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27)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27화
48장 우리가 가야 할 길
솔직히 말해 처음 세르기예프 단지를 방문해야겠다 생각했을 때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위에서의 지시가 있었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 작품성을 가지고 해외에서도 먹힐 만한 완성품이 나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막상 눈으로 직접 본 완성품들은 저마다의 어떻게 하면 전통문화와 공예품들을 결합할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오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는 유르트와 러시아 시골 농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집이 서로 결합된 건축물이었다.
서로 절대로 융합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개의 물건을 그런 식으로 섞어서 만들 줄은 몰랐기에 내가 느낀 놀라움은 더욱 컸다.
솔직히 말해 중앙아시아 민족과 러시아 제국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슬라브 민족 사이의 유서 깊은 악연을 생각했을 때 이렇게나 빠른 시간 만에 완성품을 떡하니 내놓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별다른 기대 없이 갔었던 만큼 준수하다고 할 수 있는 완성품은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만약 내가 엄청나게 큰 기대를 품은 채로 갔다면 이 정도뿐이 못하냐고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일을 앞두고 내가 가졌던 기대치는 좋게 봐줘야 10살짜리 아이가 주물럭거린 것 같은 완성품이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으니까.
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이번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한자리에 모인 민족 간에 갈등이 발생하고 러시아 관료 사회의 유구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책임 회피와 보고 조작 그리고 부패 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뜻밖의 감동을 안겨주었던 건축물도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벌어졌던 일을 자세히 듣자 완공된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정도였으니까.
‘하긴 여전히 타 국가에 비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게 관료의 숫자뿐만 아니라 질 또한 떨어지는 편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지.’
인구 1,000명당 그들을 관리하는 관료의 숫자가 영국의 경우에는 7.3명, 프랑스는 무려 17.3명을 배당하고 있을 때 우리는 고작 4명이라는 인원을 배정하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관료 부족 현상은 만성적인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국정을 운영하던 황태자 시절부터 지속적인 충원을 통해 이를 5명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10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25%의 확충을 달성한 것에 대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었다.
급격한 확충으로 인한 수준 미달의 관료들이 지방에서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박봉이던 관료들의 봉급을 늘리는 것에 인원까지 늘어나니 이에 대한 재정적 부담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누구보다도 관료들의 확충을 바랄 비테가 이번 분기의 추가 모집이 끝나면 당분간은 새로 관료들을 뽑기보다는 이미 공무를 수행 중인 이들의 업무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세르기예프 단지에서 이룩한 성과는 말 그대로 낮은 확률을 뚫고 이루어낸 쾌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완성되기까지의 일을 들은 이후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신입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던 이들에게는 응당한 처벌을 내리고 술이라는 매개체로 장인들 간의 사이에서 벌어지던 충돌을 완화하고 이런 멋진 완성품을 만드는 데 일조한 이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내렸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신입을 건축물과 관련된 작업을 관리하는 책임자로서의 승진을 시키라고 명령한 뒤 나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세르기예프 단지를 떠나 어머니가 지내고 계시는 크렘린 궁으로 떠났다.
오랜만이라고 한다면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 흐른 뒤, 만난 어머니는 여전히 예전보다는 수척하신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한 후 병상 곁을 떠나실 줄 몰랐던 어머니는 장례식이 진행되던 순간에는 방부처리가 된 아버지를 차마 못 보겠다는 듯 최소한의 행사에만 참석하시며 칩거 생활을 이어나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생활에 시작은 예정되어 있지도 않았고 비극적이었을지 몰라도 긴 시간 동안 두 분께서 쌓아 올린 시간과 경험은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에서 머무르고 계셨지만, 그 후로도 어머니는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시며 나를 비롯한 가족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계셨다.
“차르께서는 이 어미보다 기술자들을 더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모스크바에 왔음에도 크렘린이 아닌 공방이 모여 있다는 세르기예프 단지라는 곳을 먼저 들릴 정도이니까요.”
“어머니, 말씀을 편하게 해주시지요. 왜 갑자기 저를 차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예전처럼 니키라고 불러주세요.”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차르께서 제 아들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황좌에 오르신 분. 제가 차르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법도를 어지럽힌다면 황실의 기강은 물론이고 제국의 위엄이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아니, 물론 러시아 황실의 분위기가 여타 다른 유럽 내의 황실보다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로 행동하실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내가 당신을 먼저 만나러 오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으신 게 아닌 것 같았다.
여태까지 결혼이라는 행사에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내가 이번에도 국정 운영이 바쁘다는 핑계로 또 미루려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여 결혼을 할 테니 상대가 될만한 후보들을 정리해 달라고 말했으면서도
모스크바에 왔음에도 자신을 처음으로 보지 않았다는 행동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끼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머니가 왜 이렇게 행동하시는지에 대한 추론이 끝나자 나는 조금 억울한 심정이었다.
