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3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36화
[썩어빠진 귀족들을 몰아내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코뮌에 충성을 다하자!]“빨리빨리! 어서 움직여!”
조악한 솜씨로 인쇄된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벽 앞을 한 무리의 사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각자 평상시 입던 옷을 걸치고 나왔는지 하나같이 통일된 복장이 아니었지만, 그나마 팔에 차고 있는 완장 하나만이 그들이 같은 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옷이 통일되지 않았는데 제식 병기가 있을 리 만무했기에 사내들의 손에 들린 무기도 저마다 개성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경찰이나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리-엔필드부터 어디 귀족 집에서 들고 나왔는지 고풍스러운 장식이 붙어 있는 사냥용 엽총은 양반이었다.
그중 압권은 과거 미국 독립 전쟁 시절 레드 코트들이 들고 다녔을 법한 화승총이었는데 그마저도 없이 몽둥이나 스패너 등을 들고 있는 이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눈치챘겠지만, 런던에 수립된 코뮌의 자경대이자 군대였다.
일주일 전 다소 충동적으로 시작됐던 시위는 영국 정부는 물론이고 그날 거리로 나왔던 이들에게도 충격적인 결과를 안기고 끝났다.
당일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자신이 버킹엄 궁과 웨스트민스터 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테니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자 오히려 당황에 빠진 건 노동자 측이었다.
처음에야 본인들이 이룩한 승리를 자축하고 그 기세를 몰아 코뮌까지 설립했지만, 별다른 비전 없이 정권을 잡은 이들에게 발생하는 문제가 코뮌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여전히 런던 내에 남아있는 자본가를 비롯한 과거 우리를 착취했던 이들을 잡아다가 처벌을 해야 합니다! 아직 정의는 다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혼란에 빠진 런던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할 때입니다. 정의 구현도 좋지만, 아직 런던 밖에 남아있는 군대와 다른 귀족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여론을 주도하게 된 것은 강경파였지만, 그들 또한 본인들이 생각한 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타타탕! 탕!
“악!”
“지미가 맞았다! 모두 몸을 숨겨!”
“망할 짭새 놈들!”
이내 혼란에서 벗어난 런던 경시청 잔존 병력을 비롯한 군 병력들이 자체적으로 반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코뮌 수뇌부가 조금만 더 신중하거나 아니면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면 가장 먼저 아직 런던 시내에 남아있는 정부 측 병력의 무장을 해제하고 그들을 해산시켰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말단 순경과 같은 이들은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자진 투항을 유도했겠지만, 코뮌 상층부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거리에서는 그동안의 울분을 풀겠다는 식의 사적제재와 린치가 이어졌기에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추가적인 피를 흘리지 않고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그 소중한 시간을 상층부는 자신들끼리의 논쟁으로 헛되이 흘려보낸 것이다.
“꺽다리하고 존은 좌측으로 돌아서 놈들의 측면을 공격해! 나머지는 나와 함께 놈들이 옆으로 우회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한다!”
“예!”
그 결과 런던 시내는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마치 시가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포병과 같은 병과는 동원이 되지 않고 있었기에 민간인들의 피해는 적었지만, 런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때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막대한 용기를 내야 한다는 점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가 시민들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도 자신들이 지켜야 할 왕실의 실종과 목표의식의 부재, 다른 지역도 이미 마찬가지일 거라는 체념으로 인해 단 며칠이었지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가전도 코뮌 측의 승리로 마무리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와는 별개로 코뮌 상층부의 표정은 별로 밝지 못했지만.
지금 자경대를 이끌고 있는 토미는 그들이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초반만 하더라도 런던이 무너지는 것을 본 다른 도시의 노동자들이 본인들의 뒤를 따라 연달아서 봉기를 일으킬 거라 생각했건만, 런던과 인근을 제외한 다른 도시는 여전히 잠잠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나면 맨체스터 같은 공업 도시는 물론이고 지방에 있는 탄광촌에서도 연달아 봉기가 일어날 거라고 장담하더니 그렇게 말하던 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구만.’
런던 코뮌에 소속된 이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아직은 상층부만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토미는 이게 새어나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당장 지금에야 잔존 시경들과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기에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이게 해결된 뒤에는 지금껏 그들이 말해왔던 다른 도시들의 호응은 어디 갔냐는 물음이 줄을 이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코뮌이 이렇게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그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기른 적이 없는 노동자 계층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처음부터 그들을 이끌었던 지휘부의 대다수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지난 시절 정부의 노조 탄압 이후로 지하에서 모임을 개최하고 이끌어온 가폰을 비롯한 그와 함께 조합을 주도해 왔던 인물들이 첫날의 혼란이 지나고 어느 정도 수습이 된 다음 날이 되자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혼돈 그 자체였던 시위의 가장 앞에서 자신들을 이끌다가 경찰들에게 붙잡혀 갔다고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예상외로 사태가 커지자 그들이 겁을 먹고 숨어버린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태 초기 코뮌 상층부의 혼란은 그들의 증발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었다.
