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3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33화
대관식이 어떤 행사이던가?
자신이 선대로부터 정당하게 자리를 물려받았으며 이를 신과 귀족 그리고 신민들 앞에서 공언 받는 자리가 바로 대관식이었다.
과거 백년 전쟁 당시 수세에 몰린 샤를 7세가 정적들로 공격받던 이유 중 하나가 정당하게 대관식을 치르지 못했다는 것일 정도로 이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지금은 의미가 과거보다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열 중 아홉은 대관식이라 말할 정도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폐하가 대공 저하께 대관식 준비를 일임하셨었지요.”
“지난 시절 종무원장을 한 번에 날려 보내셨던 걸 생각하면 대공께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계시다는 것을 모르고 계실 리도 없으니 이는 폐하가 저희에게 보내는 안심하라는 의사 표시가 아닐까요?”
“바로 그거요. 거기에 니키가 아무리 온화하다고는 하나 저런 식의 오만한 통보문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러니 너무 호들갑들 떨지 말고 느긋하게 기대에 가득 찬 저놈들의 얼굴이 대관식 날 일그러지는 거나 지켜보고 있으면 될 거요.”
다만 세르게이 대공의 호언장담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귀족들은 여전히 많았다.
단순히 이번 일만을 가지고 안심하기에는 그동안 니콜라이가 보여왔던 행보가 걸렸기 때문이다.
농노 해방령에 버금갈 정도의 미르 해체령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개혁 정책을 추진해 온 니콜라이가 이번에는 자신들의 손을 들어주리라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공 저하, 정말로 폐하께서 저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현상 유지를 선택하실까요? 솔직히 저하께 대관식 준비를 맡기는 것으로 저희를 안심시킨 뒤 다시금 사회적 혼란을 불러올 것이 분명한 개혁을 밀어붙이시는 게 아닐지 우려가 됩니다.”
“그런 걱정을 가지는 데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여태껏 니키가 쉴 새 없이 달려온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사람이나 말이 그러하듯 나라 또한 계속해서 달려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오.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숨도 고르고 자신이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이번에도 저 친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적인 정책을 실시한다? 그때는 우리가 아니라 관료 집단이 먼저 반기를 들고 일어설 거요.”
세르게이 대공의 확언에는 다른 근거도 있었다.
니콜라이가 황태자 시절 국정을 주도적으로 운영할 때부터 혹사에 혹사를 거듭해 온 관료들에게 누적된 불만으로 인한 파열음이 차츰 행정부를 넘어 외부로까지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테나 스톨리핀 같은 고위층은 차르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보내고 있었지만, 처우가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업무에 비해 적은 보상을 받고 있는 하급 관료나 자신들에게 안 좋게 작용할 정책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귀족 출신 관료들은 얘기가 달랐다.
이렇게 세르게이가 자신이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들을 말했음에도 자리에 모인 이들 가운데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귀족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대공 저하,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차르께서 이런데도 저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저희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본인의 반복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의심의 말을 던지는 이에게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세르게이 대공은 고함 대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황실의 어른으로서 니키가 국가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막고 국정을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나?”
그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맴도는 것은 촛불이 타면서 내는 소리뿐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적막감이었다.
어둠 속에서 초에서 반사된 빛으로 인해 번득이는 안광만이 이내 여기에 있는 게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1896년 5월 25일은 러시아 제국뿐만 아니라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날이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유명한 니콜라이가 드디어 정식으로 러시아 제국의 차르로서 즉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의 사촌인 영국의 조지 왕자를 비롯해 동맹인 프랑스는 물론, 불편한 관계인 독일 제국에서도 축하 사절을 보내왔으며, 저 멀리 극동에 있는 일본과 조선에서도 특사를 보내올 만큼 러시아 제국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비록 대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황제의 곁에 설 황후는 아직 없었지만, 그가 차르로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세계 각지에서의 귀빈을 비롯해 행사가 끝나고 열릴 연회에서 지급되는 공짜 빵과 술, 그리고 끝난 뒤 새로운 황제의 등장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나누어질 상품들을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군중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질서를 지켜라! 앞사람을 밀지 마라! 빵과 술, 상품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 조급함을 버리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라!”
“주방에 가서 새로운 빵은 언제쯤 나오는지 물어보고 오렴. 아직은 넉넉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동이 날 테니까. 저들이 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가판대 위에 빵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해.”
“젠장, 사람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군. 폐하께서 최소 백만 명이 몰릴 것을 염두에 두고 행사를 준비하라고 하시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겠어.”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지는 대관식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는 어마어마하다는 수식어 외에 어울리는 다른 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세르게이 대공은 처음 행사를 준비할 당시 20만 명 정도가 올 것으로 가정한 뒤 행사를 준비했지만, 만약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게 분명했다.
