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2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21화
47장 가지치기의 미학
사실 수공업이라는 직종은 점차 빨라져만 가는 세계의 시간 흐름을 생각해보면 쇠퇴할 수밖에 없는 분야였다.
한 사람의 도제가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숙련공이 되는데 필요한 시간은 농담으로라도 짧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산업 혁명을 거치며 대량으로 물건을 쏟아내는 공장들을 생각하면 기껏해야 20명도 되지 않는 공방을 운영하는 수공업자들이 가격 면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으며, 때로는 품질 면에서도 별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거나 심지어 공장제에 비해 밀릴 때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제국 내에서 수공업이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 창출에 차지하고 비율을 생각하면 이를 단순히 시대 흐름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1890년에 수공업자로 분류되어있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자그마치 200만인 데 반해, 동 시기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숫자는 170만 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벌가들과의 연계를 통한 산업 육성정책을 펴고 있는 데다 미르 폐지 및 농민들이 국내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확대해 줌에 따라 공장 노동자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수공업자의 숫자도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였다.
‘원 역사에서는 10년 만에 200만이던 수공업자의 숫자가 275만 명으로 늘어날 정도였으니까.’
다만 단기적으로 수공업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상황이 괜찮은 것으로 생각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좋지 못했다.
증가하는 숫자의 대다수가 자신만의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공장의 단순 하청이나 현재로써는 기계가 수행하지 못하는 일들에 종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별다른 고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싸구려 일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청 업체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21세기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자본주의, 산업 분야의 어두운 면이었으니까.
‘거기에 아직은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기계가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다.’
대표적으로 가장 기계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인쇄업계에서도 여전히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문선 작업¹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 역시 머지않아 문선기가 도입되면 자신의 일자리를 잃을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수공업자들과 관련된 정책이 필요할 것 같군.”
“수공업자 말씀이십니까? 폐하, 제가 방금 수공업계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씀은 드렸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과거 영국 또한 지나쳐간 길이며 저희보다 앞서 산업화의 길을 간 나라들이라면 어디나 겪은 일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실업자들이 발생하거나 소득이 끊긴 이들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런 자들은 반대급부로 늘어난 공장 내의 일자리들로 흡수하면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수공업자들을 위해 대규모 기업체에 대한 제제를 부과하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의 말이 맞았다. 내가 수공업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 할지라도 모든 충격을 완화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지금과 같은 현상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재무장관. 하지만 여전히 수공업자들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일자리 합계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고려한다면 관련 대책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나? 거기에 단순히 한 분야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다른 분야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서 줄어든 분야에서 종사하던 이들이 전부 늘어난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리고 단순히 재취업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면 안 되네. 자신의 능력과 경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공방을 운영하던 숙련공이 하루아침에 단순 노동만 반복하며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단순 노동자로서의 삶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나? 당장 자네만 하더라도 봉급은 동일하지만, 업무는 단순히 도장만 찍는 한직으로 밀려나게 된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은 무엇인가 회의감이 들지 않겠냐는 말이네. 명심하게. 지금은 인민주의자들이 모두 사라진 것 같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독니를 드러낼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것을.”
내 말을 들은 비테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 듯했다.
아직은 산업이 고도로 복잡해지고 융합되어 A라는 분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B라는 분야에 종사하던 이가 바로 일자리에 투입될 수 없는 현대사회는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게 될 공방을 운영하던 사람이나 숙련공들이 느낄 박탈감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놓인 이들은 무엇보다도 인민주의자들에게 먹음직스러운 대상이었다.
마음에 균열을 지니고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만큼 인민주의자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취약한 계층은 없었으니까.
“폐하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수공업자들에게 지원책을 마련해 주자면 이에 대해서도 막대한 양의 재정이 소모가 될 것이며 대규모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재벌가들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겁니다. 거기에 통일되지 않은 정책 기조로 인해 중복 투자와 그로 인한 정책의 효과 저하도 발생하게 될 것이고요. 이에 대한 대책도 가지고 계신지요?”
비테의 우려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는 약간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정책의 목적이 모든 분야의 수공업에 대해 지원을 하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리려는 건 어디까지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의 수공업이었다.
거기에 나는 이번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부 대신 돈이라는 실탄을 대신 쏴줄 든든한 후원자들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자네 말대로 모든 수공업자들이 자신의 공방을 유지하며 공장들과 경쟁하게 둘 수는 없지. 그건 재벌가뿐만 아니라 우리도 바라는 게 아니니까. 다만 약간의 지원이나 무대만 마련해 준다면 얼마든지 투입 대비 산출이 높게 나올 이들에게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나? 자네도 여기에서 공방을 차리고 있는 카를 파베르제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언급한 파베르제는 다름 아닌 그 유명한 파베르제의 달걀과 거미를 만든 희대의 보석세공사였다.
