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3)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올해의 나에게는 시간이 남들보다 3배는 빠르게 흘러간 것 같았으니까.
“벌써 12월인가…”
오늘도 여전히 책상 위에 위태로울 정도의 높이까지 쌓여있는 서류들을 처리하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이 어마어마한 양의 보고서들이 실무자들의 정리 및 처리를 통해 올라온 것임에도 처리해야 할 문서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내가 결제해야 하는 서류의 양을 보고 질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러시아 제국의 미래고 황태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지금은 이런 종류의 농담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생겼지만
8월 초부터 실시된 필사적인 구호 노력으로 인해 현재 러시아의 상황은 원 역사보다는 훨씬 완화된 상태였다. 다만 전근대적인 행정력과 기술력으로 인해 모든 피해를 완벽하게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지역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다. 다만 구호위원회의 구성 위원들과 현지 실무자들, 그리고 중앙관료들의 헌신 덕분에 원래 역사보다는 피해를 현저하게 줄이는 데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서 보고된 사망자를 종합해 보면 8000여명 정도군.’
8000여명 그것이 현재 러시아 제국의 한계를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했다. 미래를 알고 대비했음에도 발생한 희생자들을 생각하자 나는 입안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망자의 대다수는 노약자, 어린이들과 같은 취약계층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특히 신경을 쓰라는 행동강령을 내렸지만 안타깝게도 시대적 한계로 인해 피해를 완벽히 방지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은 구호 작업에 악영향을 끼치고는 했다.
‘현장에서 배분되어야 할 구호 물품을 착복하던 실무자들, 다 잡아내지 못한 밀수꾼들, 게다가 통나무 수급 문제와 몇몇 공공 급식소에서 벌어진 식중독까지 후…정말 돌이켜 생각하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군.’
게다가 도로작업에 할당된 예산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공사 책임자들로 인해 당시 건설에 동원됐지만, 임금과 배급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갔을 때는 내 손으로 직접 부패한 관료들을 모조리 시베리아로 보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 상황에 대한 첩보를 먼저 입수한 오흐라나의 보고 덕분에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한 심정이었다.
다만 문제만 연달아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의 면담 이후에 톨스토이가 신문에 기고한 기사를 보고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같은 대도시의 여유있는 시민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하며 지갑을 열었고 그 덕분에 행정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늦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톨스토이에게 직접 만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에게 저는 너무 나이를 먹어 전하가 기대하시는 바를 만족시켜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정중하게 방문은 사양하겠다는 회신을 받았지.’
그가 내 방문을 어째서 사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금은 어느 정도 숨을 돌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구호물자 배분에 관한 방침 같은 기초적이라 할 수 있는 문제도 처음에는 내가 세세히 지침을 내려줘야 했지만, 이제는 아까 말한 것과 같은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일일이 나에게까지 관련 보고서가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구호위원회의 활동은 본궤도에 올라있었다.
‘그 대신 다른 행정서류들을 떠안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아버지는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그동안 미뤄놓았던 후계자 교육을 속성으로 시키실 생각인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책상 위에 구호위원회 관련 서류 이외의 것이 올라와 있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처음에는 쉴 틈을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이렇게 바쁘지 않으면 내가 구해내지 못한 이들에 대한 생각이 들고 했으니까.
차라리 아침부터 밤까지 쉴새 없이 일한 뒤 잡념이 생기기도 전에 침대로 다이빙하는 지금의 일상이 나에게 더 좋은 것 같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 그 정도면 됐어. 원래보다 훨씬 더 적게 죽었잖아? 사람은 때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맞는 말 일지도 모른다. 이루지 못할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보고서에 적힌 숫자를 단순히 숫자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탈린이 말했던 것처럼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만 명의 죽음은 통계에 불과하다는 말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이런 감정은 단순히 내가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껴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군주로서 가지는 책임감이기도 했다. 그들이 나를 부를 때 ‘자비로우신 어버이 차르’라는 말을 사용될 것이기에, 나는 그들의 황제이자 아버지였으니까.
‘또 그들의 손에 의해 황좌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이기도 하고.’
확실한 게 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러시아 혁명이라는 끔찍한 결말에서 조금이나마 멀어졌다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1891년의 제국의 잘못된 대처가 결국 1917년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라는 평가도 내렸으니까.
다만 아직까지도 내가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1892년까지도 볼가 강 유역을 비롯한 곡창지대에서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둘 수 없었으므로, 나에게는 아직도 결승선이 1년여 남은 상태였다.
‘아니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이라고 해야겠지.’
이번에 벌어진 기근은 앞으로 내가 마주쳐야 할 수많은 시련과 시험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원래대로의 역사라면 앞으로 3년 뒤 터질 청일전쟁에 어떻게 개입할지도 미리 대비를 해야 했다.
