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3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32화
51장 다가오는 폭풍
어떤 사람들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혁명은 하나의 공통된 적에 맞서 다양한 세력이 힘을 합쳐 싸우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되지만, 개혁은 공공의 적도 없을뿐더러 앞서 힘을 하나로 모았던 이들이 저마다의 이익을 찾아 이합집산을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에 동의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말 자체가 성공한 혁명가라 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혁명가들이야말로 개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에 성공한 뒤 타락해 독재자가 된 혁명가는 세계사를 뒤져보면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국가가 개혁을 시작했다는 말은 오히려 그 국가가 어느 때보다 멸망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말 또한 존재할 정도로, 개혁이라는 정치적 행위는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시대에 신설되었던 젬스트보를 견제하고 보수 반동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직책이었던 젬스키 나찰니크(지방 행정 조직 감시자)의 폐지.
툭하면 발생하던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상수도관과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의 확충.
연례행사처럼 느껴지는 기근을 막기 위한 농업 기술 향상 및 경직된 농촌 사회의 원인 중 하나였던 미르 폐지.
전 국민의 70%가 넘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조차 읽을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젬스트보 기반의 교육 개혁. 등등.
일일이 옮기자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의 개혁 정책들을 펼쳐왔지만,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러시아라는 나라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점은 내 앞에 놓인 상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젬스트보의 청원서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점차 쓸모가 다 해가는 나의 사학도로서의 지식에서는 지금보다 이후에-그러니까 대관식 이후-새로운 차르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던 그들이 니콜라이에게 청원서를 보낸 것으로 기억되지만, 지금껏 내가 보여온 개혁적 행보에 감명받았는지 아직 대관식을 치르기 전의 나에게 보내온 호소문이었다.
내심 러시아 제국의 유지와 로마노프 황가의 생존을 위해 시행하는 개혁 작업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첫 번째 부분에서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작했다고 여기던 나로서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점차 타성에 젖어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던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폐하의 앞에 놓여 있는 러시아라는 국가는 침묵과 무기력, 절망감에 빠져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폐하의 앞에는 인민, 자신의 삶이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내일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고, 급진적인 사상을 말하지는 않지만,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폐하와 똑같이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고, 보다 자유로운 삶과 올바른 신앙에 대한 믿음을 열망하며, 농촌 개혁에 대한 완성을 요구하는 인민이 있습니다.]러시아 인민주의자들의 대부 중 하나인 미하일 바쿠닌의 형제들-그와는 달리 급진적이지는 않은-이 활동하는 지역이자 트베리 주 젬스트보 상임 위원장으로 선출된 로디체프가 자신의 명의로 보내온 호소문의 첫 문장이었다.
원 역사에서는 당시 내무장관이던 두르누보의 반대로 상임 위원장으로 취임할 수 없었지만, 내가 개입함으로써 그는 젬스트보 위원장으로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아마 현재 러시아 내의 있는 지역 중 가장 좌파적 성향이 강할 트베리 주의 젬스트보들이 보내온 청원서의 적혀 있는 요구사항들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1. 아직 젬스트보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으로의 젬스트보 제도 확대.
2. 젬스트보가 단순히 지방 행정 조직이 아닌 지역 내의 민의를 수렴해 중앙으로 전달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해 줄 것.
3. 폐하께서 미르를 해체함으로써 농민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려고 하신 것은 알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미르 대신 농업조합에 농민들이 다시금 얽매이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에 볼로스트(한국으로 따지자면 ‘면’ 정도의 행정 단위)를 기반으로 한 개혁 작업의 필요성.
4. 알렉산드르 3세 시절 만들어졌던 젬스키 나찰니크의 폐기 등으로 폐하께서 우리 젬스트보가 행동할 수 있는 반경을 넓혀주신 것은 감사드리나 여전히 내무부를 비롯한 주지사의 간섭이 너무 심하므로 이를 완화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사항 중 세 번째인 미르 개혁의 완수와 관련된 항목은 다름 아닌 내가 앞서 언급한 일차적 개혁 작업 중 아직 시행이 되지 않은 마지막 하나였다.
미르를 해체하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고는 하지만, 재정적인 측면으로 인해 아직 토지 상환금을 전액 탕감해주거나 큰 폭으로 줄여주는 작업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르만을 폐지하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 건 바보나 다름없는 짓이지.’
문제의 원인 중 하나를 제거했다고 후속 조치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은 또 다른 원인이 만들어지도록 방치하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미르 대신 젬스트보와 연계해 농촌 사회를 통제하고 농민들이 첫 번째로 마주할 지방 행정 조직인 볼로스트는 자체적으로 강력 범죄나 사안이 거대한 사건을 제외한 사건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정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꽤 권한이 막대한 조직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중앙에서 지방을 일일이 통제하기 위해 파견했던 젬스키 나찰니크나 농민들이 귀찮은 사상을 접할 것을 우려한 보수파들이 그것을 막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차 다각화되어가는 복잡한 사회를 중앙에서 전부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에 구시대적인 관점으로 농민들을 통제한다는 건 오히려 불만만 가중시킬 뿐, 보수파들이 원하는 체제 유지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게 분명했다.