자신들은 빵과 상품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군중들이 저마다 서두르기 시작했다면 대규모로 압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방금 뭐라고 했느냐. 100만? 이번 대관식에 100만 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몰릴 거라 생각하고 행사를 준비하라고? 니키, 그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준비하는 데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구나. 물론 나 또한 네 대관식에 신민들이 누구나 참석하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한다만, 100만이라니.
-삼촌께서 국고의 낭비를 걱정해주시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이번 일은 제 의견에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행사는 다른 누구의 대관식도 아닌 바로 저의 대관식이니까요. 저는 제가 정식으로 차르에 즉위한 날 안 좋은 일이 발생했다며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행사의 규모를 두고 세르게이 대공과 니콜라이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승자는 니콜라이였다.
그의 말대로 이번 대관식은 그의 즉위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브라노벨과 예전에 맺은 협약 덕분에 러시아 중앙은행에 쌓여 있는 막대한 양의 금 중 일부가 사용되긴 했지만, 행사 준비는 순조로웠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품이 나누어지는 광장으로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들의 숫자를 제한했으며, 모스크바 내의 경찰력뿐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다른 도시들의 경찰과 헌병대까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 요원으로 동원되었다.
세르게이 대공 휘하의 실무진들은 행사장으로 오는 경로를 최대한 여러 개로 만들어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고, 대관식을 홍보할 때도 인파가 몰리더라도 모두 나누어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양을 준비했으니 서두르지 말라는 식의 광고가 연일 신문을 장식했다.
모스크바에 모인 인파들이 기대하는 황제가 자신의 신민들을 위해 여는 피로연은 대관식 당일이 아닌 다음 날인 26일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모스크바에 와있을 정도로 이번 행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러시아의 국가가 거리를 메우는 날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열광적이었다.
복잡한 정치 같은 것은 모르는 시골에서 막 상경한 농민들은 지난 기근에서 자신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황태자가 드디어 황제에 오른다는 것에 기뻐했으며, 자신이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이들은 개혁적 행보를 이어온 니콜라이가 대관식 날 젬스트보들이 보내온 호소문에 한 답변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저들과 의견들 달리하는 귀족들은 우려 서린 말들을 주고받으며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거리가 아닌 본인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 서로 소곤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폐하께서 결국 그런 식으로 나오실 줄이야. 젬스트보 놈들이 요구한 4가지 사항들에 대해 전부 들어주시지는 않았어도 결국 우리가 아닌 저들의 손을 들어주시겠다고 하신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대관식 당일 사제로부터 건네받은 왕관을 쓴 니콜라이는 얼마 전 있었던 발칙한 청원서-그들이 느끼기에-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보통이라면 이런 영광을 허락해 주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그분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다스릴 본인에게 지혜와 가르침을 달라는 말이었겠지만, 그는 이번 기회에 쐐기를 박기로 한 모양이었다.
[최근 들어 사회 각지에서 본인들을 국정을 운영하는 데 참여시켜달라고 하는 젬스트보 대표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허황된 공상’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는 행정적 문제이기도 하고 재정적 문제이기도 하며 또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나는 한 달 후인 6월 25일, 나에게 호소문을 보내온 젬스트보 대표들과 직접 만날 의향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본인의 독단으로만 처리하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들을 걸러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호소문을 보냈던 젬스트보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인들의 군주가 자신들의 간절하고 정중한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제한적으로나마 받아들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귀족들에게는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선언이었다.
비록 당장 저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니콜라이 본인은 그들의 생각에 동의를 표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관식 행사를 책임졌던 세르게이 대공 또한 귀족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에게는 수십만 명이 모였음에도 연회가 별다른 문제 없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본인의 조카인 니키가 기어코 자신들에게 선전포고와 비슷한 행위를 했다는 게 이 시점에서 가장 집중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여러분.”
걱정과 불만 섞인 속삭임을 주고받던 귀족들이었지만, 세르게이가 입을 열자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대화를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걱정과 한탄이 대화 주제였다면 지금부터 나올 얘기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와 사명을 통해 이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제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여러분은 지금껏 새로 즉위한 차르가 저절로 올바른 길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지켜봐 왔지만,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니키가 감고 있는 눈을 뜨게끔 만들어줘야만 합니다.”
“옳소!”
“맞습니다!”
귀족들의 동의에 힘을 얻은 양 세르게이의 어조에는 점점 더 단호함이 깃들어갔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을 비롯해 나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나서야만 합니다. 더 이상 러시아 제국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가만히 볼 수만은 없습니다. 고귀한 피에는…….”
쾅!
“큰일 났습니다!”
대공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그들이 모인 장소의 문을 거칠게 열어붙이며 경악한 얼굴을 한 귀족이 뛰어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어떤 말이든 엿들을 수 있고 무슨 비밀이든지 파헤칠 수 있는 오흐라나가 이번 일도 미리 알아채고 차르에게 보고한 것이 아닌가였다.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어 보이던 종무원장이 극동에 있는 촌구석에 처박히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자가 가지고 온 소식은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여, 영국에! 러, 런던에 코뮌이 설립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