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2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26화
내가 페르디난트에게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그가 현재 오-헝 제국의 계승자가 아니라 황좌로부터 거리가 먼 황실 내에서 존재감이 약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제국과 오-헝 제국의 관계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생각하면 페르디난트가 지금과 같은 상태인 것이 오히려 그와 접촉하는 데 쉬울 테니 말이다.
거기에 영국에 불안정한 내부사정을 생각했을 때 원 역사처럼 삼국협상이 맺어진다 할지라도 그게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였다.
다시 말해 페르디난트는 미래에 발생할 것이 분명한 대전쟁에 대해 검토해 볼 만한 보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돈만 제대로 계약을 맺은 대로 지불하면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실제 보험과는 달리, 속된 말로 페르디난트 코인을 타기 위해서는 양 국가 내에 존재하는 민족주의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럽 정세, 서로 이미 동맹을 맺고 있는 상대국에서 보일 거부감 등과 같은 하나만 하더라도 넘기 힘든 산들을 넘어야겠지만, 그와 한 번쯤 만나보는 것은 고려할 만했다.
단순히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테니까.
거기에 아무리 오-헝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그 덩치로 세르비아 왕국도 밀지 못하는 추태를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러시아에 있어 갈리치아 전선이라는 하나의 고기 분쇄기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축소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대화 정도야 얼마든지 나눌 수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들 1차 세계대전하면 베르됭 전투나 솜 전투가 벌어진 서부전선이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끔찍한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많이 사람들이 죽어 나간 곳은 다름 아닌 러시아 제국 최후의 저력을 끌어냈던 브루실로프 공세가 벌어진 갈리치아 전선이니까.’
비록 그 전투에서 러시아가 승리하긴 했어도 양측 도합 200만이 넘어가는 사상자 발생으로 인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오-헝 제국이 해체되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미래에 갈리치아 쪽에서 벌어질 전투의 크기를 줄일 수도 있을 기회를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거라면 어떤 명분으로 그를 여기로 불러오느냐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와 관련해서도 나는 써먹을 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진행 중인 수공업 프로젝트와 관련해 각국 황실이나 왕실에 초청장을 보내는 식으로 하면 되겠군. 예술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교양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황실에서 직접 만드는 데 참여한 수공예품들을 소개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다는 식으로 말이야.’
오-헝 제국을 대상으로만 초대장을 발부하는 것도 이상했기에 나는 이번 기회에 유럽 내에 있는 국가들의 고귀한 피, 그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이들을 대상으로 정성스레 한 줄 한 줄 적어나간 초대장을 보낼 생각이었다.
모든 나라들이 참여하리라 생각되진 않았지만, 그들 중 일부만 이에 응하더라도 미래에 열릴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러시아가 출품할 물건들에 대한 시선의 강도가 훨씬 높아질 거라 기대되었다.
자신들보다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이들이 좋아하거나 찾는 물건에 대한 대중들의 욕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었으니까.
‘페르디난트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면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도움까지 줄 수 있는 방법이다. 황실이나 왕궁에서 러시아에서 만든 수공예품을 사용한다는 것만큼 지금 시대에서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마케팅도 없을 테니까.’
세부적인 사항이야 외무부 같은 부서와의 회의를 거쳐서 결정해야겠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전략이라고 생각되었다.
만약에 오-헝 제국에서 페르디난트가 오지 않았을 경우에도 별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각국에서 온 이들에게 우리가 만든 제품의 우수성이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주력하면 될 테니까.
‘그러자면 모스크바에 있는 세르기예프 단지를 방문해 볼 필요가 있겠군.’
앞서 내가 말한 내용들은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수공업자들이 각국의 고귀한 피들을 매료시킬만한 상품을 만들어냈을 때나 가능한 일들이었으니까.
현재의 진행 상황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도 할 겸 한 번쯤은 그곳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겸사겸사 어머니도 오랜만에 한 번 뵈고 말이야.’
지금도 내게 어울리는 신붓감을 찾기 위해 밤잠까지 줄여가며 후보들을 추려내고 검증하고 계신다는 어머니도 모스크바에 계신 만큼 이번 기회에 찾아뵐 수도 있었다.
자칫하다간 이번 방문에 바로 본인이 선택하신 후보들 가운데 한 명을 고르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머지않아 지금의 자유는 종말을 고할 예정이었으니까.
* * *
“자, 다들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폐하께서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아이 씨, 먹고 남은 술병 같은 건 치우라고 며칠 전부터 얘기했는데 저 구역 청소 맡았던 사람들 누굽니까? 아직도 저런 게 굴러다니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예?”
“여러분은 아직 러시아어가 서투니까 주변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보고 따라 하세요. 옆에서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면 여러분들도 같이 함성을 지르고 폐하께서 혹시라도 다가오시면 웃는 얼굴 유지하는 거 잊지 마시고 아셨죠? 그리고 괜히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마세요. 최근 민족주의자나 인민주의자 놈들이 여전히 국내에서 일으킨 사건 때문에 호위병들 신경이 아주 날카롭다고 하니까. 뭐, 그런 것만 제외하면 평상시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평상시대로 행동하라니. 방금 한 말대로 행동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항상 긴장하고 여러분 앞에 있는 분이 러시아 제국의 차르라는 점을 꼭, 꼭!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진행 중인 이번 사업의 성패가 이번 방문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계속 떠올려야 해요.”