“여왕 폐하를 위하여!”
“형제들을 배신하고 구체제에 기생해 피를 빨아먹던 놈들!”
아까 자신이 보낸 2명이 위치에 도착해 측면을 공격함과 동시에 돌격명령을 내려 방금까지 경찰들이 틀어박혀 저항을 계속하던 건물을 점령한 토미였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총소리들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서둘러!”
바닥에 널브러진 경찰들로부터 총기와 탄약 등을 챙긴 뒤 아까보다는 줄어든 인원들을 이끌고 총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이들의 뒤로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오늘은 모처럼 런던 하늘에 해가 모습을 드러냈건만, 시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둡게만 보이고 있었다.
* * *
런던을 탈환하기 위한 병력의 편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안도 사안이거니와 이곳에 모인 각국으로부터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원정군의 주축은 우리 러시아 군이었으며 명목상의 지휘관은 조지 왕자였다.
프랑스나 독일도 본인들의 병력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지만, 이는 조지가 거부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무산되었다.
그러자 다른 국가들은 저마다 이번 일이 끝난 뒤 청구할 정산서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리고자 다른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번 원정군이 출발할 항구는 다름 아닌 칼레항이었으며 이들이 거기까지 이동하는 데 필요한 이동 편은 독일이 제공하기로 하는 등, 이번 일은 저마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감정은 잠시 뒤로 밀어둔 채 표면상으로는 하나로 뭉쳐 영국을 돕겠다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니키, 정말 고맙다. 덕분에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다시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조지는 소식이 전해진 날 보였던 모습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였다.
내일이면 칼레로 선발대인 2만의 병력과 함께 출발하는 그는 벌써 런던을 탈환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제대로 조직되지도 않은 데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런던을 점령하게 되어 우왕좌왕하고 있을 코뮌이라면 선발대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조지의 머릿속에는 이후 청구될 계산서는 아직 떠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뭘, 그건 그렇고 아직 가족들에 대한 소식이 들어오지 않아서 유감이야.”
만약 사태 초기의 혼란 도중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폭도들에게 살해당하거나 붙잡혔다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테지만, 여전히 코뮌은 영국 왕실의 행방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총리직을 역임하고 있던 솔즈베리 후작의 경우에는 폭도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 걸로 봐서는 아마 코뮌 상층부도 영국 왕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게 분명했다.
“아마 여전히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지역이나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피하신 게 분명할 거야. 형이 런던을 탈환하면 그분들도 안심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시겠지.”
그럴 가능성은 낮았지만, 나는 조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가능한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래, 그래야지. 만약에라도 여왕 폐하나 내 아버지의 신변에 이상이라도 생겼다면…….”
조지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뒷말이 어떤 내용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 일은 전쟁이 아닌 토벌이야. 저들은 자신들이 런던, 아니 영국의 정통 정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들은 단순한 폭도이자 반란군이며 다른 지역에서의 호응도 받지 못하고 있는 쓰레기에 불과해.”
시간이 지나고 영국 본토로부터의 정보가 도착하자 조지는 훨씬 안정을 되찾았었다.
그가 우려한 것처럼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봉기가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는 얘기가 주였기 때문이다.
다만 대영제국이 세계 곳곳에 뻗어놓은 촉수인 식민지에서의 동요와 소요를 막기 위해서 그리고 아직은 잠잠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일어날지도 모를 다른 지역에서의 제2의 코뮌을 막기 위해 신속한 진압이 필요했다.
조지가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나에게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도움은 고맙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규모를 줄이거나 아니면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겠다고 의사를 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사태를 끝내기를 바라는 그였기에 여전히 파병 계획은 유효한 상태였다.
이번 일은 나로서도 얻은 게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공들여 구축해놓은 런던 내부의 연락망과 지하 조직을 잃었지만, 다시금 결집하려는 모습을 보이던 보수파를 와해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 흔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열강의 자리를 차지할 영국의 새로운 왕에게도 족쇄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 먼저 일어나봐야 할 것 같다, 니키.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거든.”
원정을 위해 잠자리로 향하는 조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번 일의 원인 중 하나가 나라는 것을 알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이내 위험한 호기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이번 일로 유럽 열강들은 외부가 아닌 본인들의 내부로 눈을 돌리겠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영국의 수도에서 벌어진 일을 본 유럽 정부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파리 코뮌 이후로 지하에서만 명맥을 이어 나가는 걸로 생각했던 자유주의, 인민주의 세력이 여전히 저 정도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번 영국 사태가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조기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나에게 있어서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영국이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유럽 각국은 서로 간의 다툼보다는 자신들 안에서 자라나는 암세포를 때려잡는 데 집중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보수주의적, 반동주의적 행보를 이어나갈수록 뒤쳐져 있던 러시아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날 게 분명했다.