다.
야심한 밤 상태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자 볼 수 있었던 것은 침대에 누워 내 이름을 부르고 계시던 아버지였다.
주변을 가득 메운 의료진과 친척들을 헤치고 아버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을 때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마노프 가의 헤라클레스가 불렸을 정도의 장사였던 아버지의 손이라기엔 너무나도 미약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빙의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막상 아버지의 마지막을 목도하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는 필멸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의 내면에 있는 본능적인 감정인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감정과 슬픔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내 귓가에 들려온 것은 아버지의 미약한 목소리였다.
-니키, 지난날 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느냐? 내 형님의 마지막 모습과 관련된 대화 말이다. 너에게 그날의 나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 아버지께서는 마지막까지도 본인이 아닌 나를 걱정하고 계셨다.
항상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했던 형이 병으로 인해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죽음을 맞이하던 그 순간이 본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말이다.
비록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알렉산드르 2세 시대에 이루어진 개혁 정책을 뒤로 돌리고 러시아 제국 몰락의 초석을 쌓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분은 내 아버지이자 헌신적인 보호자셨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뭐라 대답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연이어 말씀을 이어가셨다.
-네가 극동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내게 반기를 들었던 날, 내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너는 알지 못할 게다. 나의 지나친 걱정으로 인해 변변찮은 제왕학 교육도 받지 못한 네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장관 회의를 휘어잡던 모습은 마치 내 형님을 보는 것 같았지. 이 아비의 어깨 위에 있던 가장 무거운 짐 중 하나를 내려놓게 해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아버지, 저는 아직도 배울 게 많습니다.
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니키,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면 되겠느냐. 나 대신 네가 국정을 운영한 지도 어언 2년이 되어가건만, 그런 약한 소리를 하면 그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기억하거라 겸손은 미덕 중에 하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주변에서 너를 물어뜯을 기회만 노린다는 것을. 크흠, 흠, 그리고 네 어머니를 부탁한다. 보기엔 강해 보이지만, 사실 속은 연약한 소녀나 다름없거든. 이렇게 먼저 가게 되어 그녀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어머니도 기구한 운명이시긴 했다.
원래 약혼자였던 니콜라이비치 황태자를 먼저 떠나 보낸 것에 이어 그의 동생이자 남편인 알렉산드르 3세도 먼저 세상을 떠나게 생겼으니 말이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낼 테니까요.
이는 내가 니콜라이와 함께한 맹세이기도 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원 역사처럼 로마노프 황가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 않게 하겠다는 그 약속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로마노프의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지.
아버지는 내 단호한 대답을 듣자 안심이 된다는 듯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네가 앞으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고 싶다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섣부르게 말할 수가 없구나.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이 너를 우습게 알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황제라는 자리는 증오를 받을지언정 무시를 받으면 안 되는 자리란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마지막까지 내게 조언을 남기신 아버지는 이내 마지막 숨을 내뱉으시며 중얼거리셨다.
-아버지…… 형님…….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으신 할아버지와 불행한 사고로 얻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님을 그리워하는 말을 남기며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그 직후의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을 의료진들이 확인하고 정해진 장례절차에 따라 아버지를 수도로 옮기기 전에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방부처리를 해야 하니 이를 허가해 달라는 등의 요청 등이 이어졌지만, 그것을 허락하고 아버지와 함께 수도로 올라오던 여정은 내 기억에서 흐릿하게만 남아 있었다.
그중에 아버지의 시신이 수도에 도착한 날 애도의 의미로 울리던 성당의 종소리들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들은 그들의 황제이자 아버지, 교황이자 군사령관의 귀환을 애도했다.
비록 공포와 억압을 통한 정치를 펼쳤다고는 하지만, 지난 시절 동안에 기억의 희석은 그들로 하여금 길에 꽃을 들고나오게끔 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눈물 어린 환송을 받으며 도착한 수도는 이전과는 다르게만 보였다.
과거에는 아버지를 대리함으로써 통치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의 자격으로 다스리는 곳이었으니까.