러시아 각지에서 모인 수공업자들이 서로 간의 능력을 뽐내며 차츰 융화되어가던 세르기예프 단지는 오늘따라 정신이 없었다.
차르가 방문한다는 사실은 이미 며칠 전 공문을 통해 알려졌지만, 정확히 몇 시에 오는지와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암살이나 테러 등을 막기 위해 기밀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도 언제 맞는지 알고 맞는 게 낫듯 차르가 방문한다는 날이 되자 기약 없는 기다림에 시달리게 된 장인들과 담당 관료들은 죽을 맛이었다.
분명 오늘이 되기 전에 말끔히 청소했다고 여겼던 곳에서는 비어 있는 술병과 같은 쓰레기가 나오질 않나 여전히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중앙아시아 출신들은 통역에 의존해 오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지 등을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바쁘게 돌아다니는 인원 중 이전에 장인들에게 멱살잡이까지 당했던 안경잡이 신입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겨우 장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던 신경전이나 충돌이 사라져가고 있는 분위기라 마음을 놓고 있었더니 관료들에게, 아니, 러시아 신민들에게 있어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차르가 방문한다니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기에 그의 선배라고 있는 놈들은 오늘도 여전히 그에게 업무를 미룬 채 병가나 급한 볼일을 핑계로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부조리였지만-모두가 공평하게 힘든 상황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관료는 선임과 후임 모두에게 기피당했으므로-여기는 모스크바였고 여전히 이런 관행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차르의 방문이라는 이벤트를 신입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준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전통 건축과 관련된 업무는 그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절찬리에 장인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 우리가 폐하의 방문을 위해 준비한 게 왜 안 된다는 말인가?”
“그게,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만드신 집은 전통양식으로 만든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요…… 딱 보기에 어느 민족의 집인지 모르는 그런 물건인 게 조금…….”
“그래서 자네가 건축에 대해서 나 나 아니면 이 친구보다 더 잘 안다는 얘긴가? 이게 어때서 아름답기만 한데.”
“아유,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건축에 대한 지식은 여러분들에 비하면 없는 거나 다름이 없죠. 그런데 지금 진행 중인 사업의 취지를 생각해 보자면 파리 만국 박람회에 각 민족의 전통양식으로 지은 건축물을 출품한다는 게 목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그래서 자네 말은 지금이라도 이걸 다 허물고 폐하가 도착하시기 전까지 새로 집을 만들라고? 아니, 그러면 진작에 안 된다고 얘기를 하든가, 폐하께서 오시는 당일 날에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그러게요. 왜 진작에 제 선배라는 놈들은 여러분들을 멈추지 않았던 걸까요.
초반의 충돌이 지나간 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자신들의 공로로 보고를 하기 위한 선배들로 인해 다시금 잡일로 쫓겨나 건축 분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던 신입은 자신의 마음속에 증오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이번 일이 끝나거든 어차피 파면이나 해임이 될 텐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망할 놈들은 데려가고 말리라.
“그러면, 시간상 어쩔 수 없으니 우선 폐하께는 지금 완성된 작품을 보여드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자네가 하는 걸로 하지. 응?”
그가 생각하기에도 남은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다른 분야의 장인들은 미흡하게나마 완성품을 선보일 텐데 이제 와서 이미 건축이 완료된 건물을 허물고 차르 앞에서 ‘하하, 저희는 직접 폐하께서 집을 건축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경험을 체험하는 걸 준비했습니다. 예? 언제쯤 완공이 되냐구요? 아마 빠르면 2주일이면 될 겁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내심 각오를 다지고 있던 신입의 귀에 들려온 외침은 지면이 갑자기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폐하께서 도착하셨다!”
사실 지면이 갑자기 솟아오른 게 아니라 그의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아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렇게 본인들에게 주어진 부지 앞에서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인 양 차례를 기다리던 신입은 그릇이나 금속세공품, 이콘이나 그림들을 거쳐 자신에게 다가오는 차르가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겨 건축물까지 오기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바랐지만, 점차 다가오는 니콜라이는 그의 바람을 배신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출세해서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자 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없는 살림을 쥐어 짜내어 장남인 본인을 교육시키고 관료 시험에까지 합격시켜주신 부모님이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부모님이 보여주신 기쁨의 눈물이 이제 슬픔의 눈물로 바뀔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지만, 그는 각오를 다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오, 건축 부분이 내 마음에 가장 쏙 드는 완성품을 만들어냈군.”
그런 그의 귀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반대되는 차르의 감탄사였지만.
“보아하니 중앙아시아 쪽 건축양식과 슬라브 전통 건축양식이 합쳐진 것 같은데. 이거야말로 내가 이번 정책을 진행하면서 가장 바랐던 방향이네. 양측의 장인들이 서로 간에 자존심을 굽히고 서로 협력하게끔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자네 정말 애를 많이 썼겠군.”
“예, 예? 그, 그것이.”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통나무 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곳곳에 들어간 문양이나 빠른 속도로 지을 수 있는 천막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하는 데 간략화한 부분들이 눈에 띄는군. 정말 훌륭해. 너무 마음에 드는군.”
신입은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도 관료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얼떨떨해하는 그의 눈에 자신을 향해 거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인들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