원 역사에서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한 귀족 관료들이 지방의 실태를 목격하고 인민주의자로서의 성향을 보이게 된 수많은 사례들은 개선 없는 억압은 오히려 지배층이 현상 유지를 바라고 시행한 정책이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증거였다.
다만 그들의 말을 한 번에 다 들어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옳은 의견이라 할지라도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와 관련해 의견을 밝히기는 해야겠군. 이런 청원서가 한 군데서만 온 게 아니니까 말이야.’
앞서 내가 언급한 트베리 주뿐만 아니라 체르니코프, 쿠르스크, 툴라 등 자그마치 9개나 되는 주의 젬스트보가 이러한 형식의 청원서를 보내온 만큼 나도 어느 정도는 이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기는 해야 했다.
아버지 시대보다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지만, 전제군주정이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기억하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기까지 무슨 각오가 필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저희는 사회 기관이 본인들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권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행정 당국의 대표자들만이 아니라, 러시아 인민의 필요와 생각이 군주의 보좌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폐하, 저희는 당신께서 통치하시는 동안에 살아있는 사회 세력이 크게 발전함으로써 러시아가 평화와 진리의 길로 전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트베리 주에서 보내온 청원서 마지막에 적혀 있는 문장은 그들-온건 개혁 주의자-이 가진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저들은 러시아 제국이라는 나라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나라를 바꾸는 데는 피와 칼, 총과 화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믿는 저들을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으며 앞으로의 개혁은 테러와 화약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원 역사의 니콜라이였다.
대관식 이후 첫 공식행사에서 저들이 보내왔던 호소문에 대한 답변으로 본인은 전제군주정을 수호할 것이며 젬스트보를 비롯한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말을 ‘허황된 소리’라 일축한 건 바로 그였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나의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 * *
니콜라이가 즉위한 이후 언론에 대한 통제가 약해진 이래로 통일된 1면 기사를 보여준 적이 드물었던 러시아 내의 신문들은 일제히 똑같은 문구를 헤드라인으로 내걸었다.
[폐하의 응답! 저들은 나의 대관식 날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과연 폐하의 의중은?] [젬스트보들의 발칙한 청원! 나라를 어지럽히려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보수주의자들! 자비로운 폐하께서 젬스트보들의 호소에 응답하시다!]언론이 평상시 보여주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어조는 달랐지만, 그 내용은 모두 같았다.
지난번 젬스트보가 차르에게 청원서를 보냈다는 전무후무한 일 이후로 침묵을 지킬 거라 예상되었던 니콜라이가 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리고 이 보도를 보는 이들의 반응 또한 극명하게 엇갈렸다.
“폐하께서 지금까지 보여주신 행보로 보아 당연히 이번 청원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실 게 분명하지. 이런 당연한 미래를 아직도 보지 못하는 이들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구만. 대관식 날 그 치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기대가 되는군.”
“이번 폐하의 대답은 구시대의 체제에 대한 사형선고이자 여전히 다가오는 미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파에 대한 폐하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생각인가? 총과 횃불을 든 폭도들이 자신들의 화려한 저택의 정문을 두드릴 때?”
청원서를 보낸 주축인 젬스트보를 비롯한 개혁주의자들은 드디어 폐하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소망을 들어주시려는 의사를 보여주셨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그들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니콜라이가 해온 것을 보면 그 누구보다 개혁군주라는 명칭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들이 느끼기에 이는 안주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보드카부터 들이키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당연한 과거로부터의 분석을 통한 추론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마 정말로 폐하께서 저놈들을 국정을 운영하는 데 포함시킬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이러다가는 프랑스처럼 왕이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할 지경까지 이르겠습니다!”
“세르게이 대공 저하! 폐하가 정말로 저놈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생각을 품고 계시다는 말입니까? 자고로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를 자기들 멋대로 바꾸자고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세르게이 대공을 필두로 한 보수파는 여느 때보다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시절 종무원장의 숙청 이후로 별다른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흩어져있던 그들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선제의 형제인 세르게이 대공을 필두로 뭉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 3세가 살아있었다면 그가 제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차르는 니콜라이이지만 로마노프 황가 내에서의 큰 어른은 바로 세르게이 대공이었으니까.
“다들 진정들 하시오. 귀족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게감이 없어서야 되겠소? 아직 대관식까지 남은 시간은 반년이 넘었으니 내가 직접 니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낸 후에 움직여도 늦지 않을 거요.”
세르게이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그가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준비하고 있는 당사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