그가 만든 작품의 가치는 너무나도 높아서 어지간한 귀족조차 구매할 수 없었으며 황제나 그의 친척 일가 아니면 대귀족이나 보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도 젬스트보의 주도하에 수공업자들이 모여 인형을 만들어내는 산업단지가 생겼다고 하더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마트료시카라고 하던가? 그 인형은 독특하게도 나무로 만들어 인형 안에 인형이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이외에도 상류층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재벌가들이 예술 분야를 후원하면서 자신들의 허영심을 채우고 위신을 높이려는 태도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 예를 들자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얼마 후 열릴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자신들이 후원한 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건 어떻겠나? 내 생각에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본인의 예술적 안목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우리의 자본가 친구들이 자신들의 지갑을 기꺼이 열거라 생각되는데.”
내가 언급한 것 외에도 대량 생산되는 공업품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감성을 지니고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물품들은 더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 러시아를 대표하는 그줼 도자기나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방을 차린 로모노소프 도자기 같은 경우에는 서유럽에 수출을 함과 동시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시대의 러시아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착취함과 동시에 병원이나 학교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을 설립하는 것에는 기꺼이 기부를 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철도 분야에서 막대한 부를 쌓으며 물품 수송을 쉽게 만들어 수공업이 몰락하는 데 일조한 마몬토프는 아예 모스크바 주의 이브람체보라는 지역에 예술가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고 그들을 초빙할 정도였다.
아이러니했지만, 이런 모습은 러시아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러시아 특유의 가부장적인 사고 그중에서도 사회 지도층은 하층민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그들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식의 생각에서 유래한 거라 생각되었다.
“폐하께서는 자본가 계층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상류계급 편입 및 그들로부터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와 허영심, 그리고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동경을 이용하시려는 생각이시군요.”
“바로 그거요.”
거기에 자본가들에게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면 내가 내밀은 손을 기꺼이 잡을 이들은 넘쳐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21세기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시대에 파리는 말 그대로 문화와 교양의 중심지로 평가받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단순히 심미안 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고 러시아스러움을 가미한 물품들을 준비하는 건 어떻겠냐고 전했으면 좋겠군. 서유럽이 우리보다 산업적인 면에서 앞서나간다고 할지 몰라도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우리 또한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원 역사에서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러시아의 민족 예술가였던 쟈길레프의 주도하에 실제로 출품된 러시아 전통 가옥과 목공예품은 파리 시민들뿐만 아니라 박람회를 방문한 유럽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록 그것들을 실제로 만든 목공 장인들은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 머리와 집에서 실제로 입고 지내느라 땜빵 자국이 남아 있는 낡아빠진 러시아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세련됐다고 평가되는 파리 시민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이 잃어버린 순수성을 찾아냈던 모양이었다.
그 후로 파리뿐만 아니라 런던, 시카고, 라이프치히, 뉴욕 등에 러시아의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들이 만들어질 정도였으며, 유럽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마트료시카와 같은 러시아산 인형을 사주는 것은 보편적이 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심지어 패션을 선도하는 파리 출신의 디자이너인 폴 프와레가 러시아 농민 의상에서 모티브를 딴 블라우스 루시라는 의상을 새로 만들 정도였으니 러시아의 전통문화 양식은 세계에서 먹힐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지.’
아직은 좀 먼 얘기긴 했지만, 정부 주도하에 별다른 지원도 없이 이 정도 성과를 거뒀던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조금만 물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로마네스크, 자포네스크에 이어 루스네스크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나는 러시아식 전통 의상에서 모티브를 따온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에펠탑 앞의 광장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을 이었다.
“나 또한 지금의 비대한 수공업계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이들까지 휩쓸려 사라지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 나무의 숱이 많다고 해서 가지를 치는 과정에서 나무 자체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네.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야지 나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부분까지 없애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걸세.”
내 말을 들은 비테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럼 폐하의 구상대로라면 이번 정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재벌가들과 모스크바에 있는 젬스트보들이겠군요. 중앙 정부는 어디까지나 자리를 마련해주고 기회를 열어주는 정도의 역할만 맡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우선 모스크바 젬스트보 의장인 드미트리 시포프와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전통 민속 예술이나 전통 공예 등의 명맥이 끊긴 이곳과는 달리 모스크바는 여전히 관련 분야의 장인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거기에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형과 관련된 수공업 단지를 젬스트보 주도로 만들 정도이니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사전 이해도가 높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그리고 내가 준비한 것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작가의 말
문선 작업¹ : 인쇄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원고대로 인쇄를 뽑아내기 위해 활자판에 들어갈 활자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뜻합니다.
러시아에 인쇄기가 들어온 것은 1870년대이고 공장과 같은 곳에서 대량으로 인쇄 작업을 맡게 된 것은 1890년대이지만 문선 기계가 들어온 것은 1906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