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1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13화
44장 첫 번째 지시, 첫 번째 회의(1)
새해가 밝았다. 달력과 문서에 기록된 날짜가 1894에서 1을 더한 1895가 되듯 우리는 1894년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뒤로 보낸 것은 1894년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도 떠나보냈으니까.
장례식이 끝난 뒤 어머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나 크림 반도를 떠나 모스크바에 머무르시겠다고 했다.
수도나 아버지와 마지막 몇 년을 보낸 라비디아는 건물과 풍경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깊게 박혀 있어 이곳에 머무르기만 해도 슬퍼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나이도 나이인 만큼 곁에서 모시고 싶었지만, 본인이 하도 완강하게 거부하셨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도 모스크바로 떠나자 나는 비로소 홀로 선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폐하, 회의실로 가셔야 하는 시간입니다.”
“알겠네, 곧 가지.”
아직 대관식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부를 때 붙이는 호칭은 폐하였다.
한 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심코 이전 해의 년도를 쓰는 게 익숙한 것처럼 아직 내가 폐하라는 호칭에 익숙해지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차르라는 자리에 오른 후 첫 공식 장관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집무실에서 나와 회의 장소로 가는 도중 나는 장례식이 진행되던 때 만나 대화했던 대사들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장례식이라는 장소적 특성과 이제 내가 차르라는 신분적 특성으로 주고받은 대화의 대부분은 업무적이라기보다는 애도를 표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었지만, 몇몇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나라를 골라보자면 영국과 독일이었다.
오-헝 제국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벌어지는 민족주의 운동의 배후에 우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서린 질문을 던졌지만,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군대 내부에서 사용되는 언어도 통합하지 못한 나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영국의 경우에는 지난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묵인해 준 대가로 약속했던 인천과 부산에 대한 권리 양도를 해달라는 말과 함께 우리 모두 인민주의로 골치가 아프니 양국의 경찰 간 경험 교류를 통한 대응 능력 강화를 꾀하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뭐,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리 측의 오흐라나 요원들이 영국 측 경찰들에게 자신들이 인민주의자들을 어떻게 때려잡았는지 강의하는 시간이 되겠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프랑스와 우리가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한 유감 표명과 동시에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별로 재미없을 거라는 가벼운 경고 메시지였다.
한때는 프랑스나 영국 대신 독일과 손을 잡는 건 어떨지에 대해 생각도 해보았지만.
범게르만주의라는 바람이 불고 있는 데다가 군주가 빌헬름 2세인 이상 이득이 될 리 만무했다.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한 사람이 손쉽게 모든 것을 망칠 수 없을 정도로 나라가 고도화되고 복잡하게 변했다고는 하지만, 제정이 살아 숨 쉬는 이 시대에 군주가 빌헬름 2세라니.
군주의 능력이 멋진 콧수염으로 결정된다면 모를까 그의 행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손을 잡기가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동맹국인 만큼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 시절 약속한 보상에 대해 조금 더 협상하고 싶다는 기색은 내비쳤다.
프랑스가 독일과 원수 관계인 이상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건 우리 측이었지만.
그 외로 인상 깊었던 나라는 일본과 조선이었는데 일본의 경우에는 교토 협약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내가 차르에 즉위한 이상 납작 엎드리는 것을 택한 모양이었다.
일본을 대표해서 온 대사가 하는 말마다 본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듯한 애통함이 묻어나올 정도였으니까.
조선의 경우에는 다름 아닌 민영환이 사절로 왔었는데, 자신의 친지들을 본인의 손으로 넘겼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래 역사에서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 이에 항의하기 위해 자결을 택했던 민영환인 만큼 이 선택만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겠지.
그의 생각은 맞았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간판을 내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관련된 사항들은 당분간 내가 직접 살펴보는 게 아닌 사전에 계획한 대로 종무원장과 쿠투조프 장군, 그리고 최재형이 담당할 예정이었다.
이런 생각이 너무 길었던 걸까. 나는 어느새 회의실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하는 습관을 줄이려고 노력했건만, 아무래도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을 모양인 듯했다.
“폐하? 문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문 앞에 서서 열라는 명령 대신 문을 노려만 보고 있자 옆에 서 있던 근위병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어보았다.
그래, 이 문을 통과하면 이제는 정말 내가 차르가 되는 거겠지.
몇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넘나든 문이었건만, 감회가 새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 나는 크게 숨을 내뱉은 뒤 차르로서의 첫 명령을 내렸다.
“그래, 문을 열게.”
* * *
오늘 열리는 장관 회의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특별한 회의였다.
논의될 내용은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이번 회의가 이전과 다른 점은 주제나 내용이 아닌 상황이었다.
