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2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28화
어머니가 저러시는 이유가 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여태껏 결혼에 별반 관심을 두지도 않던 아들이 겨우 흥미를 느끼게 된 가문이 불편한 관계의 가문이라니, 충분히 당황스러우실 만도 하겠지.
“저는 이곳에 오기 전 세르기예프 단지에 들렀습니다, 어머니.”
이어지는 내 말을 듣자 어머니의 표정에 깃든 당황이라는 감정의 농도는 더 짙어지는 듯했다.
방금까지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아들이 갑자기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주제의 말을 꺼내서 그러신 거겠지.
하지만 내 말이 끝나면 왜 당신의 아들이 여기에 오기 전에 들렀던 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게 되실 거다.
“거기에서는 수많은 수공업자들이 자신들이 여태껏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고 있더군요. 어쩌면 그 단지에서 생산해 내는 물품의 품질이 어지간한 공장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기계의 생산성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머니께서도 가지고 계시는 카를 파베르제의 작품이 이를 증명하지 않습니까?”
뭐, 그것도 시간이 지나고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말 그대로 소수의 장인 중의 장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지게 될 테지만, 지금으로써는 내가 말하는 내용이 어느 정도는 사실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놀란 것은 단지에서 생산되는 물품의 품질이나 아니면 준수한 수준의 생산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서로 종교도, 민족도 다른 이들이 자발적으로 협력을 해서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있더군요. 믿어지십니까, 어머니? 십자가와 초승달, 심지어 본인들만의 공동체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던 유대인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들 사이에서의 중요한 차이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언어나 종교, 민족이 아니라 본인들의 전문분야나 아니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물건을 생산해낼지에 대한 의견 차이인 것 같더군요.”
과장이 섞여 있는 이야기였다.
내가 단지를 방문했을 때에도 여전히 다른 민족 간의 장인들, 특히 서로 악연이 깊은 이들끼리는 긴장감이 남아 있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완성품을 만들어낸 것은 유르트의 양식을 결합해 지은 건축 분야뿐이었고.
그러나 어머니에게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납득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허구와 부풀리기는 필요했다.
거기에 앞으로는 방금 말했던 내용이 사실이 될 테니까.
만약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개입해서라도 말이다.
“그렇단 말이냐?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이 네가 원하는 바라면 잘 됐구나.”
어머니는 겉으로는 내가 하고 있는 말에 동조를 표하시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계셨지만, 눈빛을 살펴보면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계셨다.
제대로 된 이유가 없다면 빨리 결혼 관련 주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기색은 덤이었고.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우리 러시아 제국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어머니.”
내가 진지한 어투로 선언하자 당신께서는 이내 아들이 무슨 생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세르기예프 단지 이야기를 꺼냈는지 느끼신 모양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하나이되 하나가 아닌 국가였습니다. 본인이 믿는 종교에 따라 받는 대우가 달랐으며 자신이 선택할 수가 없는 사항인 민족에 따라서도 차별을 받는 이들이 넘쳐났으니까요. 물론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종교에 따라 혹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자국민을 다르게 대우하는 일은 흔했으니까요.”
영국만 하더라도 아일랜드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성공회가 아닌 가톨릭을 믿는다는 이유로 다양한 차별 정책과 수탈을 일삼았다.
그것이 정점에 이르렀던 일 중 하나가 ‘감자 농사를 망친 것은 신이지만, 그것을 대기근으로 바꾼 것은 영국인들이었다’라는 말이 나왔던 아일랜드 대기근이었고.
프랑스 또한 대혁명 당시, 방데 주민들이 반혁명적 움직임을 보였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하고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무수히 많은 모순과 잘못된 정책 시행 등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반대하는 반동주의자들과 외세의 개입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두 나라보다도 더욱 강력한 차별 정책을 펼쳤던 것이 바로 러시아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들로 억눌려져 있던 불만들과 내재되어 있던 문제점들은 러시아 혁명이라는 희대의 대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일조를 했다.
“저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앞서 말한 차별적 정책의 시행이 다름 아닌 제 아버지 시대에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을요.”
“니키!”
이윽고 내가 아버지가 통치를 하시던 시절 시행되었던 정책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자 어머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셨다.
이 자리는 어머니와 나만 있다고는 해도 현 황제가 이전 황제를 그것도 아버지를 비판했다는 일이 퍼져 나가면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달갑지 않으시기도 할 테고. 그러나 이는 필요한 일이었다.