‘내가 일본에 교토 조약으로 목줄을 채워놨으니 부담감이 커진 일본이 행동을 다르게 취한 결과로 본래 역사처럼 3년 뒤에 청과 충돌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대륙으로 뻗어 나가려는 일본과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려는 청나라 간의 충돌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충돌의 불씨는 조선에서 일어날 동학농민운동이었다.
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간 러·불 동맹 조건 협상 시작과 그로 인한 유럽의 정세 변화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아무리 극동이 앞으로 러시아 제국에게 중요하다고는 해도 당장 러시아 제국의 중요 도시 및 핵심 시설들이 존재한 곳은 유럽이었으니까.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당장이라도 내 눈앞에 쌓여있는 서류들을 처리해야 했지만.
‘그래도 첫눈을 바라볼 시간 정도는 가질 수 있겠지.’
나는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눈을 조금만 더 감상하기로 했다.
—
이반이 살고있는 마을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올해 여름부터 모두가 힘들고 잔인한 시간을 보냈지만, 겨울은 특히 더 혹독한 시간을 예고했다. 추워지는 날씨는 그들의 다 쓰러져가는 집의 틈새로 차가운 입김을 불어넣었으니까.
다만 다행인 것은 이반이 만났던 황태자가 자신들의 호소를 잊지 않고 배급을 보내는 등의 구제안을 시행했다는 점이었다. 황태자와 직접 만난 그들로서도 자신들의 간절한 요청이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걸했을 뿐.
그랬던 그들이기에 자신들의 마을에 구호 물품이 도착했을 당시 마을 주민들의 황태자에 대한 찬양은 폭발적이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반은 그 한 사람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세르게이 오늘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셈인가. 이제는 그만 샤샤를 보내줘야지. 나와서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가지.”
“생각 없네.”
샤샤는 출산 중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푸른 눈을 꼭 빼닮은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동네의 꼬마 남자애들은 서로 누가 샤샤와 놀 것인지를 두고 다툴 정도로 미래가 기대되는 아가씨였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병약했던 샤샤는 세르게이의 유일하게 남은 보물이었다.
그랬던 샤샤는 3개월 전 그 조그마한 몸을 차디찬 땅 속에 뉘였다. 세르게이가 도로를 보강하기 위한 노역을 나갔을 당시 배급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반이 나중에 알아보니 황태자가 방문했을 당시 망신을 당한 지방 행정관료 중 하나가 농간을 부린 결과였다.
어른들은 어찌어찌 견딜 수 있었지만 8살에 불과한 샤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 행정관료는 오흐라나에 의해 적발된 뒤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세르게이의 보물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세르게이는 어딘가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마치 딸의 죽음이 그 관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이 러시아 제국 그 자체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어딘가 수상한 이들과 어울리는 친구를 바라보는 이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3세의 반동 정치로 인해 1884년 대학이 사실상 폐쇄된 뒤 환멸을 느끼고 대학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온 이반이 보기에 세르게이의 친구들은 자신이 익히 봐왔던 매우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있는 자들이었으니까.
알렉산드르 2세가 ‘인민의 의지’라는 명칭을 가진 인민주의자들에 의해 폭살 된 뒤 차르에 오른 알렉산드르 3세는 테러분자들에 대한 철저한 탄압 및 색출을 실시했고 그들은 도시를 떠나 차르의 눈길이 덜 미치는 시골 지역으로 숨어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거 브나로드 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이 그랬듯 농민들의 손에 의해 경찰들에게 넘겨진 자들도 많았지만 몇몇은 무사히 농촌 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다.그리고 딸을 잃은 슬픔을 세르게이는 그들과 어울리며 러시아 제국에 대한 분노로 치환하는 듯했다.
‘하느님 부디 제 친구에게 평온을 내려주소서.’
처음에는 친구의 슬픔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았기에 이반도 세르게이의 행동을 못본 척 했지만 차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록 불완전한 개혁이긴 했지만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보였던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된 뒤의 일을 이반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수습 과정을 보며 황태자에 대한 인민들의 신망이 높아졌지만,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강해지듯 차르라는 존재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인민주의자들로서는 황태자가 눈엣가시 같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내가 세르게이를…’
오늘도 집안에 틀어박힌 친구를 두고 돌아서는 이반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자신이 이 마을에 돌아왔을 당시 다시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를 자신이 직접 고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반이 살고있는 곳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비록 최대한의 노력으로 구호를 했다고는 하지만 당장 자신의 친지를 잃은 자들에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 균열을 채워주는 것은 모든 책임은 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달콤한 말이었다.
서서히 러시아 제국의 뒷 그늘에서 음모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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