내가 세르기예프 단지에 먼저 들른 것은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행위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조만간 다른 유럽 국가의 왕족들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품들이 나왔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 어미가 차르께 어울릴만한 배필을 찾기 위해 애쓰던 시간 동안 별다른 연락도 없던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군요. 죄송합니다, 폐하. 괜히 이 몸이 폐하를 귀찮게 만들었군요.”
“아니, 어머니. 그게 아니라…….”
어머니의 오해를 풀어드리기 위한 호소와 설득의 시간이 지나고-처음부터 어머니께서도 가벼운 불만을 표시하기 위한 거라 심각한 시간은 아니었다.
다만 이 나이 먹고 가벼운 애교를 부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다시 예전과 같은 태도를 되찾은 어머니가 준비한 자료들은 어지간한 부서의 분기 별 보고서와 맞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우선 처음으로 소개할 아가씨는 예전부터 내가 너에게 말했던 오를레앙 가문의 아가씨란다. 프랑스가 공화국이 된 이후로 별다른 실권도 없는 데다 결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적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적절한 신붓감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 외척의 힘도 미약한 데다가 결혼 후 네가 어떻게 행동하던 지에 상관없이 행동의 폭을 제한할 수 없을 테니까. 거기에 귀천상혼에도 해당하지 않으니 말 그대로 후계자를 품에 안겨준다는 목적에는 누구보다도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단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니키, 너는 유럽 내에서 가장 비싼 신랑감이니 말이다.”
어머니의 말은 현대인이 듣기에는 거북할 수도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귀족 가문에 소속된 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한 귀에 들어오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서로 정부를 따로 두는 등의 행동이 암묵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유럽의 문화상 별도의 정부 없이 서로에게 충실했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례가 특별하다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외국으로 시집을 와 가족을 만들고 황실 내의 살림을 맡으셨던 어머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너무 강력한 외척을 등에 업은 아내는 또 너무나도 쉽게 분란의 소지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모름지기 황실에 그것도 황위에 오른 사람이나 황위 계승자와 결혼을 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건강한 후계자를 낳는 것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건강한 후계자라.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 내 가슴에 따끔 하는 듯한 통증이 지나간 것은 바로 그 문장이었다.
내가 니콜라이와 합쳐지면서 알릭스에 대한 감정도 공유했으나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포기한 이유가 바로 그거였으니까.
모계에서 유전되는 혈우병은 50%의 발병 확률을 가진다고는 하지만, 50%라는 희망만을 믿고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당장 내 욕심만으로 불행의 가능성을 자식에게 떠넘기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이런 씁쓸한 마음을 느끼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문서들에 가려져 있던 한 가문에 대한 정리본이었다.
어머니가 말한 귀천 상혼에 해당하지 않는 고귀한 가문이며 알릭스처럼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유전병의 위험도 없는 가문이었지만,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듯이 밑에 깔려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가문은 다름 아닌 현재 러시아와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분가인 테셴 가문이었으니까.
계속해서 본인이 조사한 신부 후보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던 어머니도 내 시선이 테셴 가문에 대해 정리한 문서에 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신 듯 방금까지 말씀하시던 것을 멈춘 뒤 별거 아니라는 어투로 말씀하셨다.
“니키, 생각해 보렴. 내가 오죽했으면 저런 가문의 여식들까지 다 조사를 했겠니? 이게 다 지금까지 네가 결혼에 관심 없다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선제이신 니콜라이 1세 시대에 벌어졌던 배신이나 지금도 양국 간에 관계가 불편한 건 알고 있지만, 이 어미가 그 정도로 필사적이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1848년 혁명 당시 무려 16만이라는 군대와 함께 차관까지 제공하며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러시아에 그들이 한 짓은 크림 전쟁 당시 우리가 점령했던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를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으로 반환하자 낼름 먹어치운 말 그대로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행동이었다.
그 결과로 당시 황제였던 니콜라이 1세뿐만 아니라 전 러시아가 분노했으며 심지어 니콜라이 1세의 장례식에는 그 어떤 오스트리아 인도 참석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양국 간의 관계는 최악을 달렸었다.
비록 이후 시간이 흐르고 오스트리아가 보오전쟁 당시 신나게 얻어맞는 걸 지켜보며 적대감은 많이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러시아와 오-헝 제국의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인 건 여전했다.
무엇보다도 오-헝 제국은 삼국 동맹의 일원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어머니는 내가 테셴 가문에 대해 정리한 문서를 보는 이유가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의 가문까지도 조사했다는 거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라고 여기시는 모양이었다.
사실은 그에 정반대되는 이유였지만.
“아니요, 어머니. 오히려 저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가문보다 테셴 가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여기 가문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오자 어머니는 더 당황하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