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1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19화
종무원장이 자신을 지칭해 하찮은 지방관이라 했지만, 사실 러시아 제국에서 지방관이라는 직책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흔히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었다.
니콜라이 2세의 정책 변경으로 가지고 있던 권한들 중 일부를 젬스트보와 나누어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지방관의 대다수가 고위 귀족인 것이 그들의 권한이 방대해지는 것에 영향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귀족들의 입지가 알게 모르게 차츰 좁아지는 요즘도 그들이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러시아는 너무나도 넓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주목을 받는 정책 기조 중 하나인 지방분권주의나 중앙 정부의 권한 분배를 러시아 제국 정부가 3세기는 일찍 시행한 것이 아니라, 영토와 지리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캄차카 지역에 새로 신설된 행정 조직의 장을 맡게 된 베조브라조프는 표면상으로는 러시아 제국의 권력 핵심에 들어갔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다.
기병대에서 복무하던 하급 귀족의 자제가 젊은 나이에 차르의 눈에 들어 엄청나게 출세를 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제국에 얼마 있지도 않은 지방관에 최연소로 부임한 그가 오늘 아침에 무엇을 생각했느냐 하면.
‘오늘도 무사히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님.’
어젯밤을 견디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다시금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사실 그가 해를 직접 보고 감사 의사를 표시한 건 아니었다. 툰드라 지대 특유의 빽빽한 침엽수림들로 인해 하늘을 눈에 담는 것도 힘들 때가 많았으니까.
그저 모닥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아침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베조브라조프는 자신이 품 안에 안고 잔 베르단 소총이, 자신이 수도에서 화려한 생활을 보내던 시절 껴안고 잠이 들곤 했던 정부보다 친숙해질 지경이었다.
여성의 부드러운 살결보다 나무와 철의 딱딱함이 본인의 마음을 더 안정시켜 주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으니까.
인간이 증기선의 출현한 이후로 완벽하게 정복했다고 평가되는 바다로도 모자라 수천 년 동안 도도하게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던 하늘마저 정복했다 말해지는 19세기에 이런 곳이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200명에 가까웠던 그의 무리는 어느새 반절로 줄어들어 있었다.
다만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캄차카 반도의 기후나 환경으로 인해 이곳에서 안식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기차로, 선박으로 극동에 가는 여정에서 역에 멈춰 서거나 정박지에 잠시 들를 때마다 일행 중 일부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를 막고 통제를 해야 할 책임자는 다름 아닌 베조브라조프였지만, 그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기에, 영광스러운 초대 캄차카 지방정부의 구성원들은 사직 아닌 사직을 한 채로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이 절반가량인 기가 막힌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캄차카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물자와 인력을 보충할 계획으로 들른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처음에는 청나라에서 넘어온 난민들인 줄 알고 명색이 지방관의 방문이기에 준비했던 행사 대신 시내에 있는 이민국으로 안내를 했다는 해프닝은 극동 지역에서는 비밀도 아니었다.
이전과는 사상이나 생각이 달라졌을지 몰라도 러시아 제국은 위대해야 한다고 여전히 굳게 믿는 종무원장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른 직책도 아니고 지방관의, 그것도 좌천적인 성격이 강하다고는 하나 새로이 창설된 행정 구역의 담당관이 이런 꼴이라니 포베도노스체프의 신념 하 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방관님, 간밤에 편히 주무셨습니까.”
“그래, 어젯밤에도 특이사항은 없었지?”
“새벽 2시쯤에 새끼를 데리고 있는 곰이 캠프 근처에 왔던 것을 제외하고는 별일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횃불을 휘두르고 다른 사람이 총을 겨누니 물러가더군요.”
“그래? 그것참 다행이군. 이럴 줄 알았으면 서커스 조련사를 데리고 올 걸 그랬어. 이 땅은 폐하의 신민보다 곰이 더 많으니 말이야. 그나마 종무원장께서 세르게이 자네를 파견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안 좋았겠지. 아마 이런 나무로나마 벽을 세운 숙영지도 만들지 못했을 거고 밤이면 밤마다 옆에 있던 동료가 곰에게 물려가 한 줌 핏물만 남기고 사라진 것을 볼 수밖에 없었겠지. 오 신이시여, 어째서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남기십니까.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엄마…….흐어어엉.”
이런 오늘도 또 시작이군. 세르게이는 생각했다.
캄차카 반도에 도착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지방관이라는 작자가 거의 매일 보여주다시피 하는 발작은 이제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각하, 울지 마십시오. 각하께서 계시지 않으셨더라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과 같은 불침번 순서를 정하고 사냥 및 채집을 할 당번을 정하고 나무를 베어와 캠프를 만드는 일을 주도한 것은 베조브라조프가 아닌 세르게이였지만, 그는 이제 하루 일과나 다름없는 지방관 달래기를 하며 자신의 스승을 원망했다.