이런 감상을 느끼고 있던 나를 대신해 아버지의 형제이신 세르게이 대공이 장례절차를 진두지휘했고 나는 집무실에서 그동안 밀려 있던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남들 위에 군림하는 위정자들에게는 슬픔에 잠겨 모든 일을 내팽개친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남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이행해야만 했다.
혈육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에 밀린 서류를 검토하고 서명을 하고 이전에 내린 명령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다.
이러한 의무를 황족인 내가 지키지 않는다면 과연 그 어떤 지도층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려 노력하겠는가?
사실 이런 서류작업은 어느 정도 내가 자청한 것이기도 했다. 숫자와 단어를 눈에 담고 있는 순간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아도 됐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방법도 한계가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성 이사악 대성당에 안치된 아버지의 시신을 지키고 장례식에 조문을 온 이들을 맞이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업무는 이제는 황태자가 아닌 황제, 차르로서의 내 첫 공식업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관 옆을 지키고 서 있는 나를 향해 들려오는 속삭임과 시선들은 황태자 시절 느꼈던 것과는 달랐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었으니까.
설사 일이 조금 잘못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후광을 기대할 수 있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이제는 오롯이 내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런 부담감을 느끼고 있자니 괜히 역사에서 권력을 쥐고도 바지사장을 내세웠던 경우가 많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은 다른 사람이 지되 권력만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지는 지난 시절 내가 경험해 보았으니까.
“오오, 여보…… 이렇게 먼저 가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니키, 여기는 잠시 내가 맡고 있을 테니 네 어머니를 좀 위로해 드리거라. 지나친 슬픔은 때로는 몸을 갉아먹으니 말이다.”
“예, 삼촌.”
아버지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성 이사악 대성당은 평상시에도 엄숙한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그와 비교하면 10배는 될 정도의 엄숙함을 지키고 있었다.
로마노프 황가의 친척들과 각 지역의 총독들과 같은 고위 귀족들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방문객들에게 압박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시신이 안치된 관에 다가가 아버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며 경애를 표하는 절차가 진행되던 때 터져 나온 어머니의 울음은 여전히 당신께서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래 역사에서 방부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성당 내부에 시신 썩은 내가 진동했다는 일과는 달리 제대로 된 방부처리로 아버지는 겉보기에는 편히 잠든 모습이셨다.
세르게이 대공의 말에 따라 어머니를 위로하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연이어 이어지는 참배의 행렬이 조금 뜸해지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 내 곁으로 다가온 사람은 바로 세르게이 대공이었다.
아버지의 형제이자 모스크바 지역의 총독 역할을 수행하던 그는 원 역사에서는 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보수파였지만, 여기에서는 나와의 관계가 조금 소원해진 상태였다.
언론을 탄압하고 정교회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구하던 그와는 달리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던 정책은 정반대였으니까.
“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하실 거다, 니키. 네가 이렇게 그 자리를 잘 수행해내리라는 걸 확인을 하고 갔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삼촌.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데 있어서 삼촌이 계시지 않으셨더라면 훨씬 힘들었을거에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란다. 나 또한 네 아버지의 형제이자 너의 가족이지 않니. 이럴 때일수록 가족끼리 서로 의지하고 위로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너만 괜찮다면 이후의 일을 좀 얘기하고 싶은데 괜찮겠니?”
“죄송합니다만 아직 장례식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삼촌. 우선은 아버지에 대한 애도와 그분의 안식을 기원하는 데 집중하고 싶군요.”
아마도 세르게이 대공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후의 국정운영과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내가 보수파 귀족들보다는 젬스트보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의장인 드미트리 시포프를 밀어줌에 따라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삼촌은 모스크바 총독 자리를 유지는 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사상과는 다른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버지도 계시지 않으니 자신의 잃어버렸던 권리들을 찾고 싶은 모양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모한다는 명목으로 찾아온 각국의 사절들 또한 내가 응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국가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 미국, 청나라와 같은 나라는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민영환을 특사로 파견했으니까.
이외에도 노동 개혁을 비롯한 국내 문제들도 산적해 있었으며 점차 치열해져만 가는 식민지 다툼을 비롯한 열강들 간의 알력 싸움은 거대한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그 어떤 방패막도 없이 나 홀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해 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