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2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23화
보통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결정되고 그것이 시행되는 과정이 대체로 치밀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부작용 정도는 미리 파악을 한 후에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주체가 크면 클수록 의사 결정 과정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지는 데 만약 국가가 국정 운영 과제로서 A라는 일을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정교할지는 별다른 전문지식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지원으로 세워진 세르기예프 수공업 단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의 이야기겠지만.
“아니, 그래서 우리보고 지금 저 이교도 놈들하고 같은 숙소에서 묵으면서 함께 일을 하라는 말이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공방을 이곳으로 옮기지도 않았을 걸세! 거기에 다짜고짜 저놈들의 그 문화라고 할 수도 없는 미개한 전통양식을 내가 만드는 수공예품에 응용하라니! 이건 내가 가진 경력과 능력에 대한 모욕이야! 시포프 의장은 어디 있나! 내 직접 그 사람을 보고 항의를 해야겠어!”
“내 스승님의 스승님부터 사용해 오던 도량형 대신 듣도 보도 못한 미터법이니 뭐니 하는 도량형으로 물건을 만들라는 것까지도 받아들였건만, 이런 식으로 우리를 대접해?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 공방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소!”
수염이 덥수룩하면서도 손에는 굳은살이 없는 곳이 더 적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아저씨 같지만, 어느 정도 사람의 육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거친 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을 가진 이들이 항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거센 고함을 받아내고 있는 사람은 외눈 안경을 쓴 젊은이였다.
아무리 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것을 예상한 고참들로부터 떠넘김을 받은 것 같았다.
연륜으로 보나 피지컬로 보나 장인들을 제어할 수 없는 신참은 쩔쩔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도 호의적이지는 않은 눈초리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우리와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내용은 몰라도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군. 역시 괜히 여기까지 온 건가. 그냥 고향에 머무르라는 장로님과 부모님의 말을 들을 걸 그랬군. 이봐, 통역 나리. 그래서 저 막일꾼 친구들이 뭐라고 떠들고 있는 겁니까?”
전형적인 슬라브인들의 생김새와는 다른 까무잡잡한 피부와 검은 머리와 눈동자 등을 가지고 있는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통역이라 불린 사람에게 말을 걸었지만, 막상 통역이라는 호칭을 가진 사람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키르키즈인들도 완전히 러시아어에 대해 문외한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과열된 분위기에 쏘아붙이듯 내뱉어지는 러시아어를 알아듣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얼마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재무장관과 차르 사이에 있었던 회의가 원인이었다.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수공업계를 돕기 위해 전통문화 등을 이용한 수공예품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러시아 내에 있는 민족들의 화합을 꾀하기 위하여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전통문화도 포함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너무나도 급박했다.
차르나 재무장관은 이번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회의 결과를 전해 들은 하급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달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번 일의 결과를 통해 차르께서 관료의 숫자를 늘려주겠다고 했다는 출처 불명의 소문까지 관료 사회에 퍼져나가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 재무부뿐만 아니라 철도부나 내무부, 심지어 교육부와 같은 그다지 연결 고리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부서까지 의욕적으로 뛰어든 결과가 바로 지금과 같은 풍경이었다.
여전히 살기등등한 장인들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는 신참의 머릿속에서는 자신을 이 자리에 보낸 고참들의 으름이 스쳐 지나갔다.
-너도 들었을 거다. 차르께서 이번 일을 수행하는 데 우수함을 증명한 부서부터 신입들을 확충해 주신다고 했다는 소문 말이야. 너도 저기 보이는 키톱스키처럼 막내 생활을 2년 반 넘게 하고 싶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잘 해내야 할걸.
어떤 일이 있어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낸다면 차라리 지들이 올 것이지.
개자식들, 나쁜 자식들. 이럴 거면 전통이랍시고 보급 나온 커피나 차는 왜 뺏어간 거야?
신참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아래로 이런 불평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면 자기들이 이미 계산해 봤을 때 무슨 수를 써도 장인들을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편한 본인에게 떠넘긴 게 아닌가라는 신빙성이 높은 추론까지 떠오를 정도였다.
이젠 멱살까지 잡혀 흔들리는 관계로 하늘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신참의 시선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더 다가오는 게 들어온 건 바로 그때였다.
“얼씨구? 이젠 유대인 놈들까지?”
황당하다는 듯 내뱉는 슬라브 족 장인의 말대로였다. 흔히 하레디라고 불리는 검은 챙 모자에 구레나룻을 길게 기른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상징물은 정교회의 십자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가 지속적으로 민족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극렬민족주의자들이 연달아 실책을 범한 데다 신문과 같은 매체에서도 국가주의의 우수성 등을 설파하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유대주의나 다른 민족들에 대한 거부감 등은 시간이 가장 유효한 치료약이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장인들이 유대인들을 쳐다보는 시선은 아까 중앙아시아에서 온 키르키즈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더 곱지 않았다.