-베조브라조프 그 애송이 놈이 한 짓을 생각하면 캄차카 반도로 가기 전에 내 손으로 직접 없애버리고 싶다만, 폐하께서 새로이 행정 구역까지 만드시며 지방관 직을 수여하신 이상 이는 체면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다. 생각해 봐라. 명색이 한 지역을 관리한다는 사람이 다른 사고도 아닌 곰한테 물려가서 죽었다니,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나라가 우리를 얼마나 비웃겠느냐? 그뿐만이 아니다. 비록 지금에야 귀족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고는 하나, 베조브라조프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는다면 그의 죽음을 계기로 삼아 다시금 들고일어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내 너에게 스승으로서 한 가지 임무를 맡기마.
종무원장도 세르게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코자크 사냥꾼 출신의 길잡이 역할 등을 수행할 인원들과 베르단 소총을 비롯한 추가 물자 등을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영광스럽고 역사에 기록될 초대 캄차카 지방정부 구성원에 추가시켰다.
하지만.
‘이 애송이 옆에서 그를 다독여주고 보호해 주거라 라니……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스승님.’
이제는 단순히 우는 것을 넘어 끄억 거리며 오열을 하고 있는 베조브라조프를 달래는 세르게이는 속으로 자신의 스승에게 원망 섞인 마음을 표시했다.
* * *
“……해서 현재 제 부족한 제자가 폐하께서 임명하신 지방관을 곁에서 보좌하는 중입니다.”
“아, 그렇군.”
“미리 폐하께 말씀드리고 허락을 구했어야 할 사안임에도 제자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과 그가 이번 경험을 토대로 더 성장하길 바라는 사심이 앞선 이 노구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주십시오.”
“무슨 말인가, 벌이라니. 이런 일로 일일이 처벌을 한다면 관료들이 남아나질 않겠군. 그대의 빠른 판단으로 캄차카 지방관이 큰 도움을 받은 게 분명하건만, 오히려 그대가 내린 결정이야말로 지방관에게 주어진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한 것이라 생각하네. 아주 잘했군.”
종무원장과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대화를 나누며 가벼운 연기를 했지만, 그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나 또한 베조브라조프가 거칠기로 유명한 캄차카 반도에서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기에 조만간 추가 보급 물품과 함께 그와 사상을 같이하는 이들을 보내려 했건만, 종무원장의 움직임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그와 나눈 대화의 주된 내용은 아무래도 얼마 전에 있었던 민족주의자들의 정착촌 습격 사건과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이 연해주 지방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관한 것들이었다.
반도 내에서 일어났던 반란에도 불구하고 연해주 지방에 있는 조선계 러시아인들의 동요는 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민란이 남부 지방에 한정되어 일어났다는 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대다수는 북방 출신이었으니까.
거기에 본인들이 새로 정착한 나라에서 조선이 쩔쩔매던 민란을 단숨에 진압했다는 프로파간다를 들으며 자신들이 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종무원장은 말했다.
“거기에 폐하께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라면 차별 없이 대하겠다고 말로만 하시는 게 아니라 정착촌이 불타 없어진 이들에게 행동으로 본인의 말씀을 증명하신 것 또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이곳으로 넘어온 이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원래 자신들이 충성을 바치던 군주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이외에도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표면상의 이유인 바이칼 호 노선 공사에 있어서도 ‘폐하께서 조선인들을 안심시켜 주신 덕분에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진척을 보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던 종무원장의 얼굴과 달라져 있었다.
“종무원장, 그대와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는가?”
“그날의 대화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뇌제 이반의 길도 표트르 대제의 길도 아닌 본인의 길을 가겠다고 하셨지요. 제가 알던 폐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사람의 군주만이 제 눈앞에 있더군요.”
“그래, 그랬지. 그런데 그거 아는가? 그날 대화를 나누었던 종무원장 또한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의아하다는 기색을 보이는 종무원장에게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오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던 종무원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야 진정한 양 떼를 이끄는 목자의 모습을 가진 연해주 지방관만이 내 앞에 서 있다는 말이네.”
종무원장은 그제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뜬금없이 건네어진 칭찬에 낯이 간지러운지 그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고 하는 듯했다.
“크흠, 흠, 저에 대한 폐하의 높으신 평가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럼 이만 폐하께서 멀디먼 이곳까지 온 이유인 철도 건설 노동자들에 대한 격려를 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로 이동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원래 나의 스승이자 러시아 제국에서 차르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종무원장이라기엔 너무나도 뻔한 수법이었지만, 나는 거기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르신을 너무 지나치게 놀리는 것 또한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그럼, 목자께서 길을 안내해 주시죠. 저는 거기에 따르겠습니다.”
“폐하께서 아무래도 오늘 이 노인네가 창피해서 죽는 꼴을 보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그리도 제가 싫으십니까?”
종무원장과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두 번째 연설이었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연설을 했을 때와 지금과는 나의 위치나 상황의 변화가 엄청났지만, 행사의 본질은 똑같았다.
척박한 이곳에서 높은 강도의 육체노동을 하는 그들을 격려해준다는 게 주된 목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