새해를 맞이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회의였으며, 아직 대관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선제의 뒤를 이어 새로 즉위한 니콜라이가 차르로서 주재하는 첫 회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평상시에도 회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나 발표가 미흡할 시 가차 없는 질책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철저히 준비하던 장관들이었지만, 오늘은 이전보다도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각 장관들의 보좌관을 비롯한 발표 자료를 만드는 부서의 직원들이 몇몇 과로로 실려 나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 처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래라면 니콜라이가 오기 전까지 가벼운 잡담이 오고 갔을 회의실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황태자, 아니, 차르의 총애를 받는다고 여겨지는, 항상 자신만만하던 비테마저도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이윽고 차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제껏 앉았던 자리가 아닌 오늘날까지 비워놓았던 황좌에 앉을 때까지도, 회의실은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자, 그러면 회의를 시작하지.”
여태껏 장관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던 니콜라이가 이전과는 달라진 어조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각 장관들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다.
한정된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고 새로운 황제의 관심을 받기 위한 총 칼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나온 주제는 역시 대관식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보통 이전 황제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대관식이 이루어졌지만, 내무 장관은 이 기간을 반년으로 줄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다.
니콜라이의 정통성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그래도 대관식이라는 행사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컸기에 내무 장관은 새로운 황제가 한시라도 빨리 대관식을 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온 얘기였지만, 막상 니콜라이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반년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기간 안에 대관식 행사에 필요한 비용과 관습에 따라 민중들에게 나누어줄 빵이나 사탕을 비롯한 모든 물품의 준비가 완료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예, 폐하. 다행히 폐하께서 황태자 시절부터 각종 조약을 통해 확보한 예산들과 개혁작업으로 소모되는 예산을 조금 줄이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별로 내키지 않는군. 대관식을 위해 개혁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일 필요가 있겠나?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는 행사 때문에 한시가 급한 일을 뒤로 미루는 건 별로 좋아 보이지가 않네만. 게다가 대관식이 열리는 날 몰려올 민중들이 자칫 잘못해 인파에 깔리거나 압사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텐데 그에 대한 대책은 없이 그냥 대관식을 빨리 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생각되네.”
막상 대관식의 주인공이자 당사자인 차르가 이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자 당황한 것은 내무 장관이었다.
그로서는 니콜라이가 대놓고 기뻐하지는 않더라도 은근히 좋다는 의사를 표현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무 장관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니콜라이는 재무 장관직을 맡고 있는 비테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재무장관이 생각하기에 현재 진행 중인 작업과 앞으로 할 일들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대관식을 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소?”
“제 생각으로는 1년 반 정도가 걸릴 것 같습니다. 물론 폐하께서 확보하신 재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막대한 양의 세수가 개혁작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폐하가 권좌에 오른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의구심을 제시할 수 없는 만큼 대관식을 서두르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좋소. 그렇다면 내무 장관과 상의해 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대관식 일정을 짜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대관식이 열리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텐데 그에 대한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거요. 나는 대관식 날 신문에 행사와 관련된 내용만이 실리길 바라지,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실리는 것을 바라지는 않거든.”
원 역사에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이 열린 날 자그마치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압사당한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좋소, 그러면 내무 장관이 준비한 내용은 이게 전부인가?”
니콜라이의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폐하. 이 외에 오늘 보고드릴 내용은 폐하께서 이전에 황태자 시절 말씀하셨던 상수도관 작업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이전에 브라노벨 소속이었던 블라디미르 슈코프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 도시 내 상수도관 구축 사업은 매우 성공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새로운 상수도관이 만들어진 도시는 카르코프 단 한 곳이지만, 보고된 바에 따르면 작업이 완료된 이후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질병의 발생률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현저하게라면 얼마나 줄었다는 말이오?”
“아직 완공된 지 채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통계상 정확한 수치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대략 80% 이상 줄어들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무 장관의 필사적인 설명 덕분일까, 불만스러운 감정이 드러나 있던 차르의 얼굴에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주 좋소. 그렇다면 이런 작업을 모든 도시로 확대하는 데 필요한 재원과 시간에 대해서도 정리해서 보고할 수 있도록. 이제는 주기마다 거리가 콜레라를 앓는 병자들이 뿜어낸 배설물과 시신으로 가득 차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소? 이와 관련된 사항도 재무장관과 논의가 필요하겠군.”
아직 보고도 하기 전임에도 일거리가 늘어나는 비테의 얼굴에 땀이 흘러내렸지만, 니콜라이는 이를 못 본 척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불행한 얘기였지만, 오늘 그가 추가적으로 맡게 될 일과 관련된 보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이 장관급의 대우를 받게 된 노동개혁위원장인 엠마뉘엘 노벨 또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