“정교회가 아닌 가톨릭을 믿는다는 이유로 본인이 마땅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를 빼앗겼다고 호소하는 이들의 외침이 여전히 제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신민들이 믿고 의지해야 할 자비로운 아버지인 차르가 자신의 자식에게 따뜻한 품이 아닌 차가운 눈초리와 회초리만을 든다면 어떤 이가 우리에게 의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어머니가 잠시 진정하시기를 기다린 뒤 말을 이었다.
“저는 아버지가 행하신 일들을 모두 부정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들은 당시의 상황으로 비추어봤을 때 충분히 시행할만한 이유가 있었고 또 때로는 엄청난 효과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나무들이 본인들의 모습을 바꾸듯, 계절마다 동물들이 취하는 행동이 달라지듯 국가도 마땅히 변해야 합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서 올라가려는 행위는 처음에는 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배가 뒤집히는 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의 치세에서 이전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 들을 전부 지워 버리겠다 이 말이냐?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다는 그 잘난 이유로 말이다. 네 아버지는 물론이고 네 할아버지와 또 그 위의 선조님들이 여태껏 이루어낸 것들은 구시대의 유물로 치워 버리고?”
“저는 결단코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물론이지요. 뿌리가 없는 나무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부터 전해져오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행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갈수록 지켜야 할 사항은 늘어만 가고 그로 인해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만 갈 테니까요. 오히려 바꿀 것은 바꾸면서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나라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그분들을 기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어머니와 논쟁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막상 벌어지자 나는 올 것이 왔구나라는 심정이 들었다.
보수파 귀족들이 별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고는 해도 삼촌인 세르게이 대공을 비롯한 황족 사이에서도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불만이 없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세르기예프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어머니. 제가 세바스토폴에서 처음 말했던 것처럼 다양한 민족들을 융합해 러시아 민족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러시아 제국이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 가능성을 세르기예프 단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차이점 대신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의 다름으로 다투고 토의하는 장면이야말로 제가 바라던 것이니까요.”
내 이야기가 끝나고도 어머니는 완전히 납득하신 기색은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 단 한 번만의 연설, 한 번만의 설득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세상에 전쟁이나 다툼이 일어날 리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머니의 표정은 아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어머니가 아닌 세르게이 대공과 같은 인물이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만, 이 분은 내 어머니였으니까.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우리 둘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어머니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자 나는 뒤통수를 망치, 아니, 단순한 망치가 아닌 철도를 건설할 때 목침을 박아넣기 위해 사용하는 거대한 해머로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니까.
* * *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조용했다.
나를 수행하는 인원들이나 근위병들이 움직일 때마다 자신들이 조그마한 소리라도 낼까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온 내 표정을 그들이 본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었다.
평상시였으면 그들이 불편할 것을 배려해 평상시처럼 행동하라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테셴 가문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을 때 피는 못 속인다고 생각했지 뭐냐. 네 사촌인 조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단다. 지금은 조지가 메리와 결혼해 모범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 조지가 예전에 조금 특이한 청혼을 했었잖니. 그 왜 사촌이던 마리아에게 자기와 결혼을 해달라고 했었잖니. 둘의 나이 차이가 아마 10살이었던가? 당시 양측 가문의 가주들은 그 결합에 동의하고 축복을 보냈지만, 이내 양쪽의 어머니들이 모두 결사반대를 하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사촌인 조지와 이번 일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조지가 자신과 10살이나 차이가 나는 사촌에게 청혼을 했었던 일이 나와 어떤 관계이길래 어머니가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지금도 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건 틀린 모양이구나. 지금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냐면…… 테셴 가문의 장녀인 마리아 크리스티나도 너와 9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 네가 27살이니 그 아이는 16살이겠구나.
러시아 쪽에 치중되어 있던 내 기억과 상식으로 인한 일이었다.
내가 테셴 가문에 대해 알고 있던 내용이라곤 현재 안주인인 이자벨라 대공비가 매우 야심만만하다는 것과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그 집안에서 일하던 백작가의 영애인 조피 폰 초테크와 결혼했다는 정도였으니까.
물론 나의 친애하는 사촌인 조지가 공개적으로 본인과 10살 차이가 나던 마리아에게 구혼을 했을 정도로 이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터부시가 되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가 현대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상식과는 어긋나는 일이었으니까.
-일단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았단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한번 이자벨라 대공비에게 이번 일과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마. 아마 확률은 반반일 거 같구나.
어머니가 테셴 가문에 편지를 보내겠다는 말이 이어졌지만, 뒤 내용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니의 말로 인한 충격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