그나마 장인들의 시선이 유대인들로 쏠린 틈을 타 신참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여, 여러분! 이번 일은 단순히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주도로 시포프 의장님이 벌인 게 아닙니다. 바로 차르께서, 차르께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공업계를 격려하심과 동시에 서로 다른 민족 간의 화합을 통해 세계에 러시아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몸소 지시를 내리신 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여러분이 이러시는 건 차르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닙니다!”
러시아어로 외쳐진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여기서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던 러시아 장인들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중앙아시아인들은 분노보다는 냉소를, 유대인들은 막 도착해서 어리둥절한 모습만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차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 또한 이곳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 가운데 지난번 기근에서 정부가 배급한 구호 물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잉, 아무튼! 난 저놈들하고 같은 숙소에서 절대로 못 지내니 그런 줄 알게!”
“우선은 알겠으니 진정하세요, 어르신.”
신참은 당장에 급한 불을 껐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슬라브족 장인들이 다시금 본인들의 일터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신참의 얼굴은 어느샌가 십 년은 늙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등장했다.
분노를 표출하던 목소리도 잦아들고 어느새 적막감만이 감도는 공간이었지만, 이런 고요함도 길지만은 않았다.
“어이, 거기! 그쪽 똑바로 잡아! 기둥 넘어간다!”
“멍청아! 겉 부분의 천은 기둥이 올라간 다음에 덮으라고! 이 자식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유르트¹ 치는 방법을 모르는 거야?”
“어어어어! 줄 똑바로 잡으라니까!”
키르키즈인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전통문화라고만 말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을 데리고 오라는 얘기는 없었기에 닥치는 대로 자신들이 못 보던 새로운 물건이나 집들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데려왔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거기에 여기까지 오는 것에 동의한 이들은 이전 중앙아시아 총독이자 니콜라이로부터 자디디즘을 통해 러시아에 융화되려고 하며,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을 음지에서 잡아내라는 명령을 수행 중인 알렉산드르 백작에 의해 한 차례씩 걸러진 이들이라는 점도 방금 상황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수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지나 여기까지 온 만큼 자신들이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겠다는 심정이 강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이 똑같이 슬라브 전통 방식으로 집을 짓고 있던 장인들의 시선을 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적떼기들로 애쓴다며 비웃음을 보내던 그들이었지만, 어느새 형태를 갖추어나가는 유르트를 보자 그들의 입가에 서려 있던 조소가 지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처음에야 낯선 환경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작했기에 수없이 반복했던 일임에도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금세 제 페이스를 되찾고 유르트를 세워 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구도자와도 같았다.
어째서 집을 짓는 일임에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행을 하는 구도자의 분위기가 풍기는지는 아무도 설명을 하지 못했지만, 박해와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지 짐작만 가능할 뿐이었다.
거기에 명색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키르키즈인들이 특별히 준비한 화려한 천과 장식들로 유르트를 완성하자 나무와 망치, 못으로 집을 만들던 장인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손이 멈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하지만, 그 천막이 아름답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 에이, 이보게들 저런 천 쪼가리로 어떻게 눈과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닥치는 겨울을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보기에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게 딱 저놈들답구만. 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일이나 하세.”
애써 유르트의 가치를 폄하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 광경을 본 장인들의 마음속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분노나 경멸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슬라브인이기에 앞서서 가지고 있는 장인으로서의 자존심과 경쟁심 그리고 능력을 가진 자에 대한 존중심이었다.
거기에 자신들이 분풀이를 하던 신참 관료가 유르트에 다녀온 이후 한 말은 결정타였다.
“저 친구들 말로는 저거 하나면 사시사철 머무르면서 양이나 말들을 키우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그 땅은 당분간 사용할 수가 없는 데다가 1년 내내 유목을 할 수 있을 만한 땅을 찾는 게 더 어려워서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라고 하네요.”
애써 본인들이 비웃던 실용성이 없을 게 분명하다는 말까지 박살이 나자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식사시간의 풍경이었다.
지금까지는 각 민족별로 따로 앉아 서로 간에 대화도 없이 묵묵히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시간이 계속되었다면 차츰 차나 스프와 같은 것들을 가지고 가 툭 하고 상대편에게 주고 오는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종교나 문화상 금기시되는 음식이나 음료로 인해 험악한 분위기가 발생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나면 다음 날에는 문제가 되는 음식물 등을 제외하고 서로 나누어 먹는 모습들이 보였다.
특히 인기가 있던 것은 키르키즈 족이 큰맘을 먹고 내놓은 대추야자 술이었는데 이슬람 교리상 유일하게 허용된 주류인 대추야자 술이 배포되고 난 다음 날에는 원래 숙소가 아닌 유르트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는 슬라브 장인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로 사이가 좋아지는 데는 술만 한 게 없다는 명제가 다시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말
유르트¹ : 게르라고도 불리는 유목민들이 지내는 천막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