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3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31화
미국과 제대로 된 협상 자리는 겨울이 되어서야 마련되었다.
우리 측도 전략을 다듬을 필요도 있었고 미국 또한 본인들의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고 해서 이런 규모의 협상을 별다른 준비 없이 할 리가 없었으니까.
어쩌면 미래에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될 양 국가 사이에서 이루어질 회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우리 측의 협상 담당자가 다름 아닌 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번 협상에 직접 나설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얼마나 큰 것을 요구하려고 저러는지 우려한 미국 측의 요구로 인해 협상이 미루어진 감도 없잖아 있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나도 만나게 되어 반갑소, 장관. 부디 서로 간에 만족할 수 있을 만한 협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군.”
본래라면 현지에 상주하고 있는 영사나 아니면 전권을 부여받은 특사 정도가 왔겠지만, 내가 직접 나서는 만큼 미국 측 또한 협상 담당자를 다른 사람도 아닌 재무장관인 칼라일을 보냄으로써 격을 맞추려 애쓴 모양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폐하께서 다스리시는 러시아 제국이 보다 더 많은 기회를 우리 기업들에 열어주시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철도나 군수 분야의 사업뿐만 아니라 건설, 토목, 해운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우수한 기업들이 현재 폐하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약 조건에 대해 얼마든지 합의를 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정부 또한 폐하께서 관대함을 보여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를 할 생각입니다.”
협상의 규모가 큰 만큼, 시작은 실제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알아내려는 탐색전과 직설적인 말 대신 돌려 말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상대방은 시작과 동시에 말 그대로 아무런 기교와 수식어도 없이 자신의 패를 까발렸다.
“허허,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역시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낸 사람들다운 배포요.”
그들이 이번 회담으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정면 돌파하려고 하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본인들의 의도를 숨기려고 해도 가능하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만남 자체가 미국 측의 요구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칼라일은 숨길 수도 없는 약점이 없는 것처럼 애쓰기보다는 차라리 시작부터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협상 전략상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때때로 약점은 숨기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그 약점으로 인해 처할 상황보다 더 안 좋게 작용할 때가 있으니까.
그의 태도는 솔직하게 말해 나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 때문일지는 몰라도 매일같이 빙빙 돌려 말하는 게 버릇이 된 사람들밖에 없는 유럽의 외교 무대보다는 훨씬 시원시원했다.
“장관께서 그런 식으로 나오니 저도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원래라면 하와이와 같은 태평양의 섬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자 했지만, 그건 오늘 나눌 대화 주제에서 제외하도록 하지요.”
사실 하와이와 관련된 얘기는 본래 계획에서도 연막에 지나지 않는 주제였기에 나는 이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하와이는 미국의 영토도 아니었을뿐더러 알래스카도 관리하는 데 힘들어했던 러시아 제국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들을 통제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해군도 없고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곳을 점령해 얻어낼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지. 기껏해야 바나나 정도?’
다만 이 정도는 상대방인 킬라일 재무장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래스카도 헐값에-지금 기준으로-팔아넘긴 러시아가 미치지 않고서야 태평양에 있는 섬을 진지하게 요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본인은 솔직하게 패를 열었건만, 우리는 자신들처럼 진짜 목적 대신 협상용으로만 사용될 예정이었던 카드를 포기한 상황이었지만, 별수 있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아쉬운 것은 우리가 아닌 미국이었다.
“그렇게 저희를 배려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별다른 내색도 없이 빠르게 협상을 시작하려는 자세만큼은 높이 사줄 만했다.
“먼저 우리 러시아는 귀국이 제안한 폭넓은 분야에서의 기술 교류와 계약 체결이라는 사항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히고 싶소. 저 콧대 높은 영국 친구들이 본인들의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뻐기고 있지만,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이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아무래도 우리가 가진 영토나 자원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풍부하면 풍부했지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조금의 기술력만 더해진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저희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기술력과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이 합쳐진다면 영국을 과거의 영광인 산업혁명에만 매달리는 국가로 만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양 국가 모두에게 좋은 일이겠지.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휘하 관료들 또한 우려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소. 오늘 이 자리가 열리게 된 배경이기도 한 귀국의 경제 불황이 바로 그거요. 듣자 하니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하더군. 거기에 기업들은 자금을 구하지 못해 줄줄이 파산을 신청하고. 서로 힘을 합친다는 건 좋지만, 만약에라도 우리와 계약을 한 회사가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 손해는 우리도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 너희 기업들의 무엇을 믿고 일을 맡겨야 하냐고 묻자 킬라일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하가 우려하시는 게 무엇인지 저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러시아 제국 정부와 미국 기업 사이에 맺어진 계약에 대해서는 저희 정부가 지급 보증을 비롯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생각이며…….”
“다시 말해 기업이 파산하거나 아니면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가 있다면 미국 정부가 그것을 메꿔주겠다는 얘기요?”
“그렇습니다.”
킬라일의 대답을 듣자 나는 조금 실망했다.
무언가 특별한 제안이라도 가져올 줄 알았건만, 이런 거라면 도대체 왜 그리 협상 날짜를 미루자고 했는지 모를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급 보증이라고 한다면 보증을 서는 주체가 충분히 이를 상환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증명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 미국 정부는 재정이 바닥을 보여 충당하고자 민간 은행에서 긴급 대출을 받고 있는 상태이지 않소? 그런데 도대체 귀국 정부의 어떤 면을 보고 믿어달라는 것인지 모르겠구려.”
“폐하께서 아무래도 조금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세상에는 보증을 현금으로만 지불하도록 정해놓은 규정은 없지 않습니까? 비록 현재 미국 정부의 재정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미대륙에 있는 자원은 여전히 풍부한 상태이니까요.”
“그렇다면 현물로 보증하겠다는 얘기요?”
“예, 그렇습니다.”
흠, 이번에도 킬라일은 정면으로 돌파를 할 생각인 듯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렇게 할 셈이었나 보지?
“그렇다면 차라리 미 정부가 주도적으로 현물들을 팔아치운 뒤 그 돈으로 망해가는 기업들을 지원해 주는 게 낫지 않겠소?”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었지만, 킬라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본인이 선거운동을 하셨을 때 외쳤던 구호인 무역을 통한 경제 위기 극복을 지키고 싶어 하십니다. 폐하와의 협상을 통한 계약 체결이야말로 각하께서 시민들에게 말한 공약과 정확히 부합하는 모습이니까요. 폐하께는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민주주의라는 게 때때로 이렇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제안한 사항에는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소리였다.
날이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지금 자신이 말했던 국제 무역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만큼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게 없을 테니까.
아직까지 국회라는 조직조차 제대로 구성하지 않은 러시아인만큼 칼라일은 이런 현상을 내가 신기하게만 생각할 거라 여기는 듯했지만, 지금보다 발전한 민주주의가 일상이었던 21세기를 살아가던 기억이 있는 만큼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이라면 이용을 해주는 게 당연했지만.
* * *
[철강업계 한숨 돌리다! 동토로부터의 막대한 철강 매입!] [멈춰 있던 기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결단은 과연 옳았는가?] [고마워요, 니키! 냉동고에서 부디 원하는 걸 찾길 바랍니다!]“허허허, 좋아. 아주 수고 많았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모처럼 신문을 읽었음에도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의 신문 머리기사는 자신을 욕하기에 바빴지만, 요 며칠간에는 조금씩 오르고 있는 지지율을 반영이라도 하듯 본인에게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별다른 지출을 하지 않고서 원하는 걸 모두 얻어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러시아 제국에서 새로 즉위한 차르는 세상이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각하. 다행히 우리가 각오했던 것보다 좋은 조건으로 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각하께서 결단을 내리신 덕분입니다. 이걸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이번 결과는 자네의 뛰어난 협상 능력 덕분인데 겸손하기까지 하군. 그나저나 알래스카에서 금이나 목재도 아닌 석유를 원한다고 한 이유가 대체 뭔지 궁금할 지경이야. 그곳에 석유가 있기는 한 건가?”
“탐사결과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 양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지역 특성상 시추 난이도도 높아서 채산성이 낮을 것 같다는 게 현재 정유업계의 여론입니다.”
“아마 본인이 뒤를 봐주고 있는 브라노벨 사를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듣자 하니 브라노벨의 수익금 중 일부가 로마노프 황실의 개인 금고로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왕족이란.”
처음에 니콜라이가 수어드의 냉장고에 대한 계산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가슴이 철렁였던 칼라일이었다.
하지만 영토 할양이나 제2의 골드러시라 불릴 정도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금이 아닌 알래스카 지역의 석유 개발권을 달라는 얘기를 듣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영토 할양을 요구했다면 그 자리에서 협상은 결렬되었겠지만, 다행히 러시아의 차르는 그 정도 분별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캄차카 반도? 내가 말한 발음이 맞나? 그곳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물자 등을 지원해 주고 일본에 차관을 추가적으로 제공하지 않아 줬으면 된다는 조건이 전부라니. 허, 오늘 하느님께 자비로운 차르를 협상장에 보내줘서 감사하다는 기도라도 올려야겠군.”
내심 그들이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유 중이던 러시아령 아메리카 지역을 팔아넘길 때의 계산을 다시 하자는 등의 수준까지 각오하고 있던 미국 행정부로서는 참으로 관대한 협상 조건이었다.
본인들이 파악하기로는 캄차카 지역에 있는 러시아인들의 숫자 정도야 별로 되지도 않았으며, 일본에 제공하던 차관도 그들이 교토 협약으로 목줄이 채워진 이후에 영국이 일본을 본인들의 챔피언으로 육성하려던 계획을 폐기하고 자원을 뽑아먹는 곳으로 재인식한 이후 미국 또한 슬슬 손을 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 본인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던 애송이들도 이런 성과를 이룩하자 최근 조용해졌기에 클리블랜드는 요즘 재선하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협약이 단순 소비재나 생산 기계를 수출하는 정도로만 이루어져 러시아의 시장 자체를 점유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국민들 앞에서 본인이 말한 슬로건이 맞지 않냐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는 됐으니까.
훗날 협상 담당자였던 칼라일의 이름을 따 ‘칼라일의 바보짓’, ‘클리블랜드의 기부’라고 불릴 협정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알래스카에서의 석유 개발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채산성이 없다고 여겨졌었습니다. 주인공이 미리 당첨이 확정된 복권을 예약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